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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12화)
2. 황건적(4)


“무림인이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갈현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탁자에 앉아 있던 장년인이 중얼거렸다.
장년인, 아니 남포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는 흥미로운 눈길로 거리를 가로질러 내려가는 제갈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독종이군.”
“남 오라버니. 혼자 뭐라 중얼거리는 거예요?”
그리고 지긋이 나이를 먹은 것으로 보이는 남포 옆에 앉아 있던 여인이 혼자 중얼거리는 남포가 이상했던 것인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그냥…… 쓸 만한 녀석을 발견했을 뿐이다.”
여동생을 데리고 유람차, 그리고 한편으로는 쓸 만한 녀석이 없는지 찾아보려고 나온 남포였다.
그걸 잘 아는 여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잘된 거 아니에요? 까다로운 오라버니의 눈에 들었다니…… 누군지 궁금한데?”
홍색의 궁장의를 걸친 여인의 얼굴은 지나가던 행인이 눈을 돌려 다시 보게 할 정도로 충분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허리춤에 매어진 검을 보니, 이 여인과 남포가 제갈현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무림인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없지는 않은 주루에서, 제갈현의 혼잣말을 들었다는 것은 남포란 장년인의 내공이 얼마나 심후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남포.
전 무림맹인 15대 무림맹의 비호단 단주이자, 현재는 본 문인 소림사에서 지원을 받아 설립된 하남표국의 국주인 일검단월(一劍斷月)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무림에서는 절정 고수급의, 게임의 분류로는 레벨 150을 훌쩍 넘는 명인의 끝자락에 다다른 실력을 가졌다. 그는 무림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고수 중에 한 명이었다.
소림의 절예에서 깨달음을 얻어 창안한 그의 단월검법(斷月劍法)은 특급은 아니어도 일류정도는 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를 ‘오라버니’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홍의의 여인은, 남포의 둘도 없는 여동생으로써 올해 갓 20살을 넘긴 남경화였다.
“오라버니, 그럼 빨리 쫓아가야지 뭐하는 거예요!”
제갈현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는 남포가 답답했던 것인지, 남경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남포의 손을 잡고 주루 밖으로 끌고 나갔다.
“빨리 쫓아가요오!”
“휴우……. 알았다. 다 큰 처녀가 오두방정은…….”
“오라버니!”
“하하하!”
이미 제갈현의 신형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주루 밖으로 나온 남포는 남경화의 등쌀에 못 말리겠다는 듯이 제갈현이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놀랍게도 남포와 남경화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경공.
그렇게 그들의 신형은 순식간에 제갈현이 사라진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

“그래…… 업성 바깥쪽으로 빠져나갔단 말이지?”
“예, 총타주님.”
진양성 같은 외진 곳에도 태평교가 있었는데, 업 같은 대도시에 태평교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진양성을 괴멸시킨 두 존재에 대해서도 눈에 불을 켜고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녀석이 따로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식은 하남 지역 태평교의 총타주인 하의로 하여금 비열한 미소를 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화웅이란 녀석은 왕윤의 밑으로 들어갔지만…… 악멸도란 녀석은 혼자 있다라…… 큭큭.”
답은 정해져 있었다. 위에서도 수배령이 내려진 녀석을 자신의 지역에서 붙잡는다면, 작은 공이나마 세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200명 정도만 추려라. 꼭, 죽여서 수급을 가져와야 된다.”
지금껏 하의가 이런 비열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한 사람씩은 꼭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수하는 허리 숙여 깊게 읍하고서는 물러났다.
“중원의 반을 차지하는 우리를 건드린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다. 큭큭큭.”
전각 창문으로 질서 정연하게 장원을 빠져나가는 200의 황건 병사들을 보며 하의가 기분 나쁘게 중얼거렸다.

