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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18화)
3. 무공을 배우다(5)
콰과과과과!
물은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모든 것의 어머니이며, 수많은 생명의 근원이자 젖줄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물이 한 번씩 품고 있던 것들을 내뱉을 때, 인간의 몸으로는 그것을 버텨 내기란 대단히 힘든 것이다.
“빌어먹을……. 이제는 물이라니! 꼭 이런 식으로 해야만 되는 건가!”
그리고 그 물이 줄기를 이루어 개천을 이루고, 강을 형성하며 흘러가다가 그 길이 사라지면, 흔히 사람들이 ‘폭포’라 불리우는 것을 만들어 내고, 중력의 원리에 따라 갈 곳을 잃은 물들은 수직 낙하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곳에 제갈현이 있었다.
이미 그의 풍성하고 윤택이 나던 머릿결은 물에 푹 젖어 몸에 찰싹 붙어 있었고, 그의 흑색 도포 또한 물을 가득 머금은 채 폭포수의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며 춤을 춰 대고 있었다.
“으으으으…….”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들어갔건만, 어느새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갈현은 자신이 물속에 들어간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체력과는 별개로 그의 몸을 침투하는 한기에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는 제갈현의 모습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충분히 오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인내심이 1 상승하였습니다.]
“제길……. 능력치가 오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짓은 안 했을 텐데…….”
G.T로 12시부터 시작한 폭포수에서의 수련이 G.T로 오후 6시를 정확히 가리키자, 제갈현의 머릿속에서 능력치가 올랐음을 알리는 미성이 울려 퍼졌다.
“으으으……. 이러다가 내가 얼어 죽겠다. 나가야지! 나가자! 나가!”
그리고 동시에 제갈현은 금일 할달량을 채웠음을 상기하고서는 황급히 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화급히 땔감을 모아 준비해 둔 부싯돌을 꺼내서는 불을 붙여 젖은 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정말…….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건가?”
남포의 설명에 따라 그에 맞게 수련을 시작한 제갈현이기는 했지만, 그 기괴함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의구심이 드는 제갈현이었다.
그나마 육체 수련과는 다르게 오행의 수련을 하면서 오르는 능력치가 짭짤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만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풍(風), 수(水), 지(地), 화(火), 목(木)……. 이제 ‘지’에 대한 수련만 남은 건가?”
남포가 요구한 것은 듣기만 한다면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다.
오행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수련을 할 것.
‘기’란 것이 자연의 생명체들의 조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니만큼, 가장 기본 구성체인 오행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수’는 아까처럼 물을 몸으로 맞으면서 느낌으로 해결되는 것이었다. 물의 압력과 한기를 견뎌 내야 했기에 인내심이 주로 상승했고, ‘화’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들을 몸 주위에 둘러싸고, 일정 시간 동안 그 열기를 견뎌 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맷집이 주로 상승했다. ‘풍’은 민첩의 상승을, ‘목’은 체력을 오르게 한 것이었다.
각기 15일씩, 총 75일 동안 오행을 느끼라고 남포가 말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지금까지 근 두 달 동안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육체 수련으로는 오르지 않던 4개의 스텟 치가 꽤나 상승했으니, 솔직히 말해서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수련은 ‘지(地)’.
말 그대로 땅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을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치이이익!
폭포수로 인해 생성된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 불을 끈 제갈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엉덩이를 툭툭 쳐서는 붙은 지푸라기들을 털어 내었다.
“후우……. 또 시작해야지. 끙차!”
한쪽에 꽂아 둔 구환도를 잡은 제갈현은 노을번천도에서 보았던 사일비정의 기수식을 취했다.
오른발을 어깨 넓이 정도로 뒤로 뺀 후, 양손으로 구환도를 잡고서는 얼굴까지 끌어올린 후, 시선을 도신 끝에 집중하고서는 전체적인 자세를 낮추었다. 동시에 온몸의 힘을 골고루 분산시켰다.
