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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4화)
2. 대 괴수 레비아탄(2)
포이사르돈은 도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레비아탄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시작으로 레비아탄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이 지역을 지키며 살아왔다. 나는 백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만 년 전에도 똑같은 모습을 하며 이 바다를 지키고 있었지.
‘만 년이라고?’
어떻게 백상아리 따위의 어종이 만 년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레비아탄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포이사르돈이 믿든 안 믿든 그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전부터 나의 성장이 시작되었다. 만 년을 넘게 유지되어 오던 몸의 크기가 두 배로 커지고 이빨은 모두 새로 자라났다. 그리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변화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렇게 고도의 지능이 생겨나 다른 이에게 의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때의 일이지.
‘…….’
포이사르돈은 뒷말을 기다렸다.
―이게 다 너, 포이사르돈의 등장으로 인해 생기게 된 변화다. 나는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잊어버리고 있던 나의 사명을 너의 등장과 함께 깨달은 것이다. 알겠느냐? 나의 변화는 너로 인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
포이사르돈은 레비아탄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등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니?
그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레비아탄의 설명은 이어졌다.
―나는 알 수가 있다. 너는 포유류로 진화해 육지로 나가려 하겠지. 그리고 너의 진화의 최종 목표는 인간이 되는 것일 테고 말이야.
씨익.
그렇게 말하며 레비아탄이 그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섬뜩.
포이사르돈은 그 살벌한 모습에 몸을 떨었다.
―너의 생각대로 될 것이라 여긴다면 오산이다. 너는 인간으로 진화할 수가 없다.
쿵!
종환은 자신의 심장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런 환청이 들릴 정도로 레비아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다시 인간이 될 수가 없다니.’
―물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네가 심연의 바다를 뚫고 먼 훗날 나에게로 다시 찾아온다면 내가 네가 궁금해 하는 모든 의문들과…….
꿀꺽.
포이사르돈은 레비아탄의 뒷말을 기다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포이사르돈의 몸이 복잡한 감정의 파도로 인해 조금씩 떨려 왔다.
―나는 레비아탄! 포이사르돈이여! 더 성장하고 더 진화해서 나에게로 찾아와라. 이것이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크하하하하하!!
레비아탄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포이사르돈을 향해 한참 동안 웃어 보이다 그 거대한 몸을 이끌고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레비아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포이사르돈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레비아탄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청난 무력감과 실망감, 당황, 분노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자신에게 심어 주고 갔다는 것이다.
‘좋다, 레비아탄!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은 잠시 보류다. 네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중요하지 않다!’
쿠르르릉.
포이사르돈의 주위에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먹어치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종환, 또는 포이사르돈.
그가 누가 되었던 간에 그의 마음에 잔인한 심성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대해에 재앙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무려 3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시간 동안 포이사르돈은 레비아탄을 찾아가지도 불가사리 파르몬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그가 3년 동안 한 일은 그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사냥을 하며 스스로를 단련시킨 것이 다였다.
눈에 띄는 진화도 성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형적인 변화는 3년 전에 비해서 몸길이가 5미터 더 길어졌다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전과는 확연히 강해져 있었다.
우오오오오.
수장룡인 그의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포이사르돈은 3년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의 3년간의 연구는 헛되지 않아 이제는 필라크스나 파르몬 따위는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포이사르돈은 그들을 사냥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내 먹이가 된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들을 꺾어도 더 크고 강한 포식자들이 나의 길을 가로 막고 있을 거야. 이 바다는 그런 바다다.’
3년 동안 포이사르돈이 주목한 것은 덩치를 키우는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 질적인 성장이었다.
포이사르돈은 3년 간 인근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사냥과 탐색을 이어 나갔다.
‘분명히 강해질 방법이 있어. 진화를 통해서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노력을 통해서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이름을 가진 괴수인 필라크스나 파르몬을 사냥해 버리면 진화가 이루어져 버린다.
그렇게 되면 종환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를 미룬 채로 연구를 거듭해 나갔다.
그런 결과 변화가 생겨났다.
그의 얇은 외피가 더욱 두꺼워져 적의 공격을 받아도 쉽게 타격을 입지 않게 되었고 헤엄 속도가 시속 300킬로에 이를 정도로 빨라졌으며 그가 조절할 수 있는 해류의 범위가 더욱더 확대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과 관련된 행위를 함으로서 능력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좀 더 빨리 헤엄치기 위해 쉴 새 없이 헤엄쳤고 외피를 강화하기 위해 포식자들과 마구잡이로 싸웠으며 해류를 조절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실험을 해 보니 분노나 증오 같은 감정으로 해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포이사르돈은 알아낸 방법으로 훈련을 거듭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빨라졌고 그의 외피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리고 해류의 소용돌이를 발생시켜 쉽게 먹잇감을 기절시킬 수가 있었다.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주위로는 항상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했고 이동을 할 때에는 최고 속도로 이동했으며 포식자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겁내지 않았다.
‘이런 걸 진즉에 알았으면 플랑크톤 시절의 주요 능력인 소화나 헤엄 같은 것들을 향상시켜서 지금은 더 빠른 속도와 강한 위장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어.’
이전에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아마 그에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긴 지능이 없었는데 어떻게 훈련을 했겠어? 정신이 돌아온 지금부터라도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끌어 올리고 나서 진화를 시도한다!’
그런 생각으로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원하는 수준까지 힘을 끌어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까지 생각하면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그것은 바로.
