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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19화)
3. 무공을 배우다(6)
“후우웁.”
그리고 들이마신 산소가 전신에 퍼지며 신선한 혈액을 공급해 주었고, 한껏 새로운 힘을 머금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하면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그의 몸이 뒤로 휘었다.
“레탈 쓰러스트(Lethal Thrust)!”
푸화아아악!
거의 기역 자로 생긴 구루카가 기이한 빛과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신체 중에서도 연약한 무릎관절 부분을 파고들었고, 이내 엄청난 양의 혈액이 뿜어져 나왔다.
“음뭐어어어!”
쾅! 쾅! 쾅! 쾅!
순식간에 한쪽 무릎을 잃으면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미노타우로스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배틀액스를 뿌려 댔다.
하지만 이미 호웅은 몸을 굴려 근처에 솟은 바위를 딛고서는 바위를 박차 허공으로 떠오른 후였다.
레인저(Ranger)가 레벨 70이 되어 배울 수 있는 레탈 쓰러스트로 미노타우로스의 무릎관절을 아작 낸 호웅은, 거구에 맞지 않게 날쌘 움직임으로 허공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조준하고서는 우렁차게 외쳤다.
“윅 포인트 온(Weak Point On)! 애로우 온 더 무브(Arrow on the Move)!”
팅∼!
파바바박!
내뻗어진 호웅의 왼손 팔뚝에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팽팽하게 장전되어 있던 쿼럴들이 불과 수초 만에 전부 쏟아져 나왔다.
“음뭐어어어어!”
팅! 팅팅팅팅!
위험함을 느낀 것인지 미노타우로스가 배틀액스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하지만 애초에 발사된 쿼럴의 수가 족히 40발은 됐기에 반수 이상이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에 꽂혀 버렸다.
“패스트 로드(Fast Load)!”
철컥! 철컥!
미노타우로스가 휘청이는 틈에 재빨리 석궁의 화살창을 갈아 낀 호웅은 이번에는 미노타우로스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엘븐 스텝(Elven Step). 재규어 호핑(Jaguar Hopping).”
타닥, 탁!
스팟!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스턴(Stun) 상태에 빠진 미노타우로스의 무릎을 밟고 뛰어오른 호웅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이내 최후의 공격이 뿜어져 나왔다.
“레탈 쓰러스트! 애로우 스플래시(Arrow Splash)!”
푸화아악!
“음뭐…… 어…… 어…….”
쾅!
미노타우로스의 미간으로 오른손에 들린 구루카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욱한 피 보라를 튀기며 박혀 들었고, 왼손에 장착된 석궁에서 발사된 쿼럴들이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에 차례대로 박혀 들면서 충격파를 만들어 내었다.
동시에, 미노타우로스의 체력이 0을 가리킴과 동시에 거체가 휘청이면서 쓰러졌다.
“허억…… 허억…… 헉…….”
긴장감과 동시에 격렬한 움직임으로 숨을 힘들게 몰아쉰 호웅이 조심스럽게 미노타우로스의 근처로 다가갔다. 이내 그 시체가 서서히 회색빛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밝은 빛을 얼굴에 띠었다.
띠링∼!
[칭호가 미노타우로스 슬레이어(Minotaurs Slayer)로 변경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마을로 돌아가 보상을 받으십시오.]
“크하하하! 죽였다! 죽였다고!”
팔에서 철철 흐르고 있는 피도 잊은 듯 호웅이 기쁨의 괴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족히 레벨이 70은 차이 나는 녀석을 호웅 자신이 잡은 것이었다.
“흐흐흐흐…….”
기괴한 웃음소리를 낸 호웅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미노타우로스가 흘린 돈과 아이템을 주워 들고는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였다.
아이템(Item)
미노타우로스의 반지(The Ring of Minotaurs)
종 류:액세서리
방 어 력:0
부가효과:힘 30 상승
미노타우로스의 적대감 5% 증가
―미노타우루스가 끼던 거라…… 좀…… 많이 큰데?
아이템(Item)
미노타우로스 배틀액스(Minotaurs Battleaxe)
종 류:무기
공 격 력:99
부가효과:힘 20 상승
공격속도 10% 하락
미노타우로스의 적대감 5% 증가
‘미노타우로스의 분노’ 사용 가능
―대체 이걸 누가 써? 후…… 틀림없이 괴물일 거야!
