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이웃집 담 너머
1화
프롤로그


옆집 남자가 나가는 시간은 일정하다. 오전 7시 20분. 서인은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은 채 제 휴대폰 화면의 시간을 확인했다. 19분에서 20분으로 넘어가는 순간, 옆집 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갔다!
서인이 후다닥 대문으로 달려가 대문 위쪽의 틈새로 눈만 내놓은 채 밖을 훔쳐보았다.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정하고 서늘한 인상의 남자가 집 앞에 주차된 승용차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차에 타더니 시동을 걸고 곧바로 출발했다. 7시 22분. 서인은 다시 휴대폰을 보았다. 그가 대문을 열고 나가 차를 몰고 가 버리는 데에 걸린 시간은 총 2분이었다.
“칼이네, 칼이야.”
서인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기야 그렇게 칼 같으니 전근을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애들 사이에서 별명까지 붙은 거겠지.
킬러 윤.
무시무시한 별명을 지닌 옆집 남자의 이름은 길모윤이다. 킬러 윤, 길모윤, 누가 별명을 지은 건지 몰라도 참 잘 지었다. 서인이 종알거리며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가방을 고쳐 메고 대문을 열었다.
서인이 이렇게 옆집 남자가 출근하고 난 뒤에 등교를 시작한 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길모윤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그녀의 옆집에 이사를 온 직후부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남자가 그녀의 학교에 전근을 온 뒤부터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이모야.’
서인은 툴툴거리며 여름 방학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날 이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이모 대신 그 자리에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하지만 그랬다면 아저씨, 아니, 쌤을 모르고 살았겠지.’
지금 이 마음도 모르고 살았을 테고. 서인은 아릿해지는 가슴속을 느끼며 손바닥으로 쇄골 아래를 문질렀다.
요새는 흔히 초등학교 때 한다던 첫사랑이었다.
서인은 그 첫사랑을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사랑의 상대방은 바로 옆집 남자였다.
길모윤.
이모 대신 나갔던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
그리고…… 자신의 학교 선생님이자 옆집 남자.
“아, 기운 빠져. 저혈당인가? 어제 아침이랑 똑같이 노보래피드 7단위 맞았는데.”
밥을 덜 먹었나? 서인은 교복 재킷의 주머니를 뒤적거려 사탕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포장지를 벗긴 뒤에 사탕을 입에 막 넣으려는 순간, 누군가 다가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제일 먼저 서인의 눈에 들어온 건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새까만 구두였다. 그리고 칼날처럼 각을 잡아 잘 다려 놓은 바지가 그 뒤에 보였다. 서인이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옮기다가 간신히 침을 삼켰다.
알고 있는 차림새였다.
바로 조금 전에 대문 틈새로 훔쳐보기까지 했으니 모를 수 없었다.
“역시.”
머리 위에서 서늘한 음성이 내리꽂히듯 떨어졌다. 서인은 차마 고개를 들어 그 음성의 주인을 바라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저혈당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탕을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렸다.
“권나희 씨,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냉랭했다.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서인이 입술을 꽉 깨무는 동시에 남자, 길모윤의 입이 다시 열렸다.
“우서인.”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명찰에 닿아 있는 게 느껴졌다.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남자의 시선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명찰을 달지 말고 나올걸.
서인은 뒤늦게 후회했다. 어제 교문 앞에서 명찰을 달지 않아 학생 주임 선생님에게 걸린 탓에 오늘 잊지 않고 명찰을 달고 나온 게 문제가 될 줄이야. 아니, 사실은 명찰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 집에 사는 ‘아이’가 우서인이라는 걸 그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만, 그 ‘아이’가 ‘권나희’와 동일 인물이라는 걸 몰랐을 뿐. 서인이 파르르 떠는 것과 동시에 그의 손이 다가와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서인은 그의 손가락이 얼마나 길고 예쁘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턱을 감싸 쥐듯 잡은 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설마 했어. 아니겠지. 권나희 씨가 왜 학교에 있을까. 왜 교복을 입고 있을까. 내가 잘못 본 거겠지, 그렇게 믿으려고 했어.”
“모, 모윤 씨.”
“선생님이라고 불러야지. 안 그래? 우서인 학생?”
지금껏 나를 놀려서 즐거웠어? 서인의 첫사랑, 길모윤이 배신당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차갑게 물었다. 그리고 서인의 눈이 흐려졌다.
혈당이 떨어진 탓일 거야.
눈물 때문이 아니라.



1. 소개팅 대타(1)


“소개팅?”
서인은 느닷없이 걸려 온 이모의 전화를 받고 기가 막혀서 되물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그녀의 이모, 권나희가 머쓱한 어조로 대꾸했다.
― 제발, 이럼 안 되는 거 알지만…… 딱 한 번만. 응? 서인아, 부탁할게.
“딱 한 번만이라는 말을 믿고 내가 지금까지 이모 대신 나갔던 소개팅이 몇 번인 줄 알아? 안 되는 거 아는 사람이 이게 대체 몇 번째야.”
