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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2화)
5. 일곱 번째 진화(2)
종환은 동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종환 혼자서 바다를 노닐던 꿈을 꾸었지만 지금은 그의 곁에 포스에돈이 함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악몽같이 느껴지는 그의 거대한 이빨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지어 보이고 있었다.
―포스에돈, 이번으로 끝이 날까?
종환이 포스에돈을 향해 물었다.
그의 물음에 포스에돈은 헤엄치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진화 말이냐? 더 강한 존재가 될 수가 있다면 나는 진화를 멈추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의 대답에 종환이 따라 웃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너에게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답이야. 나는…….
종환이 말을 끌었다.
그러자 포스에돈의 거대한 얼굴이 종환을 향해 돌려졌다.
―나는 말이야. 끝을 향해 거의 다가왔다고 느끼고 있어. 우리의 진화를 통한 여정도 이제 거의 종착점에 다가와 있다는 말이지.
종환의 말에 포스에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빠르게 헤엄치고 있는 그의 시야에 그의 이성을 빼앗아 버린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너!! 너 레비아탄!!
그것은 바로 포이사르돈 시절의 자신을 조롱하고 심해로 떠나갔던 백상아리, 레비아탄이었다.
쿠오오오오오!!
포스에돈의 몸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레비아탄을 향해 음속을 돌파해 쏘아졌다.
―죽인다!!
빠르게 나아가는 포스에돈이었지만 유유히 헤엄쳐 나가는 레비아탄을 쫓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레비아탄의 모습이 더욱 멀어지고 있었다.
―심해로, 심해로 오너라.
레비아탄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렇게 말을 하고는 사라져 갔다.
―거기 서라!! 인간, 어서!!
빠른 속도로 레비아탄을 쫓던 포스에돈이 종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쿠오오오오오!!
종환은 재빨리 속도를 높여 음속의 속도로 헤엄치고 있는 포스에돈의 옆으로 따라 붙었다.
―이번에야말로 놈을 끝낸다!
―물론이지.
포스에돈의 말에 종환이 답했다.
종환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포스에돈이 작게 웃어 보였다.
―먼저 놈을 잡으러 가 있겠다. 따라와라!
쿠오오오오오오오오!
그 말을 뒤로하고 포스에돈의 모습이 더욱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의 몸이 전진함에 따라 바다가 갈라지고 해류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종환은 멀어지는 포스에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서서히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번쩍.
포스에돈의 눈이 뜨여졌다.
그가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자 남해의 모든 생물들이 호흡을 멈추었다.
뿐만 아니라 멀리 동해와 북해의 바다도 정적에 휩싸였다.
포스에돈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거대하고 강력해진 자신의 신체가 눈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진화를 통해 얻은 새로운 권능들이 그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무호흡, 해수 조정, 절대 냉점, 냉기 이동, 얼음 장막, 풍력 조절, 번개 생성, 태풍 생성, 거대 해일, 해저화산, 비행 능력, 플라즈마 등 엄청난 능력들이 새로이 생겨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
자신이 동해의 제왕을 뛰어넘어 동해, 북해, 남해를 아우르는 대해의 제왕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스에돈, 아니 이제 대해의 제왕이 된 포세이돈은 빠르게 뛰는 심장의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동해라는 한 해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대해의 절대자가 된 것이 아닌가.
절대자 말이다!
더불어서 단세포 생물인 플랑크톤에서 시작해서 이룩한 최고의 진화 형태, 해룡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제 그는 대해의 절대자이며 그 누구도 겁낼 필요가 없는 바다 속의 최강자인 것이다.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하!!
그, 포세이돈의 입이 벌어지며 폐부에서부터 시작된 통렬한 웃음소리가 전 해역에 울려 퍼졌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바야흐로 대해의 제왕, 포세이돈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형 탐험용 범선이 가이아 대륙을 떠나 해가지는 방향인 서쪽을 향해 항해 중에 있었다.
“좌현, 앞으로 10.”
“좌현, 앞으오 10!”
조타수가 선장의 지시에 따라 키를 돌렸다.
범선, 트리니다는 해상 강국인 에스카다 왕국에서 가장 유명한 범선 중에 하나였다. 왜냐하면 트리니다 호의 선장이 저 유명한 항해 모험가, 페르디난드 마에스터였기 때문이었다.
페르디난드 마에스터.
남들보다 한 뼘은 더 큰 키에 기골이 장대하고 갈색 수염을 근사하게 길러 내린 남자.
녹색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는 남자, 그가 바로 마에스터였다.
그는 가이아 대륙의 북쪽에서 남쪽을 잇는 항해로를 개척한 인물로서 포루투 왕국에서 망명한 이후에 에스카다 왕국에 막대한 이익과 더불어서 국가의 명예를 드높여 준 인물이었다.
그가 발견한 고대 문명의 문화제가 수십 개에 이르렀고 가이아 대륙의 최 남부에서 동쪽을 이어 주는 교역로를 개척한 것도 바로 그가 한 일이었다.
그는 에스카다 왕국을 넘어 전 세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위대한 모험가이자 항해가, 그리고 뛰어난 무역가였다.
남부러울 것이 없이 모든 것을 손에 얻은 마에스터이지만 그는 사실 엄청난 공허함 속에서 반평생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만의 비밀.
그것은 바로.
