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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현 1권(21화)
9. 음속수검(音速水劍)(3)


“아, 아니 저 녀석이!!”
벌떡!
모용일천이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자세는 적어도 열여섯이 될 때까지는 다시 시도하지 않겠다고 약속받았던 초식이 아닌가!
“앉으시지요, 모용 공.”
자리에 앉은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과 검을 섞어 본 적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초식이 아직 몸이 다 자라지 않은 서현에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견제하려는 건가!’
분명히 서현은 이들에게는 위험해 보일 수도 있었다. 고작 열둘의 나이로 검사를 뽑아 낼 수 있는 기재가 아닌가!
‘이럴 줄은 몰랐소. 그대들이…….’
설령 칠대세가에서 제명되는 한이 있더라도 서현이 다치는 것만은 막아야했다. 그렇기에 모용일천은 비무대에 오르려 했다. 그를 붙잡는 남궁적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아무런 말없이 그저 머리를 네댓 번 흔드는 남궁적을 본 모용일천은 옅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금 자리에 앉아 비무대를 주시했다.
‘……아니?’
그제서야 일천은 자신에 찬 서현의 눈빛이 보였다. 이번이라면 성공할거라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결국, 짙은 유백색(乳白色)의 검사가 일렁이는 서현의 검이 궁현을 베어 들어갔다. 서현이 기이한 자세로 검사를 흔들자 궁현의 전신으로 검사가 쇄도해 들어왔다. 궁현은 전신에 금기(金氣)를 둘러 최소한 몸을 보호하고는 서현의 검에 맞섰다.
챙!! 키이이이― 챙! 키이이잉― 챙!!
검사를 둘렀음에도 검이 점점 갈려 들어가자 서현은 이내 검을 부딪치는 것을 포기하고는 피하면서 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서현이 한 손만으로, 때로는 발등으로도 전신을 지탱하고, 궁현의 검격을 피하며 두 발과 팔, 검으로 자신을 공격해 들어오자 궁현은 자신이 궁지에 몰렸음을 느꼈다.
‘물러설까? 아직은 뒤로 퇴로가 남아 있다. 아니, 그러면 나에게 이런 공격을 해 준 서현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전부, 상쇄시킨다!’
그렇게 결심한 궁현의 검에 둘려 돌던 물이 검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다음 순간, 궁현의 검에는 토기가 흐르고 있었다. 유형기류가 아닌 단순한 토기류였다.
‘토기는…… 뭐, 어디 응용할 데가 없지만.’
궁현의 검이 허공을 한 바퀴 회전한다. 그러자 검에서 떨어져 나가 공중에 머물러 있던 물들이 마치 화살처럼 원을 그리며 튕겨져 나갔다.
투화화확!!
수기는 토기에 상극이다. 본래라면 수기가 토기와 만나면 제압되는 것이 상례. 하지만 이 경우에 수(水)는 수기가 아닌 물의 본디 모습이고 토기는 유형화되지 않은 토기류이기에, 약간 더 강한 물이 자신과는 상극인 토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튕겨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서현의 검사는 완전히 상쇄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이어지는 서현의 검격에 힘입어 그 기세가 더욱 사나워지는 듯했다.
“유형기류, 검기류의 형. 제이(第二), 한예풍(寒銳風)!!”
궁현의 검신에서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때에는 이미 검강으로 보이는 것이 사라졌음을 본 서현의 검이 궁현의 허리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검을 돌리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궁현이 검을 잡은 손을 역수로 바꿨다. 힘은 좀 떨어질지라도 검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었다.
챙! 투투투툭, 퍼버벙―!!
검이 부딪히자 궁현의 검에서 바람이 흘러가 검을 쥔 서현의 손으로부터 어깨까지 자잘한 자상이 생기며 소용돌이치듯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너덜너덜해져 있던 서현의 소매는 이미 완전히 제 기능을 상실하고 피로 물들다시피 한 서현의 팔을 전부 내보이고 있었다.
