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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계 1권(18화)
5. 운명(6)
다시 또 칼이 늑대 인간을 향해 쏘아져 오자, 그는 미처 그것을 막지 못하고 드디어 상처를 입었다.
거대한 칼이 그의 다리를 찢고 바닥에 꽂혔다.
“젠장!”
정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거대한 칼들 중 하나를 들고는 그에게 돌진했다.
혼돈들을 잡으며 수련했던 전투 감각으로 그에게 덤빌 심산이었다.
늑대 인간은 공교롭게도, 다리의 상처가 깊어서 찔러 들어오는 정욱의 공격에 당황했다.
다리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위에 떠다니는 칼도 없었고, 정욱도 더 이상 칼을 소환해 낼 여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늑대 인간은 예상보다 빠른 정욱의 몸놀림에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기랄, 하필 다리가…….’
다리를 다친 늑대 인간의 몸놀림은 현저히 늦어졌다.
정욱은 쉴 새 없이 칼을 휘둘러 공격해 들어갔다.
이토록 거대한 칼은 난생처음 다뤄 보지만, 그동안 쌓아 온 전투 감각으로 늑대 인간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욱의 등 뒤에는 두 개의 실체가 있는 작은 환영의 검이 떠올랐다.
‘이게 소환할 수 있는 마지막이다.’
작은 검이 늑대 인간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그는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그것을 받았다.
정욱은 자신의 칼로 늑대 인간의 머리를 찍어 들어갔다.
발톱이 그 공격을 가까스로 막았으나, 가슴의 고통 탓에 몸이 움츠러 들었다.
늑대 인간은 재빨리 거리를 뒀다.
사태가 좋지 않았다.
“갑자기 어떻게 이런 힘을…….”
“흥. 어디 또 눈속임이라고 비웃어 보시지.”
정욱은 다시 그를 향해 몰아쳐 들어갔다.
자신에게 승산이 있었다.
최소한 그를 죽이진 않더라도, 쓰러져 있는 소연과 자신이 도망칠 정도까진 만들어야 했다.
그때 늑대 인간의 손에서 초록 구슬이 쥐어졌다.
“샤크툼!!”
정욱의 검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늑대 인간이 초록 구슬을 사용한 것이다.
“후…….”
정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능력자는 정말로 강하구나…….’
만약, 증강의 팔찌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정말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소연이고 뭐고 튀었을 테지만, 다행히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증강의 팔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정욱은 재빨리 쓰러진 소연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뽀얀 먼지들이 그녀의 얼굴과 몸 전체에 묻어 있었다.
정욱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여기에 그대로 놔두게 되면, 도망친 늑대 인간의 기운을 추적한 다른 능력자들이 그녀를 해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보호하자니, 그녀와 자신은 적대적인 관계였다.
비록 정욱은 그녀에게 일말의 분노를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으로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다.
‘위험할지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대로 두면 죽을 것이 뻔한 그녀를 놔두고 모른 척 가는 건 무리였다.
마음속의 무언가가 정욱의 행동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욱은 그녀를 들어 올렸다.
“읏차.”
초록 구슬을 사용할까 했지만, 그에게 남은 구슬은 두 개뿐이었다.
카챤터스로 가게 될 일이 생기면 그것을 아껴 둬야 했다.
정욱은 그녀를 안은 채로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그리고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정욱은 그녀를 품에 안고 들어가려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아무래도…… 날 경계할 텐데.’
그랬다.
정욱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다른 신의 능력자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를 보호하고, 데려오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다.
정욱에게 있어서 그것은 인간 고유의 도덕 기호였으며,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이 이름조차 모르는 여성은, 자신을 처음 보자마자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신들의 내기에 원초적 규칙인, 상대 능력자 간의 분노 본능이었다.
서로 증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내기의 규칙. 신들의 의지가 담긴 규칙은 능력자들 사이에 거대한 벽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정욱의 망설임이 길어졌다.
그러나 이윽고, 그의 발이 대문을 툭 걷어찼다.
‘결계에 그런 능력이 있다고 했었지.’