‘에너지!’
그렇다.
포이사르돈은 자신의 몸 안에 차츰 쌓여 가는 무형의 에너지를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처음 수장룡으로 진화했을 때는 미미했던 에너지가 3년간의 활동으로 엄청나게 증가했다.
이전에는 손톱만 한 크기였다면 지금은 얼굴 크기만 해졌으니 크나큰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종환이 살던 동양권 나라에서는 기나 챠크라라고 불렸었고 서양권의 문헌에서는 마나라고 이름 지어졌었던 에너지!
마나가 포이사르돈의 거대한 몸에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진화로 인해 생겨난 마나가 아니다. 3년 간 바다에서 흡수한 물의 기운이 몸속에 쌓인 것이다.’
이를테면 물의 마나, 대해의 마나가 포이사르돈의 몸체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 마나를 받아들일 공간은 많이 남아 있어. 더 이상 마나가 쌓일 수 없을 때까지 마나를 쌓은 후에야 진화를 해야 하겠지.’
더 이상 포이사르돈이 되어 버린 종환의 목표가 진화가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이제.
‘강해지는 것! 저 시건방진 레비아탄 자식을 한 입에 씹어 버릴 정도로 강해지는 것! 그것이 내 목표다. 그 전까지는 방법을 알더라도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겠어.’
콰르르르.
포이사르돈의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바다는 한동안 소용돌이를 피하려는 어류들로 인해 소란이 일었다.
‘됐다!’
쿠르르릉, 쿠르릉.
바닥에 배를 깔고 누운 채로 몸속으로 대해의 마나를 흡수하던 종환의 감은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아홉 개의 해류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드디어, 몸속에 마나를 가득 채웠다!’
그가 가진 세 가지 능력은 벌써 3개월 전에 더 이상 끌어 올릴 곳이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올려 놓았다.
그의 헤엄 속도는 두 배 이상 빨라져 있었고 그의 강화된 외피는 백상아리의 이빨로도 흠집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게다가 오늘로써 마나가 몸 전체를 가득 채워 더 이상 수장룡인 에라스모사우르스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먼저 가까이 있는 필라크스를 사냥하고 파르몬을 집어삼킨다!’
그의 눈빛에 강한 살기가 일었다.
5차 진화가 있은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대왕 오징어 필라크스.
그는 반경 100킬로의 범위 안에서 적수가 없는 인근 해의 절대 강자였다.
몸의 길이가 35미터가 넘었고 가장 긴 촉수의 길이가 25미터나 되었다. 촉수에 달린 거대한 빨판으로 한 번 먹잇감을 잡아채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반경 30미터를 완전한 어둠으로 만들어 버리는 먹물에는 사실 행동이 느려지게 만드는 신경 독이 포함되어 있어 바다 속에서 그를 사냥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필라크스는 여느 때와 마찬 가지로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며 거대 가오리나 상어, 다랑어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샤라락, 탁!
“구오오오!”
몸길이가 6미터에 이르는 청상아리가 필라크스의 촉수에 붙잡혔다.
청상아리는 촉수를 떨쳐 내기 위해 발악을 해 댔지만 이내 필라크스가 뿌린 검은 먹물에 몸이 마비되어 얌전히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드득, 콰드득!
거대한 청상아리가 필라크스의 입속에서 박살이 나고 있었다.
주변으로 피 보라가 일었지만 주변을 가득 메운 먹물로 인해 티가 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될 정도로 잔인한 광경이었다.
콰드득, 꿀꺽!
먹물 속에서 안전하게 식사를 마친 필라크스가 만족해하며 이동을 하려는 찰나의 순간.
쿠르르릉, 쿠르릉!!
갑자기 발생한 해류의 소용돌이가 먹물을 흩어 버리며 필라크스를 뒤흔들었다.
“구오오오오오!!’
필라크스는 그의 주위에 발생한 9개의 소용돌이에 몸이 찢기는 고통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최대한 소용돌이에서 몸을 빼내기 위해 몸부림치던 필라크스는 보게 되었다.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붉은색 수장룡 한 마리를.
“크아아악!”
필라크스는 소용돌이에 저항하며 25미터에 이르는 촉수를 벼락같은 속도로 포이사르돈을 향해 뿌렸다.
이에 포이사르돈의 눈빛이 번뜩였다.
우오오오.
포이사르돈의 엄청난 속도에 물결이 후퇴하며 길을 비켰다.
콰르르릉.
그의 주위로 굉음이 발생했다.
휘릭.
포이사르돈을 향해 날아든 필라크스의 촉수.
콰르르릉.
필라크스의 촉수는 포이사르돈이 몸 주변에 발생시킨 난류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방향을 잃었다.
구오오오!
이에 당황한 필라크스는 최후의 방어 수단인 먹물을 분사했다.
그러자 반경 30미터의 지역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콰르릉.
그러나 포이사르돈은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도를 높여 필라크스의 먹물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변을 가린 검은 먹물.
필라크스의 모습도 포이사르돈의 모습도 먹물에 가려 보이지가 않았다.
먹물 안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소리뿐.
콰드득, 콰득!!
날카로운 이빨로 무언가를 씹어 대는 괴기스러운 소리가 먹물 속에서 들려왔다.
크아아아악!
그리고 들려온 고통에 찬 비명 소리!
콰드득, 콰득. 콰드득!
“크아악!”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비명 소리는 10분이 지나자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이빨이 살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만이 1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콰드득, 콰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