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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2화
프롤로그(2)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나이. 준서는 그 감정을 알고 싶었다. 무엇이 사랑하는 감정인지. 키스를 통해서 그 감정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준서는 생각했다. 준서는 그녀와의 키스를 기다렸다. 처음 볼 때부터 유난히도 준서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녀. 그녀와의 섹스라면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준서가 윤정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사랑하는 감정. 아마도 그 상대가 너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윤정이 감은 두 눈을 살며시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윤정 역시 그 상대가 준서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사랑을 하는지, 그리고 그 느낌이 어떠한지…….
다시 준서의 손길이 윤정의 팬티에 머물렀다.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손만 대고 있는 준서의 손가락,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것이 윤정의 몸에 느껴졌다. 그 떨림이 윤정의 허리 라인에서 배를 지나 가슴까지 전해졌다. 그 미세한 떨림에 윤정이 온몸을 한차례 떨었다. 처음 겪어 보는 흥분에 윤정의 심장이 곧 터져 나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이거 벗겨도 돼?”
“아니. 잠깐, 잠깐만.”
윤정이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섹스에 동의를 한 윤정이었건만 지금은 그것을 후회하기 이전에 막연하게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윤정이 숨을 몰아쉬고 내쉬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준서가 윤정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봐!”
“무슨 상상?”
“영화에서 섹스를 하던 장면. 생각나는 영화 없어?”
윤정이 준서의 말대로 영화 한 편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언뜻 떠오르지 않는 스크린의 기억.
“갑자기 생각하려니까 생각이 나지 않아.”
준서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의 키스를 생각해 봐. 아니면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키스나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자동차 안에서 나누던 섹스를 떠올리거나.”
윤정이 눈을 감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키스 장면을 떠올렸다.
“어때?”
하지만 윤정은 자신의 아랫배에서 신음하듯 가늘게 떨리는 준서의 손길에 쉽게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릿속에 떠오르다 곧 사라져 버려.”
“그럼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연기?”
“난 남자 주인공이야. 넌 여자 주인공이고. 우린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야. 사랑하는 사이를 우리가 직접 연기해 보는 거야. 어때?”
사랑하는 사이. 준서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섹스를 하고 나면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이를 연기하는 것처럼 섹스를 하자고?
“한윤정, 넌 지금 나준서를 사랑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우린 그 사랑하는 사람을 연기하는 거야.”
부드러운 준서의 말에 윤정이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어느새 팬티 안으로 들어와 은밀한 계곡을 스치듯 어루만지고 그의 입술이 뜨겁게 입술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의 손길이 팬티를 조금씩 아래로 벗겨 내린다. 팬티가 아래로 벗겨져 내려갈수록 윤정의 온몸이 심한 몸살이라도 앓는 것같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건 준서다.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사람이고 한순간도 떨어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준서다.
그의 손이 팬티를 벗기고 가슴을 더듬어도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용서할 수 있다. 수치심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준서도 날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는 날 영원히 사랑할 것이고 나 또한 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서로를 사랑할 운명을 타고 난 사람처럼.
사랑은 감미롭고 때론 지독하다. 윤정의 입술은 지독할 정도로 감미롭다. 지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여자인 한윤정의 몸을 원한다.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그게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녀의 육체 또한 사랑한다. 그녀의 육체는 신이 내려 준 선물이다. 그 육체에 키스를 하고 어루만진다. 이전에도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며 앞으로도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살아서 숨을 쉰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유일한 여자 한윤정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서로가 각자의 머릿속에서 서로를 상상했다.
준서가 윤정의 다리에서 그녀의 팬티를 모두 벗겨 내었다. 그동안의 망설임과 떨림, 막연한 불안감은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감정 몰입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이제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이니까. 지금 그녀와의 섹스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아름다운 섹스라며 준서가 머릿속에서 되뇌며 바지와 팬티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곧 알몸이 된 두 사람이 서로 뒤엉켰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마다 처음 겪어 보는 짜릿한 흥분에 준서와 윤정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서로의 눈동자만 쳐다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의 눈동자 속에 강인하게 각인되었다.
