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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계 1권(11화)
4. 카챤터스(4)
쇼우이는 급히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 했으나, 이타치의 발이 더 빨랐다.
그것을 쇼우이의 손이 안 닿는 곳으로 걷어차 버린 것이었다.
“안 돼, 텟츠짱!!”
“텟츠짱? 놀고 있네. 돼지새끼. 야, 그거 일로 가져와 봐.”
인형을 주워 든 학생이 얼른 이타치의 손에 인형을 쥐어 줬다.
이타치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예쁘게 생겼네? 쇼우이 여자 친구야?”
쇼우이는 이타치의 눈이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어서 대답하기 두려웠지만 자신의 여자 친구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응. 텟츠짱은 내.”
“어라? 그러고 보니 옷도 바뀐 것 같네? 옷 사 줬어?”
“응……. 어제 잠깐 시내에 들러서.”
“아. 그래?”
이타치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그가 인형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나한테 줄 돈을 이것 옷 사는 데 썼다 이거지?”
이타치의 손이 인형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당기자, 인형의 팔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찌직 하는 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렸다.
쇼우이가 소리쳤다.
“안 돼!! 텟츠짱은 내버려 둬, 내가 어떻게든 돈은 마련해 주겠다능! 제발!”
“늦었어, 돼지야.”
이타치가 옆의 학생들에게 눈짓하자, 학생들은 넘어진 쇼우이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시작했다.
쇼우이는 맞으면서도 인형에게 눈이 떼지 않았다. 그것을 본 이타치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타쿠 돼지새끼.”
“안 돼!!!”
인형의 목이 이타치의 손에서 잔인하게 찢겨 나갔다.
수많은 발길질이 쇼우이의 머리로, 등으로 퍼부어졌지만 쇼우이는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텟츠짱의 목이 땅바닥으로 툭 떨어져, 이타치의 발에 짓밟히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어서서 인형을 되찾으려 버둥거렸지만, 주변 학생들의 발길질이 더욱 심해졌다.
“이 새끼가 어딜 일어나려고.”
“너 요새 너무 안 맞았어, 쇼우이.”
학생들의 욕설에 파묻혀, 쇼우이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얼굴에 까지 번지고 안경이 깨져 바닥에 뒹굴고 나서야 이타치가 말했다.
“이제 됐어. 그만해.”
발길질이 멈췄다.
쇼우이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뚱뚱한 그의 몸이 방어 본능에 의해 둥그렇게 말려 있었다.
이타치는 한동안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더니, 자신의 손에 들린 팔과 머리가 찢겨져 나간 인형의 몸을 그의 등 위로 툭 던졌다.
“내일까지 돈 안 가져오면, 집에 있는 인형들 다 불태워 버린다.”
그 말에 쇼우이의 몸이 움찔했지만, 여전히 고개는 들려지지 않았다. 화가 나고 슬프고 분했지만, 무서웠다.
이타치의 눈을 다시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타치가 학생들과 사라진 후에도 쇼우이는 한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그의 입에서 신음 소리와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울음은 조금씩 커져, 쇼우이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인형의 목이 이타치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 밟히는 장면이 눈에 선했다.
밟혀지기 전에, 인형의 눈이, 쇼우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텟…… 텟츠짱!!”
눈물과 피로 범벅된 쇼우이의 얼굴이 들려졌다.
그리고 버려진 인형의 몸과 머리를 엉금엉금 기어서 주워 모았다.
처참했다. 팔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머리와 몸통을 잡고 가슴에 파묻었다.
“미, 미안해. 내가 이렇게 만들었어. 미안해, 텟츠짱.”
눈물이 앞을 가려 인형의 몸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쇼우이는 인형의 몸통에 묻은 신발 자국을 열심히 닦아 내려 문질렀다.
“미안해. 정말로…… 흑.”
인형의 등은 문지를수록 검게 번져만 갔다.
그때였다. 쇼우이의 눈에 그 검게 번진 자국이 순간 뱀처럼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뭐, 뭐지?”
시야를 가리던 눈물을 닦아 내고서 쇼우이는 인형의 등을 다시 살폈다.
검은 얼룩이 실제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어?”
그것은 놀랍게도,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글자를 하나하나 만들어 내었다.
‘1분 후에 당신에게 능력이 부여 됩니다. 주변에 있는 혼돈을 무찌르세요!’