순간 제갈현의 눈동자가 풀리며 게슴츠레해지는가 싶더니, 얼굴 근처에까지 끌어올려져 수평으로 뉘인 도신이 흐릿해지면서 제갈현의 입술이 달싹였다.
“사일비정.”
타닥, 탁! 탁!
스팟! 팟! 후우웅!
종으로 구환도가 휘둘러짐과 동시에 제갈현의 발이 땅을 살짝 쳤다. 그러자 쏜살같이, 흡사 한 줄기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휘둘러진 구환도가 사선으로 올려쳐졌다.
동시에 원을 그리면서 제갈현의 몸이 회전하는가 싶더니 오른발로 땅에 발을 박어 넣음과 동시에 멈춘 제갈현의 오른손이 사라졌고, 어느새 구환도는 허공을 찢어발길 듯 찔러 들어갔다.
“후우……. 후우…….”
몇 번 안 돼 보이는 움직임이었지만, 불과 1, 2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제갈현은 격한 움직임에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공이 없이 펼치는 것은 무리인가?”
송골송골 솟아난 땀을 훔쳐 내면서 제갈현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노을번천도를 습득하고 나서, 기술창에 도술 이후로 새로운 스킬이 처음 생겨났지만, 내공을 쓰지 못하는 이상 그것들의 숙련도를 올리기란 요원한 일에 가까웠다.
그래도 오행 수련을 하고 남는 시간이 아까워서 직접 책에 쓰여진 대로 몸을 움직여 수련하고 있는 제갈현이었다. 또 할 때마다 조금씩 올라가는 숙련도에 만족하면서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내공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노을번천도의 기록된 초식들이 제 위력을 발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제길! 고작 한 번 초식을 펼쳤을 뿐인데…….”
내공의 유무가 불러온 결과에 투덜대는 제갈현이었다.
하나 정작 본인은 현재 자신이 벌인 일이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기술 이름만 말하면 발동되는 것이 기술이었다. 그런데 그 복잡하디 복잡한 무공을 몸으로 펼쳐 내는 제갈현의 단순 무식 용감함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일정한 내공과 기술 시전에 필요한 기수식, 그리고 타이밍이 충족이 될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기술이기는 하나, 가상현실에서의 기술의 움직임은 유저 본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제갈현의 저런 육체적인 수련은 다른 유저들이 선호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일부러 번거로운 길을 찾아갈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무기란 것을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 보지 못한 유저가 비슷한 레벨 대의 NPC를 이길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기술이었다. 이는 바로 컴퓨터가 유저의 몸을 기술 시전 시간 동안 직접 움직임으로써, 그 순간만은 상대 NPC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하게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직접 몸으로 움직이면서 기술을 수련해도 숙련도는 오른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이것도 발견이라면 발견이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이곳 ‘무림’에 속해 있는 무림인이 제갈현을 보더라도 경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 그가 주화입마와 기적의 사이에서 위태위태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디 무공서에 수록된 초식에는, 그 무공에 걸맞는 심법, 즉 내공이 존재한다는 선행 조건이 있다. 내공이 움직이는 길이 몸속에 존재하고 그 힘을 쓰는 것이 바로 초식이라는 것이었다.
제갈현이 무슨 무초식의 경지에 이른 것도 아닌데, 내공도 없이 무공 초식의 난해함을 몸으로 펼치려다가는 자칫하면 온몸의 기혈이 뒤틀려 폐인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단지 그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점이라면, 제갈현의 신체는 그 레벨 대에서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할 정도로 수련을 거친 상태에다가, 유저의 특성상 일정량 이상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제갈현 스스로가 기혈의 들끓음을 그저 뻐근하다고만 느낀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의 오행 수련의 효과가 중첩되기 시작하면서 확장된 기혈로 인해, 더 이상 기혈의 폭주로 인한 주화입마가 일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후우……. 후우…….”
홍천막운까지 연달아 시전한 제갈현은,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다시금 구환도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어쨌든 수련을 한다고, 초식의 숙련도를 올린답시고 시작하였으니,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압! 사일비정!”
