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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4화)
6. 신화의 시작(2)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선수(배의 앞머리 부분)에서 바닥을 청소하던 선원 한 명이 잠시 허리를 펴기 위해 상체를 들었을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니, 뭐야?”
촤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은 거대한 무언가가 저 멀리 바다 속에서 해수면을 향해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의 정체는.
“얼음?!”
얼음, 아니 거대한 빙하가 떠오른 것이다.
거리가 5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기상이 좋아 멀리서 솟구친 빙하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또 하나의 빙하가 떠올랐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또 하나.
계속해서 전방의 바다에서 빙하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선원은 몸을 돌렸다.
“견시(배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의 선박이나 해수면 위의 이상 표적을 확인하는 당직자)!! 견시는 뭐하고 있는 거야? 전방에 빙하가 나타났다! 빙하가 나타났다!!”
선원은 큰 소리로 외치며 황급히 선교(배에서 선장이나 항해장교가 머물며 조함을 하는 선실 내의 장소)를 향해 뛰어갔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낮잠을 자거나 훌라나 포카 따위의 카드 게임을 하던 선원들이 하나, 둘 배의 외부로 걸어 나왔다.
“무슨 헛소리야?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빙하라니? 어떤 자식이야?”
“항해를 오래하면 항해 병에 걸린다고 하더니, 이거…… 아니 저게 뭐야?”
밖으로 나와 헛소리를 외친 주인공을 잡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선원들은 전방에서 떠오르고 있는 거대한 빙하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무슨 미친……!”
“말도 안 되는 지금은 6월이잖아? 무슨 빙하가…….”
“선장에게 알려야 해! 배를 멈춰야 해!”
선원들은 서둘러 계단을 뛰어 올라가 선교의 문을 열었다.
“캡틴! 전방에 빙하가!”
선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선교에서 전방을 향해 뚫려 있는 거대한 창을 통해 망원경으로 빙하를 살피고 있는 마에스터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옆에는 선수에서 청소를 하던 선원과 카론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지금, 당장 돛을 내려라!”
“네, 캡틴!”
두두두두두.
선장의 말에 서둘러 선교로 올라왔던 선원들이 빠른 속도로 선교에서 내려가 배에 달린 세 개의 돛을 내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땡, 땡, 땡!
배 전체에 비상 상황을 알리는 종소리가 세 번 울렸다.
그 소리에 벗어 두었던 옷을 막 걸치며 나온 선원들이 전방의 거대한 빙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이미 돛을 내리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선원들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마에스터는 돛이 전부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닻을 내려라!!”
“네, 캡틴!!”
돛을 내려 속도가 떨어지자 곧 선미(배의 꼬리 부분)의 아랫부분에 매달려 있던 닻이 해수면을 향해 떨어졌다.
트리니다 호는 모험용 선박으로 득수 제작된 범선인지라 선수와 선미 모두에 닻이 달려 있었지만 전진 속도를 줄이기 위해 선미의 닻을 내린 것이다.
촤아아악!
주변으로 물보라를 튀기며 바다 속으로 떨어진 닻으로 인해 트리니다 호가 바다 위에 멈춰 섰다.
빙하와의 거리를 약 1킬로미터를 앞에 두고서였다.
“대체 저게 뭐야?”
“빙하잖아, 보면 몰라?”
“누가 그걸 몰라? 이 날씨에 저게 어디서 떠내려 온 거야?”
“바다 속에서 떠올랐다는데?”
“뭐라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건 내가…….”
선수에 많은 수의 선원들이 모여 전방에 나타난 다수의 빙하를 바라보며 서로의 의견을 뱉어냈다.
마에스터와 카론은 선교에서 내려와 선원들이 모여 있는 선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선원들을 헤치고 선수의 가장 앞쪽으로 나가 빙하의 모습을 살폈다.
“대체 이게 무슨…….”
마에스터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빙하란 말인가?
빙하가 존재하는 북해는 이곳과는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먼 바다였다.
이곳 서해 바다에 빙하가 떠내려왔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턱.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마에스터의 어깨에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얹어졌다.
마에스터가 고개를 돌리자 얼굴에 잔뜩 땀을 흘리는 카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선장! 기분이 좋지 않소.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만 카론의 충고는 벌써 늦은 것이었다.
“캡틴! 바다가 얼어붙습니다! 좌현, 좌현이에요!”
쩌저적, 쩌적!
