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그림자 세계 1권(16화)
5. 운명(4)


그러나 눈으로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 수가 너무 많음을 깨달았다.
‘어디서?’
늑대 인간의 팔이 커다랗게 허공을 가르자 날아오던 칼들 중 다섯이 소멸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네 개의 칼 중 두 개가 실체가 있는 환영이었다.
남은 다과용 칼은 늑대 인간의 어깻죽지에 정확하게 푹 하고 박혀 들어갔다.
“크윽!”
갑작스런 공격에 늑대 인간은 깜짝 놀라서 팔을 정신없이 휘두르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다가오던 정욱이 그 팔에 맞고, 또다시 픽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늑대 인간의 옆에서 진짜 정욱의 몸이 다과용 칼을 손에 꼬나들고 찔러 들어왔다.
푹!
힘주어 찔러 들어간 다과용 칼이 늑대 인간의 옆구리에 박혔다.
그러나 가속도까지 붙은 칼이었음에도 왠지 깔끔하게 찔려 들어간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의 가죽이 너무 질겼기 때문이었다.
‘아차!’
정욱은 칼을 찌른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필살의 기습으로 큰 데미지를 준 뒤 뒤로 날렵하게 빠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욱의 손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생각만큼 데미지를 주었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얼른 칼을 다시 뽑아 뒤로 빠지려는 정욱의 몸이, 둔탁한 뭔가에 퍽 하고 맞고 나가떨어졌다.
늑대 인간은 어깨와 옆구리에 칼이 박힌 채 정욱의 몸을 단번에 쳐 냈던 것이다.
“잔재주를 부리는 녀석이로구나. 장난감 칼 하나 들고 개수작 부리는 꼴이라니. 따갑잖아, 젠장!”
그는 자신의 옆구리에 박힌 다과용 칼을 뽑아 던졌다.
어깨에 박혔던 칼은 그가 쥐려 하자 일렁이더니 사라져 버렸다.
정욱은 처음 느껴 보는 강력한 타격에 자신의 몸이 붕 떠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생전 처음 맛보는 고통이었다.
‘우욱. 제기랄! 계단 한번 구른 적 없었는데.’
숨쉬기가 불편했다.
몸이 찌릿찌릿 저려 왔다.
그나마 능력을 받은 뒤로 신체적 능력이 조금 상승해서 이 정도였을 것이다.
공격을 직접적으로 받은 팔 한쪽의 감각이 사라졌다.
늑대 인간은 가소롭다는 듯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정욱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어떻게든 다시 거리를 두고 도망쳐야 했다.
늑대 인간은 어슬렁어슬렁 정욱에게 걸어왔다.
터질 것 같은 우람한 상체 근육이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떨려 왔다.
그러나 그의 흰색 털에는 어깨와 옆구리에서 나온 피가 배여 있었다.
“클클, 조금 따가웠어. 그래, 네놈 능력도 이 몸이 접수해 주지. 오늘은 참 운이 좋구나. 저년도 걸리고 네놈도 걸리고……. 잘 가라. 엇?”
정욱을 향해 주먹을 내지려는 찰나 그의 시야가 온통 어둠으로 가려졌다.
주변에 시멘트 벽이 빽빽이 둘러싸인 것이었다.
그가 당황해서 팔을 휘두르자 역시나 픽 하며 자신의 시야를 가렸던 벽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앞에 있어야 할 정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쥐새끼 같은 녀석!”

