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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16화)
3. 무공을 배우다(3)


소림사가 어느 곳이던가.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로 일컬어지는 곳이고, 각종 진산 절학들의 총본산이 바로 소림이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소림에 대한 그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황건적 때문일세. 아미타불.”
현공이 불호를 읊으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남화노선(南華老仙)의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로 인해 대현량사(大賢良師) 장각이 스스로를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 칭하고 두 아우를 지공(地公), 인공장군(人公將軍)이라 칭하며 황천(黃天)의 이름으로 격문을 돌린 것이 작년의 일일세. 아미타불.”
“하지만 기껏해야 ‘좀’ 많은 도적의 무리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 도적들이 어떻게 우리 소림사를…….”
남포의 말에 현공과 십팔나한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건적들도 미치지 않은 이상 소림사를 공격할 리가 없었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는 제갈현이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어렵던 중생들의 삶이 더욱더 어려워졌다는 것일세. 그로 인해 소림사 또한 그 거대한 몸통을 유지할 만한 유지비가 떨어진 것이고.”
“예?”
현공의 말에 남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불신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반문했다.
“유지비일세. 우리들도 인간이지 않나. 더군다나 황건적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가뜩이나 백성들도 궁핍해진 데다가 한(漢) 황실도 그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해짐에 따라 소림사에 대한 지원금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일세.”
현공의 말에 제갈현은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속세의 것들에서는 초탈하고, 불도만 닦게 생긴 풍모의 중이 먹고살기 위한 돈이 없다고 고민하는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는 평생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었던 것이다.
“비록 장각은 병으로 죽고, 두 아우들도 관병에 의해서 주살되었다고는 하나 황건적의 세력은 아직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흐음……. 그건 그렇겠군요. 오히려 장각의 죽음으로 그 기세가 한풀 꺾였으니, 진압군들과 황건적들과의 싸움이 더 많아졌을 터이고 말입니다.”
“아미타불.”
남포가 정확히 설명을 한 듯 현공이 나지막하게 불호를 읊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와 같은 거대 문파가 돈을 버는 방법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첫째가 소림사의 세력권 내에 있는 상단이나 군소 방파들로부터 그 지역 안에서는 안전할 수 있도록 안정된 치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둘째로는 일반인들로부터 시주를 받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황실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천하가 태평할 시기에는 별 무리 없이 가능한 것이었으나, 현실의 사태는 세 가지 모두 불가능하게 하여 천하의 소림사가 당장 내일 먹고살 것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 것이다.
‘상단이나 군소 방파들이 황건적이 자리 잡은 이곳에 들어올 리도 없고, 황건적들 자체가 궁핍한 삶을 이겨 내지 못하고 봉기한 것이기에 일반인들의 재정 상황이 대단히 열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역의 무리들이니…… 황실에서 반역의 무리가 득시글한 이곳에 지원을 해 주는 것도 무리다. 확실히 문제군.’
제갈현은 가만히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는 없었다.
확실히 큰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중들이 음식을 만들어 팔거나, 표사 역할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새로이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현공이 직접 이곳까지 온 것도 이해가 갔다.
제갈현이 보아하니 현공이라 불린 중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직설적으로, 그리고 적나라하고 냉정하게 현재 소림사가 처한 상황을 인지하는 것을 보니, 근엄한 승려가 아닌 모사 쪽의 유형으로 보였다.
“그래서…… 하남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말씀이십니까, 사형?”
남포는 이런 거대 표국을 차려 운영할 정도로 상재에서 꽤나 출중한 능력을 지녔기에 바로 상황을 인지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미타불. 그렇네 사제. 우리 소림사에서 대놓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들일 수는 없으니, 사제의 도움이 필요하네.”
현공이 남포를 향해 말했고, 남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소림사에서 얻은 은혜가 결코 적지 않으니, 성심성의껏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형.”
남포의 흔쾌한 승낙에 현공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흠……. 둘 다 생각보다는 만만하지 않구먼.’