정욱은 자신의 집에 둘러쳐진 결계 능력을 알고 있었다.
하연이 말하길, 예언자가 자신의 능력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결계는 강한 보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 안에 있는 능력자는 다른 능력자들이나 혼돈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위험도 넘길 수 있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하였다.
그 능력은 바로 ‘중립지역화’였다.
정욱도 자신의 낡은 자취방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이곳 주변에만 오면 혼돈들이 접근하질 못하였다.
능력에 익숙해지면서, 결계의 기운도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카챤터스의 1층 카페와도 같은 기운이었다.
모든 능력자가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의 기운. 그 저주받을 서로 간의 ‘분노’조차도 사그라들게 만드는 카챤터스의 기운과 자신의 집에 쳐진 결계의 기운은 흡사했다.
중립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분노를 품지 않는다면 그리 위험할 건 없어.’
정욱은 대번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 소연을 눕혔다.
자신의 침대에 다른 여자를 눕혀 보기는 처음이다.
미끈하게 뻗은 다리에 스키니진이 딱 달라붙어 있다.
자신의 침대에 이성이 누워 있다니 보고만 있어도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물수건을 적셔 와, 얼굴에 묻은 모래먼지를 털어내고 있자니, 그녀의 볼록한 가슴과, 허리 라인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그제야, 정욱의 심장에 발동이 걸렸다.
‘예쁘다…….’
먼지를 닦아 내고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한 소연의 얼굴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다.
고운 구릿빛 피부와 분홍빛 입술. 날카로운 듯하면서도 뭔가 깊게만 보이는 눈매가 정욱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
정욱은 한동안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다가, 대번에 몸을 돌려 부엌을 향해 나갔다.
‘에이,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반지하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보자니,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달빛과 어우러진 가로등 불빛은, 어둠이 온전히 내려앉은 저녁 밤의 분위기를 깊게 하고 있었다.
정욱은 그녀가 누워 있는 방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섰다.
오늘 밤은 밖에 나가서 지샐 생각이었다.
아침이 밝으면, 집에 돌아와 그녀를 마주할 작정이었다.
아무리 결계가 쳐져 있다 할지라도. 온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자신이 자고 있는 틈에 와 목숨을 위협한다면 위험할 수가 있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자신과 그녀의 관계도, 아까 늑대 인간과 자신의 관계와 별 차이가 없었다.
정욱은 자고 있는 그녀를 죽이는 것이 옳았다.
단지 그녀가 당하고 있었다는 점. 쫓기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어떤 ‘무언가’가 정욱으로 하여금 그녀를 지키게 만들었다.
“저주 받은 내기판…….”
정욱은 조용히 읊조렸다.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잔인한 내기 위에 자신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정욱은 그의 팔찌와 카챤터스에서 챙겨 온 레시피가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밤거리를 거닐었다.
왠지 적막하게 가라앉은 달빛의 무리들이, 걸음을 옮기는 자신의 발에 무겁도록 엉키는 기분이었다.
6. 이유(1)
하연의 등으로 쇼우이의 칼이 찔러 들어왔다.
“크윽!”
하연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을 덮고 있던 그림자들은 번개의 칼이 등으로 찔러 들어오자, 그것을 막기 위해서 등으로 뭉쳤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림자들이 벗겨져 나가며, 갑옷이 해제된 하연의 몸이 드러났다.
그림자들은 지지직거리며 찔러 들어오는 번개를 상쇄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림자들이 타들어 갔지만, 하연은 그 틈에 재빨리 몸을 날려 자리를 벗어났다.
하연의 몸을 감쌌던 모든 그림자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번개의 단칼에 소멸되었다.
하연의 몸엔 찌릿한 전기의 기운이 느껴졌고 등에는 데인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아무리 어둠의 그림자와, 빛의 번개가 상성이라고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쇼우이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칼의 위력에 오히려 자신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자들이 엉겨 붙어, 번개의 칼이 소멸되자 덜컥 겁을 먹고는 몸을 뒤로 내뺐다. 그런 쇼우이의 모습을 보며 하연은 분통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확고한 ‘결심’이 들어섰다.
