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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7화)
1. 게임의 시작(4)
몇 시간 후, 집 밖에 자리한 건초 더미 위에 드러누운 제갈현은 밤하늘을 쳐다보며 뭔가를 열심히 생각하고 있었다.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현실 같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보내면서, 아무래도 좀 더 진지하게 앞으로의 거취를 생각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미완성 무공서라…….”
인벤토리라고는 하기 뭐한 행낭에서 ‘노을번천도’라 쓰여진 책자를 꺼낸 제갈현은 달빛에 비춰져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겉표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이템 정보, 노을번천도.”
아이템(Item)
노을번천도[夕陽繁天刀](미완성)
등 급:?
종 류:서적류
설 명:심법, 혈도, 2가지의 초식이 담겨 있는 무공서.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어딘가로 사라져 미완성이다.
―노을을 도에 담을 수만 있다면…….
등급도 없고, 초식도 다 없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이유로 분리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외진 곳에서 발견될 정도면 나머지 조각들을 찾기 위해서는 거의 전 대륙을 돌아다녀야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군으로 임관해야 하나 아니면…….”
이 난세의 시대에서, 그리고 게임 속에서 자신의 몸 하나 지킬 만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갈현이었다.
제갈현은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세밀하게 주위와 비교하여 살펴보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 지식은 있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런 수준의 지식이. 하지만 무력은…….’
레벨이 올라가면 무력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었다.
‘문제는 관과 무림의 상호불가침 조약.’
무림인으로 활동하다가 관으로 임관하려 할 때, 위 조약으로 인하여 좌절된다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밑바닥부터 시작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역사상의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갈현의 생각이었다.
그의 조상인 제갈공명도, 유비라는 현사가 아니었다면 평생 그렇게 신야의 낭중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영웅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도의 명성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그들과 동등한 위치까지 올라가기에는 요원할 터였다.
‘그렇다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제갈현의 눈동자가 달빛에 반사되어 한층 더 빛났다.
제갈현은 천천히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무림인이 되자. 나 스스로 강해지고, 그 무력으로 명성이 사해를 울릴 때, 내 가진 바 지략으로 다른 이들을 무릎 꿇리리라.’
제갈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고, 동시에 깊어 가는 밤의 사위를 뒤덮은 어둠도 같이 깊어져만 갔다.
***
화웅.
동탁군에서 여포 다음으로 용맹한 자라면 단연 화웅을 꼽을 수 있었다.
반동탁 연합군에서도 선봉을 맡아 적 장수를 연신 격파했지만, 관우에게 죽고 마는 장수.
이것이 바로 제갈현이 알고 있는 화웅의 대략적인 내력이었다.
어떻게 동탁의 휘하로 들어가는지는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나, 몇 년 후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죽을 것이 정해진 화웅이었다.
그런 화웅이 지금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외부인인 제갈현과 같이 산을 타고 있었다.
촤르르!
“윽!”
“어허, 그렇게 비실비실한 몸으로 어디를 오르겠다는 거야?”
제갈현은 날이 밝아 일어나자마자 화웅을 찾아가 밤새 생각해 둔 것 중에 첫 단계가 될 것을 말했다. 그리고 화웅의 마지못한 승낙을 받아 내어 이렇게 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산이 많이 험준했기에 이렇게 계속 미끄러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두 시간 만에 체력 스텟이 오르자 한층 더 기운을 내서 오르는 제갈현이었다.
무림인이 되어 명성을 떨치려면 가장 기초적인 기본이 될 체력 단련부터 해야만 했다.
무공이든 뭐든 간에 가장 기초적인 것 없이 위로 올라간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상누각이 된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갈현은 화웅에게 수련을 도와줄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진양에서 말을 타고 십오 일 정도 가면 업이라는 대도시가 나오지.”
“헉…… 헉…… 업이면…… 헉…….”
화웅의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발걸음이 가뿐하면서 숨결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하나 제갈현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레벨 1짜리의 체력이나 지구력이 높아 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의 오기로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제갈현이었다.
“이곳 진양은 변방에 있어 외적들의 침입이 잦아. 그래서 척박하기 때문에 주로 업에서 생필품이나 기호품 등의 물건들을 들여오고는 하지.”
