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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영감의 말까지 인용해 가면서 친해지려고 했던 바스티니는 일리안의 거절에 화가 난 듯 눈썹을 다시 모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게 한숨을 푹 쉬며 바스티니가 말했다.
“좋아!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이거 잘못하다간 아침이 아니라 점심이 되어 버리겠다.”
일리안의 팔을 툭 치며 바스티니가 내려놓았던 사냥감을 다시 들러 가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일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이질적인 기운. 하지만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몬스터가 아니었다. 몬스터였다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기척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바스티니의 시선에 일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던 사냥감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바스티니가 등에 있는 대검의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다. 대검을 잡으며 바스티니가 일리안을 보며 흥분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저 대단하다고 하는 소드마스터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 바스티니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리안은 적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숏소드를 잡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반역죄로 눈을 잃었고, 사지는 엉망이 되었다. 다시 살아남게 되더라도 평생 불구로 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든 게 돌아와 있었다.
축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주라고 해야 할까? 10년의 공백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살아야 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가져온 장작을 땅에 버리며 크라젤이 검을 뽑아 등 뒤로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던 크라젤의 검이 다른 누군가의 검과 충돌해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차앗!”
자신의 검을 움켜쥐고 있던 크라젤이 상대의 검을 힘껏 쳐 냈다. 휘청거리는 상대를 검으로 찌른 크라젤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타난 자객의 등장에 클로젤과 드모리쉬 또한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차피 마법사로도 극강의 위치에 있는 둘이었다. 도와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지 물어보는 건 쓸데없는 질문이겠지?”
검을 다잡으며 크라젤이 앞에 서 있는 자객에게 물었다. 크라젤의 물음에 대한 자객의 대답은 공격이었다.
자객의 곡도를 검으로 흘린 크라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자객의 발을 향해 던졌다. 단검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빼는 자객의 몸을 향해 크라젤의 검이 날아들었다.
“크윽.”
발에 꽂힌 단검에 자객에게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대신 자객은 단검을 포기한 덕분에 간신히 크라젤의 검을 막을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건만 크라젤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양손으로 자객의 검을 막고 있던 크라젤이 한 손을 빼, 품 안에 넣어 놓았던 단검을 꺼내 자객의 목에 꽂았다. 곡도를 들고 있던 자객이 쓰러지고, 확인 사살을 하듯 크라젤의 롱소드가 자객의 심장을 다시 찔렀다.
찰나의 시간에 자객이 쓰러지자, 클로젤과 드모리쉬를 둘러싸고 있던 자객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마법사인 만큼 둘은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는 못했지만 순서를 바꿔 가며 하는 공격과 보호마법은 상대하기 귀찮았다.
크라젤에게 배치해 두었던 자객 몇 명이 맥없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그들을 처리했음에도 크라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자객만 해도 족히 스무 명, 더군다나 클로젤과 드모리쉬에게 붙어 있는 자객의 수도 열은 족히 되었다.
일행을 포위한 자객들 사이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부터 제거한다.”
그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자객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온다!”
크라젤이 롱소드를 다잡으며 자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시에 클로젤과 드모리쉬 또한 마력을 모았다. 하지만 공격을 하는 대신, 자객들은 클로젤과 드모리쉬를 향해 작은 주머니를 집어 던졌다. 그것은 공중에서 터지더니 하얀 가루를 흩뿌렸다.
“이거 뭐야!”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틀어 피하려는 일행을 나머지 자객들이 한곳으로 몰았고, 순식간에 가루가 일행들의 몸에 뿌려졌다. 다행히 몸이 마비되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루는 아닌 것 같아 크라젤은 다시금 자세를 잡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때였다.
“마력이…… 안 모여?”
“정신 놓지 마!”
당황한 클로젤을 공격하려는 자객의 검을 스태프로 막으며 드모리쉬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창백한 클로젤에게 드모리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침착하게 다시 마력을 모으려 했지만 가루를 맞은 이후로는 마력이 모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법사 둘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자객들은 맹렬히 공격하였다.
수적 열세. 끝까지 반항을 했지만 결국 일행 전부가 자객들에게 제압되었다.
자객들에 의해 묶인 일행의 가운데로 묵직한 목소리를 내던 자객이 나왔다.
