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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2화)
프롤로그(2)


팟! 팟!
그렇게 허겁지겁 손바닥 두 개 크기의 타블랫 PC와 필기구 몇 개를 챙긴 제갈현은 순식간에 그가 살던 원룸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무협 마니아가 본다면 경공이라고 소리칠지도 모를 정도의 몸놀림으로 복잡하디 복잡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그의 신발 밑창에서는 땅에 발이 닿을 때마다 희뿌연 빛이 간간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흣∼∼차!”
대학교 강의 시작이 12시인데, 그것을 11시 40분에야 알아챘으니 제갈현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괜히 새로 산 V.R 기기에 시간을 뺏겼다고 마음속으로 투덜대던 제갈현은 힘차게 땅을 박차고, 벽을 박차며 족히 시속 30㎞는 넘을 법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저…… 저거 익스트림 무브먼트(Extreme Movement) 아니야?”
“우…… 우와! 익스트림 무버(Extreme Mover)다!”
그가 사는 곳이 대학교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원룸이니만큼, 사람이 없는 곳에서 빠르게 이동한다고는 하지만 이내 사람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팡! 팡!
길 위의 모든 것들을 지지대 삼아 한 번 도약으로 족히 4, 5미터는 날아다니니, 그 쾌속함과 현란한 움직임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익스트림 무브먼트(Extreme Movement).
과학 기술력이 발달하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움직일 필요도 거의 없어지게 되었지만 반대로 인간 본연의 육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는 더욱더 과격해져만 갔다.
21세기 초부터 급속하게 늘어 가던 야마카시라는 스포츠를, 22세기 중반 새로이 상용화된 J.B(Jumping Booster)라는 신발과 결합시켜 더욱더 과격하고 극한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는 스포츠로 변하면서 익스트림 무브먼트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익스트림 무브먼트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총칭하여 익스트림 무버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움직일 필요성을 앗아 간 기술력이 만들어 낸 극한의 움직임.
과격하기가 이를 데 없고, 사고 발생률이 굉장히 높은 만큼, 22세기 중후반에 들어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익스트림 무브먼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자, 대책의 일환으로 일종의 자격증이 생겨 버렸다.
속도와 쓰임새 때문에 J.B가 일종의 면허증을 따야만 신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그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지자 J.B 면허증을 딴 사람들을 총칭해서 익스트림 무버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합격률이 천 명에 한 명 꼴밖에 되지 않아 J.B를 신고 익스트림 무브먼트를 하는 사람을 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탕!
휘리리릭!
타닥!
앞에서 멍하니 서서 자신을 쳐다보는 일련의 무리들 때문에 땅을 박차고 도약한 제갈현은 공중제비를 돌아 부드럽게 착지하자마자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우……우와!”
“굉장해!”
그림 같은 제갈현의 움직임을 보면서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지만 제갈현의 모습은 벌써 저 멀리 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순발력이나 몸의 탄성이 좋아 격투기나 익스트림 무브먼트같이 순수 몸을 이용하는 운동에는 소질을 보이는 제갈현이었다. 하나 구기 종목만은 영 젬병인 것이 그의 특징이기도 했다.
텅…… 텅…… 텅…… 텅!
제갈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강의인 세계사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마음이 급해져 가던 그는, 앞에 대학교의 담장이 보이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도움닫기를 하더니 2.5m는 되어 보이는 담장을 단숨에 넘어 버렸다.
“하아…… 하아…….”
짧은 시간에 보통 걸음으로 걸었다면 족히 30분은 걸렸을 법한 거리를 5분 만에 단축시켰다. 하지만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큰 탓에 숨을 고른 제갈현은 주위의 시선을 느끼며 허리를 곧게 세웠다.
쉬이익―!
특성상 높은 출력을 내어 60㎏이 넘는 제갈현의 몸을 받쳐 주어야 했기에 열을 받은 J.B가 냉각시스템을 발동시키며 내는 소리가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는 제갈현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워낙 희귀한 익스트림 무버였기 때문에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시선에는 도통 익숙해질 수가 없는 제갈현이었다.
다다다닷!
주위에서 신기한 듯이 바라보는 시선이 늘어나자 당황한 제갈현은 옆에 있는 건물 안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후우…….”
건물로 들어서고 나서야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사라진 것을 느낀 제갈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강의실을 찾아 건물의 복도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V.R 룸으로 고고싱!”
“콜!”
“이번 학기 수업이 말이야…….”
“느…… 늦겠다!”
쉬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시끌벅적한 학생들의 틈 사이를 유유히 제치고 나아가던 제갈현은 거대한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5F501이었지 아마?”
세계사 강의를 하는 곳이 문과대 건물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주지시킨 제갈현은 앞에서 어지러이 움직이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움직임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지이이잉.
엘리베이터의 문이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활짝 열렸고, 기다리는 수의 사람만큼 많은 사람이 내리고 나자 제갈현은 타려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후다다닥!
