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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21화)
3. 무공을 배우다(8)
번쩍!
맞아서인 것일까. 누군가가 풀로 붙여 놓기라도 한 것처럼 떠지지 않던 제갈현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제갈현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묘…… 묘인족?”
헛바람이 새는 듯한 목소리가 제갈현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이 붉어진 채로 뺨을 한 대 더 때리려는 포즈를 취하는 묘령의 여인의 머리 부근에는, 인간의 것으로는 볼 수 없는 짐승의 귀가 불룩 솟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인간의 동공과는 확연히 다른, 고양이의 그것과도 같은 눈동자의 모양에, 입가에 슬쩍슬쩍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까지.
분명히 말로만 듣던 묘인족의 모습과 대단히 흡사했다.
“손…… 안 떼? 이 변태 새끼야!”
잠시 앞의 묘인족 여인을 보고서는 멍하니 있던 제갈현의 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고, 제갈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고서는 몸을 바로 세웠다.
살랑.
그러면서 묘인족이라 예상되는 여자의 몸 뒤에서 살랑거리는 긴 꼬리를 보았다.
휙!
제갈현의 코앞을 매섭게 가르며 지나가는 손바닥을 보면서 제갈현은 자신의 원래 페이스를 찾으며 언제 당황했냐는 듯 예의 그 미소를 띠고 여인을 쳐다보았다.
다른 평민 NPC들이 입는 복장과는 조금 다르게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쳤고, 하얀 피부가 인간과 별다를 바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갈색의 머리카락과 그 아래 자리한 고양이를 닮은 듯한 인상은, 확실히 앞에 있는 여인이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죽을라고…….”
씩, 씩.
얼굴이 붉어진 채로 씩씩대는 묘인족 여인을 바라보던 제갈현은 여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방금 일은 뭐라 할 말이 없군요. 미안해요. 근데…… 여기가 대체 어디죠?”
분명히 제갈현 자신은 여자 나무꾼의 공격에 의해 ‘기절’한 것이었지만, 일어나서 보인 것은 묘인족이었다. 그래서 앞의 여인에게 방금 같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닥쳐 변태! 캬앙!”
아직도 흥분한 것인지 고양이의 습관이 나오는 듯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를 섞어 말하는 여자였다.
제갈현은 그저 머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럼 이곳에 더 있을 필요는 없겠군요. 괜히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묘인족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급작스럽게 떴던 임무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신세를 지게 된 묘인족의 여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당연히 실패겠지……. 제길!’
돌발 임무를 해결하고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날려 버렸다는 아쉬움에 속으로 중얼거린 제갈현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 미소를 유지하면서 그녀를 지나쳐 나오려고 했다.
“널 구해 온 건 내가 아니라 아영인데, 인사도 안 하고 갈 참이야?”
“……?”
“정작 네 생명을 구해 준 은인에게는 인사도 안 하고 사라질 생각이냐고 변태야!”
“허 참…….”
완전히 못 본 것을 본 것처럼 말하는 묘인족 여인의 말에 헛웃음을 지어 보인 제갈현은 묘인족 여인에게 물었다.
“그럼, 그 아영이란 여자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 아영이란 사람이 임무 발동자, 그러니까 나를 기절시키고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일 수도 있었기에 묘인족 여인에게 말했다.
“기다려!”
타닥!
파바박!
문을 열고 고양이 같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어가는 묘인족 여인의 꼬리를 바라보던 제갈현은 임무의 실패 여부를 보기 위해 눈앞에 임무창을 띄웠다.
임 무:선남과 나무꾼.
설 명:어느 여자 나무꾼은 깊은 산속에서만 산 데다가, 나무꾼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아직까지 결혼을 못 했다. 수줍음이 너무 많은 탓일까. 어쨌든 오늘도 어김없이 나무를 하러 나오던 나무꾼의 눈에, 선녀, 선남들이 내려온다는 전설의 폭포수에서 목욕을 하는 남자를 발견했다! 이에 그 나무꾼은 선남의 옷을 훔침으로써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나무꾼을 따라가십시오― 완료
나무꾼을 구하십시오― 완료
????
????
“휴우…… 다행히도 아직 실패는 안 했네……. 그럼 그 아영이란 여자가 나무꾼이란 건가, 결국?”
