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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3화)
1. 진화의 시작(3)


종환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이 길이서 그런지 거대한 몸뚱이가 저 아래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섯 번째 진화로 얻은 종의 이름은 수장룡 에라스모사우르스.
드디어 척추동물인 파충류로 진화가 이루어졌다.
종환은 5차 진화를 눈앞에 두고 척추동물로 진화되기로 결정했다. 그가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척추동물로의 진화가 선행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이제 몇 번의 진화만 더 이룩하면 영장류인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5미터가 넘는 전장에 1미터가 넘는 몸을 가진 그는 진화를 이룩한 순간, 스스로를 포이사르돈이란 이름으로 명명했다.
‘포이사르돈, 이제부터 그것이 나의 이름이다.’
뚜렷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라 여겨졌다.
변화는 커지고 강화된 몸뚱이와 이름만이 아니었다.
4차 진화로 얻은 어류의 몸일 때보다 세 배 이상 빨라진 속도는 기본이었고 그가 마음을 먹으면 주변의 해류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몸에서 어떻게 2미터도 안 되는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으려나?’
그런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포이사르돈은 그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몸을 파악하고 6차 진화를 위해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쿠르르릉.
그가 몸을 움직이자 주변으로 흐르던 해류의 흐름이 바뀌었다.
‘해류를 조절하는 능력이 생겼구나, 그리고 외피도 더 강해졌다. 헤엄 속도는?’
부오오오오.
그가 마음을 먹자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갈랐다.
그 거대한 몸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포이사르돈은 깜짝 놀랐다.
‘엄청 빠르다! 시속으로 계산한다면 200킬로미터는 넘는 속도야.’
종환은 수장룡이라면 고대에 존재했던 바다에 사는 공룡의 한 종류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덩치 큰 수장룡이 날렵한 어류들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있다니!
포이사르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이름을 가진 녀석들, 놈들을 사냥한다!’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누가 알려 준 것도 아닌데 직감적으로 이름을 알게 되는 존재들이 있었다.
우리가 사과를 보면 ‘사과구나.’라고 생각하듯이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그들의 이름이 단 번에 파악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여타의 생명체들과는 틀렸다.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같은 종에 비해 거대하고 강력한 신체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독특한 능력을 몇 가지씩 가지고 있었다.
바를레가라는 플랑크톤은 빠른 속도를 자랑했고 나키라는 가오리는 온몸으로 전기를 뿜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특별한 힘을 지녔기에 다른 종들보다 월등히 강력했던 그들, 하지만 모두 종환의 뱃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때까지의 진화의 과정을 돌이켜 보면 평범한 먹잇감들을 사냥함으로서 얻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성장뿐이었다.
이름을 가진 존재들.
그들을 사냥했을 때, 비로소 종환은 진화의 순간을 맞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 큰 지역에서 힘을 행사하는 포식자들을 사냥한다!’
부오오오오.
그의 몸이 빠른 속도로 물결을 갈랐다.
미지의 존재들이 존재하는 곳.
포이사르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종환은 심해를 향해 헤엄쳐 나갔다.



2. 대 괴수 레비아탄(1)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종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포이사르돈으로 진화한 종환은 기존의 영역을 뛰어넘어 더 깊은 바다 속을 탐험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무수히 많은 해양생물들.
10미터가 넘는 거대 오징어와 2미터가 넘는 다랑어과 물고기 떼들, 그리고 각종 고래와 바다의 포식자인 상어들이 그를 반겼다.
‘더 이상은 들어가면 안 되겠어.’
종환은 기존의 영역에서 10킬로미터 정도 외각을 탐색하다 더 이상의 탐색은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던 전기가오리 나키 정도는 한 끼 식사 후 간식 대용으로 여길 만한 엄청난 포식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백상아리[레비어스]
크기가 20미터가 넘는 백상아리 레비어스는 평소에는 느릿느릿한 속도로 유유히 바다 속을 헤엄치지만 사냥을 할 때에는 마치 대잠 어뢰와 같은 모습으로 먹잇감을 향해 돌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포이사르돈보다 배는 빠른 스피드와 강철도 뚫을 것 같은 그의 이빨, 그리고 뛰어난 후각은 종환에게 그의 영역으로 다가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레비아스는 서쪽의 지배자였다.

―대왕 오징어[필라크스]
필라크스는 대왕 오징어였다.
대왕 오징어는 18미터까지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라크스는 그 길이가 30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한 놈이었다.
스물 스물 헤엄치다 20미터가 넘는 촉수를 이용해 재빠르게 먹잇감을 낚아채는 녀석은 반경 30미터의 범위에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먹물을 뿌려 천적의 접근을 막고 자신의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필라크스로 인해 포이사르돈이 더 이상 심해로 들어가는 것이 차단되었다.
필라크스는 남쪽의 지배자였다.

