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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계 1권(17화)
5. 운명(5)
철웅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자신과 마주한 하연이 다시 공격 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계도 없는 상태여서 초록 구슬로 자리를 피할 수 있을 텐데 굳이 강한 능력자 둘과 싸우겠다는 그의 용기와 대담함에 놀랐다.
하연에게도 다른 계열의 능력자에 대한 남다른 분노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철웅이 말했다.
“도망쳐라. 결계도 안 친 마당에 널 놓치지 않고 죽일 자신은 없다. 그러니까 괜히 서로 힘 빼는 짓은…….”
철웅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기습적으로 양옆에 하연의 그림자들이 들러붙어 왔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그림자를 거둬 내고 추가로 날아오는 불덩이들을 상쇄했다.
쇼우이의 번개가 뒤를 받쳐 주고 있었기 때문에 하연의 공격들을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연은 철웅과 쇼우이를 노려보았다.
“도망은 아직 이르다. 너희 둘을 상대해 주지.”
하연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직 검은 먹구름 아래 자신이 쏘아 올린 붉은 불덩이가 땅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으로 인해 그림자는 아주 또렷하게 땅바닥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표범의 빛은 더 이상 전과 같이 밝지 않았다.
하연은 자신의 최고 기술을 실현할 각오를 했다.
가능하다면 쇼우이를 없애고 가는 것이 장래에 유리했다. 이렇듯 강력한 바르사르의 능력자가 쇼우이와 합세한다면 자신들의 전력이 굉장히 위축될 것이었다.
하연은 불로 번개를 막으며 거리를 두었다.
손을 비벼 거대한 불의 장막을 소환했다.
화르륵.
불의 장막이 거리를 벌려 놓았다.
쇼우이와 철웅은 그 장막 너머의 하연을 볼 수 없었다.
하연은 불덩이 서너 개를 더 쏘아 보낸 뒤 재빨리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가진 그림자 기술 최고 응용 단계를 실현할 작정이었다.
하연이 손으로 그림자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어둡게 깔린 그림자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하연에게로 몰려들었다.
“모여 들어라!”
순식간에 모든 그림자들이 하연에게로 뭉쳐졌다.
그리고 그것은 하연의 발밑에서부터 그를 타고 올라가 감싸기 시작했다.
하연의 몸이 어두운 그림자들에 덮여 버렸다.
파지직.
쇼우이는 장막 너머로 번개를 날렸다.
하지만 하연의 몸에 뭉친 그림자들이 튀어 나가 번개를 상쇄했다.
하연은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몸에 뭉친 그림자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조직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그의 발밑에서부터 견고한 갑옷을 이루어 가기 시작했다.
그림자들로 갑옷을 이루어 자신을 감싸는 기술. 하연이 가진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그림자에 맡겨 그것들의 스피드와 힘을 그대로 이어받아 공격력과 방어력을 증폭시키는 기술이었다.
하연은 어느새 중세 갑옷을 완전히 둘러싼 흑기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쇼우이의 계속되는 번개 공격으로 걷힌 불의 장막 뒤로, 하연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흑기사!
하연의 눈이 번쩍 뜨여지자 붉은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입가엔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갑옷으로 뒤덮인 그의 오른손이 뭔가를 쥐는 형상을 취하자 그림자들이 금세 달려들어 붙어 거대한 검을 형성하였다.
철웅은 빨랐던 그의 변신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야수 계열도 아닌데, 야수계 능력자와 같은 변신이었다.
철웅은 미간을 찌푸리며 쇼우이와 하연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리고 잠시 뒤로 몸을 뺐다가 탄력을 더해 망설임 없이 그대로 하연을 향해 돌진했다.
콰르릉!
동시에 번개들이 사방에서 하연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철웅과 쇼우이의 합격은 하연의 뛰어난 움직임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허공 높이 도약한 하연의 재빠른 도약에 철웅은 빈 공간을 지나갔고, 번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슉!
그리고 하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높이 올라갔던 것이 무색하게 공간을 격하고 철웅을 노리고 내려찍어 들어왔다.
철웅은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 철웅 역시 그대로 당하지 않았다.
상대의 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몸놀림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두터운 앞발을 그대로 휘둘렀다.
퍽!
하연의 회심에 찬 공격을 적절한 방법으로 막아선 것이다. 그러나 하연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대검을 막아선 철웅의 앞발을 젖히고 그대로 신형을 틀어 발을 내질렀다.
쇼우이가 그 광경을 보고 번개를 날렸지만, 하연의 주변을 지키던 그림자가 튀어 나가 막아섰다.
퍼억!
결국 철웅은 하연의 발길질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옆구리에 가격된 채 튕겨졌다.
“큭, 이거 엄청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군!”
그러나 큰 충격은 없었던지 철웅은 순수하게 하연의 공격을 감탄했다. 그리고 곧바로 하연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웅의 그런 행동은 시기적절했다.
쾌속한 속도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선.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철웅의 날카로운 이빨이 하연의 투구를 노렸다.
하연은 재빠른 철웅의 공격을 한 팔로 막아 내었다.
철웅의 이빨이 투구 대신 하연의 팔뚝 경갑을 물었다.
한쪽 팔이 물린 상태에서 하연은 검을 뒤로 빼내, 철웅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갑자기 하연은 중심이 무너지며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쇼우이의 번개가 그의 다리를 쓸고 지나간 탓이었다.
그림자들이 쇼우이의 공격을 막아 냈지만, 힘을 모아 쏘아 낸 번개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연은 넘어지면서, 쇼우이를 향해 그림자를 쏘아 보냈다.
그림자들이 쇼우이의 팔과 목을 잡아 졸랐다. 그리고 자신이 넘어질 때, 그의 위에 타오르려 했던 철웅의 목을 검으로 견제했다.
