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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3화)
5. 일곱 번째 진화(3)
“신대륙을 발견하고 항로를 개척하면 자네들은 모두 석방시켜 준다고 약속받았네. 비록 자네들의 모국에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각, 각 일인당 100골드의 돈을 약속하겠네. 그 돈을 가지고 신대륙에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이네!!”
마에스터의 말에 선원들이 웅성거렸다.
마음이 혹한 것이다.
덩치 큰 선원도 이번에는 마음이 흔들렸는지 재차 물었다.
“그… 그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지 어떻게 아냔 말입니다.”
마에스터는 웃으며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대륙에서 가장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문인 토레스 가문의 수장이 약속한 일이네. 이 증서를 보게. 신대륙을 발견하는 조건으로 자네 모두를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 준다는 증서이네!”
마에스터는 손가락으로 서찰의 오른쪽 아래에 찍혀 있는 토레스 가문의 직인을 한 번 가리킨 후에 그것을 덩치 큰 선원에게 넘겨주었다.
덩치 큰 선원이 서찰을 받아 들자 주변의 모든 선원들이 그에게 몰려들며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려 들었다.
“뭐야? 정말이야?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이봐, 뭐라고 적혀 있어? 선장의 말이 맞는 거야?”
“나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고 좀 소리 내어 읽어 주게!”
선원들의 말에 덩치 큰 선원이 서찰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해 주었다.
“…신대륙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된다는 토레스 공작의 친필 증서야. 일인당 100골드를 가지고 신대륙에 정착하게 해 준다는 내용이야…….”
“정말이란 말이야?!”
“우리를 풀어 준다고?”
“뭐라고? 사형수인 나도 풀려난단 말이야?!”
모든 선원들이 들떠서 소리를 질러 댔다.
덩치 큰 선원이 떨떠름한 얼굴로 마에스터를 바라보았다.
마에스터는 담담한 얼굴로 그를 마주보며 말했다.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우리는 서쪽 바다로, 신대륙을 향해 항해할 것이네.”
그의 말에 모든 선원들이 흩어졌다.
포스에돈에서 포세이돈으로 진화를 이룩한 지 30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포세이돈은 자신의 해역을 오가며 엉망이 된 북해와 남해를 정비하는 한편, 새로 생긴 권능을 연마하고 더욱 커진 몸을 채워 넣기 위한 마나를 모았다.
사실 포세이돈은 북해와 남해를 내버려 두려 했지만 자신의 영향권 아래의 바다가 무너지면 힘의 근원이 사라져 그 특유의 권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찮은 일이지만 작업을 시작했다.
―성가신 일이야. 죽어서도 귀찮게 하는 돌고래, 조류 녀석!
하티카탄의 얼음의 권능과 비달가라의 하늘의 권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권능을 잃게 되면 심해의 수문장인 모비딕을 꺾고 심해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포세이돈의 모습으로 진화하고 나서도 심해로 들어갈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모비딕 때문이 아닌가?
―놈이 그렇게 강할 줄이야. 빌어먹을 흰 고래 자식!
포세이돈은 진화를 이룩하고 나서 곧바로 모비딕을 꺾기 위해 심해의 입구로 찾아갔지만 그에게 돌아온 말은 100년 전과 똑같았다.
―너는 심해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이에 발끈한 포세이돈이 모비딕을 향해 맹렬히 공격을 퍼부었지만 바다와 하늘, 그리고 빙하를 다루는 권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비딕을 이길 수가 없었다.
물론 포스에돈의 모습일 때보다 더 오래, 더 치열하게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 모비딕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자 정신을 잃고 동해로 보내어졌다.
포세이돈은 그 후로 능력들을 갈고 닦으며 거대한 몸속에 방대한 양의 마나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300년.
급한 성격을 가진 포세이돈에게는 너무나도 긴 세월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지금이라도 당장 그 흰 고래 자식을!!
쿠르르르르릉, 쩌저저적!! 콰지지직, 번쩍!
그가 분노하자 해저에 지진에 발생하며 해수면 위에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고 해일이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빙하가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모여든 먹구름 사이에서 천둥, 번개가 생성되고 변화된 기압으로 인해 태풍이 생성되었다.
―이러다가 어렵게 회복시킨 바다가 다시 엉망이 되겠구나.
포세이돈은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바다가 죄다 파괴되는 것은 걱정되지 않지만 파괴된 바다를 회복시키는 것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비딕의 공격 패턴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놈을 이길 방법이 있을 리가 없어. 놈은 나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했지 마땅한 공격을 보여 준 게 없지 않은가. 놈의 공격 방법은 몸이 번쩍하더니 내가 기절해 있는 상황, 그게 다야. 놈이 어떻게 나를 쓰러뜨리는지 다른 공격 방법이나 권능은 뭐가 있는지 정보가 전혀 없는 지금, 이 상태로는 놈을 꺾을 방안 자체가 나올 수가 없어.
포세이돈은 모비딕에 대해 이렇게 결론지었지만 자신이 내린 결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도를 닦고 있어야 된단 말이야? 이러다가는 레비아탄 놈의 지느러미도 구경하지 못하고 내가 수명이 다되어 죽어 버릴 지경이야!
쿠르르르릉, 콰지지직!
그가 흥분하자 다시 바다가 혼란에 빠졌다.
작은 바다 생물에서부터 크기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생명체들이 포세이돈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숨이 멎어 갔다.
―제길!
포세이돈은 이번에는 화를 가라앉히지 않았다.
