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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 1권(23화)
4. 게임 생(Game 生)(2)


“나…… 남 소저!”
사이좋게 남경화와 이야기하며 들어가는 큰 키의 호리호리한 기생오라비와 다름없는 녀석을 보면서, 영돈은 악독함과 원망이 반반 섞인 표정으로 남경화를 처연하게 불러 보았다.
자신이 누구던가. 저 멀리 중원 최서단에 위치한, 마교(魔敎)와 십만산맥(十萬山脈)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 수백년간 건재해 온, 대(大) 구파일방 중에 하나인 곤륜파(崑崙派)의 일대 제자가 아니던가.
그는 곤륜의 제자라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중원 여행을 하던 도중이었다. 어쩌다 하남제일표국인 하남표국에 방문하게 되었고, 일검단월로 이름이 높은 남포와 그의 여동생인 남경화를 본 것이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거치디 거친 환경과 세상과 거의 단절되어 있는 환경이 곤륜파의 특징인만큼, 여자라고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영돈이 난생처음으로 본 아름다운 여인이 남경화였으니, 영돈은 자연스레 첫눈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구애를 시작한 지 어언 일주일.
여자란 생물체를 거의 처음 본 그였기에, 순수한 마음에서 직선적이고 솔직하게, 마치 아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하지만 공주처럼 자라온 남경화에게 그런 직선적이고 멋대가리 없는 구애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구파일방 중의 하나인 곤륜파의 일대 제자라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때마침 지나가던 제갈현을 이용해 빠져나가려던 것이 그만 영돈으로 하여금 수치심과 더불어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 것이었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대체 왜 소저는 저런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에게는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인가!’
무려 일주일 동안 구애를 해도, 여행조차 중단하고 눌러앉아 있건만, 처음 보는 녀석에게 착 달라붙어서는 웃으며 걸어가는 남경화를 보니 그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에게 살의가 들끓어 오르는 영돈이었다.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영돈이었지만, 가진 바 무공에 대한 재능만큼은 곤륜파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났기에 올해로 이립(而立)에 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대 제자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그런 그가 분노하며 살기를 내뿜자 범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수준의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주위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 제마검(制魔劍)이란 이름을 걸고 녀석에게 경화 소저를 뺏길 순 없다!”
저벅저벅.
도복을 펄럭이며, 보무도 당당하게 남경화와 제갈현의 뒤를 따라 표국의 안으로 들어가는 영돈이었다.
“흠……. 곤륜파의 제자인데, 자꾸 남경화 소저에게 찝쩍댄다…… 이 말입니까?”
그렇게 끌려 들어가다시피 해서 들어온 제갈현은, 그제야 입을 열어 자초지종을 말해 주는 남경화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길! 뭔가 불안하더니만 삼룡삼봉에 이어 이제는 구파일방 떨거지라니!’
남경화의 말을 듣고 나자 제갈현은 사내가 그렇게 노려보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고, 이내 그것이 자신을 꽤나 귀찮게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후우……. 그래서 말인데요, 제갈 공자에게 뭐 한가지만 부탁하면 안 될까요?”
띠링!

[임무가 발동되었습니다.]