“크으―”
서현은 온통 쓰라린 오른팔을 감싸 쥐며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서현의 목으로 궁현의 검이 들어왔다. 잠시 궁현을 올려다본 서현이 입을 열었다.
“졌소!”
그리 말하며 패배를 인정한 서현은 남궁섬의 말도 기다리지 않고 팔이 쓰라린 듯 얼굴을 찌푸리며 비무대를 내려왔다. 의당으로 향하는 그에게 낯익은 것이 당연할…… 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다.”
그뿐이었다. ‘수고했다.’ 단 네 글자였지만 그 말을 들은 서현이 감격한 듯 뒤돌아보며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네!”
원체 말이 없는 모용영휘였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부인과도 거의 말을 나누지 않는 사람이 그였다. 그런 그였기에 ‘수고했다’라는 단 한 마디는 서현에게 다른 이들의 천 마디보다도 더 값진 말일지도 몰랐다. 모용영휘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린 것을 본 서현은 왜인지 급하게 뒤돌아서 의당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 서현이 떠나간 자리에, 작은 얼룩이 진 것은 비밀이었다.
의당으로 향하는 서현을 보며 장내의 모든 이들이 조용해졌다. 단 일합만에 단목청학을 쓰러뜨린 서현이 아닌가! 그리 쉽게 패배를 인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후우.”
남궁섬의 입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말이 나오자 궁현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그 뒤, 다음 비무와 그 다음 비무는 각각 제갈영영, 팽천호의 승리로 끝났다.

자기 이후로 두 번의 비무가 제갈영영, 팽천호의 승리로 끝나자 궁현은 그들의 비무를 되새기며 협소전으로 향했다.
‘제갈영영인가, 내 다음 상대.’
뭔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이였다. 게다가 과연 제갈세가를 제외한 나머지 육대세가의 태상장로들이 지금 출전하고 있는 이가 제갈영영(諸葛永英)이 아닌 제갈영영(諸葛永瑛)인지를 판별해 낼 능력이 있을까? 아니, 그것보다 정말로 지금 출전하고 있는 제갈영영과 그 전에 탈락한 제갈영영이 다른 인물일까?
‘아무리 쌍둥이라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 점이 있다든지, 체형 정도는 달라지는 게 정상 아니야? 어떻게 사람이 그리 똑같이 생…… 아! 나는 미래에서 왔는데도 이 시대에 있는 남궁현과 똑같이 생겼었지. 뭐, 그런 걸 보면 그럴 수도 있나.’
툭!
“꺄?!”
털썩,
갑자기 무언가가 몸에 부딪히는 것을 느낀 궁현은 여태껏 발아래를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뭘 보고 다니는 거죠?! 눈은 제대로 달고 다니는…… 가가?”
넘어지자마자 엉덩이를 살살 문지르며 일어난 설혜는 본디의 성격대로 상대를 확인하지도 않고 쏘아붙이다, 그것이 궁현임을 알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말을 삼켰다.
“아니, 그…… 저, 죄송해요. 다치지는 않으셨지요, 가가?”
잠시 우물거리던 설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궁현에게 사과하며 걱정을 표했다.
그 모습에 옅게 실소한 궁현은 이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풋, 전 괜찮은데. 당 소저야말로 어디 다친 건 아니죠?”
궁현의 말에 설혜는 안 그래도 붉은 뺨에 더욱 홍조를 띠우며 손을 뒤로 감췄다.
“예에, 물론.”
그러면서도 자꾸 궁현의 눈치를 보는 것이, 마치 무언가 빨리 말을 걸어 달라고 은연중에 외치고 있는 듯했다.
“쿡, 에이. 그럼, 손 좀 보여 주세요.”
설혜의 눈이 한순간 기쁜 빛을 띠었다. 하지만 설혜는 손을 내밀지 않고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싫은가요? 뭐, 그럼 차라도…….”
그런 설혜의 모습에 차를 권하려던 궁현이었지만, 그 순간 설혜가 대경실색을 하며 뭐라도 잡아먹을 기세로 감췄던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바닥은 땅에 심하게 긁혔는지 까진 상처가 나 있었다.
“아! 심하게 다치셨잖아요?!”