“뭐야, 텟츠짱 살아 있는 거야?”
쇼우이는 너무도 놀라서 인형의 등에 눈을 떼지 못했다.
텟츠. 그녀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일은 불가능하였다. 글자는 이리저리 움직여 여러 가지 뜻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형의 등에 문장 하나가 완성되었다.
‘당신에게 부여된 능력 : 번개를 다스리는 권능! 초급 능력자의 번개는 먹구름 아래에서만 발동합니다. 먹구름은 능력자의 능력만큼 거대하게 소환해 낼 수 있습니다. 손에 번개를 품을 수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
하연이 도착하기 5일 전 오사카. 쇼우이가 능력을 받은 지 이틀이 되던 날.
먹구름이 짙었다. 어두운 하늘이 땅을 짓누르는 형상이었다.
날씨는 쌀쌀했고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가끔씩 구름 위에선 번개가 번뜩거렸다.
쇼우이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말없이 교실 쪽을, 그를 놀란 듯 바라보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번개의 능력을 받은 지 이틀이 지난 오늘이었다.
“난 신이야. 텟츠짱. 나에게 이런 능력을 준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 거야. 영원히 널 지킬게. 내가 바로 너에게 선택받은 유일한…….”
쇼우이는 왼손에 어여쁜 여전사 텟츠의 인형을 소중히 끌어안고 있었다.
바로 어제 새로 구입한 인형이었다.
목이 떨어져 나간 텟츠의 인형을 소중히 묻어 주고 자신만의 영혼을 옮겨 담는 의식을 치렀었다.
텟츠의 영혼은 고스란히 이 새 인형에 옮겨졌을 것이다. 그는 사람에게 말하는 듯 인형에게 끊임없이 속삭였다.
“난 심판을 내릴 거야. 텟츠짱…… 널 괴롭히고, 나에게 적대했던 녀석들에게……. 지켜봐 줘.”
쇼우이의 오른손에서 놀랍게도,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햇빛마저 가려진 공간에서 그의 능력이 실현되고 있었다.
교실 안의 학생들은 이 광경을 믿지 못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학교는 이미 반절이 날아가 폐허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바로 옆 반에 있는 학생들은 갑작스레 날아온 번개폭격에 감전되어 죽어 나가거나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어 버렸다.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급히 탈출구를 찾아보았지만 건물이 붕괴되어 뛰어내리는 방법 말곤 학교를 탈출할 길이 없었다.
겁에 질린 채 창문 밖을 내다보던 학생들은 무섭도록 자신들을 노려보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돼지 쇼우이였다.
그의 왼손엔 그가 아끼는 인형 텟츠가 소중히 들려 있었고 오른손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에게서 풍겨 오는 숨 막히는 살기에 감히 그를 돼지 쇼우이라고 부르지 못했다.
이 원인 모를 흉포한 번개들이 그의 손짓과 의지에 의해서 발현되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쇼우이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오른손에서 스파크가 점점 커져 갔다.
“텟츠짱…… 이제 지켜보기만 하라능. 잠깐만 옆에 앉아 있어 줘.”
그는 그의 인형을 소중히 옆에 내려 두었다.
그리고 왼손에서 번개의 기운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그의 위에서 더욱 짙어져 갔다.
이제 그 주변의 일 미터 남짓한 공간은 어둠으로 뒤덮여 왼손과 오른손에서 강하게 튀겨 대는 스파크만이 빛을 뿜었다.
학생들이 소리쳤다.
“쇼…… 쇼우이!!! 뭐하는 거야!! 그러지 마!”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어서 가서 사람들 좀 불러 줘. 죽기 싫어!”
“살려 줘! 어서 사람들을 불러 줘!”
그들은 쇼우이의 주변으로 모인 기괴한 힘을 눈치챌 수 있었다. 번개가 쇼우이의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쇼우이는 그런 그들을 보여 씁쓸하게 웃었다.
“너희들은…… 심판을 받아야 해……. 이 세계를 위해서.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해. 그러기 위해 텟츠짱은 나에게 이 능력을 주었어…….”
쇼우이가 서서히 왼손과 오른손을 들어 올려 학생들이 있는 쪽을 겨냥했다.
“잘 가, 모두. 이타치. 결국 내가 이겼어…….”
쿠와아앙―!