―거대 불가사리[파르몬]
파르몬은 불가사리인 주제에 헤엄을 쳐서 작은 상어나 다랑어들을 사냥하는 포식자였다.
크기가 25미터에 이르는 녀석은 다섯 개의 팔이 모두 끊어져도, 몸이 절반으로 분리되어도 재생이 가능한 무서운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파르몬은 이빨에 몸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독을 가지고 있어 붙들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파르몬은 동쪽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세 마리의 포식자들이 더 이상 먼 해역으로 갈 수 없도록 길목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이에 포이사르돈은 북쪽으로 탐험을 시작했지만 깊은 바다 속까지 느껴지는 살을 저미는 추위로 인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포이사르돈은 그들의 존재를 알아낸 후에 몸집을 좀 더 키워서 필라크스, 파르몬과 부딪혀 보았다.
상대적으로 레비어스보다 약해 보이는 그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 보았지만 결과는 포이사르돈의 처참한 패배.
포이사르돈은 목숨만 간신히 건진 채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이를 갈며 주변의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불렸다.
그 세 마리의 강자들을 제외하고도 포이사르돈이 서식하는 인근 해역에는 많은 포식자들이 있었지만 그의 상대는 되지 않았다.
포식자들은 종환의 먹잇감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 제길. 다 잡아 놓았는데 이놈의 호흡이.’
한창 길이가 2미터에 이르는 다랑어를 사냥하고 있던 종환은 뇌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것을 느끼고 급하게 해수면을 향해 상승했다.
기본적으로 바다 생황을 하는 수장룡이었지만 파충류인 포이사르돈은 아가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30분에 한 번씩은 물 위로 올라가 공기를 들여 마셔 줘야 하는 것이다.
“푸핫!”
해수면으로 얼굴을 내민 포이사르돈은 대기에 존재하는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30여 초간 호흡을 통해 필요한 산소를 모두 몸에 담은 종환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사냥을 재개하려고 할 때에 그의 시야에 바다 위를 거니는 무언가가 포착이 되었다.
‘아니 저것은!’
그것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고래 모양 나무였다.
둥그런 몸체를 반으로 가른 모습의 나무는 등에 기다란 나무가 박혀 있었고 그 나무에는 커다란 천들이 바람을 받아 속도를 내는 모습이었다.
‘배!’
그랬다.
그것은 포이사르돈도 익히 알고 있는, 인간들이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배였다.
포이사르돈은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단세포 생물의 모습으로 새 삶을 얻은 이후, 처음 접하는 인간의 흔적이었기에 그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아악, 수아악.
포이사르돈이 마음을 먹자 해수면이 갈라지며 커다란 범선을 향해 빠르게 이동했다.
“응? 괴물이다!! 바다 괴물이다! 비상!!”
“비상!! 괴물이다!!”
그런 그를 발견한 범선 위의 인간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
그리고 들려오는 나팔소리.
아마도 전투태세를 알리는 나팔소리이리라.
포이사르돈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저 정도 범선이라면 40∼70여 명의 인간들이 타고 있을 것이다. 저들이 대포나 작살로 나를 공격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포이사르돈은 자신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간인 저들은 범선으로 다가오는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다.
그들과 싸움을 벌인다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포이사르돈은 오랜만에 만난 인간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에도 인간이 있다. 그 사실은 안 것만으로도 충분해.’
꼬르르륵.
포이사르돈은 범선 위의 사람들을 한 번 응시하고는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포이사르돈은 범선을 발견한 동쪽 바다를 주시하게 되었다.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정도로 동쪽 바다로 접근해 인간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나선 것이다.
몇 주간 지켜본 결과 포이사르돈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동쪽에 육지가 있다. 인간들이 사는 육지가!’
종환은 동쪽 바다를 세로로 횡단하는 인간의 범선들로 인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좋다, 인간들이 근처에 거주하는 것을 알았으니 됐다. 어서 성장해서 포유류도 진화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 후로 포이사르돈은 미친 듯이 사냥에 매달렸다.
대체 자신이 왜 이런 바다 생물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두려움이 있었지만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그의 원동력이 되었다.
5차 진화가 있은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포이사르돈의 몸길이는 15미터가 넘어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성장하면 파르몬을 사냥하고 나머지 두 놈도 먹어치운다!’
포이사르돈이 가장 먼저 타겟으로 정한 것은 셋 중에서 가장 약체인 불가사리 파르몬.
파르몬을 먼저 사냥해 성장한 다음 나머지 두 마리의 포식자를 모두 먹어치운다면 포유류로 진화해 육지로 올라가는 것이 가능해 지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바쁘게 움직이던 어느 날.
종환의 영역에 원치 않던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레비어스!’
그 존재는 바로 거대 백상아리 레비어스였다.
이전에 보았을 때도 20미터가 넘는 거대한 모집을 가진 그는 이제 종환의 2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성장해 있었다.
―수장룡, 포이사르돈. 네 이름이 맞겠지?
레비어스를 확인한 순간 도망을 치려 했지만 머릿속을 울리는 레비어스의 음성에 그의 몸이 멈춰 섰다.
‘어떻게?’
포이사르돈의 의문이 그의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다.
포이사르돈의 당황한 얼굴을 노려보던 레비어스, 아니 이제 진화를 거쳐 대양의 포식자로 변신한 레비아탄이 이빨을 드러냈다.
―아직, 의사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인가? 상관없겠지. 내 말을 잘 들어라 포이사르돈이여.
레비아탄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왔다.
이제는 전속력으로 도망간다고 해도 레비아탄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