쓰고 있던 복면을 내린 남자는 40대 중후반 정도에, 여러 개의 칼자국이 얼굴에 나 있는 사내였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노란색 눈은 사냥감을 찾는 짐승의 눈을 하고 있었다.
“아델리아의 황제 직속 기사단도 별거 아니군.”
사내의 말에 크라젤은 발끈하여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였으나 클로젤이 재빨리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사내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협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직 죽이지 않은 걸 보니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군요.”
클로젤의 물음에 사내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것도 없는 귀족에게 우리같이 하찮은 자객들이 뭘 필요로 하겠는가?”
무시무시한 첫인상과는 달리 사내는 가벼운 어조로 말을 하였다. 교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내의 말투에 긴장을 풀었겠지만 클로젤은 제국의 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저 페이스에 말려 긴장을 풀어 버린다면 거기서 끝이다.
“그럼 왜 살려 두는 거죠? 돈이 필요해서인가요?”
“너희를 살리는 것보다 죽인 다음에 돈을 뜯어내는 게 더 쉽지.”
사내의 말에 클로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역시 암살길드의 두목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클로젤의 말에 쉽게 대답을 해 주고 있음에도 핵심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미르드에서 보냈나요?”
“높으신 나라님의 일 따위는 모르는데? 그리고 마법도 쓰지 못하는 주제에 참으로 당당한 태도군. 죽고 싶어?”
“아니요. 당신은 날 죽이지 못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클로젤의 반응에 중년 사내는 살기를 띤 미소를 짓고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감당하기 어려운 살기에 클로젤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주저앉는 대신 그녀는 턱을 들어 더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 내던 살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동굴에서 느꼈던 일리안의 살기를 떠올리며 클로젤은 참아 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반복되고, 클로젤과 사내의 신경전도 계속되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말장난을 하기 전에 죽여 버렸겠죠.”
클로젤의 말에 사내가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소름 끼치는 그의 웃음소리에 그녀가 소리 없이 숨을 삼켰다.
당장에라도 목이 베일 것 같은 두려운 상황, 이상하게도 클로젤의 머리에는 일리안이 스쳐 갔다. 그라면…… 적어도 이 상황에서 그라면 왠지 모르게 그녀를 지켜 줄 것 같았다.
무섭다. 제발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기만을 바랐다.
“진짜 재미있는 아가씨네. 맞아! 널 죽여 버리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어.”
목숨을 건 대담 속에서 클로젤은 어렴풋이 사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예상일 뿐이었지만 이들은 클로젤 일행이 어떤 임무를 띠고 이 산에 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한 암살길드가 아니다. 아주 잘 훈련된, 한 가지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의 배경에는 아마도…….
‘미르드겠지.’
그리고 이들이 원하는 건 아마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리안이다. 폐인이 되어 엉망인 상태가 아닌, 무엇보다 분노한 상태가 아닌 평상시의 그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가 필요해.”
클로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의 굳은 표정에 사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바스티니의 대검이 춤을 추고 자객이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의 검에 의해 쓰러진 자객은 다섯 명. 20명 정도의 자객이 급습한 현재 상황에서 바스티니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바스티니의 기분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고 해도 동시에 들어오는 적을 계속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자객들 중에는 장거리 공격과 함께 마법을 쏘는 녀석들도 있었다.
클로젤이나 드모리쉬가 함께 있는 상황이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은 바스티니로서는 이겨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있었다.
전투 중에 다른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도저히 그런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지금의 상황에 흔들리고 있는 건 바스티니뿐만이 아니었다. 변함없이 둘을 공격하고 있는 자객들 또한 유지하고 있던 대열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일리안은 괴물 같은 괴력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도,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의 그 자리에서 자객들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싸우기 시작할 때 들고 있던 숏소드는 지금 바스티니의 뒤에 쓰러져 있는 자객의 이마에 정확히 박혀 있었다.
화려한 공격을 펼치기보다는 자객의 무기를 반대로 이용하며 자신에게 공격하는 자객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스티니를 화나게 하는 건, 열댓 명의 자객들과 혼자 싸우고 있으면서도 바스티니가 위험할 때는 어김없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20명 정도의 인원은 순식간에 5명으로 줄었고, 숫자를 헤아리는 순간 그중 둘은 일리안의 의해 순식간에 쓰러졌다.
상대가 안 된다. 아니 상대가 도저히 될 수 없다.
“좋아!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이거 잘못하다간 아침이 아니라 점심이 되어 버리겠다.”