그걸 본 궁현은 설혜의 손을 낚아채듯 잡았다.
“아얏!”
그러자 쓰라렸는지 작은 신음을 뱉어내면서도 설혜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잠시 그녀의 손바닥을 보던 궁현은 설혜를 이끌고 바로 눈앞에 있는 협소전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보고 있는다고 설혜의 손바닥이 낫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아, 도련님. 들어오셨……?”
화선은 궁현이 웬 여인을 끌다시피 데리고 들어오자 얼굴 가득 의문을 표했다.
“화선아, 금창약(金瘡藥) 좀 가져와 줄래?”
“예.”
궁현의 말에 설혜는 약간 의문을 갖다 그를 바라본다. 사실 긁힌 상처에 금창약을 바를 필요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처는 내가 직접 만든 거지만.’
그랬다. 그녀는 사실 손바닥을 뒤로 숨기고는 작은 칼로 최대한 긁힌 상처와 비슷하게 상처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궁현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설혜는 그런 궁현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화선을 시켜 금창약을 가져오게 한 궁현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는 설혜를 자리에 앉혔다.
“도련님, 금창약입니다.”
화선이 들어오자 금창약을 받으려던 설혜는 금나수의 수법을 쓰듯 얼른 금창약을 채 가는 궁현에 의해 어정쩡하게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금창약이 무슨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보물)라도 되는 듯 천천히 쥔 궁현은 이내 손을 들어 다친 설혜의 왼손을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아, 아니. 금창약 정도는 혼자 발라도…….”
겨우 원래대로 돌아왔던 설혜의 뺨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혹시나 궁현이 무안해할까, 아주 미약한 힘으로 손을 빼는 시늉을 해 보지만 겨우 그런 정도로 손을 놔줄 궁현이 아니었다.
“자아, 빨리 나아라.”
마치 다친 아이 달래듯 하는 궁현의 말이 조금 불편한 듯 설혜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끝내 힘을 주어 손을 빼려 하지는 않는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금창약을 바른 궁현의 손가락 끝이 설혜의 손바닥에 닿자마자 자연스럽게 궁현의 단전에서 오행지기가 흘러나와 설혜의 상처를 감싼 것이다.
“아아―”
그 아름다운 모습에 둘은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상처는 벌써 거의 아물어 있었다.
그러고도 그들이 손을 맞잡고 그저 한참 동안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고 있자, 무안해진 화선이 조용히 인기척을 냈다.
“어, 어흠. 도, 도련님, 아가씨?”
“음?”
“아!”
그제서야 자신들이 손을 맞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는지 화들짝 놀란 설혜는 잡혀 있던 손을 빼어 가슴 앞으로 가져가서는 손가락을 가만히 오므렸다.
궁현은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설혜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풋! 아아. 미, 미안해요.”
“만날 때마다 사과만 하시네요, 가가는.”
그 말에 궁현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엇, 제가 그랬던가요?”
정말 몰랐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진지하게 묻는 궁현을 보고는 설혜의 입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예.”
“하하하. 이거 참……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하하하.”
치료를 마친 둘은 잠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한편, 천천은 내일부터 연이어 있을 비무를 위해 궁현이나 다른 이들의 비무도 보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남궁현, 내 아우.’
분명히 그는 자신의 아우일 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니, 요 며칠 새에 갑자기 그가 낯설어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무공…… 이라, 그 녀석이.’
침상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던 천천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웠다. 그가 자신의 아우는 맞는지, 맞다면 어찌하여 자신의 연정(戀情)을 미리 알아채고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지, 어찌하여 그간 무공을 숨겼는지.
‘그리고 어째서 그런 네가 부러운지.’
사실 아우라지만 은연중에 깔보고 있던 면도 없잖아, 아니…… 많이 깔보고 있었다. 이 강자만이 생존하는 중원무림에서 스스로 약한 자가 되려 하다니. 우스웠다. 그랬는데 어째서!
‘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거냐, 남궁현!!’
한 남자의 아우를 향한 작은 질투는, 어느새 원한으로 자라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