“나…… 나…… 나이스! 득템이구나아∼∼∼”
이 정도 옵션이라면, 그중에서도 힘을 자그마치 30이나 올려 주는 반지 같은 경우에는 레어 상급, 아니 더 쳐준다면 유니크 하급에 속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치를 가진 아이템이었다.
배틀액스야 특수 힘 캐릭터가 아니고서야 쓸 사람이 없겠지만, 어쨌든 현재까지 나온 무기류 중에서는 가장 공격력이 높은 아이템 중에 하나일 터였다.
유럽 대륙에서 게임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도 거의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호웅이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현 유럽 대륙에 관련한 사항에 밝아 아이템의 효용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상용화될 때까지 무조건 키핑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득템에 기뻐하던 호웅은 두 개의 아이템과 돈을 인벤토리 창에 집어넣은 후 허리를 주욱 피면서 기지개를 켰다.
“기다려라, 갈현아!”
자신과는 다른 대륙에서 시작한 제갈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호웅이 무너진 나무들 속을 걸어 나갔다.
***
띠링∼!
[임무를 완료하셨습니다. 돌아가 보상을 받으십시오.]
“후아! 콜록, 콜록. 드…… 드디어 끝이다아!”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미성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욱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꾀죄죄해진 몰골의 제갈현이 흙먼지에 콜록대면서 환호성을 내질렀다.
임 무:오행(五行)을 수련하라!
설 명:무림의 절정 고수이자 하남표국을 운영하는 일검단월 남포가 전인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전에 내린 선행 수련이다. 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연의 기운과 친숙해져야 하는 것이니, 풍, 수, 지, 화, 목의 기운을 받아들여라.
풍― 15/15(완료)
수― 15/15(완료)
지― 15/15(완료)
화― 15/15(완료)
목― 15/15(완료)
“후우…….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근 15일 동안, ‘지(地)’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그것에 친숙해지기 위해 진창과 마른 바닥,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굴러다녔던 제갈현이었다. 그렇기에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잠시 멈칫거리던 제갈현은 자신의 몸을 보고서는 한차례 한숨을 푹 내쉬었고,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입던 흑색 도포는 근 75일 동안의 수련 아닌 고행으로 인해 군데군데 찢어져 있어 정상적으로 보이기는커녕, 음산해 보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한 손에는 이가 다 빠져 버린 구환도를 들고 있는 자신을 허창에서 받아 줄 리가 없었다.
아니 맞고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랄까.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조차도 식량을 산다고 마침 모두 써 버린 참이었다.
“빨리 들어가서 이제 기를 느끼는 법을 배우고, 심법을 익혀야 되는데! 으윽! 이런 데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틈이 없는데!”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 제갈현이 산발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일단 씻자! 흙먼지부터 제거하면 어떻게 되겠지!”
일단 씻기로 결정한 제갈현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水)’를 수련하던 폭포수로 이동했고, 물웅덩이가 눈에 보이자 망설임 없이 옷을 벗고서는 물웅덩이로 들어갔다.
이 H.I.D의 시스템이 거의 현실과 흡사한 가상현실이란 것이 좋기도 했지만, 지금과 같은 이런 점, 그러니깐 씻지 않으면 더러워지는 등의 요소는 그다지 편리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배고픔이 느껴지면 밥을 먹어야 했고, 몸이 더러워지면 다른 NPC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친밀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씻어야만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근 75일 동안 주위에서 사람이라고는 찾아보지 못했던 제갈현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옷을 훌러덩 벗고서는 물웅덩이로 들어가 몸을 씻기 시작했다.
“화아! 조오오오∼∼타!”
몸을 두껍게 뒤덮고 있던 흙먼지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에, 제갈현이 눈을 지그시 감고서는 더욱더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물이 한두 번씩 제갈현의 머리를 훑고 지나가고, 씻어 냄에 따라 풍성하고 윤기 흐르던 탐스러운 흑발이 되살아났다.
이제 뭐든지 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진한 미소가 제갈현의 얼굴에서 다시금 드러났다.
부스럭!
팟!
“누구냐!”
그렇게 한창 목욕을 즐기고 있던 제갈현의 귀에 수풀이 서로 부딪치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갈현은 흠칫하면서 구환도를 집어 들고서는 물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도를 겨눴다.
빼꼼.
“……응?”