윤정의 아랫배에 불덩이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윤정의 몸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윤정의 깊고 은밀한 계곡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열릴 듯 열리지 않는 계곡의 문을 향해 준서가 계속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는 손길이 더욱 커지고 단단해졌다. 꼭 닫혀 있던 윤정의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더니 급기야 준서의 몸이 윤정의 몸 안 깊숙이 헤집고 들어왔다.
“하아!”
깊은 신음 소리와 함께 윤정은 정신을 잃을 만큼 강한 고통에 몸서리쳤다. 아프고 고통스러우면서 처음 겪어 보는 쾌감이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느낌, 윤정이 저도 모르게 두 팔로 준서의 몸을 감싸 안았다.
고통은 곧 쾌락으로 바뀌어 갔다. 준서가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윤정의 몸은 더욱 쾌감으로 뜨거워졌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였다.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연인. 그 연인이 준서였고 지금 그와 섹스를 하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의 이 섹스를 그와 난 어떻게 받아들일까. 철없던 시절의 단순한 호기심 충족일까?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될 홍역과도 같은 섹스. 그게 준서였고 지금은 상상 속에서 그와의 섹스를 즐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움직임을 멈추지 않던 준서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의 입에서도 야릇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절정으로 치닫는 소리. 그 빠르고 강한 절정의 움직임에 윤정은 그대로 따랐다. 이 순간, 모든 생각이, 이성이 마비되었다. 오로지 존재하는 건, 본능뿐.
준서가 드디어 움직임을 멈추고는 윤정의 몸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와 동시에 윤정의 몸속으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 들어왔다. 따스하고 뜨거운 느낌, 그 느낌은 섹스의 끝이었다. 그리고 윤정의 눈에서도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왔다. 고통의 눈물이 아닌 막연한 두려움을 간직한 눈물.
윤정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 내며 준서가 속삭였다.
“왜 우는 거야? 후회하는 거야?”
“모르겠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눈물을 닦아 주던 준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게 아니었는데. 가상이긴 했지만 사랑하는 연인과의 섹스를 생각했던 준서였다.
그 결과마저 행복해하는 모습을 잠시 그렸었는데 윤정은 울고 있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는 윤정, 그런 그녀의 몸 위에서 준서는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욕망의 여운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내가 책임을 질게.”
준서가 고해성사라도 하듯 짧게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준서는 그렇게라도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무슨 책임을 진다는 거야? 그럴 필요 없어. 동정하려고 하지 마. 나도 원해서 한 것뿐이니까.”
차갑게 한마디 내뱉으며 윤정이 몸을 일으켰다.
“한윤정, 후회하고 있잖아.”
“어차피 누군가와는 이렇게 섹스를 했겠지. 단지 그 상대가 너였을 뿐이야. 그리고 사랑하는 감정을 알기 위해서 연기를 한 것뿐이야.”
윤정이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녀의 말에 준서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가진 감정은?”
윤정이 차갑게 대답했다.
“달라진 것 없어.”
방금 흘린 눈물 따위는 어디로 갔는지 차가운 윤정의 말에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음 같은 표정으로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준서는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방금 전까지 사랑하는 연인이 되어서 서로의 몸을 껴안고 서로를 느끼며 한 몸이 되어 버린 그녀이건만, 지금 그녀와 준서 사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생겨 버렸다. 사랑하는 감정을 알게 될 거라는 준서의 기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취했던 술이 깨면서 이성이 조금씩 돌아오자 그녀와의 사이에 갑자기 생겨 버린 벽이 더욱 높게 느껴졌다.
욕실로 들어간 윤정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순결을 잃었다. 아니, 그에게 순결을 바쳤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려고 간직했던 순결. 하지만 준서를 탓해선 안 된다. 그러면서 그를 원망하는 자신이 바보 같아서 윤정은 눈물이 났다. 조금만 참았으면 되는 것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린 꼴이다.
샤워기를 틀어 놓고 씻고 또 씻었다. 상처로 얼룩진 뜨거운 액체가 지나긴 길, 그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흔적을 깨끗이 제거하기 위해 수십 번이고 문지르고 닦아 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게 윤정이 스무 살 되던 해 5월이었다. 비가 처량하게 내리던 어느 날 새벽.
