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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20화)
9. 음속수검(音速水劍)(2)
그런 궁현을 두고 남궁섬이 첫 번째 비무를 선언했다. 멍하니 있던 궁현은 서현이 비무대에 오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성급히 비무대로 걸어갔다.
‘중검…… 인가? 하북팽가의 도법을 정면으로 상대한 걸 보면 그리 생각하는 것이 맞지만. 뭔가 이상해.’
서현은 비무대로 오른 궁현을 보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자의 실력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태양혈(太陽穴)이 우뚝 솟아 있지도 않을 뿐더러 풍기는 기도도 범인(凡人)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오히려 범인 이하라고 할 정도.
‘반박귀진(返撲歸眞)의 경지에라도 든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결국 서현은 남궁섬이 비무 시작을 외치기까지 궁현을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비무 시작!”
남궁섬의 한마디와 함께 궁현이 검을 빼어 들고 서현의 옆구리를 벤다. 서현은 궁현의 속도가 이리 빠를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며 몸을 틀어 검을 피했다.
“후우, 팽가의 소협과 정면으로 대결하기에 중검의 고수신 줄로만 알았소만. 그렇지도 않았나 보구려.”
“풋! ……크, 크흠. 푸훗.”
이미 몇 번이나 서현의 말투를 들어본 궁현이었지만, 이렇게 또 마주 대하고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저런 동안을 가지고 한껏 목소리를 깔고 하오체로 말을 하다니, 예법에 익숙해진 궁현이라지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크큭. 후우, 후우. 아, 미안합니다. 너무 웃겨서 그만.”
그 말에 자신의 말투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서현이었다. 어째서 만나는 이들마다 자신의 말투를 들으면 이상한 표정을 짓거나 이리 웃는 것일까. 여태껏 그렇게 하지 않은 이는 자신의 아버지 모용영휘뿐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황보옥빙까지 어색하게 미소 지은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말투가 이상한 것은 정말인 것 같았다.
‘이런,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은 비무에 집중하자.’
이내 마음을 다잡는 서현이었지만 아직도 얼굴에 웃음기가 머물러 있는 궁현의 표정에 조금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지체했소, 오지 않으신다면 내가 먼저 가겠소.”
너무도 무방비했기에 오히려 걱정이 된 것일까, 그렇게 경고한 서현은 순식간에 궁현의 어깨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서억!
“휘유.”
서현이 했던 것처럼 몸을 틀어 피한 궁현이었지만, 어깨 끝의 옷자락을 베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우, 그럼. 진짜로 갑니다!”
궁현은 그 말과 함께 서현에게 쇄도하며 제왕뇌익검법의 뇌붕시우를 펼쳐 서현의 전신을 찔러 들어갔다.
채채채채챙! 채챙!
마치 수십 개의 화살이 쏘아진 듯 찔러오는 검을 미처 다 막지 못한 서현의 옷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러고도 피는 거의 흐르지 않는 것을 보면 서현의 실력이 역시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후우.”
궁현이 약간 흐트러진 숨을 고르는 사이 이번에는 서현의 검이 궁현의 두 허벅지를 노리고 섬광을 흩뿌렸다. 뒤로 피하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한 궁현은 신형을 무너뜨리며 어슬프게나마 철판교(鐵板橋)의 수법으로 넘어지듯 검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서현이 얼굴에 한줄기 미소를 걸며 검로를 비틀어 밑으로 찔러갔다.
“우왓?!”
데굴데굴데굴.
그것을 본 궁현이 왼쪽으로 몸을 굴렸다. 무림인(武林人)들이 그렇게도 깔보는 나려타곤(懶驢打滾)이다.
“휴우.”
하지만 다행히도 궁현은 나려타곤이라는 효율적인 회피법을 극도로 꺼려하는 자존심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반장 정도 굴러간 궁현은 몸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냈고, 다시금 검을 고쳐 잡았다.
그런 궁현이 못마땅했는지 약간은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던 서현은 조금 더 빠른 초식을 사용하기로 결심하며 검 끝을 궁현에게 향했다.
“가오!”
서현의 검에서 검광이 번뜩인다. 햇빛이 반사된 것이다. 그런 빛이 눈으로 들어오자 궁현은 잠시 눈을 찡그린다. 찰나였지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두른 서현은 결국 궁현을 베었다.
“윽?!”