“엇!”
꽈악!
제일 앞에 서 있던 제갈현이었지만, 갑자기 그의 뒤쪽에서 무언가가 제갈현의 등을 밀치더니 그가 기우뚱하는 틈을 타 그의 발등을 밟으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윽!”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제갈현이 찍힌 발등을 감싸며 인상을 잠시 찡그렸고, 이내 그 무례함에 엘리베이터 안을 쳐다보고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똥말똥.
엘리베이터 안에는 정말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냐는 듯 순진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안 타고 뭐해요?’라는 표정으로 묻고 있는 소녀가 한 명 서 있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여기 이렇게 줄 서고 있는 사람들 못 보셨습니까?”
방긋 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여전히 입가에 단 채로 입을 연 제갈현에게서 그 여자를 질타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유해 보이는 인상 때문일까, 소녀는 전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듯한 눈치로 서 있었다.
160은 약간 넘었을까. 꽃무늬가 새겨진 하얀 원피스에 챙이 넓은 하얀색의 모자를 쓰고, 귀밑까지 살짝 내려오는 단발머리에 큰 눈과 오똑한 코, 붉은 입술을 가진 소녀는 분명히 귀여워 보였다.
고작 17살이나 되어 보임직한 소녀가 대학교에는 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런 것 따위는 제갈현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 번에 족히 50명은 탈 수 있을 정도로 큰 엘리베이터 안에 소녀 한 명이 서 있고, 문밖에 제갈현을 위시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전, 지금 당신에게 당신의 무례와 그 행동에 대한 잘못을 따지고 있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다시금 제갈현의 입이 열렸고 가차 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소녀의 대답 역시 당돌했고 간결했으며, 명료했고 더불어 무례했다.
“근데요?”
멍…….
너무나도 태연한 응수에 흥미진진한 눈길로 쳐다보던 구경꾼들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갈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입가에 매달려 있었다.
“아직 세상을 덜 산 것 같은 어린 소녀에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과 지식의 전당이라고 부르는 대학 안에서 필요한 행동과 에티켓이 무엇인지 알려 주기 위해서 지금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로 거침없이 말하던 제갈현은 점점 빨개지고 있는 소녀의 얼굴과 쏘아보는 눈을 보고서는 한차례 뜸을 들이더니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등을 가리켰다.
“좀 아팠거든요.”
J.B가 다른 신발보다 딱딱한 재질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여성들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하이힐의 무지막지한 굽에 밟혔을 때 느껴지는 고통의 정도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이…… 이……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쏘아붙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인지 창피함과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진 소녀였지만 딱히 뭐라 반박할 만한 말은 없는 듯 이만 바득바득 갈 뿐이었다.
“한 가지 더. 그렇게 얼굴만 붉히면서 시간 끄는 것보다는 사과를 하거나 나가는 게 좋은 겁니다. 더 엘리베이터의 문을 붙잡고 있기엔 제가 시간이 너무 없군요. 참고로 억지 부리거나 그런다면 얼렁뚱땅 넘어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청산유수같이 말을 쏘아 내던 제갈현이 잠시 턱을 괴고서는 아랫입술을 살짝 핥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냥 나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활짝 웃는 표정으로 말하는 제갈현의 미소와 부드러움 뒤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독설에 당한 소녀의 얼굴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개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우아아앙!”
사과를 하고 얌전히 가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너무 강한 듯, 눈을 들어 제갈현의 얼굴을 기억해 두겠다는 듯이 강렬하게 노려보더니 이내 터지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달려 나갔다.
“쯧쯧…….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어린 나이군요. 한 가지만 더 충고한다면, 그렇게 울어 젖힌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사람 사이에서 가장 잘 통용되는 것은 합당한 판단과 논리거든요. 때와 장소를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함도 필요하겠군요.”
“우와아아앙!”
퍽! 퍽!
귀엽고 아리땁기 그지없는 소녀가 눈물을 흘림에도 불구하고, 제갈현은 지나쳐 가는 그녀의 귓가에 들리도록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침내, 그녀는 아이처럼 커다랗게 울면서 뛰어나갔다.
으쓱.
한 소녀를 말 몇 마디로 대성통곡하게 만든 당사자인 제갈현의 입가에는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소가 부드러움을 뽐내며 걸려 있었다.
대학생의 신분과 더불어 그의 주 수입원이 무기명으로 비평을 하는 비평가이기도 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더욱더 무서운 점은 상대를 철저히 말로 농락하고 깔아뭉개면서도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어떻게 보면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제갈현의 미소였다.
때문에 그와 친한 사람들이 소면악마, 웃음가면, 구밀설검 등의 별명으로 그를 부르고는 했다.
그러나 그렇게 머리가 비상한 제갈현에게도, 사소한 이런 일련의 사고가 후에 어떠한 일로 자신에게 돌아올지에 대한 예측은 감히 하지도, 아니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제갈현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