누가 보더라도 사제와 사형, 같은 동문끼리의 화기애애한 대화요, 훈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현은 미소 너머로 눈을 반짝이면서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남포와 현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잔뜩 그럴듯한 말과 표정으로 포장하기는 했으나,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뭔가 다른 의미들이 저 대화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공이 이곳에 십팔나한이라는 소림의 정예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데리고 온 것은 무공이 뛰어나지 않은 현공에 대한 호위의 명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남포의 하남표국에 보여 주는 일종의 무력시위이며, 현재 소림사가 그만큼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강호의 이름난 고수이자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무림맹 생활을 몇 년을 했던 일검단월 남포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에 남포는 한 단체를 이끄는 우두머리로서 오랜만에 만난 사형과 알게 모르게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포의 특성상…… 소림사의 도움을 그리 많이 받은 것 같지는 않은데……. 동문이라 거절할 수도 없고, 꽤나 난처하겠군.’
짧은 시간이긴 하나, 그간에 보여 준 남포의 성격상, 소림의 속가제자란 것을 내세워서 소림사와 직접적으로 이권을 보장받고, 다른 표국들보다 월등히 우월한 상황에서 시작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문에서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번 일로 소림사에 어느 정도 빚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일 것이다.
남포가 하남을 벗어나 전 중원으로 그 세력을 뻗치기 위해서는 소림사란 그늘에서 어느 정도 독립할 필요가 있었다.
소림사에 속한 것이 아닌, 소림사와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것.
그래야만이 하남제일표국(河南第一?局)을 넘어서 중원제일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
‘쳇!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겠지.’
이내 자신과는 당장에는 그리 상관없음에 피식 웃음을 지은 제갈현이 조심스럽게 장내를 빠져나갔다.
“흐음…….”
전각을 조용히 빠져나온 제갈현은 앞으로 꽤나 긴 시간 동안 머물 곳이라는 생각에 하남표국 안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굶주린 자들과 가난한 자들, 그리고 황건적이란 도적 무리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표국의 장사는 더욱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안전이 우선시되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던 제갈현은 저 멀리 보이는 남경화의 모습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남 소저!”
불러서 안내나 맡길 목적으로 남경화를 부른 제갈현은, 그녀의 옆에 서너 명의 남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멈칫 멈추어 섰다.
“제갈 소협?”
그녀 또한 제갈현을 이런 곳에서 만난 것이 의외였던 것인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 옆에 있는 남자들 또한 웬 놈팡이냐는 듯한 시선으로 제갈현을 바라보았다.
“인사하세요. 이쪽은 오라버니께서 전인으로 받아들인 제갈현 공자예요. 제갈 소협, 이쪽은 강호에서 벽력도(劈力刀)로 유명하신 하북팽가(河北彭家)의 팽도위 소협이에요. 이쪽은 매화쌍검(梅花雙劍)으로 유명한 화산파의 일청, 이청 도사님들이세요.”
이곳까지 오면서 보여 준 왈가닥 같은 모습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제법 현숙한 모습을 보여 주는 남경화의 모습에 제갈현은 생각했다.
‘역시…… 변신의 동물이라는 것인가, 여자는.’
“여기 제갈 소협은 악멸도(惡滅刀)란 별호를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제갈현이 무어라 생각하건 말건 간에, 이어진 남경화의 설명을 들은 세 남자가 의외란 눈으로 제갈현을 쳐다보았다.
그중에서도 같은 도를 쓰는 사람답게 팽도위가 유독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귀찮아지기 전에 피해야겠군.’
악멸도란 칭호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거진 화웅의 힘으로 받은 것이기에 제갈현으로서는 그로 인해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확인해 보지도 않았잖아?’
그렇게 많고 많은 황건 병사를 죽이고서도 상태창을 확인하지 않은 자신의 실책을 탓했다.
제갈현은 팽도위가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남경화에게 급히 말했다.
“남 소저, 제가 묵어야 될 곳이 어딘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네. 여기서 안으로 주욱 들어가시다가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돼요. 그냥 가실 건가요?”
제갈현의 물음에 남경화가 조신하게 말했다.
그녀의 물음에 제갈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예. 아무래도 여정이 피곤했나 봅니다. 조금 쉬고 싶군요.”
“예…….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나중에 뵐게요, 제갈 소협.”
