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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17화)
7. 칠천회(二)(2)


한 시진 뒤, 천천과 호영의 비무가 치러졌다. 결과는 천천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고, 당가의 소가주인 당호영은 어째서인지 아무의 질타도 받지 않았다. 그 비무를 본 이들의 표정은 단지, ‘지금 비무를 했던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역시, 난 뭘 해도 관심받지 못하는 건가, 망할 놈의 무존재지체(無存在之體).’
그랬다. 어릴 적부터 존재감이 거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존재감이 없는 것이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며 자신의 그런 체질에 그런 명칭을 달았던 것이다.
무존재지체. 뭔가 어감도 존재감이 없지 않은가? ‘ㅈ’과 ‘ㅊ’의 발음이 연속되기 때문일지도. ―※주의. 국어에 그런 원리는 없습니다.―
각설하고, 누구와 싸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천천의 압도적인 승리를 지켜본 궁현은 한껏 긴장했다. 다음은 자신의 상대가 될지도 모르는 모용서현의 차례였다.
“소소검 모용서현이라 하오.”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하오체로 인사를 내뱉은 서현은 포권을 취했다. 그것을 본 제갈영영이 마주 포권하며 말했다.
“호호, 꼬…… 소협은 참 귀여우시군요. 제갈영영이라고 해요.”
제갈영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으며 검병에 손을 가져다 댄 서현의 표정은 어느새 무인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방심은 금물이다. 황보세가의 벽력신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훼해 낸 비도술이 저 미소 뒤에 감춰져 있어.’
“비무 시작!”
남궁섬의 말과 함께 모용서현은 낙영유수보(落英流水步)를 펼치며 순식간에 제갈영영의 앞으로 다가가 성명절기(成名絶技)인 소소검으로 영영의 다리를 베었다.
하지만 제갈영영은 이미 단목청학을 쓰러뜨렸을 때처럼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시작되자마자 은밀히 여섯 자루의 비도를 꺼내 검을 묶고 있었다.
결국 서현의 소소검은 영영의 허벅지 바로 코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어멋, 응큼도 하셔라. 호호, 소협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지금은 눈이 너무 많으니 나. 중. 에. 해 드릴 테…… 꺄!
영영의 말에 서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서현은 비도와 함께 묶인 실 같은 것을 검기(劍氣)를 일으켜 잘라내고는 모용세가의 열화각(熱火脚)으로 영영의 허리를 끊을 듯 다리를 휘둘렀다.
퍽!
후웅!
순간적으로 몸을 각력의 방향으로 움직여 충격을 줄였는데도 일장의 거리를 날아가던 영영은 공중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쓰라린 허리를 감싸며 바닥에 착지했다.
“하아, 장난은 싫다는 거군요. 소협. 려려앵화장(麗麗櫻花掌)!”
그러자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자신에게 달려오는 서현을 본 영영은 다급히 장력(掌力)을 뻗었다.
황보진충을 쓰러뜨렸던 바로 그 장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급히 뻗은 탓인지 변화가 그리 심하지 않았고, 애초부터 피하기는 쉬운 장법이었다. 그리 생각하고 장력을 피해 단숨에 영영의 앞까지 당도한 그에게 영영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렸다.
“산(散).”
사르르르륵.
펑! 퍼퍼펑! 펑!
“커……억?!”
피했다 생각했던 장력이 갑자기 나뉘어 흩날리더니,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수가 서현에게 맞은 것이다.
얼굴, 목, 어깨, 팔, 배, 다리 할 것 없이 장력에 맞은 서현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아, 지금 건?”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의 서현에게, 영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려려앵화장(麗麗櫻花掌), 산(散). 벚꽃 잎은 본디 하나가 아니라 수십, 수백 개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법이지요, 소협.”
영영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당한 것을 이해한 서현은 검을 고쳐 들었다.
“하, 벚꽃 잎…… 인가. 아름답기는 하오만, 이게 다는 아닐 거라 보오.”
서현의 검이 검기를 내뿜는다. 그리고 그 검기는 각각 하나의 실[絲]이 되어 검을 감쌌다.
검사(劍絲)!
이제야 13세가 갓 되어 가는 소년이 검사를 내뿜다니! 지나가던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였다. 하지만 이미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상, 지금 피식하고 웃은 그 개는 타구봉에 맞아 죽어도 싸다.