쿠오오오오오오!!
화나고 답답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빠르게 헤엄쳐 나갈 뿐,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다.
이 커다란 대해가 자신의 영역인데 목적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포세이돈의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크하하하하하! 그래, 오랜만에 하늘이나 날면서 흰 고래 자식을 꺾을 방법을 연구해 보자!
그의 입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와 동해 바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마에스터의 트리니다 호가 서쪽을 향해 항해를 시작한지 1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6. 신화의 시작(1)
트리니다 호는 순항 중에 있었다.
수많은 바다 괴물들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알려진 서해 바다는 처음 3일간만 날씨와 해류로 고생을 해서 그렇지 그 후로는 순풍을 받아 잘 나아가고 있었다.
바다 괴물의 존재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트리니다 호의 선원들은 정말로 선장의 말이 옳다고 믿게 되었다.
“이거 뭐, 전설 같은 거 믿을 게 못 되는데?”
“그러게 말이야. 바다가 이렇게나 고요한데 무슨 놈의 괴물이 나온다는 거야?”
“크크크크, 그게 다 항해가들과 어부들이 작당하고 지어낸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말이지.”
선원들은 선측(배의 양옆 부분)에 기대어 파도한 점 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지 않나? 카론?”
대화를 나누던 세 명의 선원 중에 하나가 한쪽에서 홋줄(선박에서 사용하는 두꺼운 밧줄)을 정리하는 덩치 큰 선원, 카론을 향해 말했다.
디미트리 카론.
그는 일주일 전, 마에스터와 선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선원들의 앞에 나서 마에스터와 논쟁을 벌였던 그 덩치 큰 선원이었다. 그는 사형수로서 한 달 후에 있을 공개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였지만 이렇게 마에스터의 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죄목은 해상강도, 살인, 방화, 강간, 살인 교사, 폭행, 반국가 행위 등 이로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사실 그는 가이아 대륙의 서쪽, 삼각 해역의 절대자라 불리는 해적이었다.
해적 함대에 보유 중인 전투 선박만 50척이 넘는 막강한 전력을 가진 그가 해군의 함정에 빠져 붙잡혀 버린 것이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카론은 토레스가에 의해 에스카다 왕국으로 이송되어 이렇게 트리니다 호의 선원이 된 것이다.
가이아 대륙의 서쪽 해역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의 수장인 그가 서쪽 바다의 무서움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실제로 해군들을 피해 서해 바다로 함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기함을 제외한 모든 배와 부하들을 잃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에게 서해 바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지옥이자 금역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마에스터에게 항명하고 나섰던 것인데 명분이 없었다.
사형수인 그가 대륙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사형은 면할 수가 없는 것.
그렇다면 잠자코 마에스터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바다, 이 서해 바다에서는 들어온 순간 마음대로 나갈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벌써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어.’
마에스터를 죽여 버리고 배를 장악해 가이아 대륙에서 자신을 알지 못하는 미지의 국가로 숨어 들어가 정착을 할까, 아니면 저 머나먼 남쪽 대륙 시에라온에서 해적 생활을 이어 나갈까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무작정 동쪽으로 간다고 가이아 대륙에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해 바다의 해류는 인간의 힘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것!’
카론은 해군들에게 쫓겨 처음 서해 바다로 들어왔을 때 바다를 겁내 자신들을 따라오지 않는 해군들을 비웃었었다.
“하하하하! 저 겁쟁이 같은 해군 놈들! 이제부터 서해의 제왕은 나, 카론이다!”
그렇게 호기롭게 서해 바다로 들어섰던 그였는데.
“캡틴! 갑자기 빙하가 생겨났습니다. 함선 3척이 바다 속에서 떠오른 빙하에 부딪혀 박살이 났습니다.”
기온이 25도가 넘는데 빙하라니?
“캡틴! 해류가 이상합니다. 타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바다가 이렇게 잠잠한데 해류가 이상하다니?
“캡틴! 태풍입니다. 서쪽을 보십시오. 태풍이 밀려옵니다!”
구름한 점 없는데 태풍이 오고 있다니?
“캡틴! 눈입니다. 주먹만 한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태양이 저리도 쨍쨍한데 눈이 내린다니?
카론은 사흘 만에 30여 척의 배와 부하들을 잃고 황급히 대륙을 향하여 타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서해 바다의 악몽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캡틴! 배들이 이상합니다. 배가, 배가 뒤로 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순풍인데 배가 후진을 하다니?!
갑작스레 발생한 이상 해류로 인해 기함을 제외한 모든 배를 잃어야만 했다.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기함만이 간신히 이상해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나마 물이 새고 돛(범선에서 배를 움직이게끔 바람을 받아 주는 역할을 함)이 찢어져 너덜너덜해졌고 닻(앵카라고 불리 우며 배를 정박시키기 위해 바다 속으로 내리는 거대한 쇳덩어리, 보통 해군의 심벌로 앵카를 쓴다.)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카론! 너를 반국가 행위, 살인, 살인 교사, 방화, 약탈, 강도……. 기타 등등의 이유로 체포한다.”
결국에는 자신을 서해로 몰아넣은 것이 해군들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해군들은 자신을 죽음의 바다로 내몰았고 운이 좋아 살아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손에 자신의 신변이 넘어가 버렸다.
카론은 과거의 기억에서 깨어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선원에게 나직이 말하고는 승조원 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바다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야.”
그가 승조원실로 들어가며 남긴 말은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