목 밑 쇄골(鎖骨) 위를 베인 궁현은 등을 따라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런 궁현을 냉정한 눈으로 일견한 서현은 내심 남궁섬이나 태상장로들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조부인 모용일천이 살며시 고개를 흔드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승리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옷깃으로 스며 나오는 피를 스윽 닦아 낸 궁현이 살며시 눈을 감았다.
“…….”
그런 궁현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서현은 검사를 형성하며 다시금 궁현을 베어 갔다.
“하앗!”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궁현이 검을 들어 검사가 넘실거리는 서현의 검으로 가져갔다.
명검(名劍)도 아닌 것 같은데 검사를 씌운 검에 평범한 검을 가져다 대다니. 검을 망가뜨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내 지워지고 말았다.
챙!
“뭐, 뭐라고?!”
놀랍게도 궁현의 검은 망가지기는커녕 오히려 검사가 둘린 서현의 검을 파고든 것이다.
이가 나간 자신의 검을 보며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던 서현은 이내 단전에서 기를 끌어 올려 검사를 더욱 짙게 하고는 궁현의 검과 부딪혀 갔다.
챙! 채챙! 챙!
몇 번 검을 부딪치다 틈을 잡았는지 서현의 어깨를 향해 휘둘러진 궁현의 검이었지만, 어느새 뒤로 뛴 서현에 의해 허공을 갈랐다.
후웅!
그런데도 서현의 목 옆 부분에 약간 혈선이 그어졌다. 그것을 본 궁현의 얼굴에 조금 실망한 빛이 떠올랐다. 약간만 더 밑이었으면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상처를 입었을 터인데.
“붕조분뢰(鵬爪噴雷)!!”
궁현이 검을 내찌르자, 순식간에 검영이 넷으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신속(神速)의 찌르기였다. 실초만을 파훼해 막으려던 서현은 넷 전부가 다 실초라는 것을 알고는 허리를 숙여 피했다. 완벽하게 피했다고 생각한 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 몇 가락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조금은 감탄을 한 것인지 옅은 실소를 지은 서현은 반장 정도 뒤로 물러서 검을 늘어뜨리고는 눈을 감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궁현은 그에게 접근하는 것을 꺼렸고, 마침내 서현의 입이 열렸다.
“소소검, 이형(二形). 비소(飛笑)!”
그리 말하며 눈을 뜬 서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궁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 검의 결을 따라 바람의 칼날이 형성되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놀랍기는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바람의 움직임을 모른다면 또 모를까, 알고 있다면 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진정 놀라웠다.
진공참(眞空斬)이라 불리는 것이 이런 것일까. 검기를 날리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허공을 벤 풍압만으로 이런 참격을 만들어 내다니! 처음부터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무서운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궁현은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자극을 받은 것일까. 궁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검을 고쳐 잡았다.
“진심……인가, 그럼 저도. 진심으로 하겠습니다!”
휘우우웅!!
갑자기 궁현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세는 점점 궁현의 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기류공(氣流功), 진(眞). 유형기류(有形氣流)…… 검기류(劍氣流)의 형(形). 제일(第一), 음속수검(音速水劍)!!”
궁현이 그렇게 내뱉고 나자 궁현의 검이 일 촌 정도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아니, ‘늘어났다.’
“아, 아니?!”
“저것은……!!”
“거, 검강(劍|)!!”
장내의 모든 이들이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검강이라니! 여태껏 무림 역사상 갓 약관이 넘은 사내가 검강을 만들어 낸 적은 없었다. 아니, 웬만한 강호의 무림인들은 꿈에서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 검강이었다. 정말로 기사(奇事)가 아닐 수 없었다.
“어허, 이런. 검강이라니요, 남궁 공(公), 어찌 저런 보물을 여태껏 감춰 두고 계셨던 겝니까?”
모용일천이 한 방 먹었다는 듯 허탈하게 미소 지으며 남궁적에게 물었다. 내심 추궁하는 것이었다.
‘이 늙은이가. 저런 괴물을 키워 냈을 줄이야. 어쩐지, 남궁세가의 이공자가 망나니라는 데서부터 의심했어야 되었어. 쯔쯔.’
하지만 추궁받는 남궁적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손자인 궁현이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며칠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검강을 쓸 줄 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그래도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는 법. 남궁적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비무대를 바라볼 뿐이었다.
‘현이 저 녀석. 감히 이 할애비를 난감하게 만들어? 어디 칠천회가 끝나거든 두고 보자.’