탁. 그녀는 보고 있던 영어 문제집을 덮은 뒤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고개를 등받이 뒤로 젖혔다. 그리고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안 돼.”
― 서인아아아아아아아.
“이것 보세요, 권나희 씨. 지금 조카한테 무슨 몹쓸 짓입니까?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줄 알아!”
서인이 앉아 있던 의자가 빙그르르 돌다가 멈췄다. 그녀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씩씩대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긴 머리를 동그랗게 토끼 꼬리처럼 말아 올려 묶은 게 눈에 들어왔다. 서인은 창문에 비친 자신을 계속 보다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이놈의 노안.
노안.
동안 시대에 노안이라니.
열아홉 살의 우서인은 성숙해 보이는 외모로 인해 종종 스물일곱 살 먹은 이모를 대신하여 소개팅 자리에 나가고는 했다. 처음에는 이모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들어주었고, 그 뒤에는 대가로 받는 용돈벌이가 제법 쏠쏠한 터라 어린 마음에 스스로 나서서 나간 적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둬야 할 시점이다.
“이모, 나 지금 3학년이야. 고3이라고. 수능 몇 달 안 남은 수험생이라는 걸 잊었어? 한창 학업에 열중해도 부족할 판에, 뭐? 나더러 대신 소개팅에 나가라고? 황금 같은 여름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조카한테 지금 이게 할 소리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늦둥이라고 무조건 오냐오냐하며 키웠다더니. 수능을 앞둔 어린 조카에게 막무가내로 철없이 구는 나희의 행동에 서인은 기가 막혀서 몇 번이나 혀를 찼다.
― 그렇지만 이건 네 책임도 있어!
“무슨 책임! 억지 좀 쓰지 마!”
― 서인이, 네가 거절 안 하고 내 부탁 자꾸 들어주는 바람에 내가 소개팅 자리를 부담 없이 넙죽 받게 된 거잖아!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거절하면 나더러 어쩌라고! 들어주라? 응? 이번에 딱 한 번만 더! 플리즈!
“……이게 지금 딱 그거지? 물에서 건져 놨더니 보따리 내놔라, 했다는 거. 그렇지?”
서인은 나희의 억지스러운 말에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책상 옆으로 엉망이 된 책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아, 이것부터 치워야 하는데…….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입을 열었다.
“나 이모랑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방도 치워야 하고, 학원도 가야 돼.”
― 방은 왜……. 설마 언니, 아니, 네 엄마가 또 한바탕한 거야?
나희가 서인의 말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며 물었다. 소개팅에 대신 나가 달라며 징징대던 조금 전과 확연히 달라진 태도였다. 서인은 쓴웃음을 짓고는 볼에 생긴 멍 자국을 손으로 문지르며 대꾸했다.
“뭐, 한바탕할 때가 됐잖아.”
― 할 때가 되기는 뭐가 돼? 어휴…… 내가 정말 속 터져서. 엄마는 지금 집에 없어?
“없으니까 내가 이모랑 이렇게 통화하고 있지.”
서인은 허리를 숙여 책 몇 권을 주워 들었다. 그녀가 즐겨 읽던 책들이 전부 찢겨지고 구겨져 있었다. 그녀의 엄마, 권나경이 어젯밤에 한 것이다.
― 서인아…….
“아, 됐어. 왜 갑자기 진지해져? 괜히 나 마음 약해지게 해서 소개팅 나가게 하려는 거지?”
서인이 괜히 아릿해지는 속을 숨기려고 목소리를 높이며 거실로 나갔다. 거실 역시 난장판인 것은 그녀의 방과 다를 게 없었다. 서인은 부서진 전등갓 사이로 발을 옮기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야…….”
― 왜 그래? 어디 아파?
“어?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서인은 황급히 나희에게 대꾸한 뒤, 소파에 앉아 발을 슬쩍 들어 보았다. 깨진 전등갓의 날카로운 조각이 발바닥에 파고들어 있는 게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로 핏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아!”
카펫 위로 피가 떨어졌다. 서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알면 난리를 칠 텐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쉰 뒤, 나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모, 소개팅 나가면 얼마 줄래?”
― 뭐?
“아니다. 차라리 돈 대신 카펫으로 받을까?”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희의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들렸다. 서인은 피가 계속 나오는 발바닥을 화장지로 대충 누르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전등갓 깨진 걸 밟아서 피가 났는데 카펫에 묻었어. 이거 세탁은 어렵겠지?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똑같은 카펫으로 바꿀 수 없을까?”
― 뭐? 많이 다쳤어? 괜찮아?
서인의 말에 놀란 듯 나희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듬뿍 느껴지는 목소리에 서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괜찮아. 살짝 베인 거야. 그나저나 우리 집 거실 바닥에 깔린 카펫 말이야, 이모. 똑같은 걸로 구할 수 있어?”
― 글쎄. 그거, 네 엄마가 어렵게 구했다고 들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직접 들여왔던 거 아니야?
“……그랬던 거 같아.”
