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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15화)
6. 칠천회(一)(2)


아침이 밝았다. 첫날 펼쳐지는 비무는 모두 세 번으로, 그중 궁현의 순서는 세 번째였다. 웬일인지 거리낌 없이 들어온 화선에 의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강제로 수련을 해야 했던 궁현은 조금 더 자고 싶었다. 하지만…….
“와아아아―! 형님! 이겨라!!”
“아우야! 지면 안 된다!!”
“청학아!! 모용세가라고 겁먹을 것 없다!! 넌 이길 수 있어!!”
이렇게 주위가 시끄러운데 잠에 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직 1회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렇다니, 도저히 예를 중요시하고 의젓함을 뽐내는 명문세가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칠대세가의 사람들은 이렇게 모든 것을 해방시키고 ‘지를’ 수 있는 때가 칠천회 때 이외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때에는 예를 차리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이 때 만큼은 시끄러워지는 것이었다.
“예, 진정들 하시지요. 허허, 부끄럽지만 저는 이번 칠천회의 중재를 맡게 된 남궁섬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좌중들이 대부분 입을 다물었다.
단뢰검자 남궁섬!
남궁세가의 장로로 지난 정사대전(正邪大戰) 때, 사파의 두 거마(巨魔)라 불리우던 일검무혼(一劍無魂) 사마열(司馬裂)과 혼천패도(混天覇刀) 간헌풍(艮獻風)과 대결하여 그 둘을 은거(隱居)시킨 장본인 아닌가! 그가 조용히 하라는데 대놓고 무시할 위인은 아마 전 무림을 통틀어도 없을 터였다. 아니, 찾아보면 한둘쯤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남궁섬은 조용해진 연무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둥그런 비무대에 서서,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칠천회의 규칙을 설명했다.
“……패배를 인정하거나 저와 이 심사원분들이 제압했다고 판정을 내리면 승리가 됩니다. 또, 살초(殺招)를 펼치거나 이 비무대를 벗어나거나, 관중들을 일부러 공격해도 실격 처리가 됩니다. 아, 이번 심사원은 각 세가의 태상가주께서 맡아 주셨습니다. 호오, 지루하셨나 보군요. 그럼, 제일회전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한 남궁섬은 비무대에서 내려오며 남궁적에게 말을 걸었다.
“허허, 참. 중재라는 것도 너무 낯부끄러워서. 할 만한 것이 못 되는 구려, 형님.”
“하하, 그랬나?”
남궁섬과 남궁적은 서로 사촌 형제 사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태상가주니, 장로니 하는 것은 잘 따지지 않는 편으로, 어릴 때부터의 습관 그대로 ‘형님, 아우’ 하는 사이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모용세가의 가솔들이 머물러 있는 곳에서 한 인영이 빠져나왔다.
바로 소소검 모용서현이었다. 그가 바로 첫 번째로 비무대에 오르는 이였던 것이다. 그가 오르는 것을 본 청색 무복을 입은 단목청학도 긴장했는지 몸짓이 굳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비무대에 올랐다.
“소소검 모용서현이라 하오.”
단목청학이 비무대에 오르자 서현은 특유의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하며 거의 머리 셋 정도가 차이 나는 단목청학에게 포권지례(抱拳之禮)를 취했다.
그걸 본 단목청학도 얼떨결에 명호를 밝히며 마주 포권했다.
“자뢰삼검(刺雷三劍) 단목청학입니다.”

“마, 말도 안 돼.”
아주, 아주 잠시 뒤. 장내의 사람들은 전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단목청학이 약하다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칭찬을 시작한 것은 남궁적이었다.
“허, 허허허. 과연, 천하의 기재(奇材)로다!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그 순간만큼은 각 세가의 태상가주들도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비무 시작!”
남궁섬의 말에 단목청학과 모용서현은 검을 빼어 들었다. 서현이 검을 잡자, 그 길이가 거의 서현의 키와 비슷한 것이 우스꽝스러울 법도 한데 그 작은 체구에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좌중은 오히려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인 단목청학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단목청학이 그렇게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서현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서현이 입을 열었다.
“……조심, 하시오.”
번뜩!
챙!
말을 끝낸 서현은 빠른 속도로 단목청학의 허리를 베어 나갔다. 아무런 초식도 없는, 그저 ‘베기’였다. 그런데 그 검의 곡선이 아래로 약간 비스듬한 것이, 마치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는 여인네의 미소 같았다.