그런 생각을 하는 남궁적이었다.
한편, 창궁무열신공서 안의 노인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강기(|氣)를 만들 수 없어 꿩 대신 닭이라 생각하며 기류공을 창안했건만, 그것을 얼마 수련도 하지 않은 녀석이 검강을 뿜어내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이, 이놈아. 어찌 된 것이냐?
―뭐가요? 근데 이게 왜 검강이라는 겁니까?
궁현의 되물음에 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는 노인이었다.
―아니,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 검강이 아니면 뭐더냐?
―말했잖습니까. 기류공 진의 유형기류지요.
궁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으나, 노인에게는 동문서답(東問西答)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제 식으로 만든 기류공의 다음 장이요. 기(氣)를 진(眞)으로 만든, 더 발전시키라고 말한 건 할아버님 아니셨나요?
확실히 그것은 맞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발전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납득이 가지 않은 노인이 무언가 더 물으려 할 때, 서현이 입을 열었다.
“검강…… 훗, 저는 여태껏 주위에서 제가 천재라 하기에 정말로 천재인 줄로만 알았소. 하지만 지금 보니 그저 범인일 뿐이었구료.”
“아, 이건 검강이 아닙니다.”
궁현의 말에 더욱 이상한 표정을 짓는 서현이었다. 검에서 유형(有形)의 기운이 나와 검날을 이루는데 그것이 검강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그 기술이 무엇인지 물어도 실례가 되지 않겠소?”
서현이 어린아이답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목소리를…… 내리깔자 오히려 더 귀여워 보이고 만다.
궁현은 순간 피식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워터제트(Waterjet), 아니. 수사류(水射流:워터제트의 중국식 표기. 절대로 작가 맘대로 지어낸 단어가 아닙니다.)라는 것이 있지요. 그건 물을 작은 구멍으로 빠르게 분출하여 절단력을 얻어 내는 원리입니다.”
궁현의 말에 얼굴에 띤 의문의 색이 더욱 짙어지는 서현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현을 본 궁현은 그저 검 끝을 서현에게 돌릴 뿐이었다.
이쯤 되면 궁현의 수법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비밀은 바로 워터제트였다. 즉, 물[水]을 만들어 엄청난 속도로 검 주위를 회전시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을 발사하여 무언가를 절단하는 워터제트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나, 일단 그것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전 단순히 그것에서 실마리를 찾았을 뿐. 뭐, 이걸 완성한 것도 어찌 보면 팽조운 소협의 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자, 갑니다.”
궁현의 말에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는 검을 쥔 손에 더욱 많은 힘을 가하는 서현이었다. 그런 서현에게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떨고…… 있다.’
그의 손이, 팔이, 아울러 온몸이 떨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운…… 가? 그래,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이건, 아냐. 두려움에 떨 정도라면 난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다. 이건, 이것은 흥분이다. 여태껏 이런 강한 상대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사실, 내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비무를 해 이겼다고는 해도 그들의 생각 한켠에서는 나를 어린아이라 보고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었다. 이런, 이런 목숨이 오가는 싸움은 해 본 적이 없어.’
그런 생각을 한 서현의 눈빛이 이채를 띤다. 전신이 떨리지만 정작 검을 부딪치면 이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숨이 오가는 싸움도 아닐뿐더러 말이다. 길게 숨을 내뱉은 서현이 달려오는 궁현의 검에 자기의 검을 가져갔다.
‘검날에 닿으면 십중팔구 검이 두 동강난다. 검면을 칠 수밖에 없어!’
챙! 키이이이―
서현이 대었던 검을 급히 뗀다. 검면에 부딪혔는데도 검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큭, 대체. 전방위 무적이라는 건가. 말도 안 돼. 검강도 우선은 검의 성질을 가지는 이상 검면에 닿은 것은 잘리지 않게 마련이건만.’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히려 몸이 더 잘 따라 준다. 이 상태라면 여태까지는 신체 능력상 성공하지 못했던 섬광유성검법의 최후 초식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 후우. 대단하구료. 검면에도 분쇄력이 있다니. 뭐, 이기는 것은커녕 성공할지도 미지수이나. 저의 마지막 초식을 받아 보시겠소?”
서현의 말에 궁현이 칠 보 정도 물러섰다. 그런 궁현에 살며시 미소 지은 서현이 검을 공중에 일(一)자로 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