정욱은 정신없이 몸을 날려서 구석 외진 자리로 피했다.
‘이제 어쩌지?’
초록 구슬이 든 주머니에 자꾸만 손이 갔다.
하지만 쓰러져 있는 소연의 모습이 그의 손을 망설이게 했다.
그때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증강의 팔찌!’
정욱은 주머니에서 재빨리 팔찌를 꺼내었다.
장식이 그리 화려하지 않은 은팔찌였다.
은색 빛이 요염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정욱은 망설임 없이 그 팔찌를 손목에 내걸었다.
‘헛!’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머릿속이 단번에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척추를 따라 몸 안의 모든 뼈마디에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 물줄기는 정욱의 머리까지 타고 올라와 온 두뇌를 헤집었다.
청량한 기운이 머릿속에 스며 들어갔다.
‘이런 굉장한!’
정욱은 팔찌를 착용하자마자 자신의 몸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챤터스에서 파는 아티팩트는 기본적으로 숙련된 능력자들을 위한 것들이었다.
보통의 가격이 노랑 구슬 2∼3개의 가격인데 비해 정욱이 고른 이 증강의 팔찌는 무려 구슬 12개에 가는 고급 아티팩트였다.
노랑 구슬은 모으기가 힘든 구슬이라 12개를 모아 아티팩트를 거래할 만한 능력자들은 그 자체가 드물었다.
물론 어느 정도 능력의 기운을 익숙하게 다룬다면 아티팩트의 착용 여부가 그리 능력의 향상에 도움을 주진 않지만, 정욱 같은 경우 갑자기 이런 고급 아티팩트를 착용하게 되자 몸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 현상이 바로 신들의 내기 조항에 나와 있었던 능력의 강화였다.
정욱은 정신이 맑아짐과 동시에 자신의 몸이 굉장히 가벼워짐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바닷물이 피가 되어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조, 좋아, 이런 기운이라면!’
감히 도전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수십 가지 깨달음들이 거대한 전기회로처럼 연결되어 갔다.
그간 기능을 모르고 무턱대로 조립해 온 전구용품들이 이제야 밝게 빛나는 느낌이었다.
늑대 인간의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늑대 인간은 다시 정욱의 기운을 감지해 내고는 이를 갈았다.
자꾸만 늘어지는 싸움에 약이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정욱의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에 망설임 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훅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타격이 벽을 스펀지마냥 부수었다.
하지만 정욱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냐!”
“여기다!”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부순 벽 바로 옆이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정욱이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앉아 있었다.
“크으, 네놈!”
“그리고 여기도!”
그의 뒤에도 어느새 정욱이 서 있었다.
그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시야가 머무는 자리마다 정욱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의 옆에도, 뒤에도, 사각에도 정욱은 생겨났다.
“치잇! 또 눈속임술인가!”
어느새 수십 명의 정욱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늑대 인간은 망설임 없이 수십 명의 정욱을 향해 손톱을 휘두르려 했다.
그런데 그때 수십의 정욱들 뒤로 거대한 칼이 하나씩 떠올랐다.
바로 정욱이 사용하던 칼이 사람의 키만 한 크기로 실체화되어 떠올랐던 것이다.
칼들을 정욱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모여들었다.
장엄한 거대한 칼들이 부채의 모양으로 늑대 인간의 머리에 떠돌아다녔다.
수십 명의 정욱이 동시에 웃으며 말했다.
“눈속임이라, 글쎄?”

