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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계 1권(9화)
4. 카챤터스(2)


맥델런은 재빨리 구슬을 받아 들고는 소연을 쳐다보았다.
“최근에 만난 능력자들이 누구지?”
소연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맥델런은 ‘흠’ 하고 숨을 내뱉더니 이내 소연의 손을 잡았다.
소연도 그들의 정체를 모른다.
그래서 맥델런은 소연에게 얽힌 기운의 정보를 읽어 내어 그들을 역추적하려는 것이었다.
잠시 뒤 맥델런이 소연의 손을 놓았다.
“두 명의 기운을 찾아냈다. 이들이 누구지?”
“한 명은 두 개의 능력을 쓰는 자였고 한 명은 엄청난 기운을 가졌는데, 정체를 몰라.”
“오호, 블랜더라?”
“폭파와 염력을 동시에 다루더군.”
“응?”
맥델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잘못 본 거 아니냐? 그런 최상급 능력의 조합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폭파술과 염력술은 공격계 능력 중 A급으로 분류된다. 공격에 아주 특화된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능력의 등급은 S급에서부터 D급까지로 나뉜다. 그중 S급 다음으로 가는 A급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내 눈으로 봤어.”
옆에 있던 철웅이 지그시 소연을 쳐다보았다.
정말 그런 블랜더를 만난 것이라면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나중에 왔던 남자의 기운이 더욱 강력했다고 하였다.
웬만한 능력자라면 소연은 철웅과 함께 그들을 사냥할 계획을 짠다. 하지만 소연이 이렇게 카챤터스로 달려 들어와 의뢰를 할 정도면 극히 위험한 자들인 것이다.
맥델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소연의 의뢰만 해결해 주면 되었다.
“좋아, 너의 기운을 못 찾게 해 주지. 그런데 그 블랜더의 정보 카챤터스 쪽에서 처리하겠다.”
“좋을 대로 해.”
맥델런의 말은 블랜더로 추정되는 정욱을 카챤터스의 요주 인물로 등록시키고 지켜보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정욱은 카챤터스의 초대를 받게 된다.
맥델런은 그 블랜더의 뒤를 조심스럽게 캐볼 생각이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최고 능력의 블랜더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카챤터스로선 군침이 도는 것이었다.
카챤터스는 비밀리에 힘을 기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마스터의 지시에 따라 강력한 능력자들을 ‘회원제’로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맥델런은 자리에 앉아 정신을 집중했다.
철웅은 ‘이만 됐으니 가자.’라고 말하면서 소연을 밖으로 이끌었다.
이제 맥델런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다.
카챤터스는 보수를 받은 이상 의뢰 받은 일은 완벽하게 처리한다.
철웅과 소연의 신형이 서울의 골목에서 다시 나타났다.

***

정욱이 하연과 만난 이후로 삼 주가 지났다.
정욱과 하연의 관계는 은연중 깊어져 정욱이 하연의 뜻대로 라힌델의 예언자 편에 서게 된 것은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욱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혼돈 박멸.’
하루가 다르게 혼돈에 대한 정욱의 분노는 강해져 갔다.
혼돈들은 주로 밤에 더 왕성하게 활동했다.
정욱이 삼 주 전 혼돈을 퇴치한 이후로도 많은 수의 혼돈이 그의 집 주변을 배회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정욱은 야구 배트를 꼬나 쥐고 밤마다 그것들을 사냥하러 다녔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무섭지 않았다.
혼돈에 대한 증오는 이제 중독처럼 변해 있었다.
하루라도 그들의 죽음을 보지 못한다면 정욱은 불안할 정도였다.
혼돈의 죽음에 대한 갈증이었다.
“능력자한테서는 그런 것이 안 느껴진다는 거냐?”
하연은 매번 정욱에게 의심스럽다는 듯 그렇게 물어왔지만 정욱의 대답은 같았다.
전혀 능력자들에 대한 분노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정욱의 머릿속은 온통 혼돈 생각뿐이었다.
또한 환영술을 강화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환영술은 고민할수록 더욱 견고해져 갔다.
처음에 먹길 꺼렸던 혼돈의 붉은 구슬도 정욱은 하나둘씩 삼켜 갔다.
‘혼돈의 구슬입니다. 삼킨다면 능력의 수련을 도울 것입니다.’
문자메시지의 이 조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붉은 구슬을 하나둘씩 삼켜 갈수록 정욱의 집중력이 늘어 간다는 느낌이었다.
집중력이 늘어 간다는 것은 정욱에게 있어서 대단히 좋은 일이었다.
환영을 움직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오랜 시간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환영에 실체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모두 구체화에 답이 있었다.
사물을 집중해서 조금씩 빚어 나가듯 그 사물의 질량, 부피, 무게 등을 상상해 나가면 어느새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실체화는 아직 정욱에겐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 주 전쯤 정욱은 날이 잘 갈린 다과용 칼을 손에 들었다.
다과용 칼은 정욱의 의지에 따라 환영에 의해 둘로 나뉘었다.
정욱은 칼의 본체를 손에 쥐고, 책상 위에 만들어진 칼의 환영에 정신을 집중했다.
‘반드시 실체를 만들어 내야 해.’
전에 염력술을 사용하던 그녀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손짓만으로도 혼돈을 제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힘겨워했지만 자신이 그런 능력을 얻는다면 어떨까 상상했다.
아직 정욱 자신의 능력은 그에 비해, 눈속임에 불과했다.
저번에는 우연히 칼이 폭발해서 혼돈이 소멸했지만 자신의 주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야구 배트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환영으로 소환된 칼은 정욱의 책상 위에 그림처럼 놓여 있었다.
정욱은 칼 주변의 모든 것들에 정신을 집중했다.
칼의 부피와 질량, 날카로운 감촉을 상상했다.
정욱은 조심스럽게 칼을 허공으로 띄운 뒤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픽―
역시나 실패.
하지만 뭔가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손가락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환영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감촉이었다.
‘조금 더 집중하면 할 수도 있겠어.’
정욱은 인터넷과 백과사전을 뒤져, 쇠의 속성과, 플라스틱의 속성을 찾고 자신의 다과용 칼의 상품 정보를 낱낱이 찾아 훑었다.
구성 성분들을 완벽히 분석해 본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갈수록 환영이 견고해지는 느낌이었다. 외형만을 단순히 관찰하여 소환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정욱은 다시 칼의 환영을 띄워 자신이 모은 정보를 토대로 그 칼이 이루어진 쇠의 미세한 조직들을 상상하고 구체화해 내려 애썼다.
정욱의 머리에서 쇠의 조직들이 하나하나씩 구성되어지고 있었다.
그 순간 창문을 투과해 들어오던 햇볕이 칼에 의해 번뜩거리며 반사되었다.
‘어? 이것은!’
정욱은 깜짝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칼의 환영을 잡고 있던 집중을 놓지 않았다.
칼이 햇빛을 반사하게 되었다는 것은 쇠의 속성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일런지도 몰랐다.
정욱은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칼을 쥐었다.
칼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
정욱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환영술로 만들어진 칼이 실제의 그것처럼 조직되었던 것이다.
정욱은 조심스럽게 그 칼을 쥐고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그리고 종이도 갈라 보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다과용 칼과 흡사했다.
하지만 예리함은 아직 떨어져서 그것을 보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정욱이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칼이 다시 픽 하고 사라졌다.
정욱은 그 뒤로 이 주 동안 실체화에 대한 수련을 반복했다.
오랜 시간 지속되지 않았지만 허공에 두어 개 정도의 칼을 띄워 실체처럼 부릴 수 있었다.
실체를 가지지 않은 환영은 이제 어느 정도 다량으로 소환해 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정욱의 ‘혼돈 사냥’도 좀 더 수월해지게 되었다.

