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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5화)
2. 대 괴수 레비아탄(3)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은 요즘 들어서 헤엄을 쳐서 덩치가 큰 물고기들을 사냥하는 방법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몸이 커져 나갈수록 에너지 소모가 심한 사냥 방법에 부담을 가진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파르몬은 새로운 사냥 방법으로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사냥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드드드드드득!!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동쪽의 바다 속, 직경의 길이가 35미터에 이르는 거대 불가사리 파르몬이 바다 속에 지진을 일으키며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인 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바닥을 훑으며 지나가는 파르몬은 너무나도 확실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가 지나간 곳에는 조개며 해초며 그사이에 서식하던 물고기든 돌이든 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황색 모레만이 주변의 시야를 흐리며 피어오를 뿐.
파르몬의 몸 중앙에 있는 입이 마치 진공청소기 같이 바닥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드드드드득!
파르몬의 강력한 흡입력에 또다시 바닥의 지면이 솟구치며 지진이 발생했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에 지능이 조금이라도 있는 수중동물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몸을 이동시킬 수 없거나 파르몬의 접근 속도보다 느린 편인 조개와 플랑크톤, 해초들만이 파르몬의 진로 앞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파르몬은 자신의 사냥 방법에 매우 만족했다.
힘이 들지도 않았고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가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몸을 키워 그가 그렇게나 바라던 심해를 향해 이동할 생각이었다.
조금만 더 몸을 키운다면 심해로 향하는 남쪽을 막고 있는 대왕 오징어, 필라크스를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구오오오!
파르몬은 자신의 라이벌인 필라크스를 생각하며 괴성을 질렀다.
이제 곧 죽이러 가겠다는 선전 포고와도 같은 울부짖음!
파르몬은 필라크스를 죽인 후에 애송이 같은 포이사르돈을 죽여 레비아탄이 사라진 주변의 바다를 장악하고 심해로 영역을 확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너무나도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창 장미 빛 미래를 꿈꾸며 식사를 하고 있던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존재가 있었다.
그 강력한 기세에 파르몬이 식사를 멈추고 전방을 주시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존재.
자신이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인 적이 있었던 애송이 포이사르돈이 바다를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다르다! 예전의 애송이 놈과 확실히 틀려!’
오랜만에 마주하는 포이사르돈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40미터가 넘는 몸길이에 레비아탄을 보는 것 같은 지독한 살기를 흘리는 저 모습은 파르몬이 알던 포이사르돈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위협적인 모습에 파르몬은 앞, 뒤 가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결정했다.
왠지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이 공격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웅!
별 모양으로 펼쳐져 있던 파르몬의 몸이 바짝 모여들며 포이사르돈을 향해 솟구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마치 사람이 주먹을 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콰아아앙! 쌔애애애앵!
파르몬이 도약했다.
그가 서 있던 바닥이 엉망진창으로 부서지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파르몬의 모습이 발견된 것은 포이사르돈의 코앞!
눈 깜짝할 사이에 목표물에 도달한 파르몬의 다섯 개의 팔들이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 그의 두꺼운 팔들이 순식간에 포이사르돈을 감싸 버렸다.
콰직!
파르몬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이사르돈의 몸에 이빨을 박아 마비 독을 흘러 넣었다.
이 모든 과정이 1초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동작이었다.
항상 속전속결로 적들을 쓰러뜨려온 파르몬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역시 애송이에 불과했어.’
파르몬은 괜히 긴장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먹이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 거대한 입을 최대한 벌렸다.
그오오오오.
그때까지 포이사르돈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파르몬은 당연히 마비 독으로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것이 아니었다.
파르몬의 마비 독은 포이사르돈에게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파르몬의 날카로운 이빨은 포이사르돈의 두꺼운 외피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빨이 약 10센티 정도 외피에 박히기는 했지만 포이사르돈의 외피는 그보다도 훨씬 두꺼웠다.
이빨이 몸속을 파고들지 못했으니 마비 독이 작용할 리가 없었다.
포이사르돈은 파르몬의 이빨이 자신의 외피를 뚫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에게 붙잡혔다.
이렇게 파르몬이 입을 벌릴 때를 노린 것이다.
쿠르릉, 쿠르릉!!
구오아아아오!
포이사르돈이 발생시킨 강력한 해류의 소용돌이가 파르몬의 입을 통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내장이며 팔이며 모든 것을 분리시켜 버렸다.
파르몬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나와 바닷물에 섞여 들어갔지만 혈액의 색깔이 투명했기에 얼마나 많은 피가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크오오오!!
단지 그의 끔찍한 비명 소리로 그 양을 추측할 뿐이었다.
포이사르돈은 몇 번의 공격으로 십삼 등분으로 나뉘어진 파르몬의 몸뚱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박살이 나도 재생이 가능하겠지. 재생할 시간 없이 단숨에 씹어 삼켜 주마!’