각설하고, 그런 서현을 질렸다는 듯이 바라본 영영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는 비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집중을 하는 듯 찰나(刹那) 눈을 감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여섯 비도에서 각각 따로 기(氣)가 흘러나와 실의 형태로 변했다.
놀랄 법도 하건만 서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검사가 일렁이는 검을 들어 세가의 독문검법인 섬광유성검법(閃光流星劍法)으로 영영을 베어 들어갔다.
“하앗!”
그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영영이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비도를 던지고는 유려한 몸짓으로 서현의 검을 피해 나갔다.
‘분명 비도에는 검사. 아니, 도사(刀絲)라 해야 하나? 하여튼 그것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비도에 연결되어 있는 실에도 닿아서는 안 돼!’
그렇게 생각한 서현은 검막(劍幕)을 형성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서현의 예리해진 기감(氣感)에, 가느다란 선처럼 이어진 기운이 포착됐다.
사악!
팅, 툭.
서현의 검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금속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영영은 그 모습에 놀라 서현이 자신의 바로 코앞까지 당도해 있다는 것을 잊고 말았다.
영영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이미 서현의 검이 영영의 목에 닿은 이후였다.
“후우, 졌어요.”
그제서야 영영의 목에서 섬뜩한 검날이 치워지지만, 서현의 얼굴은 승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뭔가, 허전하다.’
어찌 됐던 비무는 서현의 승리로 돌아갔고, 비무대에서 내려오는 제갈영영의 입에는 한줄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소협, 이게 다는 아닐 거란 말, 기억하고 있길 바라요.’
그들이 모두 비무대에서 내려가자, 그 다음 비무를 치룰 이가 비무대로 나왔다. 바로 팽가의 팽조운이었다.

한편, 궁현은 그제서야 자신의 다음 상대를 알고는 실소했다. 하필이면 저번에 운으로 쓰러뜨린 팽은설과 같은 하북팽가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팽조운이라는 이는 험상궂은 인상에 우락부락한 몸집, 거기다 얼굴에 있는 흉터 자국이 그의 흉험한 인상을 더욱 강조시키고 있었다.
비무대에 올라선 남궁현이 보이자, 그가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도혼맹호(?魂猛虎) 팽조운이다.”
말투를 보니 화가 난 것이 확실했다. 그런 팽조운에, 궁현은 옅은 한숨을 내뱉으며 포권했다.
“하아, 대한건아(大翰建我) 남궁현입니다.”
궁현이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그를 주시하고 있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흐음, 저 녀석이 남궁현. 훗, 차라리 우리 제갈세가에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쯔쯔.’
바로 제갈세가의 태상가주 제갈공청이었다. 그는 저번 비무에서 궁현이 사용한 것이 진법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그는 정파 내에서는 명실공히 진법의 최고수라 불릴 만한 자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갈공청을 두고, 남궁섬의 입에서 비무 시작을 알리는 말이 나왔다.
‘은설이를 그런 식으로 비무대에서 내려가게 한 놈이다. 봐줄 필요는 없어!’
그런 생각을 한 팽조운은 도를 빼어 들며 혼원보(混元步)를 펼쳤다. 어느새 궁현과의 거리를 좁힌 조운은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로 궁현의 허리를 베어 갔다.
‘후우, 침착하자. 일단은 도를 막고, 그 다음 제왕뇌익검법으로 공격하는 거야, 좋아.’
챙!!
단순히 검을 들어 막으려 했던 궁현은 그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내기를 끌어 올려 간신히 밀려나지 않고 버텼다.
“……!!”
궁현을 도망치는 것밖에 모르는 겁쟁이로 본 그였다. 설마 막아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조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런 조운을 본 궁현은 한줄기 미소를 지으며 제왕뇌익검법의 제일초식인 붕익섬뢰(鵬翼閃雷)로 조운을 베어 갔다.
사악!
그것을 본 조운이 간신히 몸을 돌려 피하기는 했지만, 어깨 끝을 살짝 베였고, 조운의 어깨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장내의 모든 이들은 깜짝 놀랐다. 저자가 원래 저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가? 그럼 저번에는?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정작 제일 놀란 것은 남궁세가의 사람들이었다. 분명히 이공자는 무공을 모를 텐데?!
―……건아?
―예, 아버님.
남궁적은 조심스럽게 전음을 시전했다.
―현이에게 무공을 언제 가르쳤더냐?
―죄송합니다, 아버님. 저도 가르친 적이 없어서.
그 말을 들은 남궁적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그런 그들을 놔두고 비무는 조금씩 진행되었다.