일리안의 팔을 툭 치며 바스티니가 내려놓았던 사냥감을 다시 들러 가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일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이질적인 기운. 하지만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몬스터가 아니었다. 몬스터였다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기척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바스티니의 시선에 일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던 사냥감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바스티니가 등에 있는 대검의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다. 대검을 잡으며 바스티니가 일리안을 보며 흥분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저 대단하다고 하는 소드마스터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 바스티니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리안은 적이 느껴지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숏소드를 잡고 있는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반역죄로 눈을 잃었고, 사지는 엉망이 되었다. 다시 살아남게 되더라도 평생 불구로 살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든 게 돌아와 있었다.
축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저주라고 해야 할까? 10년의 공백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렸다.
살아야 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가져온 장작을 땅에 버리며 크라젤이 검을 뽑아 등 뒤로 휘둘렀다. 허공을 가르던 크라젤의 검이 다른 누군가의 검과 충돌해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차앗!”
자신의 검을 움켜쥐고 있던 크라젤이 상대의 검을 힘껏 쳐 냈다. 휘청거리는 상대를 검으로 찌른 크라젤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타난 자객의 등장에 클로젤과 드모리쉬 또한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차피 마법사로도 극강의 위치에 있는 둘이었다. 도와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지 물어보는 건 쓸데없는 질문이겠지?”
검을 다잡으며 크라젤이 앞에 서 있는 자객에게 물었다. 크라젤의 물음에 대한 자객의 대답은 공격이었다.
자객의 곡도를 검으로 흘린 크라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자객의 발을 향해 던졌다. 단검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빼는 자객의 몸을 향해 크라젤의 검이 날아들었다.
“크윽.”
발에 꽂힌 단검에 자객에게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대신 자객은 단검을 포기한 덕분에 간신히 크라젤의 검을 막을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건만 크라젤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양손으로 자객의 검을 막고 있던 크라젤이 한 손을 빼, 품 안에 넣어 놓았던 단검을 꺼내 자객의 목에 꽂았다. 곡도를 들고 있던 자객이 쓰러지고, 확인 사살을 하듯 크라젤의 롱소드가 자객의 심장을 다시 찔렀다.
찰나의 시간에 자객이 쓰러지자, 클로젤과 드모리쉬를 둘러싸고 있던 자객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마법사인 만큼 둘은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는 못했지만 순서를 바꿔 가며 하는 공격과 보호마법은 상대하기 귀찮았다.
크라젤에게 배치해 두었던 자객 몇 명이 맥없이 쓰러졌다. 순식간에 그들을 처리했음에도 크라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자객만 해도 족히 스무 명, 더군다나 클로젤과 드모리쉬에게 붙어 있는 자객의 수도 열은 족히 되었다.
일행을 포위한 자객들 사이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부터 제거한다.”
그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자객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온다!”
크라젤이 롱소드를 다잡으며 자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동시에 클로젤과 드모리쉬 또한 마력을 모았다. 하지만 공격을 하는 대신, 자객들은 클로젤과 드모리쉬를 향해 작은 주머니를 집어 던졌다. 그것은 공중에서 터지더니 하얀 가루를 흩뿌렸다.
“이거 뭐야!”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틀어 피하려는 일행을 나머지 자객들이 한곳으로 몰았고, 순식간에 가루가 일행들의 몸에 뿌려졌다. 다행히 몸이 마비되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루는 아닌 것 같아 크라젤은 다시금 자세를 잡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때였다.
“마력이…… 안 모여?”
“정신 놓지 마!”
당황한 클로젤을 공격하려는 자객의 검을 스태프로 막으며 드모리쉬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창백한 클로젤에게 드모리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침착하게 다시 마력을 모으려 했지만 가루를 맞은 이후로는 마력이 모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법사 둘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자객들은 맹렬히 공격하였다.
수적 열세. 끝까지 반항을 했지만 결국 일행 전부가 자객들에게 제압되었다.
자객들에 의해 묶인 일행의 가운데로 묵직한 목소리를 내던 자객이 나왔다.
쓰고 있던 복면을 내린 남자는 40대 중후반 정도에, 여러 개의 칼자국이 얼굴에 나 있는 사내였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에 노란색 눈은 사냥감을 찾는 짐승의 눈을 하고 있었다.