***

쇼우이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초능력의 위력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짧은 기간 동안 자신은 번개를 다루고 많은 능력자들이 자신에게 덤벼들어 왔었지만 이렇듯 직접적인 공격을 한 상대는 없었다.
번개의 결계가 그를 지켜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들은 쇼우이를 얽어매어 그를 속박하고 있었다.
쇼우이의 팔이 고통스럽게 꺾여 들어갔다.
경험이 없던 쇼우이는 도무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쇼우이의 몸은 속박되었으나,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림자를 다루기 시작한 하연에게는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땅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그림자들이 하연의 머리 위를 감싸고 들었던 것이다.
그것들은 마치 방어벽처럼 번개를 상쇄해 나갔다.
그림자들은 순간적인 번개의 빛이 닿자마자 그 빛에 의해 소멸되어 갔지만, 땅바닥에서 생겨나는 그림자 수가 훨씬 많았다.
한순간의 번뜩거림이 풀리면 다시 그림자들은 뭉쳐서 하연을 보호했다. 하연은 완벽하게 막히지 않은 번개만을 요리조리 피했다.
‘능력은 비록 최강이지만 경험이 없는 새싹에 불과했어. 저 번개를 뱉어내는 먹구름을 거둬 내면 승산이 있겠군.’
하연은 자신에게 떨어지는 번개를 계속해서 막고 피해 가면서 불의 기운을 모았다.
불은 다시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몸을 감싸고 올라가 뭉쳐졌다. 그리고 그 기세를 이어 불줄기는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콰과광!
먹구름을 감싸던 번개와 하연의 불줄기가 충돌하였다.
그와 동시에 쇼우이를 속박하던 그림자의 기운이 더욱 강력해지면서 이번에는 목을 졸랐다.
“끄어어, 테츠짱!”
노련한 능력자가 번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무궁무진한 그 능력으로 이런 상황쯤은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쇼우이는 자신의 목을 졸라 오는 정체 모를 기운에 당황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림자로 인해 쇼우이의 숨통이 막히자 정신이 분산된 먹구름도 그 기운이 약해졌다.
하연은 계속해서 불의 기운을 먹구름으로 쏘아 올렸다.
이제 쇼우이의 먹구름이 해체되면 그를 없애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밝은 기운이 쇼우이와 하연이 있는 쪽을 향해 날아왔다.
크르르릉.
하연이 놀라서 옆을 쳐다보니 온몸에서 투명하고 맑은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표범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표범은 어찌나 빠른지 하연이 인지하는 순간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컥!”
하연은 갑자기 들이닥친 엄청난 충격에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졌다.
그리고 그 표범은 몸에서 빛을 더욱 뿜어내어, 쇼우이를 속박하고 있던 그림자의 기운을 몰아냈다. 하연과 쇼우이의 결투에 또 다른 능력자가 난입한 것이다.
“대, 대체!”
애초부터 하연은 근처에 능력자의 기운이 없음을 파악한 뒤 쇼우이와 격투를 벌였었다.
때문에 이렇게 보란 듯이 능력자가 난입하는 것은 예상 밖이었던 것이다.
물론 처음 대면한 쇼우이의 기운에 놀라서 결계를 펼치지 않고 전투에 들어간 자신의 잘못이 있었다.
지금 나타난 능력자는 처음 하연이 능력자의 기운을 감지하려 했을 때 그 감지를 피해 낸, 말하자면 자신보다 노련한 능력자일 가능성이 컸다.
‘젠장!’

나타난 표범의 정체는 야수계 능력자 박철웅이었다.
철웅 또한 소식을 듣고 소연을 잠시 한국에 머물게 한 뒤 홀로 일본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일본에서 기운을 살펴보니 바로 자신과 같은 신인 바르사르의 능력자가 그 능력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철웅은 예언자를 버린 뒤라서 하연처럼 능력자에 대한 통지가 오지 않는다.
때문에 이렇게 일본에 도착해서야 바르사르의 기운임을 알고 곧장 달려왔던 것이다.
크르릉.
한껏 빛을 뿜은 철웅은 점차 빛을 줄여 가며 하연을 노려보았다.
빛이 약해지자 다시 그림자들이 철웅을 향해 들러붙었지만, 그의 손짓 발짓 하나에 나가떨어졌다.
철웅은 하연을 향해 말했다.
“이자는 우리 바르사르에 새로 선택을 받은 능력자다. 내가 데려가도록 하지.”
그리고 우직한 발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쇼우이에게로 다가갔다.
고꾸라진 하연은 뒷전이라는 태도였다.
하연의 손에서 불의 기운이 뿜어져 나갔다.
“이 자식이!”
그러나 그 불의 기운은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에 상쇄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정신을 차린 쇼우이가 하연을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그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어, 언제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쇼우이는 자신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그림자를 없애 준 표범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안락함과 포근함이 그에게로부터 풍겨 나왔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었고 흥분이 가라앉았다.
그가 자신의 편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속박했었던 하연을 바라보자, 또 엄청난 분노가 가슴 밑바닥에서 들끓어 올랐다.
자신이 가진 모든 번개의 기운으로 그를 처참하게 찢어발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텟츠도 그를 그렇게 독려하고 있었다.
표범으로 야수화한 철웅은 말없이 하연을 바라보았다.
야수계와 변신계는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 둘의 차이는 변신계가 인간의 몸을 기반으로 야수의 성질을 끌어오는 것이라면, 야수화는 인간의 몸 전체를 버리고 야수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신체적 능력이 야수로 변함에 따라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민첩함과 힘을 얻게 되는 것이 야수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