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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16화)
6. 칠천회(一)(3)


외유내강(外流內剛)이 이런 것을 이르는 것일까, 황보진충에게 닿은 장력은 여태껏 흩날리던 벚꽃 잎의 자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강맹하게 폭발하며 황보진충을 삼장이나 밀어냈고, 결국 황보진충은 가까스로 비무대의 끝에 멈춰 서서 버텨 내긴 했으나, 그 후 바로 날아오듯 달려온 제갈영영에 의해 장외패를 당했다.
말이 장외패지, 황보진충은 실력으로도 상대가 안 되었다는 것이 장내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황보진충이 선공을 취했다고는 하나,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부지불식간에 조금은 방심도 했을 뿐더러, 상대가 여인인지라 그 힘을 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이렇게 해서 2회전은 제갈영영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것을 보고 있던 궁현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심호흡을 했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인 것이다. 살며시 주위를 보자 당설혜가 크고 맑은 눈으로 믿고 있다는 듯 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하아, 대체 왜!?’
왜 자신에게 반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궁세가의 둘째 아들이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면 남궁건이 얼마나 창피해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또 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뭐, 괜히 그러실 리는 없겠지만.’
그렇게 궁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비무대로 향했다. 그런 궁현의 허리에는 웬일인지 뇌붕일섬낙일명이 아닌 평범한 검이 매어져 있었다. 그 이유인즉슨, 혹시라도 뇌붕일섬낙일명을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나.
반대편에서는 팽가의 팽은설이라는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을 본 궁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말았다.
“아! 그때, 천주보…… 읍!”
‘힉! 하마터면 내 쪽에서 자백할 뻔했네, 요놈의 입이 방정이지!’
그랬다. 팽은설은 작일(昨日), 궁현이 천주봉에 오르는 길에 수련을 훔쳐 본 바로 그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궁현이 훔쳐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은설은 그런 궁현이 귀엽다고 생각하고는 미소 지었다.
‘풋, 참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팽은설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리겠어요, 소협.”
포권하며 말하는 은설의 말에 자신의 입을 어떻게 하면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던 궁현은 얼떨결에 마주 포권했다.
“아, 예, 예에. 아! 남궁현입니다. 한 수 부탁합니다, 소저.”
그런 궁현을 보고 궁현이 무인과 비무하는 것에 대해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한 남궁섬은 이대로 비무를 시작해도 되는지 고민했다.
보다 못한 남궁적이 전음을 날렸다.
―섬아, 일단은 지켜보자.
―아니, 형님. 아무리 그래도 마음을 다스릴 시간 정도는 드려야 하지 않겠소?
―허어, 나라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느냐? 하지만 여기엔 보는 눈들이 있다. 남궁세가가 자기 세가의 자식이라고 편을 들어 준다는 말을 듣고 싶으냐?
그 말에 착잡한 표정으로 비무대를 바라보는 남궁섬이었다.
“……비무, 시작!”
“후우우― 하아아아, 응?”
비무 시작을 알리는 남궁섬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리고는 잠시 심호흡을 한 궁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팽은설은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느려요!”
뻐억!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자 급히 몸을 피하려던 궁현은 은설의 일권(一拳)을 맞고 일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듯 쓰러지는 그 모습에 칠대세가의 사람들은 전부 그를 비웃었다. 꼴사나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궁현은 넘어질 때 지탱했던 손바닥이 쓰라린 것을 느끼며 미간을 찡그리기 바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은설은 한심함을 느끼며 그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후우, 아! 고마워요. 기다려 줘서. 응?”
츠캉!