그럼 구하기는 힘든 걸까. 서인은 난감한 마음에 풀 죽은 표정으로 힘없이 대꾸했다. 그 와중에 피가 계속 나온 것인지 발바닥에 대고 있던 화장지가 축축하게 젖었다. 그녀는 다시 두루마리 화장지를 여러 겹 끊어서 발바닥에 대려다가 울컥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발에 난 상처보다 카펫 걱정을 하고 있는 제 꼴이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 보였다. 당뇨가 있으니 발에 상처가 나지 않게 주의하라던 의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엄마에게 더 소중한 건 자신의 발이 아니라 이탈리아산 카펫일 게 분명했다.
‘아빠 역시 내 발보다는 그 여자가 더 소중할 테고.’
서인은 그나마 제 상처 걱정을 해 주던 나희를 떠올렸다. 외할머니가 거의 키우다시피 했던 터라 나희와는 이모, 조카 사이라기보다는 나이 차이가 제법 있는 자매 사이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렸다. 가끔은 제 간식을 몰래 뺏어 먹는 바람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는데…….
그래.
그래도 나한테 이모 말고 또 누가 있냐.
서인은 테이블 위에 있던 에어컨 리모컨을 집어 들어 전원을 켰다. 금세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더니 눅눅했던 공기가 상쾌해졌다. 그녀는 발바닥을 누르고 있던 화장지를 떼어 냈다. 피가 멎은 것 같아서 슬쩍 발바닥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카펫은 됐고, 그냥 용돈이나 넉넉하게 챙겨 줘.”
―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소개팅 말이야. 나가 줄 테니까 용돈이나 달라고.”
― 진짜? 아,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 괜찮아? 발 상처 나면 안 되잖아.
“역시 이모밖에 없어. 의리, 하면 권나희라니까.”
서인은 제 걱정을 해 주는 나희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농담처럼 대꾸했다.
― 야, 너 이모 이름을 그렇게 동네 개 부르듯 불러 댈래?
“어. 그럴래. 그렇지 않아도 우리 동네에 지나가던 똥개 이름이 권나희더라. 어떻게 알았어?”
― 야! 우서인!
서인의 농담에 나희가 발끈해서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서인이 깔깔대며 웃다가 슬쩍 눈가에 묻어난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용돈 제대로 챙겨 줘. 스무 살도 안 된 꽃띠한테 늙다리 아저씨 만나라고 하는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지?”
― 그래도 늙다리는 아니거든?
나희가 서인의 말에 따지듯 대꾸했다. 서인은 콧방귀를 뀌고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바꿔 잡으며 말을 이었다.
“늙다리 아저씨 맞거든? 이모 기준으로 볼 때는 아닌지 몰라도. 그래도 아저씨 아니라고는 안 하네.”
― 얘 좀 봐. 너는 나이 안 먹을 줄 알지? 누구는 그 꽃띠 시절 안 겪은 줄 아니?
……아니. 이모, 나는 차라리 늙어 버리고 싶어.
상처에도 무뎌지고 감정에도 무뎌져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 만큼, 폭삭 늙어 버렸으면 좋겠어.
서인은 속으로 꾹꾹 눌러 삼킨 말의 무게가 버거워서 한숨을 작게 내쉰 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슬슬 학원에 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나희에게 물었다.
“이번에 만날 아저씨는 몇 살인데?”
― 서른둘.
“아저씨 맞네.”
― 그래도 생긴 건 아니래. 오히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던데? 얼굴도 꽤 잘생겼다고 그러고.
“누가?”
― 소개팅 주선한 우리 연구소 소장님 왈.
“소장님이 잘생겼다고 한 거야?”
서인은 한심하다는 듯 나희에게 물었다. 나희가 다니는 연구소의 소장을 본 적이 있었다. 보자마자 ‘곰돌이’를 연상시켰을 정도로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아저씨였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잘생긴 외모’는 간단했다.
자신과 흡사한 외모=잘생김.
“그럼 딱 곰돌이겠네. 소개팅 나올 아저씨도.”
꿀단지 하나 끌어안고 나오려나? 서인이 농담처럼 덧붙이며 키득거렸다. 나희 역시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는지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서인에게 물었다.
― 곰돌이라고 해도 대신 나가 줄 거지?
“알았어, 걱정 마. 어차피 거절하러 나가는 건데, 뭐. 이모는 나한테 상납할 용돈이나 신경 쓰셔. 나 이제 전화 끊어야 돼. 오늘 학원에서 논술 시험 있어.”
약속 장소랑 날짜, 시간은 문자로 넣어 줘. 서인은 잊을 뻔했던 당부를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발바닥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지혈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발을 움직여도 피가 더 이상 배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고라도 발라야겠다. 서인은 구급상자를 어디에 두었던가 생각해 보며 일어섰다.
― 고마워. 용돈은 제대로 쏠게. 그리고 너, 발 다친 거 제대로 약 발라. 덧날 거 같으면 곧바로 병원 가고. 알았지?
“응.”
서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종종 늙다리 아저씨들과 소개팅을 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모만큼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은 뒤, 학원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상처가 난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는 탓에 서인의 걸음이 한쪽으로 자꾸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