여전히 남아 있는 임무창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제갈현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침상 위에 놓인 이불을 들어서는 하체에 둘렀다.
“일어났군요, 서방님!”
띠링∼
[세 번째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나무꾼의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서…… 서방님?”
그리고 물웅덩이에서 보았던 여자 나무꾼, 아니 아영이라 불린 임무의 발동자가 제갈현의 예상대로 동일인임을 밝히면서 웃으며 말했다.
순간 제갈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서방님은 둘째 치고서라도, 거의 정신연령 10세 내외로 보였던 여자가 지금은 멀쩡했다. 그 내용이 조금 의심 가기는 하지만 나이대에 맞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서방님이라뇨?”
이상하게 흘러가는 상황에 제갈현이 아영에게 물었다.
무엇을 상상하는 건지 아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더니 몸을 배배 꼬면서 수줍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아녀자의 입술을, 그것도 처녀의 입술을 함부로 앗아 가셨으니 어찌 소녀의 서방님이 아니겠습니까?”
앞의 이 여자가 어제 그렇게 살벌한 기세로 지렛대를 휘둘러 자신을 기절시킨 그 사람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조신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이는 아영이었다.
“자…… 잠깐. 어제 내가 인공호흡한 게 다 기억이 난다는 겁니까? 기절하지 않았어요?”
순간, 그녀가 기절을 했기 때문에 인공호흡을 했음을 상기해 낸 제갈현은 그녀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했다! 이게 완전히 선남과 나무꾼이란 임무의 시나리오였어!’
그런 식으로 기절한 척하면서 나름 이 시대 사고에서는 대단한 입맞춤을 유도해 내고, 수줍음을 그렇게 살벌한 기세로 무마시키려고 무력으로 기절시킨 뒤, 이렇게 데려와 결혼하자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임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낭패감에 혼란스러운 제갈현이었지만 일단은 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후우……. 전 지금, 그러니깐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방님은 당최 무엇이며…… 그러니까 당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냥 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아영을 보니, 영락없이 동화속의 그 이야기랑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단지 옷이 아닌 당사자를 직접 기절시켜서 납치해 온다는 것이 다를 뿐.
그렇다면 저 아영이라 불린 나무꾼의 부탁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결혼.
생전 처음 보는 여자와 결혼을 할지도 모르게 된 것이었다!
‘빌어먹을. 게임이고 임무라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자신의 머리로도, 가진 바 지식으로도 예상치 못하고 대응치 못하는 사건들이 자꾸 터지자 답답하기만 한 제갈현이었다.
“전, 죄송하지만 그럴 생각도,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만 갈 수 있게 해 주시죠.”
찌릿!
움찔.
그대로 아영과 묘양이라 했던 묘인족 여인을 지나쳐 나가려던 찰나, 뭔가 날카롭고 예리한 것이 제갈현 자신의 몸을 난도질해 버릴 것 같은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떤 제갈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기파인가?”
쿠오오―!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그러나 오행의 수련을 마치고 나자 느껴지는 이 기세는, 몸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이제 ‘기’를 느낄 수는 있는 수준에는 다다른 것 같다고 생각되어졌다.
‘이제야 기를 느끼는 법을 배울 수 있는데, 이 임무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
임무가 성공이든 실패이든, 일단은 무조건 나가서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제갈현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단호함을 내보이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묘인족 여자를 쳐다보았다.
“묘인족의 몸에서 기파라…… 하하.”
흔히 묘인족이라 함은 수인족의 일종으로써 아시아 대륙에서 인간들과 공존하는 이종족들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었다.
수인족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고양이과의 묘인족, 그리고 조류과의 조인족이 있었다. 두 종족의 특징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으면서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가진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단점이라면, 그 수가 매우 적고, 사는 환경 또한 인간이 살 수 없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살기 때문에 보기가 쉽지 않았다.
보인다고 해도, 흔히 구경거리나 노예로서 팔려 나갔기 때문에 최근에 들어서는 찾아보기 불가능한 것이 바로 수인족이었다.
묘인족은 고양이 같이 빠르고 매서우면서도 유연하기 그지없는 신체를, 조인족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특징 중에 또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인간의 신체에 맞게 개발되어 있는 무공이다 보니, 무공을 배우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기파는 대체 뭐지?’