일어나자마자 은설에게 감사를 표한 궁현은 그녀의 얼굴이 차가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각설하고, 그런 그를 보며 자신의 애도(愛刀)인 효굉도(?宏刀)를 빼든 은설은 그대로 오호단문도의 백호도간(白虎跳澗)을 펼쳤다. 초식명(招式名) 그대로 백호가 간곡(澗谷)을 뛰어넘듯 흉맹한 기세로 베어 오는 은설의 도를 궁현은 기겁을 하고 천뢰무한기궁법집편에 실려 있던 독문보법인 무한천뢰보(無限天雷步)를 밟으며 피해 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제압당할 것이라 생각했던 궁현이 의외로 자신의 초식을 쉽게 피해 내자 흥미가 생긴 그녀는 초식을 계속 이어 나갔다.
한동안 그녀의 도를 피하기 바쁘던 궁현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단전에서 기를 더 끌어 올려 비무대에 발을 찍기 시작했다.
“……?!”
보법수련이라도 하라는 것일까, 궁현이 갑자기 비무대에 발을 찍자, 은설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계속 초식을 이어 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궁현이 발을 찍은 곳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궁현의 동작을 주시했다.
‘……도, 돌?’
그랬다. 궁현은 발로 바닥을 친 다음 부서져 떨어져 나간 돌을 줍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궁현이 진법의 달인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은설은 그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봐줬더니 별 희한한 짓을 하잖아?!’
더 이상 봐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여태껏 취하고 있던 오호단문도의 자세가 아닌, 은하유성도의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내기를 끌어 올려 발을 내딛으며 초식을 펼치려는 그때!
“어, 어?!”
은설은 갑자기 자신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정말로 떨어지고 있는지 어느새 궁현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어, 어째서?’

“휴우.”
좌중들은 깜짝 놀랐다. 도를 고쳐 잡고 무언가 하려는 듯 보이던 은설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궁현이 진법을 펼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은설의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쓰러진 것은 쓰러진 것인지라, 비무는 궁현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것을 확인한 궁현은 은설을 데려가려고 다가오는 팽가의 여인들을 보고는 주위에 있던 돌 몇 개를 틱 하고 찼다. 물론 그것은 진법을 이루던 주축이 되는 돌이었고, 그녀들이 비무대에 오를 때 쯤 진법은 파훼되었다.
하지만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은설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고, 결국 팽가의 여인들에 의해 비무대에서 끌어 내려졌다.
그것을 확인한 궁현이 남궁세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하자, 그런 궁현을 붙잡는 목소리가 있었다.
“흥! 운이 좋았구나! 하지만 네 실력은 정말 형편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팽은란(彭銀蘭)이었다. 그녀는 은설의 사촌 동생으로, 은설과는 사이가 아주 남달랐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언니가 별 시답잖은 남자에게, 그것도 운으로 졌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던 것이다.
궁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강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쏘아붙인 은란은 그대로 의원이 있는 곳으로 은설을 데려갔다.
“…….”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궁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섰다.
‘하아, 졸려 죽겠네.’
그는 졸린 몸을 이끌고 침상에 올라 가부좌를 틀었다.
“하아― 음.”
잠을 잘 수 없는 대신 축기를 행한 궁현은 그제야 잠기운이 조금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화선을 불렀다.
“화선아.”
“예.”
“나 배고파.”
궁현의 말에 화선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방으로 냉큼 달려갔다.
―이 멍청한 녀석! 꼭 그리 한심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느냐? 검은 뭐 포엄으로 차고 간 게냐?
“하지만 좀 더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은데.”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다음부터는 진심으로 하거라. 에잉, 내 후손이라는 녀석이 어찌 그 모양이야?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궁현이었다. 사실, 이번에 이긴 것도 운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그녀가 봐주지 않고 그를 장외패시켰다면 진법을 펼칠 새도 없이 탈락했을 터였다.
“예, 다음 비무부터는 그러죠, 뭐. 어차피 처음에만 진법으로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노인의 말에 수긍하는 궁현의 기감(氣感)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황급히 창 쪽을 바라본 궁현의 눈에는 한 인영이 보였다.
“당 소저?”
“예, 가가.”