포이사르돈은 파르몬이 조각난 부위에서 재생하지 못하도록 빠른 속도로 그의 분리된 몸뚱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구오오오오오.
주변의 바다가 격동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예상대로 필라크스와 파르몬을 모두 먹어치우자 여섯 번째 진화가 시작되었다.
레비아탄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포이사르돈은 망설이지 않고 포유류로 진화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포이사르돈은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을 레비아탄을 죽인 후로 미루었기에 굳이 힘이 약화를 가져올 포유류로 진화할 이유가 없었다.
츠츠츠츳.
그의 얼굴을 시작으로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왜 이런 진화를 겪어야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오오오오옹.
주변으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진화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로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다.’
퍽, 퍽, 퍽!
주변에 존재하던 작은 생명체들이 포이사르돈 주위에 발생하는 강력한 힘을 견뎌 내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더욱 강하고 더욱 거대하게. 내가 알고 있던 종류의 생명체가 아닌, 더욱 강력한 생명체로 진화하겠다!’
쩌저저적.
그의 몸이 갈라지고 있었다.
‘전설, 전설에서나 등장하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쯔각, 퍼석.
기다란 목이 부서져 나가며 목 아래의 몸뚱이가 저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양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태어나겠다.’
이제는 머리만 남은 포이사르돈.
‘나는 결정했다!’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지며 얼굴 전체에 자리 잡은 균열이 커져 갈 때쯤.
‘내가 진화하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모습을 가진 생명체.’
퍼석!
그의 얼굴마저 부서져 버렸다.
‘나는 수룡의 모습으로 진화하겠어!!’
포이사르돈의 거대한 몸을 지배하던 종환의 자아가 심연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 바다의 제왕들(1)
종환은 꿈을 꾸고 있었다.
드넓은 대양을 여유롭게 유영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움에 미소 지었다.
꿈인 것을 알았기에 깨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이 꿈을 붙잡아 더 오랜 시간 편안함을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는 되지 않았다.
우오오오오오오!
언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맹수의 울음소리가 종환의 평화를 깨 버린 것이다.
하지만 종환은 예전과 같이 겁내지는 않았다.
종환은 기다렸다.
그오오오오오오오오오!!
또 다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폐부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소름끼치는 울부짖음이었지만 종환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번쩍!
드디어 종환의 눈앞에 두 개의 핏빛 눈동자가 생겨났다.
여전히 강인하고 살기 넘치는 무서운 눈동자였지만 종환은 이번에는 떨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는 나이기 때문이지.
그랬다.
종환의 무의식 세계로 찾아와 그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괴물의 정체는 바로 종환 그 자신이었다.
아니 종환의 모습이 아니라 진화한 포이사르돈의 모습, 즉 수룡 포스에돈의 모습인 것이다.
거대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종환의 모습은 핏빛 눈동자 가득 살기를 담고 있는 괴수의 거울 이면의 모습이었다.
―가자, 수룡이여!
종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핏빛 눈동자를 향해 그렇게 말한 후에 심연의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의식 세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거대 괴수, 수룡 포스에돈은 창날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한차례 웃어 보인 후 종환을 따라 의식 세계로 올라갔다.
번쩍.
포이사르돈, 아니 수룡으로 진화한 포스에돈의 눈이 뜨여졌다.
그가 눈을 뜨자 자유롭게 헤엄치던 주변의 어류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뿐만 아니라 해류의 움직임마저 멎어 버렸다.
포스에돈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하늘을 향해 길게 펴 보았다.
100미터 넘는 수심인데도 불구하고 꼬리가 해저에 닿은 상태로 머리가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실로 어마어마한 크기!
몸길이는 120미터에 이르고 몸 두께가 25미터 이르는 정말이지 거대한 바다의 괴수, 포스에돈.
포이사르돈은 포스에돈으로 진화하는 순간 자신이 동해 바다의 제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권능이 동해 바다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고 동해의 모든 바다 생명체들이 그를 향해 길을 비켰다.
기존의 생물 분류에는 속하지 않은 수룡이라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종환, 아니 포스에돈은 가장 먼저 자신의 능력들을 점검해 보았다.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를 이룩함으로 어떠한 능력들이 생겨났는지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먼저 외적으로는 단단한 이빨과 철처럼 경도 높은 외피가 생겼다.
바닷물을 마셔 그 속에 들어 있는 산소와 질소를 분리해 호흡하는 해수 호흡이라는 기능으로 인해 이제는 해수면 밖으로 나가서 공기를 들이마실 필요가 없어졌다.
해류 조절 기능은 해류 조정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1,000미터가 넘는 심해를 잠수할 때 압력을 이겨낼 수 있는 심해 잠수라는 기능도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해저지진과 해일 생성.
해저의 땅을 충돌시켜 지진을 일으키고 이를 이용하여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 내는 능력,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