***

“흠…… 여기가 지주동(蜘蛛洞)인가?”
제갈현은 업에서 빠져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지주동’이란 사냥터로 들어서면서 중얼거렸다.
이제서야 처음으로 게임다운 게임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갈현의 입가에는 약간 들뜬 듯해 보이는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취이익!”
“키엑!”
몇 발짝이나 걸어 들어갔을까. 1년여 동안의 사냥으로 한껏 돋워진 제갈현의 청력에 듣기 거북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제갈현은 본능적으로 구환도의 손잡이를 굳게 움켜쥔 채로 천천히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다가갔다.
“윽! 징그러!”
지주동이란 이름답게 주로 출현하는 몬스터들이 거미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하나 정작 거미들을 보자 제갈현의 미소에 잔경련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주먹만 한 타란툴라도 징그럽기 그지없는데, 개 크기의 거미를 봤으니 더 징그러운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수북한 다리털에, 물리면 신체 중 한 부분은 너끈히 끊어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날카로운 턱과 이빨, 그리고 칙칙한 색깔까지.
혐오스러워 보일 만한 요소들은 모두 갖춘 거미들이었다.
“에잇!”
그래도 사냥터에 와서 사냥을 안 할 수는 없는 법.
배운 사냥 기술이 몬스터에게도 통하는 모양인지 바로 지척까지 다가가도 눈치채지 못하는 지주를 향해 제갈현이 도를 휘둘렀다.
서걱!
푸화아악!
“취륵!”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같이 있는 한 마리의 지주가 도에 양단되자 남은 한 마리의 지주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제갈현에게 달려들었다.
츄악!
“으…….”
지주의 입에서 허연 물체가 급작스럽게 튀어나오며 제갈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제갈현은 징그럽다는 듯 소리를 내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것을 피해 내며 허공에 대고 구환도를 그었다.
서걱!
털썩!
기분 나쁜 초록색 점액과 함께 지주가 양단되며 땅에 쓰러졌다.
“흐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은데?”
중얼거린 제갈현은 이내 지주동이 업성 바로 근처에 있는 사냥터임을 상기해 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의 사냥터들이 도시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수준이 높아졌다. 업성에서 가까운 지주동의 지주의 레벨은 평균적으로 5밖에 되지 않았다.
사사사삭.
지주가 죽으면서 떨어뜨린 돈을 주워 담은 제갈현은, 자신의 주위로 느껴지는 수십 개의 기척에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수십 개의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기척이, 미세하게 제갈현의 귀에 잡힌 것이다.
“지주의 습성이라 이건가?”
사람의 기척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주동에서 출현할 것이라고는 지주밖에 없었으니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제갈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원래 이 지주라는 것이 동족의 시체라도 가리지 않고 뜯어먹을 수 있을 만큼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주의 시체를 감지하고서는 몰려오는 것이었다.
“취륵?”
퍽!
가장 근처에 있던 풀숲이 흔들리면서 지주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제갈현의 구환도가 허공을 격하고 번개처럼 지주의 몸통을 베어 버렸다.
“쳇! 난 뭘 하기만 하면 기본이 일 대 몇십이 되는 거지?”
들썩거리는 풀숲을 보면서 제갈현이 난처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은 채 아랫입술을 혀로 살짝 핥았다.
“취륵!”

***

“호오…….”
“으…… 징그러! 왜 저 지주들이랑 싸우는 거죠, 오라버니?”
“글쎄다…….”
순식간에 업에서 빠져나와 지주동에 도착한 남포와 남경화는 수십의 지주와 싸우는 제갈현을 보면서 말했다.
“투박하긴 해도 나름대로 기본기는 잡혀 있는데…….”
“굉장히 깔끔한 움직임이네요. 저런 후진 도 한 자루로…… 화아…….”
남포는 남경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대장간에서나 살 수 있는 투박한 구환도였지만, 제갈현의 움직임이 더할 나위 없이 군더더기 없고 깔끔했기에, 그것에 탄성을 내지른 것이다.
남포만큼은 아니지만, 남경화도 단월검법을 칠 성까지 수련한 무인이기에, 내공도 없이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제갈현의 도술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흡사 한편의 잘 짜여진 춤을 추는 듯한 제갈현의 모습은, 절정 고수인 남포가 보기에도 감탄할 정도로 깔끔했다.
“확실히 독종은 독종이군.”
한 마리, 한 마리씩 차례대로 차근차근 지주들을 죽여 나가는 제갈현의 모습에 남포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응? 경화야. 잠시 뒤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구나.”
제갈현의 도무를 홀린 듯이 쳐다보던 남경화는 남포의 말에 돌아다보았지만, 남포는 그저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

“빌어먹을! 고작 한 명을 잡으러 우리가 여기까지 와야 되다니! 기분 나쁜 거미 새끼들이나 죽이면서!”
200의 황건병을 거느리고 지주동에 진입한 여광은 아미를 찌푸리면서 거칠게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쳐냈다.
한창 흐드러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고작 한 놈을 죽이러 자신과 200이 넘는 황건병이 움직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진양 분타의 허접한 놈들을 죽인 게 무슨 대수라고!”
진양 분타를 궤멸시킨 놈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광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500이 넘는 인원을 고작 두 명으로 어떻게 궤멸시키며, 설령 그랬다 할지라도 진양 분타의 교도들은 무장이나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업의 태평교 분타보다 몇 배는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업의 황건병이 200이나 됐다. 절대로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관해란 녀석도 알고 보니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던 게 틀림없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린 여광은 목표물이 앞에서 지주들과 싸우고 있다는 소리에 신경질적인 미소를 짓고서는 말했다.
“포위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그냥 짓밟아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