“서쪽 바다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미지의 바다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무서운 바다 괴물들?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바다 기후? 정말로 세상의 끝이 서쪽 바다 끝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마에스터는 마지막 말을 끌며 평소에 그가 그렇게 꿈꾸고 바라고 갈망하던 존재의 이름을 속삭였다.
“신대륙?”
마에스터는 부와 명예가 더해 갈수록 서쪽 바다의 끝에 존재하고 있을 신대륙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져 갔다.
“신대륙, 신대륙은 반드시 있다!! 내가 신대륙을 찾아내겠어!”
그는 나이 40이 넘어 신대륙으로 출발하는 선단을 꾸리기 위해 에스카다 왕국의 국왕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뭐라고?! 서쪽 바다? 경은 지금 제정신인가? 그곳이 가이아 대륙 전체의 금역이라는 것을 잊었는가? 절대 안 되네. 절대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이네!!”
마에스터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국이었던 포루투 왕국의 국왕을 찾아갔다.
“조국을 버릴 때는 언제고 그 따위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를 들고 와서 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가? 신대륙? 썩 꺼지게!”
마에스터는 그 외에 해상 국가들을 찾아다니며 후원자를 찾았지만 서쪽 바다를 탐험하려는 자신을 후원해 주는 후원자는 아무도 없었다.
“좋다! 후원자가 없다면 내 스스로가 후원자가 되겠다!”
마에스터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대형 선단을 꾸렸다.
그의 기함인 트리니다를 제외한 4척의 대형 범선을 더 매입했다. 그리고 선원들을 모았다.
“서쪽 해역의 신항로를 개척할 것이다. 용기 있는 선원들은 모두 모여라!”
하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도 모이지 않았다.
“누가 서쪽 바다로 항해를 한단 말이야? 자살행위야.”
“마에스터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구만, 서쪽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항해자인 그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 많은 바다 괴물들과 예측할 수 없는 바다 기후를 어떻게 뚫고 지나간다는 말이야?”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어. 마에스터도 결국 실패할 거야.”
마에스터에게 돌아온 말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10년여의 시간을 같이 바다를 항해할 선원들을 모집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산처럼 쌓여 있던 그의 재산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페르디난도 마에스터. 나는 말이야, 개인적으로 서쪽 바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항상 궁금해했다네. 내가 배 한 척을 항해할 선원들을 모아 줄 테니 자네가 서해 바다의 비밀을 밝히고 오게나. 신대륙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란 말이야!”
이렇게 마에스터에게 손을 내민 자.
그는 가이아 대륙 전체에 자신의 세력을 형성시킨 굴지의 가문, 토레스 가문의 수장이었다.
“반드시, 반드시 알아 오겠습니다!”
마에스터는 기뻤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서해 바다를 향한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토레스가 구해 준 선원들이 중범죄를 저질러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흉악범들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서쪽을 향한 항해 자체만으로도 새 삶을 얻은 듯 에너지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래, 나는 해낸다. 이 마에스터가 서쪽 항로를 개척하겠어!”
그렇게 범죄자 출신 선원들과 서쪽으로 항해한 지 사흘 째 되는 해질녘 무렵.
“캡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배를 돌리시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 없는 범죄자들이지만 서쪽 바다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에스카다 왕국으로 돌아가서 감옥에 처박힌다고 하더라도 바다 괴물들의 한 끼 식사가 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선원들이 마에스터를 향해 따지고 들었다.
“우리는 죽기 싫소! 어서 배를 돌리시오.”
“그래, 배를 돌려! 차라리 모국으로 돌아가 사형을 당하더라도 바다 위에서 죽고 싶지는 않아!”
“배를 돌려!”
“키를 돌려라!”
한, 두 명의 선원이 들고 일어나자 순식간에 수많은 선원들이 합류해 조금만 지나면 반란이 일어날 분위기였다.
마에스터는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모두들 들으시게!! 서쪽 바다는 위험하지 않아. 바다 괴물들은 수백, 수천 년 전부터 내려져 오는 전설일 뿐, 누구도 괴물의 실체를 목격하지 못했어! 그것은 어부들이 지어낸 전설일 뿐이야!”
마에스터가 이렇게 외치자 선원 중에서 덩치가 커다란 선원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종잡을 수 없는 바다의 날씨는 어떻게 극복할 거요!! 벌써 사흘 동안 미친 듯이 변덕을 부리는 바다를 보았는데 서쪽 바다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더 힘들어지지 않겠소?!”
“맞는 말이다!”
“옳소!”
“배를 돌려라!”
덩치 큰 선원의 말에 다른 선원들이 동의하며 그의 말을 지지하고 나섰다.
꿀꺽.
마에스터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것은 모두 예측한 상황이었네. 나는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항해자이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모두 이겨낼 수가 있다는 말이야! 신대륙은 존재하네! 서쪽 바다의 와전된 전설은 모두 겁쟁이들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야! 우리는 신대륙으로 갈 수가 있다는 말이야!!”
마에스터의 진심이 담긴 웅변에 선원들의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그것을 눈치챈 덩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그 모든 전설이 거짓이라고 칩시다. 그리고 신대륙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우리 선원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서쪽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한 모든 공은 모두 당신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항해를 마치는 순간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래!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뭐야?”
“귀족들 배나 채워 주고 싶지는 않아!”
마에스터는 덩치 큰 선원의 말과 그에 동조하는 다른 선원들의 말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사실 흉악범들로 이루어진 선원들이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대응 방안도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