남경화의 모습에 일청과 이청이란 자들이 뭔가가 불만스러운 듯 표정이 찌푸려지는 것이 보였다.
제갈현은 가볍게 무시하고서는 몸을 돌렸다.
원래라면 통성명을 하는 것이 예의이긴 했지만, 저들이 남경화에게 잘 보이려고 수작을 부리던 와중에 본의 아니게 제갈현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무런 내공도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에게 남경화가 그토록 살갑게 대했으니, 일청과 이청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아직은…… 내가 약자겠지.’
아까 현공을 만난 이후부터 뼈저리게 자신의 약함을 느끼는 제갈현이었다.
황건적들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자신이 이루려는 목표는 그런 황건적들이 아닌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자들이 즐비한 무림이었다. 그것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제갈현이었다.
남포와 남경화, 현공과 십팔나한. 팽도위나 일청, 이청 모두 마음만 먹는다면 일 수에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고, 그만큼 자신은 아직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도 5년…… 단 5년만이다.”
G.T로 5년, 현실 시간으로 1년.
제갈현 자신이 날개를 펼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

“흐음……. 맘에 드는데?”
남경화가 일러준 대로 주욱 들어온 제갈현은, 남포가 자신의 거처로 내어 준 집을 보고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워낙 많은 전각들이 늘어서 있어서 조금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현실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본래 이곳은, 방문한 손님에게 내어 주는 곳인 듯 화려하게 꾸며진 곳에 작은 정원까지 딸려 있었다. 미관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꽤나 제갈현의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출렁.
방 한쪽에 구비된 침상 위에 몸을 던진 제갈현은 몸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푹신한 천의 느낌에 미소를 지은 채로 눈을 살며시 감았다.
‘스프링도 없을 텐데…….’
문득 침상에 스프링이란 것이 없을 텐데 어떻게 한 것일까 쓸데없는 고민을 하던 제갈현은 피식 웃은 뒤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 름:제갈현
레 벨:29 ―아시아― 계 급:?
칭 호:악멸도(惡滅刀)(근력+3, 인내심+3)
직 업:무 소 속:무
H.P :560 M.P :350
근 력:63 민 첩:58
체 력:65 지 능:62
손 재 주:13 동체시력:15
인 내 심:19 맷 집:7

잔여 상태치:57

“19라…….”
제갈현의 도를 수월하게 막아 낼 정도의 스텟을 가지고 있으려면, 최소한 힘이 비슷해야 했다.
그렇게 계산한다면 지주동에서 싸웠던 황건 병사들의 평균 레벨은 30에서 40정도.
즉, 비정상적인 능력치 수치로 고작 레벨 10인 제갈현이 30, 40대의 황건 병사들을 백여 명이 넘게 죽임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19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레벨을 올린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는 않았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한 듯 제갈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만약 이 소리를 다른 베타 유저들이 들었더라면, 입에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갔으리라.
똑같은 능력치에, 황건 병사같이 인간형 몬스터라면 유저가 사냥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 이 H.I.D의 세상이었다.
갓 게임에 입문해 처음으로 무기를 잡아 본 유저가, 수년, 최소 수개월 동안 먼저 무기를 잡고 휘둘러본 적이 있다고 입력되어 있는 인간형 몬스터를 이기기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레벨로 인한 능력 차이가 난다면 모를까, 동 레벨의 비슷한 능력치라면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때문에 레벨업이 극악으로 어렵기에, 하루 만에 레벨 19개를 올렸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러운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능에 57.”
잠시 스텟을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던 제갈현은 이내 단호한 표정으로 과감하게 지능에 모든 능력치를 몰아넣어 버렸다.
“지능은…… 어떻게 수련으로 올릴 방법이 없으니…….”
지능은 처음을 제외하고서는 훈련 따위로 올린 적이 없기에 능력치가 생기는 대로 족족 지능에 쏟아붓는 제갈현이었다.
자신이 무슨 기연을 만나 영약을 복용하지 않는 이상, 내공, 즉 M.P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기에 제갈현은 내공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식간에 H.P보다 많아진 M.P를 보면서 제갈현은 상태창을 닫았고, 행낭에서 노을번천도의 무공서를 꺼내 들고서는 눈앞에 펼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