화웅은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말했던 것과는 달리 일반 사냥꾼이 알기에는 넓은 폭의 지식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제갈현은 역사에는 나오지 않는, 당대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지형적 특성, 세력적 특성들을 전반적으로 듣고 있었다.
“근데 요즘은 태평교도, 아니 황건적이라 불리는 녀석들이 극성이어서 다들 골머리를 앓고 있지. 녀석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칼 든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으니깐.”
“헉…… 헉…… 헉…….”
제갈현이 힘들어하거나 말거나 화웅은 아랑곳하지 않고 활과 창을 양손에 들고서는 산을 올랐다.
그리고 제갈현이 힘들어 쓰러지기 직전에야 화웅이 주로 사냥하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냥은 단순히 창이나 활을 들고 사냥감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의 감을 속일 수 있는 방법도 익혀야 되고, 바람을 등지는 방법, 발자국 하나도 놓치지 않는 추적술까지. 여러 가지 기술에 숙달되어야 비로소 한 명의 ‘사냥꾼’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웅의 말을 집중해서 듣던 제갈현은 흡사 그 ‘사냥’이란 것이 꼭 짐승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쉬익!
퍽!
꿰엑!
제갈현은 무심하게 말하면서도 창을 들어 힘껏 내던지는 화웅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볼 수 있었다.
흡사 벼락처럼 내던져진 창은, 용케도 울창한 덤불과 나뭇가지를 피해 멧돼지의 몸통을 일직선으로 관통했고, 멧돼지는 구슬픈 비명 소리와 함께 그대로 땅에 털썩하고 쓰러졌다.
“화아…….”
그의 신기와도 같은 투창 실력에 제갈현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족히 30미터는 떨어져 있었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것이 다였음에도 불구하고 던져진 창은 정확히 멧돼지의 두꺼운 몸통을 가차 없이 뚫어 버린 것이었다.
“본 것과 같이, 이런 기술들도 필요한 게 바로 사냥이지. 자, 날 도와준다고 올라왔으니 나 대신 저걸 메고 내려가라.”
“예?”
“뭔가 도움이 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난 간다.”
올라왔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사냥을 마치고 떠나가는 화웅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갈현은 주먹을 불끈 쥘 수밖에 없었다.
일견하기에도 족히 백여 킬로그램은 훌쩍 넘을 것만 같은 멧돼지를, 고작 레벨 1짜리에게 들고 내려오라니! 그것도 피 냄새를 풀풀 풍겨 다른 맹수들의 이목을 끌기 딱 좋은 녀석을 들고 말이다.
“비…… 빌어먹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제갈현은 호선을 그리던 입가에 경련이 날 정도로 젖 먹던 힘까지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제갈현의 H.I.D에서의 이튿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
현실로는 6일.
H.I.D에서의 시간으로는 30일.
자그마치 30일이라는 시간이 청산유수처럼 흘러갔다.
제갈현에게는 하루하루 스스로의 한계를 매일 깬다고 해도 좋을 만큼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쿠웅!
“후우……. 후우…….”
어깨에 짊어진 큰 사슴을 거칠게 팽개치듯이 내려놓은 제갈현은 이마를 덮는 검은 흑발을 쓸어 올리며 옆의 장작더미 위에 걸터앉아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현 오빠, 오늘은 시간이 더 단축됐는데? 아버지가 만족하시겠어!”
“후우. 아저씨가 말인가요? 화웅 아저씨한테 칭찬 한번 받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소저.”
“깔깔깔. 아버지가 워낙 무뚝뚝하셔서그래. 걱정하지 마, 오빠!”
“휴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꽤나 친해진 화옥이 발랄하게 웃으면서 까치발을 들어 힘내라는 듯이 제갈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제갈현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녀의 애교에 빙긋 미소 짓고서는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질질질.
“그럼 이번엔 장작 패기야. 오빠, 수고해!”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뿜어져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사슴을 끌고 가며 화옥이 소리쳤다.