분명히 눈앞의 묘인족 여자의 몸에서 전해져 오는 살벌한 기세는, 무공을 배운 사람의 몸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기였다.
“묘인족은 운남성 근처에서만 산다고 했는데…… 의외군요.”
움찔.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제갈현의 말투에 뭐라도 느낀 것일까. 묘양의 몸이 움찔거렸다.
제갈현은 일부러 더욱더 진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묘양을 쳐다보았다.
꾹.
“다른 사람들이 알면 참 좋아할 만한 소식이네요.”
“닥쳐!”
팍!
부아아앙!
일부러 묘양의 부아를 돋우는 말을 하며, 동시에 구환도의 손잡이를 굳세게 움켜쥐며 묘양을 향해 말한 제갈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갈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드는 묘양의 공격을 피하며 철판교의 수법으로 뒤로 드러누웠다.
“흐라차!”
부웅!
뒤로 몸을 젖힌 제갈현은, 묘양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감과 동시에 보이는 빈틈으로 구환도를 베어 들어갔다.
“캬앗!”
슈각!
“……큭!”
분명히 ‘정상인’의 몸이라면 꺾일 수 없는 각도인데도 불구하고, 흡사 고양이처럼 허공에서 등을 뒤틀면서 괴성을 내지른 묘양이 휘두른 발톱에 후끈한 것이 제갈현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캬앙! 별것도 아닌 것이…….”
한 치라도 더 손을 내뻗었다면, 얼굴 전체가 날아갈 뻔했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묘양이 뒤로 훌쩍 뛰어서는 물러나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묘양아! 그만해!”
묘사는 길었지만, 실제로 일수 일퇴가 끝나는 데에는 고작해야 한 호흡을 내뱉는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묘양이 아영의 말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아영이 다급한 표정으로 제갈현과 묘양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아영…… 이라 했습니까? 잠시만 뒤로 비켜 주십시오. 저도 남자인 이상, 무력 따위에 굴복해서야 사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영이 말리러 들어왔어도 이미 내가 머릿속으로 세운 계획의 순서와 행보를 바꿀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끈다면, 그만큼 내가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이 늦춰진다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내 꿈을 이룰 시간이 더 늦춰지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흥, 쥐뿔도 없는 녀석이…… 자존심만 살았구만!”
묘양이 코웃음을 치며 바라보자 아영이 살벌한 눈초리로 묘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도발에도 불구하고 제갈현은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묘양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인간으로 진화되다만 고양이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덤으로 전 납치범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가련한’ 피해자일 뿐이니 무슨 말을 해도 합리화는 안 될 겁니다.”
“뭐…… 뭐? 인간이 되다만 고양이?”
“나…… 납치범이라뇨!”
제갈현의 말에 묘양은 손톱을 곧추세우면서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대기 시작했고, 아영은 울상을 지으며 제갈현의 말에 충격을 입은 듯 중얼거렸다.
스윽.
“자. 그럼 어디 한번 불합리하면서도 비열하기 그지없는 싸움을 시작해 봅시다.”
자신이 아무리 기를 쓰고 덤벼 봤자 말 그대로 옥황상제가 제갈현을 돕지 않는 이상, 기를 다루지 못하는 그가 아영과 묘양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끌려다닐 수는 없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서 묘양과 아영을 도발시킨 것이었다.
지금 그의 최대의 무기는, 그가 가진 바 무력이 아닌, 머리와 세 치 혓바닥이었기에.
‘묘인족이라고 해서 사람과 다른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제쯤 덤벼들거나, 뭔가 말할 때가 됐는데…….’
사일비정의 기수식을 잡은 자세로, 겉으로는 차분하게 그들을 응시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서 묘양이 그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기를 바라 마지않는 제갈현이었다.
묘양이라는 묘인족의 성격을 종합해서 보건데, 막무가내에 다혈질에 급한 성격이면서 불의나 악함은 참지 못하는, 흔히 말하는 ‘다혈질 용사’였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제갈현 자신을―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사실이긴 했으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막무가내로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판단력을 흐리고, 충동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 자극적으로 도발한 것이다.
“캬앙! 내가 네놈같이 비리비리한 데다가 비실비실한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을 상대해서 어쩌겠어! 자존심만 상할 뿐!”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