아직은 그녀가 부담스러운 궁현이었다. 간신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한 궁현은 그녀를 탁상 앞의 태사의(太師椅:팔걸이와 등받이가 있는 큰 의자)에 앉혔다.
“…….”
한참 동안 적막이 흘렀다. 궁현은 그저 이 분위기가 너무나 무거웠고, 설혜는 궁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당설혜였다.
“오늘, 정말 멋있으셨어요. 아버님께 물어보니 무언가 진을 펼치신 거라면서요?”
“예? 아, 네. 그래도…… 멋있었다니. 마음에도 없는 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아뇨.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제 눈에는 정말로 멋있으셨어요.”
계속되는 설혜의 부담스러운 칭찬을 거짓이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궁현이었다.
그리고 궁현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자, 설혜는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눈을 질끈 감고 궁현을 향해 물었다.
“……가가. 가가는, 제가 싫으신지요?”
그녀의 말에 궁현은 당황했다. 싫으냐니, 그렇게 물어 오면 대답하기가 참 난감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궁현은 이내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싫지는 않습니다. 다만…….”
궁현의 말에 한층 표정이 밝아진 그녀가 되물었다.
“다, 다만?”
“아직은, 혼인에 뜻이 없습니다. 아니, 뜻이 없다기보다는 혼인은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여인과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설혜였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펴며, 한껏 미소를 머금은 채 궁현에게 말했다.
“예, 그거면 되어요. 가가, 제가 꼭 가가의 마음을 뺏어 보일 테니까.”
그런 설혜를 보며 궁현은 잠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을 때, 문 밖으로 화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점심 들이겠습니다.”
“아, 자, 잠깐만!”
화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궁현은 서둘러 설혜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빨리 가라는 생각을 읽어 낸 설혜는 잠시 입술을 쭉 내밀며 불만을 내보이더니, 왔을 때처럼 창을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후우, 훗. ‘마음을 뺏는다.’라,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데? 아, 들어와. 화선.”
“예.”
그렇게 평소와 조금 다른 점심 시간이 지나갔다.

한편, 창을 통해 밖으로 나온 설혜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꼭, 뺏어 보이겠어요. 정정당당하게.”
키잇?
콰직!
그러고는 주먹에 힘을 주어 그것을 부숴버렸다.
그녀의 숙부인 당천호가 심혈을 기울여 키워 낸 고독(蠱毒)이 아무런 소득 없이 죽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7. 칠천회(二)(1)


칠천회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6일째, 그동안 벌써 15회의 비무가 치러졌고, 그에 따라 생긴 탈락자도 열다섯이나 되었다.
남궁세가에서는 남궁무연이 기권을, 남궁서기가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탈락했고, 모용세가에서는 모용서겸, 모용운혜가, 황보세가에서는 황보진량과 황보진충, 황보현성이, 단목세가에서는 단목청학과 단목문량이, 사천당가에서는 당추평, 당호천, 당호진이, 하북팽가에서는 팽조군, 팽은설, 팽천명이 각각 기권, 패배 인정, 장외, 판정 등으로 탈락했다.
이제 오늘 첫 번째 순서인 남궁천천과 당호영과의 비무를 마치면, 궁현의 표현을 빌려 32강전이 끝나는 것이었다.
‘거기다 오늘은 다시 내 차례가 온다. 이번엔 정말로 최선을 다해야 해.’
그런 생각을 하는 궁현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한편, 천천은 일주천을 행하고 미리부터 연무장에 나와 비무대를 확인했다.
‘저번의 흔적은 없군.’
어느새 바꿔 놓은 것일까. 비무대엔 궁현이 만들어 놓은 움푹 패인 자국들이 없었다.
‘그건 그렇고, 분명…… 현이는 무공을 사용했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팽은설의 도법은 피할 수 없었을 터였다. 아니, 그것을 우연이라 생각한대도, 비무대를 부수어 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흠…….’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 거짓이라는 걸 알자, 천천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