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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20화)
3. 무공을 배우다(7)
제갈현은 임무 정보창에 생성된 두 번째 임무를 보고서는 화급히 물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띠링∼!
[두 번째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나무꾼을 구하십시오.]
“쳇!”
풍덩.
구환도를 땅에 박아 넣고서는 재빨리 물속으로 여자를 구하러 뛰어들었다.
제갈현은 발버둥 치는 여자의 몸 근처로 다가가 여자의 목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헉!”
그러나 발버둥을 치는 와중에서 잡을 것이 생기자 여자가 제갈현의 팔을 엄청난 악력으로 움켜쥐었다.
그 악력이 장난이 아니자 제갈현은 헛숨을 들이켰다.
‘빠…… 빨리!’
촤아악!
팔이 부러질 것만 같은 여자의 악력에 제갈현은 여자의 목을 뒤에서 감싸 안은 채로 물 밖으로 헤엄쳐 나왔다. 물가에 다다라서는 있는 힘껏 여자의 몸을 끌어 육지 위로 올렸다.
“크윽……. 무슨 여자가 힘이 이렇게 세?”
팔이 부러지지는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로 팔에 뚜렷하게 여자의 손자국이 새겨졌다.
손목을 두어 번 흔든 제갈현은 여자의 맥박을 확인했다.
“이…… 이런 미친!”
분명히 여자가 물에 빠졌고, 제갈현 자신이 뛰어들어 여자를 구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분 내외였다. 한데 맥박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기에 제갈현은 육두문자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임무는 꽝이었다.
“살려! 무조건 살려 내야 해!”
이대로라면 이 임무의 발동자가 죽을 위험이 100%였기 때문에 제갈현은 이런 경우에 가장 유용한 구급법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후읍∼∼ 후우!”
폐 속 가득 신선한 공기를 머금은 제갈현은 눈앞의 정체 모를 여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여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이내 여인의 몸이 크게 출렁였다.
“콜록! 콜록! 콜록콜록!”
빠지면서 마셨던 생물을 토해 내는 여인을 보면서 제갈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내 그 안도의 한숨은 다급함의 헛숨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부웅.
퍼억!
“컥!”
제갈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여인이 비명을 지르다가 당황한 나머지 제갈현의 얼굴을 올려쳐 버렸다.
워낙 지근거리였던지라 제갈현은 짤막한 침음성과 함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무슨 개 같은 경우가!”
아픈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한 방에 H.P 게이지의 1/5을 날려 버린 나무꾼의 위력이었다.
너무나 황당한 작금의 상황에 제갈현은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내뱉어 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고, 그 구한 사람에게 맞았다.
위의 명제가 제갈현으로 하여금 욕을 절로 불러일으키게끔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은 제갈현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서는 다시금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허헛…….”
어차피 옷으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도 않는 몸을 제갈현 ‘자신’의 흑색 도포로 가리려 애쓰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고만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제 옷인데요?”
어쨌든 기절했다가 눈을 뜨니 앞에 벌거벗은 남자가 있다면, 여자로서 칠 수도 있겠다고 십분 양보해 생각하면서 나무꾼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여자 나무꾼은 여전히 불신에 가득 찬 눈초리로 바라볼 뿐이었다.
빙긋.
이렇게 강한 경계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부드럽게 나가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에 제갈현은 예의 그의 미소를 얼굴에 띠며 나무꾼에게 다가갔다.
저벅저벅.
다른 사람이 본다면 벌거벗은 긴 흑발의 남자가 보무도 당당하게 주저앉아 있는 여자를 향해 걸어가는 위험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제갈현은 최대한 천천히, 자신의 모든 동작을 상대가 볼 수 있게끔 하며 경계심을 늦추려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옷이 나무꾼의 손에 들려 있기에, 그로서는 더욱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스윽.
흠칫!
순간 나무꾼의 시선이 제갈현의 전신을 훑고 지나가자 원인 모를 불길함에, 제갈현의 전신이 살짝 떨렸다.
“변태.”
“……!”
그리고 뒤이어 나무꾼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단어에, 천하의 제갈현이 패닉과 더불어 당황감에 몸이 얼음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변태.
정상이 아닌 성욕이나 그로 인한 행위, 또는 그 성욕을 가졌거나 그 행위를 하는 사람.
이런 것이 제갈현 자신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는 것에 잠시지만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묘양이가, 너 같은 사람이 변태래!”