‘저 괴물 녀석을 절대로…… 바르사르 능력자들의 손에 뺏겨선 안 돼……. 이곳에서 녀석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 이걸 쓰게 될 줄이야…….’
만약 숙련된 능력자로 보이는 철웅이 쇼우이를 데리고 간다면, 내기의 판도가 뒤집힐 기세였다.
바르사르의 숙련된 능력자는 쇼우이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그를 수련시킬 것이고, 능력을 받은 지 얼마 안 되는데도 이런 막강한 위력을 보이는 그의 번개 능력은 머지않아 ‘절정’에 이를 것임에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라힌델의 예언자 주변에 있는 능력자 중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지금만 하더라도 쇼우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철웅은 갑옷이 벗겨진 채 상처를 입은 하연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갑옷이 해제된 이상, 하연을 없애는 것은 시간문제 일 것이었다.
철웅은 단번에 도약해서 그를 없앨 작정으로, 몸을 뒤로 빼었다.
그러나 철웅의 몸이 그 순간 움직이지 않았다.
하연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철웅의 밑바닥에 생긴 철웅의 그림자가 뭔가에 꽁꽁 묶여 있었다.
하연이 말했다.
“클클. 아직, 난 죽을 수 없어.”
“그림자 따위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말을 마친 철웅의 몸에서 아까와 같은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그를 잡고 있던 그림자들이 조금씩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하연은 비웃음을 잃지 않았다.
“빛을 뿜는 표범과 절대 번개의 능력자라. 애초부터 나와는 상성인 능력자들이셨구만. 물론, 널 잡아 둘 순 없다. 하지만 시간은 벌 수 있겠지.”
하연은 남은 그림자의 기운을 모두 철웅에게 집중시켰다. 그러자 단숨에 주변에 남아 있던 그림자들이 철웅을 덮쳐 갔다.
“응?”
밝게 빛나던 철웅의 몸이 어두운 그림자들로 순식간에 뒤덮였다.
쇼우이는 먹구름의 기운을 상당량 쏟은 번개의 칼이 사라진 것을 보고 당황하고 있었다.
이제 그가 다룰 수 있는 먹구름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있었고, 하연의 그림자는, 자신이 쏘아 대는 자잘한 번개 따윈 모두 상쇄해 버렸다.
게다가 자신의 편이라고 여겼던 철웅도 그림자에 뒤덮여 버렸다.
어떤 위기감이 그에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그 위기감으로 인한 분노가 다시 들끓었다.
쇼우이는 텟츠의 인형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하연은 철웅이 그림자에 갇힌 것을 보고는 재빨리 쇼우이에게로 접근해 갔다.
하연 자신의 기운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철웅을 얼마 잡아 두지 못할 것이었다.
그전에 자신이 각오한 바를 이루어 내야 했다.
쇼우이는 빠르게 접근하는 하연을 보고는 번개를 쏘아 댔다. 그리고 그 주변에 번개의 막을 더욱 견고히 하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하연의 움직임이 전보다 훨씬 저돌적이라는 것을 느끼자, 쇼우이는 긴장하게 되었다.
그를 향해 쏘는 번개가 자꾸 빗나가고,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하연은 번개를 불덩이로 상쇄하면서, 그림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하연의 표정이 엄숙하게 굳어졌다.
어느새 가까이 접근한 하연이 쇼우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쇼우이는 하연의 눈에서 느껴지는 분노에 자신의 몸이 움츠려 드는 것을 느꼈다.
하연은 손에 든 그것을 투구의 폼으로 길게 뒤로 내빼었다. 결코 실패해선 안 될 마지막 공격이었다.
하연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카리툼!”
“히익!”
하연의 투기에 쇼우이는 본능적으로 방어 태세를 취했다.
하연의 손으로부터, 쇼우이를 향해 뭔가가 던져졌다.
그가 불러 모은 그림자들이 쇼우이를 향해 날아가는 그것을 감쌌다.
그림자에 둘러싸인 그것은, 쇼우이의 전기 막을 뚫고서 그의 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림자로 덮였던 철웅의 몸이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