2화
프롤로그(2)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나이. 준서는 그 감정을 알고 싶었다. 무엇이 사랑하는 감정인지. 키스를 통해서 그 감정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준서는 생각했다. 준서는 그녀와의 키스를 기다렸다. 처음 볼 때부터 유난히도 준서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녀. 그녀와의 섹스라면 사랑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준서가 윤정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사랑하는 감정. 아마도 그 상대가 너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윤정이 감은 두 눈을 살며시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윤정 역시 그 상대가 준서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사랑을 하는지, 그리고 그 느낌이 어떠한지…….
다시 준서의 손길이 윤정의 팬티에 머물렀다.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손만 대고 있는 준서의 손가락,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것이 윤정의 몸에 느껴졌다. 그 떨림이 윤정의 허리 라인에서 배를 지나 가슴까지 전해졌다. 그 미세한 떨림에 윤정이 온몸을 한차례 떨었다. 처음 겪어 보는 흥분에 윤정의 심장이 곧 터져 나갈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이거 벗겨도 돼?”
“아니. 잠깐, 잠깐만.”
윤정이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섹스에 동의를 한 윤정이었건만 지금은 그것을 후회하기 이전에 막연하게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윤정이 숨을 몰아쉬고 내쉬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준서가 윤정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 봐!”
“무슨 상상?”
“영화에서 섹스를 하던 장면. 생각나는 영화 없어?”
윤정이 준서의 말대로 영화 한 편을 머릿속에서 떠올렸다. 언뜻 떠오르지 않는 스크린의 기억.
“갑자기 생각하려니까 생각이 나지 않아.”
준서가 다정하게 속삭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의 키스를 생각해 봐. 아니면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키스나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자동차 안에서 나누던 섹스를 떠올리거나.”
윤정이 눈을 감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키스 장면을 떠올렸다.
“어때?”
하지만 윤정은 자신의 아랫배에서 신음하듯 가늘게 떨리는 준서의 손길에 쉽게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릿속에 떠오르다 곧 사라져 버려.”
“그럼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연기?”
“난 남자 주인공이야. 넌 여자 주인공이고. 우린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야. 사랑하는 사이를 우리가 직접 연기해 보는 거야. 어때?”
사랑하는 사이. 준서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섹스를 하고 나면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이를 연기하는 것처럼 섹스를 하자고?
“한윤정, 넌 지금 나준서를 사랑하고 있어. 그것도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우린 그 사랑하는 사람을 연기하는 거야.”
부드러운 준서의 말에 윤정이 눈을 감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어느새 팬티 안으로 들어와 은밀한 계곡을 스치듯 어루만지고 그의 입술이 뜨겁게 입술을 더듬는다. 그리고 그의 손길이 팬티를 조금씩 아래로 벗겨 내린다. 팬티가 아래로 벗겨져 내려갈수록 윤정의 온몸이 심한 몸살이라도 앓는 것같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그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건 준서다. 미치도록 그리워했던 사람이고 한순간도 떨어져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준서다.
그의 손이 팬티를 벗기고 가슴을 더듬어도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용서할 수 있다. 수치심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준서도 날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는 날 영원히 사랑할 것이고 나 또한 그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마치 태어나자마자 서로를 사랑할 운명을 타고 난 사람처럼.
사랑은 감미롭고 때론 지독하다. 윤정의 입술은 지독할 정도로 감미롭다. 지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여자인 한윤정의 몸을 원한다.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그게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그녀의 육체 또한 사랑한다. 그녀의 육체는 신이 내려 준 선물이다. 그 육체에 키스를 하고 어루만진다. 이전에도 그녀를 사랑했고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며 앞으로도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살아서 숨을 쉰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유일한 여자 한윤정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서로가 각자의 머릿속에서 서로를 상상했다.
준서가 윤정의 다리에서 그녀의 팬티를 모두 벗겨 내었다. 그동안의 망설임과 떨림, 막연한 불안감은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감정 몰입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이제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이니까. 지금 그녀와의 섹스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아름다운 섹스라며 준서가 머릿속에서 되뇌며 바지와 팬티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곧 알몸이 된 두 사람이 서로 뒤엉켰다. 살과 살이 맞닿을 때마다 처음 겪어 보는 짜릿한 흥분에 준서와 윤정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서로의 눈동자만 쳐다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가 서로의 눈동자 속에 강인하게 각인되었다.