그랬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별호가 있게한 ‘소소검(小笑劍)’이었던 것이다.
땅그랑, 툭.
간신히 검을 들어 막은 단목청학이었지만, 그 힘을 버텨 내지 못하고 검을 놓치고 말았다. 놓친 검은 두세 번 회전하더니 비무대 밖에 떨어졌다. 무인(武人)으로서 엄청난 수치였다. 하지만 단목청학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 베기가 자신의 목을 향해 내뻗었다면, 분명히 자신의 목은 떨어졌을 테니까.
“졌…… 습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것이 다였다. 너무나도 빠른 결판. 그로부터 조금 뒤, 남궁적의 입에서 천하의 기재라고 모용서현을 칭찬하는 말이 나온 후에야, 모용세가의 가솔들은 환호했다.
“와아아―!! 소가주님이 이겼다!!”
“…….”
하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영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다음 비무를 기다리는지 연무장 중앙의 비무대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예, 아버님은 더 큰 것을 바라시는군요.’
그런 생각을 하며 우승에 대한 결심을 굳히는 서현이었다.

한편, 궁현은 그 모습을 보며 아직도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굉장하구나.
―저, 저 아이. 저랑 다다음 번에 부딪히잖습니까! 그냥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전음을 배운 궁현은 노인에게도 전음이 가능하고 자신도 노인에게 전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해서 남들이 있는 곳에서 꼭 대화가 필요할 때에는 이렇게 전음으로 대화를 하곤 했다.
각설하고, 궁현의 전음을 들은 노인은 두어 번 혀를 차더니 궁현을 꾸짖듯 말했다.
―쯧쯔, 그걸 걱정할 틈이 있으면 이번 비무에서 어떻게 이길지나 걱정해라, 이놈아.
노인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는 궁현이었다.
‘아, 그렇지. 지금 나중 걱정할 때가 아니구나!’
그런 그들을 놔두고, 다음 비무가 시작되었다.
“제갈영영입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소협. 호호.”
제갈영영이 얼굴을 면사(面紗)로 가린 채 비무대에 올라서자, 장내의 사람들은 전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모용일천이 나섰다.
“섬 장로.”
“예, 지금은 중재라 부르시지요.”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참가해도 상관이 없는 건가?”
모용일천의 말인즉슨 이러했다. 만약 얼굴을 가린다면 대리출전의 가능성이 있고, 또 무인끼리의 대결에서는 상대방의 눈빛에서 읽어 내는 것이 반을 넘는데, 눈을 가리게 된다면 제갈영영의 상대는 이미 한 번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네, 역시 안 됩니다. 제갈 소저, 면사를 벗으시는 게…….”
“예, 그럼 하는 수 없지요. 좀 더 나중에 벗으려 했건만.”
아쉬운 듯한 목소리를 흘리고 제갈영영은 면사를 풀어 바람에 실어 날렸다.
그러자 제갈영영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고 장내의 모든 이들에게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외모는 분명 아름답기는 하지만, 꼭 이런 비무를 하면서까지 그 거추장스러운 면사를 쓰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역시 제갈세가의 여우라서 그런지 별 어이없는 짓을 한다는 소리가 잠시 나왔지만, 금방 묻혀 버렸다. 칠대세가는 그렇게 서로 까기 바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참, 특이한 소저시구려. 저는 황보세가의 황보진충이라 합니다.”
잠시 독백한 그는 제갈영영을 향해 포권했다. 그러자 제갈영영도 미소를 지으며 마주 포권했고, 둘은 남궁섬의 신호를 기다리는 듯 은연중에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비무 시작!”
상대가 여인에, 제갈세가의 사람이라고는 하나, 제갈세가가 이례적으로 내세운 이 인(二人) 중 하나. 방심은 금물이라고 생각한 황보진충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갈영영을 향해 일장(一掌)을 뿌렸다.
바로 황보세가의 벽력신장(霹靂神掌)이었다. 흡사 번개가 훑고 지나간 듯 공중에 뇌기(雷氣)를 흩뿌리며 쏘아진 일장은 제갈영영에게 날아가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그 와중에 제갈영영은 겁을 집어먹은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런데 제갈영영을 잡아먹을 듯 내달리던 장력(掌力)은 갑자기 제갈영영의 바로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
“대, 대체?”
“사술(邪術)인가?”