철웅이 뒤로 빠지자, 하연도 재빨리 몸을 일으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모두들 엄청난 스피드였다.
쇼우이는 하연의 그림자에 몸이 속박되었지만, 이내 자신의 번개의 권능으로 빛을 만들어, 그림자들을 없앴다.
철웅과 하연이 엄청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수십의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그들은 도무지 결판이 나지 않았다.
잠시 몸을 추스르던 쇼우이는 텟츠의 인형을 들어 자신의 눈높이 맞췄다.
텟츠짱이 자신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 텟츠짱. 내가 한 방에 날려 버릴게. 나에게 힘을 빌려 줘.”
쇼우이의 머리 위로 먹구름이 짙게 모여들었다.
쇼우이는 계속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쇼우이의 머리 위로 짙게 모인 먹구름에서 엄청나게 응축된 번개가 둥둥 뜬 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순수한 번개로 만들어진 칼의 형상이었다.
그것은, 쇼우이가 좋아하는 여전사 텟츠의 만화 이야기에 나오는 칼의 이미지를 응용한 것이었다.
마치 텟츠가 칼을 자신에게 빌려 준 것이란 상상을 하면서, 쇼우이는 번개의 칼을 형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쇼우이는 지직거리는 번개의 칼을 두 손으로 경건히 잡아 쥐었다.
엄청난 에너지가 쇼우이의 손아귀에서 움틀거렸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연과 철웅이 싸우는 현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하연의 등이 쇼우이의 눈에 들어왔다.
쇼우이가 그의 칼을 들어 하연의 등을 베려고 할 때, 그림자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번개의 검이 그림자들을 가르자, 그것들은 눈이 녹듯 사라져 버렸다.
하연은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에 그림자들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상쇄하는 그림자들인데, 쇼우이의 번개의 칼에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연은 몸을 틀어 쇼우이를 견제하려 했으나, 눈앞의 철웅의 공격이 너무나도 막강했다.
그를 상대하기도 벅찬데, 쇼우이가 저런 엄청난 공격을 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연은 다시 한 번 그림자들을 농축시켜 쇼우이에게 날리고 자신의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 옆으로 피하던 그의 몸을 철웅이 입으로 정확하게 잡아내었다.
철웅은 입으로 문 그의 다리를 잡아서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쇼우이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림자들을 번개의 칼로 짓이기고, 순간 넘어진 하연을 향해 검을 찔러 들어갔다.
하연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쇼우이의 칼이 그의 등을 찔러 들어갔다.
***
정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늑대 인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팔찌의 기운이 정욱의 몸을 휘젓기 시작하자 용기가 샘솟았다.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예전엔 상상도 못할 응용 기술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칼에 실체를 불어넣은 채 그 크기를 늘리는 것!
그리고 수십의 자신과 같은 환영.
수십의 환영이야, 조금 전 그녀의 분신을 만든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더라도, 수십의 거대한 칼을 만들어 낸 것은 굉장한 기술이었다.
물론 그 칼은 다과용 칼을 확대시킨 것이었다.
반 이상의 칼이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확대된 칼의 질량과 부피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다섯 자루 정도가 있었다.
나머지 칼들은 겨우 실체를 유지하고 있거나, 환영에 가까운 칼들이었다.
그러나 그 다섯 자루의 칼만으로도 엄청난 공격을 펼칠 수 있음을 정욱은 알고 있었다.
머리 위로 떠다니는 칼들을 바라보며 늑대 인간은 애써, 비웃음 쳤다. 그리고 무시하며, 정욱의 환영체들로 달려가려는 찰나 위에서 거대한 칼이 텅 하고 떨어져 바닥에 꽂혔다.
묵직한 공격이었다.
늑대 인간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정욱의 환영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다시 묻지. 속임수인 것 같냐?”
“치잇.”
늑대 인간은 자신의 발톱을 길게 치켜세웠다. 그리고 올 테면 와 보라는 자세로 정욱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빠른 동작에 정욱의 환영들이 하나하나 꺼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 위에 떠다니던 칼들이 늑대 인간에게 쏘아지기 시작했다.
챙챙챙.
늑대 인간은 특유의 놀라운 스피드로 쏘아져 내리는 칼들을 막아 내었다.
순간 정욱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이게 아닌데.’
늑대 인간의 스피드가 자신의 칼을 상쇄할 정도로 빨랐다. 긴장한 늑대 인간의 몸놀림은 아까와 달랐던 것이다.
그는 빠르게 몸을 날려 정욱의 환영들을 처치해 갔다.
‘저 움직임을 막아야겠어.’
정욱은 정신을 집중했다.
벽으로 늑대 인간을 가둔 채 공격을 집중시킬 계획이었다. 이윽고 거대한 벽이 순간적으로 늑대 인간을 둘러싸며 소환되었다.
늑대 인간은 당황치 않고, 자신의 시야를 가린 벽을 발톱으로 긁어내렸다.
키킹.
예상치 못했던 소리가 들렸다.
일렁이며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벽들이 단단한 벽돌의 실체를 가지고 늑대 인간의 시야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제, 제길.”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힘을 집중시켜 괴력으로 벽을 찔렀다.
그제야 벽이 콰광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바닥에 널린 벽의 파편이 일렁거리더니 사라졌다.
생성된 벽으로부터 빠져나왔지만 늑대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검 2자루였다.
그것은 모두 완벽한 부피와 질량을 품고 있는 다과용 칼이었다.
그 칼은 빠르게 늑대 인간을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정욱의 남은 환영들이 그를 향해 돌진했다.
‘좀 혼란스러울 거다.’
늑대 인간은 재빨리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우선 날아오는 칼 하나를 발톱으로 막고, 정욱의 환영들을 발로 쳐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