“아델리아의 황제 직속 기사단도 별거 아니군.”
사내의 말에 크라젤은 발끈하여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였으나 클로젤이 재빨리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앞에 있는 사내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협상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직 죽이지 않은 걸 보니 우리에게 원하는 게 있군요.”
클로젤의 물음에 사내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것도 없는 귀족에게 우리같이 하찮은 자객들이 뭘 필요로 하겠는가?”
무시무시한 첫인상과는 달리 사내는 가벼운 어조로 말을 하였다. 교섭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사내의 말투에 긴장을 풀었겠지만 클로젤은 제국의 보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저 페이스에 말려 긴장을 풀어 버린다면 거기서 끝이다.
“그럼 왜 살려 두는 거죠? 돈이 필요해서인가요?”
“너희를 살리는 것보다 죽인 다음에 돈을 뜯어내는 게 더 쉽지.”
사내의 말에 클로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역시 암살길드의 두목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클로젤의 말에 쉽게 대답을 해 주고 있음에도 핵심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미르드에서 보냈나요?”
“높으신 나라님의 일 따위는 모르는데? 그리고 마법도 쓰지 못하는 주제에 참으로 당당한 태도군. 죽고 싶어?”
“아니요. 당신은 날 죽이지 못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클로젤의 반응에 중년 사내는 살기를 띤 미소를 짓고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감당하기 어려운 살기에 클로젤이 몸을 떨었다. 하지만 주저앉는 대신 그녀는 턱을 들어 더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이 내던 살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동굴에서 느꼈던 일리안의 살기를 떠올리며 클로젤은 참아 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아슬아슬한 순간이 반복되고, 클로젤과 사내의 신경전도 계속되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말장난을 하기 전에 죽여 버렸겠죠.”
클로젤의 말에 사내가 킥킥 웃음을 터트렸다. 소름 끼치는 그의 웃음소리에 그녀가 소리 없이 숨을 삼켰다.
당장에라도 목이 베일 것 같은 두려운 상황, 이상하게도 클로젤의 머리에는 일리안이 스쳐 갔다. 그라면…… 적어도 이 상황에서 그라면 왠지 모르게 그녀를 지켜 줄 것 같았다.
무섭다. 제발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 주기만을 바랐다.
“진짜 재미있는 아가씨네. 맞아! 널 죽여 버리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어.”
목숨을 건 대담 속에서 클로젤은 어렴풋이 사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예상일 뿐이었지만 이들은 클로젤 일행이 어떤 임무를 띠고 이 산에 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한 암살길드가 아니다. 아주 잘 훈련된, 한 가지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일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의 배경에는 아마도…….
‘미르드겠지.’
그리고 이들이 원하는 건 아마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리안이다. 폐인이 되어 엉망인 상태가 아닌, 무엇보다 분노한 상태가 아닌 평상시의 그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가 필요해.”
클로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의 굳은 표정에 사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바스티니의 대검이 춤을 추고 자객이 가슴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의 검에 의해 쓰러진 자객은 다섯 명. 20명 정도의 자객이 급습한 현재 상황에서 바스티니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바스티니의 기분은 바닥을 찍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검사라고 해도 동시에 들어오는 적을 계속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자객들 중에는 장거리 공격과 함께 마법을 쏘는 녀석들도 있었다.
클로젤이나 드모리쉬가 함께 있는 상황이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은 바스티니로서는 이겨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있었다.
전투 중에 다른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도저히 그런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지금의 상황에 흔들리고 있는 건 바스티니뿐만이 아니었다. 변함없이 둘을 공격하고 있는 자객들 또한 유지하고 있던 대열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일리안은 괴물 같은 괴력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도,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의 그 자리에서 자객들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싸우기 시작할 때 들고 있던 숏소드는 지금 바스티니의 뒤에 쓰러져 있는 자객의 이마에 정확히 박혀 있었다.
화려한 공격을 펼치기보다는 자객의 무기를 반대로 이용하며 자신에게 공격하는 자객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스티니를 화나게 하는 건, 열댓 명의 자객들과 혼자 싸우고 있으면서도 바스티니가 위험할 때는 어김없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20명 정도의 인원은 순식간에 5명으로 줄었고, 숫자를 헤아리는 순간 그중 둘은 일리안의 의해 순식간에 쓰러졌다.
상대가 안 된다. 아니 상대가 도저히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