사실 장내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갈영영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황보진충에게 당할 것이라 예상했다. 한데 무언가 하지도 않고 가만히 서서 벽력신장을 파훼해 내다니? 그렇다면 단지 엄청난 기운을 일으켜 장력을 풀어 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제갈세가에서는 그런 고수가 나타날 리 없었다.
그런 가운데 각 세가의 태상가주들 사이에서는 짧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호오, 소리비도(小莉飛刀)인가? 하나 그 비도술이 제대로 된 위력을 내려면…….”
“그렇다면 저 어린 나이에 벌써 초절정(超絶頂:절정(絶頂)과 화경의 사이)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인가?”
소리비도!
소리비도는 먼 옛적 소리(小莉)라는 별호를 가졌던 제갈세가의 선조가 창안한 무공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있는 무공이었다. 그런데 그 무공을 이제야 고작 약관이 되어 보이는 소녀가, 그것도 완벽하게 사용하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소이다. 하나…….”
서로 제대로 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제갈세가의 태상가주인 제갈공청(諸葛空淸)이 입을 열었다.
“저것은 소리비도가 아닙니다.”
“허?”
“뭐라? 지금 쓴 것이 비도술(飛刀術)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오?”
팽가의 태상가주 팽추산(彭抽山)이 그렇게 쏘아붙이자 제갈공청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비도술이 아니라 하지는 않았습니다. 뭐라 하면 좋을까요. 저것은 말하자면 영아(英兒, 瑛兒)들이 직접 창안한 비도술이지요. 영영비도(英瑛飛刀)라고나 할까요? 본인들도 아직 명확한 이름을 붙이지 못한 듯합니다만…… 하여튼, 굉장한 아이들입니다.”
“예?”
“보면 아실 겁니다.”
그 말에 태상가주들은 다시금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제갈영영이 황보진충을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놀랄 일이었다. 그들이 아는 제갈세가의 무공은 이리 고강할 리가 없었다.
“크.”
제갈영영은 천기미리보(天機迷離步)를 펼쳐 구궁(九宮)과 팔문(八門)의 방위를 밟아 가며 황보진충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몇 개인지 모를 비도를 뿌렸다.
휘익! 휙!
‘왼쪽 어깨에 하나, 오른쪽 옆구리에 하나, 두 다리에 각각 둘.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황보진충은 가문의 독문보법(獨門步法)인 천왕보(天王步)를 펼치며 여섯 개의 비도를 피해 내고 그 여세를 몰아 진각을 밟으며 천왕삼권(天王三拳)의 형(形)을 잡았다. 그리고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피슉!
“크……억?”
어디선가 날아온 비도가 무릎을 스치는 것이 아닌가! 그걸 신호로 자신이 생각했던, 어깨, 옆구리, 두 다리의 뒤쪽 반대편에 전부 비도를 맞은 그는 얼굴에 의문을 표하며 간신히 쓰러지려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 대체?”
뒤쪽이었다. 전부 황보진충이 생각했던 것의 완전히 대칭되는. 그랬다. 황보진충이 피한 비도는 그 뒤를 돌아 한 번 회전한 후, 완벽히 반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훗.”
짧게 미소 지은 제갈영영은 여섯 개의 비도를 다시 잡아챘다. 그러자 제갈영영의 몸에서 늘어진 얇은 실 같은 것이 햇빛에 반사되었고, 그제서야 황보진충은 그 말도 안 되는 회전의 정체를 깨달았다.
“비도에…… 실을 매달아 조종한 건가?”
“흐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네요. 소협.”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제갈소연은 유려(流麗)한 몸짓으로 일장을 뻗었다. 그 장에서 발출된 장력은 마치 벚꽃 잎이 흩날리듯 이리저리 휘날리더니, 끝내는 황보진충을 향해 날아갔다.
“이것쯤!”
장력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을 본 그는 그 장법(掌法)에 실린 내공이 그만큼 약하다고 생각하고는 태산중수(泰山重手:황보세가의 금나수)의 봉상비영산(峰上飛霙散)을 시전해 장력을 중간에서 잡아 흩으려 했다. 하나, 그런 그의 생각은 한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퍼엉!
“허억!”
처음부터 벚꽃 잎처럼 흩날리던 장력이었다. 안일한 마음으로 뻗었던 금나수(擒拿手)는 오히려 장력의 변화를 더욱 극심하게 했고, 결국 장력은 나비가 날듯 하늘거리며 황보진충의 배에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