***

철웅과 소연이 돌아간 뒤 일주일 후.
카챤터스는 여전히 분주했다.
수많은 능력자들이 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능력자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 할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를 경계하고 거리를 두는 선에서 관계를 맺었다.
어제 카챤터스에서 웃고 떠들던 자가 오늘 아침에 자신이 있는 장소에 찾아와 기습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지만 능력자들이 카챤터스를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수많은 아티팩트와 구슬들, 정보들, 그리고 외로움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들의 내기에 속해진 그들은 서로를 달랠 거리가 필요했다.
카챤터스의 사람들은 본능적인 분노 때문에 서로 분노를 최대한 절제하고서 행동하거나(이 특성도 카챤터스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향수 때문에 거의 절제되었다.) 아니면 같은 신을 따르는 능력자들끼리 모여 앉아 옹기종이 잡담을 나누었다.
같은 신들을 따르는 능력자들 중에서 예언자를 따르는 집단은 단연 그 소속감이 분명했고 또 둘도 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움직이며 서로 전략을 짜고 치밀히 행동했다.
맥델런은 2층 난간에 서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는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염력과 폭파술의 블랜더라. 흥미롭군.’
맥델런은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공간이 일렁이며 사막식의 검은 두건을 두른 낭인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지휘관을 만나러 가야겠다. 좋은 거리가 생겼어.”
맥델런의 말을 들은 낭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형체를 감췄다.
카챤터스의 상위의 직급인 ‘지휘관’을 만나기 위해 낭인을 통해 통보를 보낸 것이다.
지휘관은 카챤터스의 모든 인력들을 관리했다.
맥델런은 낭인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 블랜더를 제대로 꾀어내기만 한다면 꽤나 수완이 좋겠어.’
잠시 감회에 잠겨 있던 맥델런은 자신도 몸을 돌려 3층에 있는 지휘관의 방으로 향했다.
맥델런이 지휘관인 파힘의 방에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좋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쓸 만한 능력자 하나를 빌리고 싶습니다.”
맥델런은 파힘에게 존칭으로 대했다.
카챤터스는 정보와 아티팩트 거래의 장이며 능력자들의 카페였다. 하지만 그 건물의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거대한 체계가 잡혀 있었다.
2층 거래소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맥델런이라 할지라도 아직 지휘관만큼의 직급은 되지 못했다.
파힘이 흥미로운 듯 맥델런을 쳐다보았다.
“쓸 만한 능력자? 무슨 일이길래 그러지?”
“폭파와 염력을 가진 블랜더를 꾀어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호라.”
파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로서도 그만한 능력자를 찾았다는데 자신의 관리하에 있는 능력자 하나 내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한 건가?”
“일단은 만나 봐야 알 것 같지만 지금 들어온 정보로 봐서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찾아가 봐야 하겠지요.”
“흠. 좋아, 화끈한 녀석으로 붙여 주지.”
파힘의 말에 맥델런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이제 파힘이 보내 준 능력자를 통해 그 블랜더를 카챤터스로 데려오기만 하면 되었다.
성공한다면 상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톡톡히 챙겨 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