쇼우이의 손에서 강한 번개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굵기의 번개 줄기였다.
그 줄기는 앞으로 뻗어 나가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들도 흡수해 쏘아져 나갔다.
학생들은 망연자실했다. 쇼우이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압도적인 전격의 기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번개의 줄기는 나머지 반만 남은 학교를 집어삼켰다.
푸르스름한 스파크가 학교 전체를 휘감았다. 7층짜리 학교 건물에서 강력한 번개의 기운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 공간을 맘껏 휘젓고 다녔다.
그 안에 있던 학생들은 삽시간에 그 전기에 휘말려 터져 버리거나 타 죽어 갔다.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파지직거리며 아우성치는 전기의 고함만이 들릴 뿐이었다.
***
하연이 쪽지를 주고 떠난 다음 날, 정욱은 늦잠을 잤다.
어제 상대했던 혼돈 때문에 몸이 너무 피로했던 것이다. 혼돈은 능력자들의 기운을 먹거나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한 무질서의 기운을 먹는다고 했다.
그렇게 강한 혼돈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순리에 어긋나는 힘이 작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연이 번개의 능력자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오사카로 떠난 것이었다.
붉은 구슬이 적절한 능력을 뿜어내어 줘서 용케 제압하긴 했지만 정욱은 현재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느낄 수 있었다.
능력에 익숙해져 감에 따라 신체적 능력도 나아져서 전투에 더욱 익숙해지긴 했지만 갑자기 그런 레벨의 녀석을 만나고 나니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실체를 부여하는 환영술을 계속 연마하고 있었지만 모든 게 쉽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을 실체화하려 할 땐 몸의 세세한 구성까지 모두 알고 있어야 가능했다.
그 때문에 정욱은 혼돈을 잡지 않는 낮에 쉴 틈 없이 의학 관련 서적을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럼에도 아직 자신의 몸을 실체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혼돈을 죽이고 싶다는 갈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금에라도 녀석들을 모두 잡아 없애고 싶은데 그런 강력한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자신이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연이 준 쪽지는 정욱에게 큰 응원이 되었다.
정욱은 어제 하연이 주고 간 쪽지를 다시 한 번 펴 보았다.
‘내가 가 있을 동안, 너한테 두 가지 임무를 주마. 하나는 카챤터스로 가서 상인들을 접해 봐라. 쪽지에 든 것은 초록 구슬 역할을 하는 부적과 노랑 구슬 역할을 하는 부적들이다. 내 인장도 있으니 카챤터스에 간다면 상인들이 상대해 줄 거야. 거기서 네 능력을 최대한 상승시킬 수 있을 만한 아티팩트를 거래해 와라. 카챤터스의 상인들은 교활하니까, 그들의 입방정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면 괜찮은 것들을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두 번째는, 요즘 도르힘의 능력자들의 낌새가 심상치 않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해. 너 혼자 능력자들을 상대하는 건 아직 벅찰 테니, 그동안 나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녀석들 근처로 접근해서 잠시 관찰하고 있어. 그에 대한 정보는 뒷장에 있다. 금방 다녀올 테니, 잘하고 있어. 라힌델의 가호가 너와 함께하길.’
정욱은 그 종이 밑에 딸린 초록 부적과 노랑 부적을 집어 들었다.
능력자들에게 있어 능력의 강화라는 욕망은 또 대단한 것이어서 정욱은 카챤터스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짜릿했다.
초록 부적은 카챤터스로 출입할 수 있는 초록 구슬을 용이하게 바꾼 이동주문서이고 노랑 부적은 강력한 혼돈을 잡아서 얻을 수 있는 노랑 구슬을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서 말하자면 카챤터스의 화폐였다.
높은 단계의 혼돈을 잡아 얻어낸 구슬로 능력자들은 카챤터스에서 정보를 얻거나 아티팩트를 구매하곤 했다.
정욱은 서둘러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아티팩트라…… 좋아, 카챤터스로 가서…… 좋은 걸 얻어 보는 거야.’
정욱도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는 익히 들어 왔다. 그것은 유용한 능력들을 담고 있는 장비구들이었다.
우우웅.
‘카챤터스로 가기 위해선 어느 신성한 장소에 먼저 도달하여야 합니다. 안내를 따르세요.’
문자메시지의 안내대로, 정욱은 카챤터스로 접근해 나갔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