“예? 갑자기 무슨 부탁을…….”
갑자기 발동된 임무 때문인지 제갈현은 당황하면서도 유연하게 남경화의 말을 맞받아쳤다.
“어차피 경험을 쌓으려 중원 유랑 중이었다고 했으니, 그리 오래 있지는 않을 거예요. 그 전까지, 그 곤륜 제자를 떼어 내는 데 도움을 주시면 안 될까요?”
“예? 어떻게 하실 건지 구체적으로…….”
임무를 거절해서 좋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번 아영과의 임무로 인해 한층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제갈현이었다.
“저 곤륜 제자가 떠날 때까지만 제 남자 친구, 아니 ‘가가’가 되어 주시면 돼요.”
‘빌어먹을!’
남경화의 말을 들을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욕지기가 절로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 앞에서 그대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기에 입가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했다.
사실 남포의 여동생인데, 밉보여 봤자 좋을 것은 없었다. 이왕 승낙하는 김에, 챙길 것은 챙기는 것이 바람직했다. 피할 수 없다면, 보상이라도 최대 한도로 늘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결혼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전 아직 배울 게 많은 입장입니다. 남 대협한테서 기를 느끼는 것도 배우지 못했고…… 무력으로 그 사람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뭔가를 상대방으로부터 이끌어 내려면, 간절하게 만들려면, 튕기는 것쯤이야 기본이었다.
저번에 남포와의 줄다리기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무림인이란 족속들이 은근히 무공 일로로 살아와서 그런지 심리전에는 대단히 약했음을 제갈현은 잊지 않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수도 없이 설전을 벌여 왔던 제갈현에게 순진한 무림인들을 다루는 것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였다.
제갈현의 말에 남경화의 얼굴이 난처함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아는 남자들에 한해서, 제갈현만큼 자신에게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도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는 아니었기에, 그녀의 오빠인 남포가 해 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 그럼 제가 강해지는 데 도움을 드릴게요. 저도 아직 어려서 많은 도움은 드리지 못할 테지만, 무공서 하나쯤은…….”
“무공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임무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게임의 프로그램상 성공적으로 마쳐진다면 보상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공서란 말에 제갈현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쳐다보았다.
끄덕.
“네. 오라버니의 집무실에 무공서들이 많으니깐, 그중에서 한 가지를 드리도록 하죠.”
‘이게 웬 떡이냐’를 속으로 외친 제갈현은 혹시라도 남경화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나의 연극이 잠시 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곤륜파의 일대 제자를 관객으로 둔 위험한 연극이.

***

“기란 것은 자연의 근원을 이루는 자연의 힘이다! 이제 네가 해야 할 것은 오행의 수련 때 느끼고 받아들인 오행의 힘을 합쳐 가며, 태극의 음양과 우주 삼라만상의 기운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
“운기조식은 무조건 새벽과 잠들기 전, 해가 지기 직전으로 하여 총 두 번, 두 시진 씩 실시하며, 익숙해져 내공이 일 갑자에 이르기 전까지는 무조건 따르도록 해야 한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웬만하면 내 내공심법을 전수해 주면 좋겠으나, 소림의 것이라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공심법을 가지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기를 느끼게 되면, 기를 네 신체로 유도하여 심법의 구결에 따라 순환시켜야 한다.”
“예.”
“시작하도록.”
제갈현은 남경화와 모종의 계약을 맺은 후, 곧바로 남경화의 안내로 남포를 찾아왔다.
시간이 다 되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남포는 그 즉시 제갈현을 앉혀 놓고서는 기를 느끼는 법에 대해서 알려 주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서두르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하나 어쨌든 빠르게 가르쳐 주면 줄수록 좋았기에 군말 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남포가 가르쳐 준 대로 눈을 지그시 감고서는 ‘기’란 것을 느끼기 위한 명상에 들어갔다.
‘느꼈던 오행의 기운들을 하나로 합일시킨다라…….’
어떤 뜻인지는 머릿속으로는 이해를 한 제갈현이었지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는 몰랐기에 일단 머릿속으로나마 남포가 말했던 것들을 되뇌어 보았다.
‘바람…… 시원함…… 불…… 뜨거움…… 물…… 차가움…… 흙…… 포근함…… 나무…… 청량함…….’
오행의 수련을 하며 느꼈던 각 기운들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떠올리려 애를 쓰던 제갈현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무언가 빽빽한 것이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살며시 눈을 떴다.
“헉!”
오색찬란한 것들이, 투명하면서도 화려한 그것들이,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갈현은 헛숨을 들이켰지만, 이내 그것들이 남포가 말한 ‘기’임을 알 수 있었다.
“호오…… 역시 게임은 게임이라는 건가?”
실제로 기란 것이 눈에 보일 리는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곳은 게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서는 남포가 말한 대로 주위의 ‘기’들을 움직이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끄응……. 잘 안 되는구먼.”
그러나 의지만으로 기를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집중을 하면 조금 흔들리며 움직이는가 싶다가도,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흩어지면 제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호흡을 하듯이 기를 인도하면서,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으며 기를 받아들인다…….”
천천히, 마음의 조급함을 가라앉히고 단전호흡법에 따라 숨을 들이마시던 제갈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의 몸 주위를 채우는 오색찬란한 기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는 더욱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후읍…… 하아…… 후읍…….”
그러기를 대략 두 시간여.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던 오색찬란한 기 덩어리들이 빨려 들어가듯 자신의 코를 통해 들어가는 것을 느낀 제갈현은 재빨리 기술창을 열어 노을번천도에 수록된 심법을 발동시켰다.
샤아아아아―!
그리고 이내 제갈현은 자신의 몸속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 한 줄기의 따스한 기운을 느끼고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따스한 그 기운이 끊이지 않고 몸속을 돌아 아랫배 부근에 위치한 단전에 자리 잡는 것을 느꼈다.
제갈현은 단전에 진기가 모여들기 시작하자 노을번천도의 심법 구결에 따라 체내로 유입되는 기의 색이 노을빛, 진한 주홍빛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서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처음 받아들일 때 정해진 색깔이 본인의 고유 기색(氣色)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주홍빛이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긴, 내 기가 밖으로 보이려면 140은 넘어야 되니 아직 멀긴 했지만.’
속으로 중얼거린 제갈현은 온몸을 노곤하게 만드는 운기조식의 안락함에 빠져들어 가기 시작했다.
‘무공이 이런 건가…….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것일지도…….’