윤정의 아랫배에 불덩이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윤정의 몸속으로 파고들기 위해 윤정의 깊고 은밀한 계곡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열릴 듯 열리지 않는 계곡의 문을 향해 준서가 계속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는 손길이 더욱 커지고 단단해졌다. 꼭 닫혀 있던 윤정의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더니 급기야 준서의 몸이 윤정의 몸 안 깊숙이 헤집고 들어왔다.
“하아!”
깊은 신음 소리와 함께 윤정은 정신을 잃을 만큼 강한 고통에 몸서리쳤다. 아프고 고통스러우면서 처음 겪어 보는 쾌감이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느낌, 윤정이 저도 모르게 두 팔로 준서의 몸을 감싸 안았다.
고통은 곧 쾌락으로 바뀌어 갔다. 준서가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윤정의 몸은 더욱 쾌감으로 뜨거워졌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였다.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상의 연인. 그 연인이 준서였고 지금 그와 섹스를 하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의 이 섹스를 그와 난 어떻게 받아들일까. 철없던 시절의 단순한 호기심 충족일까?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될 홍역과도 같은 섹스. 그게 준서였고 지금은 상상 속에서 그와의 섹스를 즐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움직임을 멈추지 않던 준서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의 입에서도 야릇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절정으로 치닫는 소리. 그 빠르고 강한 절정의 움직임에 윤정은 그대로 따랐다. 이 순간, 모든 생각이, 이성이 마비되었다. 오로지 존재하는 건, 본능뿐.
준서가 드디어 움직임을 멈추고는 윤정의 몸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와 동시에 윤정의 몸속으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 들어왔다. 따스하고 뜨거운 느낌, 그 느낌은 섹스의 끝이었다. 그리고 윤정의 눈에서도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왔다. 고통의 눈물이 아닌 막연한 두려움을 간직한 눈물.
윤정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 내며 준서가 속삭였다.
“왜 우는 거야? 후회하는 거야?”
“모르겠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
눈물을 닦아 주던 준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게 아니었는데. 가상이긴 했지만 사랑하는 연인과의 섹스를 생각했던 준서였다.
그 결과마저 행복해하는 모습을 잠시 그렸었는데 윤정은 울고 있었다. 불안함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는 윤정, 그런 그녀의 몸 위에서 준서는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욕망의 여운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내가 책임을 질게.”
준서가 고해성사라도 하듯 짧게 내뱉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준서는 그렇게라도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무슨 책임을 진다는 거야? 그럴 필요 없어. 동정하려고 하지 마. 나도 원해서 한 것뿐이니까.”
차갑게 한마디 내뱉으며 윤정이 몸을 일으켰다.
“한윤정, 후회하고 있잖아.”
“어차피 누군가와는 이렇게 섹스를 했겠지. 단지 그 상대가 너였을 뿐이야. 그리고 사랑하는 감정을 알기 위해서 연기를 한 것뿐이야.”
윤정이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녀의 말에 준서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가진 감정은?”
윤정이 차갑게 대답했다.
“달라진 것 없어.”
방금 흘린 눈물 따위는 어디로 갔는지 차가운 윤정의 말에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음 같은 표정으로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준서는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방금 전까지 사랑하는 연인이 되어서 서로의 몸을 껴안고 서로를 느끼며 한 몸이 되어 버린 그녀이건만, 지금 그녀와 준서 사이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이 생겨 버렸다. 사랑하는 감정을 알게 될 거라는 준서의 기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취했던 술이 깨면서 이성이 조금씩 돌아오자 그녀와의 사이에 갑자기 생겨 버린 벽이 더욱 높게 느껴졌다.
욕실로 들어간 윤정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순결을 잃었다. 아니, 그에게 순결을 바쳤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주려고 간직했던 순결. 하지만 준서를 탓해선 안 된다. 그러면서 그를 원망하는 자신이 바보 같아서 윤정은 눈물이 났다. 조금만 참았으면 되는 것을.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버린 꼴이다.
샤워기를 틀어 놓고 씻고 또 씻었다. 상처로 얼룩진 뜨거운 액체가 지나긴 길, 그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흔적을 깨끗이 제거하기 위해 수십 번이고 문지르고 닦아 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모든 것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게 윤정이 스무 살 되던 해 5월이었다. 비가 처량하게 내리던 어느 날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