‘내 도와 부딪히고도 아무렇지 않다. 그럼 어제는?’
“훗, 그렇게 된 건가.”
궁현을 보는 팽조운의 눈빛이 달라졌다. 경멸과 분노에서, 존경으로.
‘은설이의 몸 상태가 안 좋은 것을 꿰뚫어 보고 어느 정도 움직이다 보면 알아서 쓰러질 것이라 예상한 건가? 하긴, 만약 검을 들어 상처를 냈다면 은설이는 성격상 오기로라도 정신을 붙잡으며 비무를 계속했을 것이다. 굉장하군, 이 남자.’
완전히, 십할(十割)이 있다고 한다면 그중에 십이할(十二割)의 오해였지만, 그런 심중에서의 오해를 풀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과하지. 다시 인사하겠소, 남궁 소협.”
“엥?”
갑자기 조운이 입을 열자 한껏 긴장하고 검을 쥔 궁현, 그런 그의 입에서 생각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오히려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니, 왜 갑자기 사과를 한단 말인가?
“도혼맹호 팽조운이라 하오, 한 수 가르침을 부탁하겠소.”
하지만 진지한 목소리로 포권까지 하는 조운의 모습에 궁현은 그가 무언가 좋은 방향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궁현도 진지한 목소리로 포권을 취했다.
“대한건아 남궁현입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그럼, 가오! 혼원벽력섬(混元霹靂閃)!!”
그렇게 대화를 끝낸 조운은 혼원벽력도의 초식을 펼치며 궁현을 베어 들어갔다.
“뇌익시시(雷翼翅옰)!!”
챙! 채챙!
조운의 도가 자신을 베어 오자 검을 들어 반은 쳐 내고 반은 피한 궁현은 대붕이 날개를 털어 수십 개의 깃털을 쏘아 내듯 검을 찔러 갔다.
“뇌붕시우(雷鵬矢羽)!!”
채채채채채채챙!!
그것을 본 조운은 도를 비스듬하게 들고는 도면(刀面)으로 찔러 오는 수십 개의 검영(劍影)을 막아 내다가, 이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뒤쪽으로 힘껏 뛰었다.

한편, 팽가 가솔들이 모인 좌석에서 그런 그들을 불만스럽게 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팽은설과 팽은란이었다. 둘은 서로 다른 이유로 다른 이에게 불만을 표하고 있었는데, 팽은설은 궁현에게 불만을 나타내고 있었고, 팽은란은 궁현을 쓰러뜨리지 못하는 팽조운에게 불만이었다.
‘뭐야, 잘만 싸우잖아. 왜 나한테는 그런 식으로 대한 거지? 내가 여인이라서?’
‘대체 조운 오라버니는 뭐하고 있는 거얏! 저런 남자는 빨리 빨리 이겨 버리면 되잖아!’
그런 그녀들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른 채, 조운과 궁현은 둘만의 세계에 빠져 거의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병(兵)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앗! 하!”
“하아!!”
챙! 채챙!
조운이 자신의 목을 베어 오자 그것을 피한 채 조운의 허리를 베려던 궁현의 검은 어느새 방향을 바꿔 내려온 조운의 도에 튕겨졌다. 그 기세를 몰아 궁현을 치려던 조운의 도를 피한 궁현이 조운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러 갔지만, 어느새 회수된 조운의 도면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챙! 타탓!
이대로는 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한 번 더 부딪힌 그들은 그 반탄력에 거스르지 않고 뒤로 일장 정도 물러섰다.
“…….”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각자의 최강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기세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아, 역시 대단한 사내다. 저런 왜소한 몸으로 나의 패도(覇刀)를 아무렇지도 않게 전부 받아 내다니. 그렇다면, 그것밖에 없는 건가.’
‘에휴, 하마터면 손목이 부러질 뻔했다. 일단은 침착하고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그거,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한 그들은 같은 순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뜬 조운은 단전(丹田)에서 기운을 끌어 올려 그것을 도신(刀身)에 씌웠다. 그러자 그의 도에서 도기가 일렁였고, 자세를 취한 조운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궁현에게 쇄도(殺到)했다.
“하아아앗!!”
번뜩!
“그아아앗!!”
그것을 들은 궁현이 여태껏 감았던 눈을 떴고, 검을 들고 조운에게로 달려들었다. 결국 그들은 비무대의 중앙에서 충돌했다.
채애애애앵! 투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