사람의 몸 하나는 간단히 숨길 수 있을 것만 같은 큰 크기의 바위의 위로, 눈동자 한 쌍이 보였다.
이내 그것이 ‘여자’의 것임을 알아챈 제갈현이 김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근데…… 내 옷이…….’
그런데 그 여자가 손을 짚고 있는 곳에 있던 제갈현의 옷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제갈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보려던 찰나, 제갈현의 머릿속에서 미성이 울려 퍼졌다.
띠링∼∼
[임무가 발동되었습니다.]
“에엑?”
의외의 상황에서, 갑자기 임무가 발동되었음을 알리는 미성에 제갈현은 황급히 정보창을 띄웠다.
임 무:선남과 나무꾼.
설 명:어느 여자 나무꾼은 깊은 산속에서만 산 데다가, 나무꾼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아직까지 결혼을 못 했다. 수줍음이 너무 많은 탓일까. 어쨌든 오늘도 어김없이 나무를 하러 나오던 나무꾼의 눈에, 선녀, 선남들이 내려온다는 전설의 폭포수에서 목욕을 하는 남자를 발견했다! 이에 그 나무꾼은 선남의 옷을 훔침으로써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나무꾼을 따라가십시오― 미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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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선남과 나무꾼?”
옛날 구전 이야기의 ‘선녀와 나무꾼’의 각색된 버전에 제갈현은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기랄! 내 옷!”
빼꼼히 고개를 내민 여자의 곁으로 보이는 실루엣이 자신의 옷이란 것을 알자 제갈현은 난감함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물속에서 상반신만 내놓고 있기에 별 상관이 없었지만, 보아하니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저 여자였기에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나가? 어차피 NPC인데? 아니…… 혹시라도 유저들이 들어올 수도 있지. 나도 들어왔는데……. 아니, 현실과 다름없는 곳인데 괜히 밉보여 봤자…….’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머리를 회전시키던 제갈현은 이내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래, 어차피 지금 성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니 일단 하고 보자!”
이런 경우의 임무라면, 정확히 임무의 실패와 성공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이런 돌발 임무류라면, 제갈현 자신의 기지와 임기응변으로 얼마든지 내용을 바꿀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제갈현의 상황으로는 성내로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에 일단은 임무에 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임무는 보상이 꽤나 짭짤했다.
“저기…….”
쏙!
제갈현이 말을 걸려 하자 바위 위에 빼꼼히 눈을 내밀고 있던 여자가 재빨리 숨었다.
제갈현은 더욱더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내가 읽었던 이야기랑은 좀 다른 전개인데?”
남녀 역할이 바뀌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옷을 훔쳐 갔으면서도 나타나지 않고 숨어 버리는 여자의 황당한 행동에 제갈현은 난처한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흐음…….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건지……. 한번 얼굴이나 봐 볼까?”
‘수줍음이 많다’는 구절이 생각난 제갈현은 괜스레 놀리고 싶어져서 장난스런 미소를 씨익 지어 보이고서는 불쑥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의 제갈현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안 제갈현이기에 과감하게 행동했다. 오른손에는 구환도를 움켜쥔 채 물에 젖어 뭉쳐 있는 긴 흑발을 드리우며 땅 위에 올라섰다.
촤아악!
“꺅!”
그 모습을 보고 있기는 했던 것인지, 정확히 그 여자가 숨어 있는 바위 쪽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거기서 뭘하는 건지…….”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옷 도둑을 놀래켜 주기라도 할 겸해서 당당하게 바위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가는 제갈현이었다.
“헉…… 헉…… 헉…….”
어지간히 놀란 것인지, 바위 뒤에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존재를 파악한 제갈현이 바위 위쪽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고서는 크게 외쳤다.
“왁!”
“꺄악!”
제갈현이 자신의 모습을 못 봤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갑작스런 제갈현의 목소리에 여자가 비명을 질렀고, 제갈현이 제대로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위를 돌아 뛰어나갔다.
“어…… 어! 그쪽은 안 돼요!”
당연히 옷으로 얼굴을 가렸으니 앞이 보일 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대로 곧장 폭포수로 인해 생성된 웅덩이 쪽으로 달려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제갈현이 소리쳤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 버렸다.
풍덩!
“어…… 어푸! 어푸!”
수영을 못 하는 것인지, 그대로 물웅덩이 속으로 곤두박질친 여자의 몸이 솟았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