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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22화)
3. 무공을 배우다(9)


원하던 대로의 시나리오가 묘양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쾌재를 부른 제갈현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구환도를 굳게 부여잡은 채로 사일비정의 기수식을 취한 채, 차분하게 예의 미소까지 지으며 흔들림 없이 묘양을 바라보았다.
“흥! 하나 제1 묘족의 전사인 내가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일! 따라서 건방진 네 녀석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마!”
띠링!

[연계 임무 ‘묘인족 전사의 제안’이 발동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왜 운남성 근처에서만 활동하는 묘인족이, 그것도 제1 묘인족이면 묘인족 세력 중에서는 가장 큰 묘인족 세력일 터였다. 왜 그곳의 전사가 이곳에 와서 나무꾼이랑 같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임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보기로 한 제갈현이었다.
“이 아이는 유일무이한 내 전인! 네 녀석이 힘을 갖는 그날, 이 아이의 처녀성을 앗아 간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묘양은 겉보기에는 고작 20대에, 하얀 피부에 천진난만해 보이는 큰 눈을 가졌다. 오똑한 코에 붉은 입술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송곳니가 돋보였고, 활동적인 발랄함을 그대로 보여 주면서 육감적인 몸을 아슬아슬하게 감싸고 있는 호피 무늬의 옷을 입었다.
하지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꽤나 연륜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묘인족의 수명은 300년이라고 했던가…….”
묘인족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들의 평균 수명은 인간보다 대략 3.2배 정도 긴, 300년이라고 했으니 묘양의 나이가 보기와는 다르게 많을 수도 있었다.
“묘, 묘양아! 내가 어떻게 낭군님이랑 싸울 수가 있겠어!”
“안 돼! 내가 하란 대로 안 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겠어. 이건 대묘국 제1 묘족의 친위대인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앞에서 티격태격해 대는 둘을 보면서 천천히 기수식을 푼 제갈현은 묘양이 했던 말에서 의문을 표했다.
“처녀성이라니. 입술을, 그것도 살리려고 인공호흡을 한 것이 무에 그리 큰 것이라고 처녀성을 앗아 갔다고 하는 것입니까들?”
“닥쳐!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어쩔 거야!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캬앙!”
아까의 연륜은 어디로 간 것인지, 다시 성질 급한 묘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박력 있는 질타에도 불구하고 제갈현은 흔들리지 않고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들고서는 입을 열었다.
“앞의 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나, 뒤의 것은 불가합니다!”
“나…… 낭군님! 서방님!”
“뭬야?”
제갈현의 말에, 아영은 울상을 지었고, 묘양은 눈썹을 치켜뜨면서 살벌한 눈초리로 제갈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제갈현은 개의치 않고서 자신이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입술을 훔친 것으로 처녀성을 앗아 갔다고 하는 것은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가 잘못한 것이 없지는 않으니, 제가 첫 번째 조건을 통과한다면, 아영 소저를 제 옆에 두고서 지켜보기는 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
“영악한 녀석!”
제 할 말만은 끝까지 다하고 상대방의 반론은 아예 일축하는 제갈현의 단호한 모습에 묘양은 얄밉다는 듯이 으르렁 댔다.
하지만 이내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5년 뒤, 아영을 네가 있는 곳으로 보내겠다. 적어도 네놈이 사내라면, 한 번 내뱉은 말을 지킬 줄은 아는 놈이라면, 최소한 네놈의 소식이 우리들 귀에는 들려야 찾아가겠지?”
“자…… 잠깐! 그건…….”
“우리도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
얄밉게도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서는 입을 꾹 다문 묘양이었다.
제갈현은 입을 떡 벌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 최소한 C급 이상의 칭호여야 하는 건가…….”
생각보다 높은 난이도의 임무라 중얼거린 제갈현이었다.
하나 이내 이어진 묘양의 말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가기 전에 선물을 하나 주지. 네가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네 녀석의 그 무공 초식. 어디선가 본 듯했더니만 그 늙은이의 것이구나. 숭산의 낙일봉이라 하는 곳을 가 보거라. 인연이 닿는다면 찾을 수 있겠지.”
“노을번천도를, 아니 이 무공을 만든 사람을 아는 겁니까?”
“킁. 그러고 보니 그 늙은이가 그 이름을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도 같네.”
“대체 누가 만든 겁니까?”
“몰라! 그건 네가 알아서 해!”
매몰차게 말하고서는 입을 꾹 다무는 묘양이 야속하기도 한 제갈현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숭산 낙일봉을 열심히 중얼거리면서 잊지 않기 위해 되뇌었다.
“서방님……. 그럼 나중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보중하세요.”
묘양의 뜻을 따르기로 한 것인지, 첫 대면과는 달리 대단히 조신해지고, 여린 모습으로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 아영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어색하게 고개를 따라 숙여 보인 제갈현은 묘양을 쳐다보았다.
“5년 후에, 그때는 지금처럼 무력하지는 않을 겁니다.”
“흥! 그건 두고 봐야 알 일! 어서 나가라! 캬앙!”
아직도 제갈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으르렁거리는 묘양이었다.
그런 묘양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인 제갈현은 몸을 돌려 문으로 다가갔다.
“서방님! 잠시만요!”
순간, 뒤에서 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제갈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작지만 절 살려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에요. 그런 옷으로 나갈 수는 없을 터이니…… 다시 보는 그날까지…… 꼭 입고 계셔야 해요!”
“이건…….”
띠링∼