“예, 예. 알겠습니다아∼∼”
화옥의 말에 대답하며 제갈현은 옆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었고, 적당한 크기의 나무토막을 들어서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제갈현이 화웅으로부터 습득, 혹은 훈련 비스무리하게 받고 있는 것은 크게 네 가지였다.
동이 트면 화웅과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예의 그 사냥터에서 화웅만 사냥을 하고 제갈현은 그저 그의 보조 역할을 했다. 사냥에 성공하면, 그 사냥감을 등에 짊어지고 움막까지 옮기는 건 제갈현의 몫이었다. 또 그날 쓸 장작 만들기, 그리고 요리하기가 바로 그가 한 달 동안 해 오던 네 가지 일이었다.
물론 사냥을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기에 그의 레벨은 한 달 전과 마찬가지로 1이었다.
그러나 스텟이 꾸준히 오르는 것을 지난 한 달 동안 경험했었던 제갈현이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고 묵묵히 화웅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기초를 닦는 단계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제갈현이 새로이 알아낸 것이라고는 정확한 연도뿐이었다.
184년.
하진의 황도군과 무서울 정도로 세력 팽창을 하고 있는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들 간의 세력 다툼이 대단히 심한 그 시기였다.
때문인지 꽤나 시골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진양에도 전란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냥한 동물들을 팔러 진양에만 갔다 오는 날이면, 화웅이 그리도 투덜대며 불평을 내뱉으니, 전란의 기운으로 인해 사람들의 지갑이 닫히고 경제가 점점 마비되어 가고 있음을 피부로 감지할 수 있었다.
후웅!
나무토막을 내려놓은 제갈현은 화웅이 가르쳐 준 방법과 자세 그대로 힘을 실어 내리찍었다. 한 달 배운 것 치고는 꽤 매서운 기세로 도끼날이 나무토막의 정중앙에 작렬했다.
쩌적!
힘차게 도끼가 나무토막을 찍자 사과가 쪼개지는 것처럼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나무토막이 두 조각으로 나뉘었다.
후웅! 쩍! 후웅! 쩍! 후웅! 쩍!
그 후로도 도끼를 휘둘러 나무토막을 정확히 사 등분하는 단순한 작업이 두 시간은 지속되었을 때였다.
순간 제갈현의 머릿속에서 미성이 울려 퍼졌다.
[근력 1, 체력 1, 인내심 1이 올랐습니다.]
“아싸! 드디어 인내심이 올랐구나!”
웬만해서는 거의 오르지 않은 스텟이 손재주, 동체시력, 인내심, 그리고 맷집이었다.
레벨업을 하고 주어지는 보너스 스텟으로도 올릴 수 없는 것이 이 스텟들이었으니, 제갈현이 이토록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태창!”
이 름:제갈현
레 벨:1 ―아시아― 계 급:?
칭 호:무(부가 효과 없음)
직 업:무 소 속:무
H.P :215 M.P :255
근 력:20 민 첩:15
체 력:23 지 능:43
손 재 주:4 동체시력:1
인 내 심:5 맷 집:1
잔여 상태치:0
“흐음……. 좋아!”
레벨 1에 이 정도 스텟을 가지는 것은 자기밖에 없을 것이라 만족해하며 제갈현은 상태창을 닫았다.
클로즈 베타가 시작된 지 6일이 지났지만, 최고 레벨이 기껏해야 10인 것을 감안할 때, 이 게임의 난이도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다.
‘극악!’
그런 와중에, 압도적으로 높은 스텟 수치를 가진 제갈현 자신이 사냥을 시작한다면?
레벨 10, 20차이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 생각하며 제갈현은 더욱더 짙게 미소 지었다.
“나중에…… 언젠가 화웅과 떨어지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부터 익히고 말리라!”
행낭 안에 잘 정돈되어 있는 ‘노을번천도’를 떠올린 제갈현은 도끼 자루를 굳세게 움켜쥐고서는 다짐했다.
무작정 무공서를 찾고, 배우기 위해 떠나기에는 실력도 부족했고, 아직 화웅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흐압!”
다시금 도끼질을 하기 시작한 제갈현의 움직임에 따라 햇빛을 받아 찰랑거리는 긴 흑발이 하늘하늘 휘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