그러나 이내 이어진 나무꾼의 말투에, 수준과 내용에 의구심이 들고만 제갈현이었다.
사박.
“오…… 오지 마, 변태!”
제갈현이라고 해서 처음 보는 외간 여자 앞에서 벌거벗고 걸어가는 것이 썩 유쾌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릴 것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상한 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나무꾼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변태죠?”
겉으로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건넨 제갈현은 그러면서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묘양이가 그랬으니깐! 변태야!”
다시 한 번 나무꾼의 말을 들은 제갈현은, 위화감과 이질감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몸은 20대인데…… 정신연령은 10세 이하라는 건가…….”
오랜 기간 동안 혼자 살아왔다는 설정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앞의 나무꾼의 정신연령은 지금 그녀가 말하는 수준이 다라면 불과 10세 이하로 맞춰진 것 같았다.
“변태가 오면 묘양이가 이렇게 하랬어! 이야아아압!”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제갈현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지, 제갈현이 일정 거리 이내로 가까워지자 벌떡 일어나 지게를 받치는 나무 지팡이를 들고서는 무작정 돌진해 왔다.
후웅! 후웅! 부웅!
“헉!”
도끼질로 단련된 팔이 헛것은 아니라는 것인지, 맹렬한 기세로 휘둘러지는 지팡이였다.
간발의 차이로 피한 제갈현은 헛숨을 들이키며 몸을 날려 땅에 꽂아 둔 구환도를 집어 들었다.
후웅! 후웅! 후웅!
아무렇게나 내지른 주먹 한 방으로 1/5의 체력이 날아갔는데, 저 몽둥이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마구잡이 식으로 휘두르는 게 아니야!’
얼핏 보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얼마간 맞선 제갈현은 휘둘러지는 몽둥이 사이에 교묘한 시간과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한 수 위잖아!’
휘둘러지는 속도나 빠르기, 몸에 익은 모양새를 봐서는 나무꾼이 맞나 의심스러운 여자가 아무리 낮게 봐도 제갈현 자신보다는 한 수 위의 실력이었다.
그나마 제갈현이 나은 것이라고는 전투 감각과 상황 대처 능력뿐?
캉!
“큭…….”
구환도가 처음으로 나무꾼의 진로를 막았지만 되레 손해를 본 것은 손아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통증을 느낀 제갈현이었다.
‘힘도, 기교도, 속도도 나보다 더 높다니!’
능력치로만 따지자면, 적어도 유저들 중에서는 자신을 따라올 사람이 없고, 웬만한 NPC들과도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오만함을 뒤늦게 후회할 수밖에 없는 제갈현이었다.
부아아앙!
“큭!”
나무꾼의 지팡이가 한차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환상처럼 지팡이가 여덟 개로 늘어나며 제갈현의 팔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것을 본 제갈현의 얼굴 위로 낭패감과 난감함이 스쳐 지나갔다.
“하는 수 없지. 홍천막운!”
저 중에 한 대라도 맞으면 어차피 죽을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제갈현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초식을 시전했다.
캉! 캉! 카가가강!
구환도 위로 번쩍번쩍 불꽃이 튀기며 지팡이가 튕겨져 나갔고, 손아귀가 찢어져 나갈 듯한 통증과 비명을 질러 대는 팔 근육을 이빨을 꽉 깨물며 무시했다.
곧바로 제갈현의 두 다리가 벌어지고, 구환도가 제갈현의 얼굴에서 수평으로 뉘어지며 초식이 시전되었다.
“사일비정!”
사삭! 쐐애액!
카앙!
“묘양이가 말한 사람…… 인가?”
퍼억!
‘무슨…… 개소리야…….’
현재 제갈현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그 어느 때보다도 완벽하게 펼쳐진 사일비정이었다.
하지만 앞의 두 공격은 피하고, 마지막 찌르기가 간단하게 막히며 들어온 공격에,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들려온 나무꾼의 목소리에 그대로 의구심을 품은 채 의식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 제갈현이었다.
***
“하아…….”
160은 되었을까. 멀리서 보기에도 왜소한, 아니 가냘픈 체구를 지닌 긴 머리의 소녀가 가지런한 무복을 입은 채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뽀얀 살구빛 피부와 커다란 눈망울, 적당하게 솟아 있는 코와 앙증맞은 입술을 가진 소녀는 제갈현을 독기에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이지나였다.