[네 번째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나무꾼에게 따뜻한 말을 해 주십시오.]

수줍은 표정으로 곱게 개어진 옷을 내미는 아영의 모습과 동시에 머릿속에 미성이 울려 퍼지자 제갈현으로서는 난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입맞춤만으로, 게임이라지만 결혼을 하자고 달려드는 여자였다.
하나 이런 정성을 보아하니 꽤 진지한 것 같았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감사하게 쓸게요, 아영 소저. 당신의 입술을 뺏은 것은 내 잘못이나 그 잘못에 대한 죗값은 5년 후에 받도록 하죠. 기다리겠습니다.”
“네에…….”
그래도 겉으로나마, 최소한 입을 옷은 주는 거였으니까, 그에 대한 감사 표시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고, 따듯한 말을 해 주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런 제갈현의 모습에, 아영은 뭐 그리 부끄러운 것인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흥! 잘들 하는구나! 염장을 질러라, 염장을!”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씨랑 아영 소저. 그럼 나중에 뵐 수 있기를…….”
“네 서방님. 몸조심하세요.”
“꺼졌!”
한 손에는 약속의 증표라 이름 붙여진 구환도를, 다른 손에는 또 다른 언약의 증표인 옷을 입었다.
제갈현은 뒤에서 들리는 두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무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또다시 얽히게 된 또 다른 하나의 인연의 고리에, 제갈현 스스로가 어떻게 될 지는, 그의 행보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4. 게임 생(Game 生)(1)


“상태창!”

이 름:제갈현
레 벨:29 ―아시아― 계 급:낭인
칭 호:악멸도(惡滅刀)(근력+3, 인내심+3)
직 업:무림인―망아지경(忘我之境)
소 속:중립
H.P :620 내 공:26年 10(660)
근 력:65 민 첩:60
체 력:71 지 능:124
손 재 주:13 동체시력:18
인 내 심:22 맷 집:10

잔여 상태치 : 0

“이 정도면……. 75일 투자한 것 치고는 짭짤하지?”
허창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갈현은 상태창을 열어 오른 능력치를 확인하고서는 흡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골고루 2, 3씩 상승했다. 더군다나 ‘기’를 느끼기 위해서 당연히 거쳐야 되는 수련이니 기도 느끼고, 능력치도 오르니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처음 나설 때와 지금 제갈현의 모습에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옷이었다. 그의 머리칼과 같은 검은색의 도포가 이전 복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과는 다르게 윤기가 흐르는 짙은 붉은색의 장포에, 겉에는 손톱만 한 딱딱한 재질의 액세서리가 소매 부분에 달려 있었다.
어떻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보는 각도와 받는 빛에 따라 검붉은 색으로, 윤기 흐르는 붉은색으로 색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데다가 능력치 또한 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아이템(Item)
아영의 흑적 장포
종 류:의류
방 어 력:13
부가효과:묘인족과의 친밀도 3% 상승
지능+3
체력+3
추위, 더위로부터 몸을 보호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낭군을 위해 만든 정성의 장포. 묘인족의 털로 만들어 가벼우면서도 질기다.