스팟! 팟!
아스라이 노을이 번지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제갈현의 구환도가 허공을 수놓으며 휘둘러졌다.
***
쾅!
잎에 넓디넓은 활엽수들로 빼곡히 가득 찬 울창한 수림 안에서, 거대한 배틀액스(Battleaxe)가 가로막는 것은 모두 부숴 버릴 것처럼 떨어져 내리더니 기어이 사람 몸통만 한 바위를 부수어 놓았다.
“음뭐어어어어!”
족히 4미터는 될 만한,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소머리 직립보행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s)가 광폭함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들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건방진 생물을 찾아 눈을 희번덕거렸다.
오우거(Ogre)나 트롤(Troll)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몬스터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수림 안에서는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휘둘러진 배틀액스에 견뎌 낼 수 있는 생물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굼뜨고 어리석어서 그렇지, 미노타우로스보다 한 단계 윗줄에 놓인 오우거나 트롤조차도 잘못 맞으면 즉사인 것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의 배틀액스인 것이다.
스팟!
“음뭐어어어!”
후아아아앙―!
우루루루!
나뭇잎들 사이로 작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미노타우로스도 본 것인지, 산천이 쩌렁쩌렁할 정도로 커다란 포효를 내지르며 족히 2미터는 넘을 법한 배틀액스를 횡으로 휘둘렀다.
“음머!”
나무 파편들이 허공으로 비산했지만, 그 사이로 미노타우로스 자신이 원했던 것은 없었던 모양인지 억울하다는 듯 광포하게 포효를 내지르는 미노타우로스였다.
유럽 대륙에서 나눠지는 기준, 즉 최소한 140이상의 더블 마스터(Double Master), NPC들의 기준으로는 ‘마나(mana)’를 다루기 시작하는 익스퍼트(Expert) 그룹부터 잡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다.
필드(Field)에 출몰하는 몬스터들 중 거의 최고 레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노타우로스를 그 누가 대체 이토록 분노하게끔 했단 말인가?
“빌어먹을 소대가리 새끼! 헉…… 헉…….”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숨을 고르고 있는 사내가 앙 다문 이 사이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피가 흐르고 있는 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에 비하자면 작기는 하나 인간 중에서는 꽤나 큰, 족히 190은 되어 보이는 거구에 온몸이 근육질로 이뤄져 있는 사내였다.
거구와는 다르게 축 처진 양 눈가가 인상적인, 호웅이 상처 입은 채로 미노타우로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제길! 조금만 더 빨리 피했어도!”
방금 전에 휘둘러진 배틀액스를 조금만 더 늦게 알아챘어도 그대로 배틀액스와 함께 짓이겨져 버릴 뻔한 호웅이었다.
호웅의 레벨은 80.
원 마스터(One Master)를 넘어선 상태이긴 했어도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하기엔 아직 턱없이 모자란 레벨이었다.
철컥.
왼손의 팔뚝에 장착되어 있는 석궁을 확인한 호웅은 다른 손으로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30㎝정도의 기형 쇼트 소드를 움켜쥐고서는 바위 너머에서 포효를 지르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힐끗 쳐다보았다.
“휴……. 게임에서도 결국 그 짓거리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군……. 끙…….”
잠시 투덜거린 호웅은 투구도 없이, 그저 상점에서나 팔 법한 체인 메일을 입은 채로, 은밀하게, 아주 은밀하게 몸을 낮추고서는 미노타우로스의 사각지대로 이동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AK도 없고…… K―1도 없고……. 아무것도 없긴 하지만……. 저런 레벨빨 덩치에 진다면 이 호웅 님의 이름이 아깝고, 내가 피땀 흘리면서 받은 훈련이 아깝지!”
호기롭게 중얼거린 호웅은 쿼럴이 장전된 석궁과 구루카를 손에 쥔 채로, 미노타우로스의 지척까지 다가가서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