은은한 청색이 비치는 무복을 걸친 지나의 가슴께에는 조금 특이한 모양의 한 송이 하얀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매화.
그녀가 있는 주변에 가득 열려 있는 그 매화꽃들이 지나의 무복에 수놓아져 있는 것이다.
일차 클로즈 베타에서는 떨어졌던 지나였지만, 이차 클로즈 베타에 붙은 그녀는 제갈현에 대한 복수의 일념 하나만으로 아시아 대륙을 골랐다. 그리고 유저 중에서는 최초로 ‘거대’ 문파의 수련 제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니, 기연이라도 해도 다를 바 없는 기회를 거머쥐었다.
은은한 예기를 뿌리는 청강 장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한 모금의 호흡으로 소모되었던 미량의 내공을 다시 채운 그녀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빙긋 미소 지었다.
“하아…… 이제 6성이네.”
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는 숙련도를 가리키는 기술창을 닫고서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레벨은 50.
그다지 낮은 레벨도 아닌 데다가 화산이라는 거대 문파의 비호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더욱더 수련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지나의 신분은 화산의 3대 제자.
기초적인 화산의 무공만 배우는 3대 제자이기에 더 높은 무공을 배울 수 있는 2대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검법으로 유명한 화산파답게 기초 검법의 대성과 기초 심법을 6성 이상 올리는 것이 바로 선행 조건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냥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닌, ‘기술책’을, 무공서를 사서 익혀야 했기에 그 돈을 모으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을 들인 지나였다.
“2대 제자가 돼서…… 매화검법을 익히는 거야! 그리고는 1대 제자가 되서 매화24검법을 배우고 말테다!”
자신에게 치욕을 주었던 제갈현에게 통쾌하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지나 자신이 기필코 그보다 월등히 강해져야만 했다.
팟! 팟! 팟!
독기를 뿜으면서 다시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주위로, 서리가 내린다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착각이었을까?
***
“끄응…….”
얼마나 기절해 있던 것일까. 기절로 인한 강제 로그아웃을 경험했던 제갈현은 접속하자마자 엄습해 오는 찌릿한 두통에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더듬, 더듬.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포기한 제갈현은 손으로 그가 앉아 있는, 방금까지만 해도 누워 있던 곳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딱딱한 나무로 이뤄진 평상하며 흙을 벽에 발라 놓은 듯한 우둘투둘한 벽면, 나무로 만들어진 창틀에서 다시 손을 내리니 만져지는 것은 제갈현이 덮고 있는 이불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살에 닿는 까칠까칠한 이불의 감촉에 살짝 이마에 내 천 자를 그린 제갈현은 눈을 뜨려 안간힘을 쓰면서 더듬거리며 두 다리를 평상 밑으로 내렸다.
“끄응…….”
움직이니 두통이 배가 되는 듯 심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무작정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라락, 사락.
차가운 돌바닥의 감촉에 흠칫 놀라면서도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휘감는 흑발의 감촉을 느끼며 장님처럼 두 팔을 쭉 뻗고서는 움직였다.
더듬, 더듬.
천천히 벽을 짚으면서 벽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던 제갈현의 손에 드디어 흙벽이 아닌 다른 재질의 무언가가 잡혔다.
“문……인가?”
거친 촉감이긴 했지만 분명히 사람 하나가 드나들 크기의 문이었다.
“제길! 근데 왜 보이지는 않는 거야?”
시력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린 제갈현은 문손잡이를 찾으려 더듬더듬 문을 손으로 훑어 내렸다.
“이봐! 일어났…….”
벌컥!
“어…… 어…… 어?”
허우적 허우적.
순간 낭랑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려 버렸고, 문손잡이를 찾으러 온신경을 손에 쏟아붓고 있던 제갈현은 문이 열리자 그대로 중심을 잃고서는 앞으로 쓰러졌다.
뭉클.
“…….”
“…….”
몸이 갑작스레 앞으로 쏠리자 중심을 잡으러 허우적대던 양손에 무언가 대단히 부드러운, 양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무언가가 잡혔다.
잠시간의 정적이 제갈현과 낭랑한 음성의 주인공 사이에서 흘렀다.
“꺄…… 꺄…… 꺄아아아악! 변태!”
짜악!
그리고 수 초가 지나기도 전에 정신을 차린 여자가 비명을 질렀고, 곧이어 휘둘러진 손바닥에 제갈현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