아이템 능력치는 이전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지만, G.T로 5년 뒤에 찾아올 아영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은 제갈현이었다.
“임무 정보! 묘인족 전사의 제안.”
임무를 받고 나서 세부 사항을 확인하지 않았음을 깨달은 제갈현은 정보창에 쓰여진 글을 읽다가 한숨을 내쉬고, 읽다가 한숨을 내쉬는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후우……. 이거 너무 까다롭잖아.”

퀘 스 트:묘인족 전사의 제안
설 명:무례한 녀석이 있지만 실력이 모자라 대묘국 전사인 묘양이 손을 쓰기에는 창피하다. 자신의 전인을 통해 그 녀석의 죗값을 받아 내고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남은시간:5년
달성목표:5년 이내 명인(名人)에 도달할 것.
5년 이내 C급 이상의 칭호를 획득할 것.
5년 후 찾아올 ‘아영’과의 비무에서 승리할 것.
보 상:아영과의 혼약, 레벨+1, ‘묘양’의 추궁과혈,
대묘국 출입 허가증, 칭호 한 단계 상승

달성 목표가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 보상이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성공한다 치면 제갈현의 레벨은 최소 140이상에서, 레벨 하나를 그냥 올려 줄 뿐만 아니라 최소한 삼 갑자 이상의 내공에 초절정 끝자락 급 이상의 고수가 시전해야 하는 추궁과혈에, 최소 C급 이상인 칭호의 한 단계 상승,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이종족 국가의 출입 허가증까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조건의 보상이었다. 하지만 그 달성 목표 또한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고작 레벨 29인 제갈현으로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최소 A급 이상의 임무인데…….”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A급 임무가 지금 제갈현의 눈앞에 떠 있는 지금,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는 수 없지. 앞으로 최소 1년 동안은 죽었다치고 미친 척하는 수밖에.”
일단은 기를 느끼는 것이 급선무였다.
앞으로의 행보를 머릿속으로 곱씹으면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하남표국의 커다란 대문에 도달해 있었다.
“어? 제갈 소협! 오랜만이에요. 이제서야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시나요?”
문지기를 지나 표국 안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제갈현의 뒤에서 꽤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제갈현은 방긋 부드러운 미소를 드리운 채로 흑발을 찰랑이며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마주 인사했다.
“예. 근 두 달만이군요, 남 소저.”
“수련을 하신다고 하더니, 어디서 이런 옷을 구해 오신 거예요? 아무튼 잘됐어요. 오라버니가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들어가요.”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것은 알겠지만, 유난스레 호들갑을 떨며 부산을 떠는 남경화의 모습이 수상쩍음을 느꼈다.
눈을 가늘게 좁혀 뜨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던 제갈현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쿠오오오―!
“소저, 뒤의 저 남자랑은 아는 사이입니까?”
움찔.
남경화의 뒤에 보이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매, 꾹 다물어진 입술까지. 상당히 고집 있어 보이게 생긴 사내가 금세라도 씹어 먹을 듯한 기세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영문을 모르는 제갈현은 남경화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 물음에 남경화가 몸을 움찔 떠는 것이 보였다.
“응? 왜 이렇게 얼굴이 파래지는 겁니까?”
남경화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제갈현이 재차 물었다.
그제야 남경화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고개를 들어 말했다.
“모…… 몰라요! 아마 우리 표국에 의뢰하러 온 사람인 것 같네요. 어서 들어가요, 제갈 소협. 아버지가 기다리니깐 얼른요!”
허둥지둥.
“예…… 예, 알았어요.”
그 남자의 눈초리가 예사로워 보이지도 않았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무림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일부러 뭔가 숨기려 하는 것 같은 남경화의 움직임과 표정에 굳이 캐물을 수가 없었다.
남경화와 제갈현의 뒤통수로, 한 남자의 원독 서린 눈빛이 사납게 쪼아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