***


이 름:제갈현
레 벨:29 ―아시아― 계 급:낭인
칭 호:악멸도(惡滅刀)(근력+3, 인내심+3)
직 업:무림인[옥동쌍취(玉洞雙吹)]
소 속:중립
H.P :620 내 공:31年 20(795)
근 력:65 민 첩:60
체 력:71 지 능:124
손 재 주:13 동체시력:18
인 내 심:22 맷 집:10

잔여 상태치 : 0

“휴……. 내공만 엄청나게 올랐구먼.”
운기조식의 안락함을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이없게도 사용자의 건강을 위해 만든 강제 로그아웃 시간까지 해서 튕겼다.
제갈현은, 하루가 지나고 재접속해 달라진 자신의 내공량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 갑자가 60년인데, 고작 레벨 29인 자신이 벌써 반갑자에 다다랐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이다.
그렇게 무아지경 상태에서 심법을 운용한 탓인지, 경지도 갓 입문한 상태의 망아지경을 넘어 응신입기혈도 뛰어넘고, 육체에 맞게 내공량이 순식간에 증진해 옥동쌍취에 다다른 것이다.
“기술창! 기술정보! 노을번천도.”
‘기’, 즉 내공을 받아들이고 나서 가장 먼저 변한 것이 무공일 터이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술창을 열어 노을번천도의 정보창을 눈앞에 띄운 제갈현이었다.

기 술 명:노을번천도[夕陽繁天刀]
석양집기공(夕陽集氣功)―1成 12%
사일비정(斜日非停)―1成 29%
홍천막운(紅天膜雲)―1成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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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누군가, 기인이 남긴 듯한 무공이지만 대부분의 초식들이 소실되어 찾을 수가 없다. 노을을 담으려는 의지가 강건하며, 그 화려함과 쾌속함이 돋보이는 무공이다.
―노을을 도에 담을 수만 있다면…….

운기조식, 정확히는 내공심법의 이름은 석양집기공이었고, 지금 배운 두 가지의 무공 초식을 제외한 나머지 6가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후……. 숭산(嵩山)의 낙일봉(落日峰)이라…….”
묘양이란 묘인족 여인이 말해 준 장소에 노을번천도의 나머지 무공이 있다는 말을 생각해 낸 제갈현은, 석양집기공이 2성에 다다르면 찾으러 가기로 목표를 정하고서는 제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우우웅―!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자 기분 좋은, 적당한 정도의 공명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제갈현이 무아지경에 빠져들려던 찰나, 명상을 깨트리는 소음이 공명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똑똑.
‘……후우. 날 가만히 놔두질 않는군.’
속으로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제갈현은 가부좌를 풀며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국주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국주라 말함은 이 하남표국를 이끄는 우두머리인 남포를 뜻하는 것일 터였고, 그런 그가 자신을 부른다는 것은 제갈현이 예상했던 귀찮은 일들 중 하나가 벌어지려는 징조였다.
그렇기에 가볍게 아미를 찌푸리고서는 말했다.
“무슨 일로 날 찾으시는 겁니까?”
제갈현의 질문에 허리께에 검을 찬 표사는 예의를 차리며 입을 열었다.
“곤륜파의 영돈이라는 도사께서 제갈 소협을 보기 위해 와 있다고, 어서 모셔 오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
“곤륜의 도사요?”
표사의 말에 제갈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면서도 올 것이 왔음을 대충 짐작하고서는 속으로 걱정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