트리니다 호의 좌측부터 시작해서 인근의 바다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좌현 현측에 손을 올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에스터의 얼굴에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젠장!”
카론은 얼어붙고 있는 바다를 보고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가장 가까운 무기 저장고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저게 뭐야?!”
누군가가 배의 좌현에서 조금 떨어진, 얼어붙은 바다 아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니?!”
그것은 바로.
쿠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아앙!!
얼어붙은 해수면을 뚫고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거대한 바다의 괴수, 대해의 제왕이라 불리는 포세이돈의 머리였다.
한참 동안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포세이돈!
“커헉!”
“억!”
그의 포효 소리에 심장이 약한 선원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털썩!
기절하지 않은 선원들은 침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에스터는 무너지려는 무릎을 간신히 바로하고는 포세이돈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부숴 버릴 듯한 그의 포효가 멈췄다.
크르르르르르!
그리고 그의 고개가 돌려졌다.
조금씩, 조금씩, 트리니다 호의 선수를 향해 돌려지는 포세이돈의 거대한 얼굴, 그리고 그 속에서 피보다 붉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
“……!!”
마에스터는 포세이돈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덜덜덜덜.
그의 온몸이 떨려왔다.
마에스터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몸이 단 1미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피가 마르고 심장이 멈췄다.
“끄…억…….”
숨을 쉴 수가 없어 마에스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벌컥!
그때 커다란 작살과 투창을 잔뜩 들고 무기 저장고의 문을 박차고 나온 카론으로 인해 정적이 깨어졌다.
“헉!!”
툭, 투둑.
카론이 들고 있던 작살이며 투창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포세이돈의 눈동자 속의 동공이 주시하던 대상이 마에스터에게서 카론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털썩.
포세이돈의 눈빛에서 벗어난 마에스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덜덜덜덜.
카론도 바닥에 주저앉으며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눈꺼풀조차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공포감에 휩싸인 카론.
그에게 지옥에서나 들릴 법한 무서운 음성이 귀가 아니라 뇌 속을 집적 울렸다.
―오랜만에 보는 인간들이야. 이 기회에 인간 고기를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쿵!
카론의 눈알이 위로 돌아가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털썩, 털썩!
그가 쓰러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은 다른 선원들도 거품을 물고 뒤로 자빠졌다.
포세이돈이 등장한 지 10여 초 만에 제정신을 유지한 채 그를 지켜보는 인물은 단 한 명, 마에스터밖에 없었다.
“으……….”
그마저도 반쯤은 혼이 이탈한 채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포세이돈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웃음.
그것은 약해 빠진 인간들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비웃음에 누구하나 화를 내거나 욕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제정신인 사람이 아무도 없기도 하거니와 감히 누가 저 절대자의 행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포세이돈은 자칫 자신의 강대한 기운으로 인해 인간들이 죽어 버릴까 봐 기운을 상당히 약화시키고 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마에스터 일행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스으으윽.
“커…헉! 컥!”
마에스터는 태양이 사라지고 눈앞에 거대한 산이 생겨난다고 느꼈다.
코앞에서 바라보는 포세이돈은 한눈에 그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숨 막히게 만드는 것은 포세이돈의, 심장을 멈추게 만드는 붉은 눈빛과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식자의 살기!!
털썩.
마에스터마저 거품을 물며 쓰러지자 트리니다 호에는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자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모두 기절해 버린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이었던 포세이돈. 그가 인간으로 살았던 세월은 26년, 하지만 대해의 제왕으로 군림한 지는 벌써 100년이 넘었다.
단세포에서 시작한 바다의 삶은 인간으로서 살았던 26년의 열 배 이상 긴 세월인 것이다.
이제 그의 나이가 400을 넘었기에.
그렇기에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대해의 절대자로 생각하고 있는 포세이돈인지라 그에게서 인간들의 나약함이라는 것은 한심한 수준의 것이었다.
―인간이란 이렇게도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포세이돈은 살기를 거둬들였다.
그제야 기절한 채로 거품을 뿜어 대던 선원들의 숨통이 트였다. 그렇다고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라 기절한 채로 목숨을 구원받은 것일 뿐이었다.
―흐음, 내가 인간의 삶을 살던 곳으로 치자면 중세쯤인가?
포세이돈은 시야에 비치는 범선과 인간들의 모습, 옷, 머리카락, 피부, 키, 몸무게 등 모든 정보들을 취합해 그들의 문명 수준을 파악했다.
―이렇게 규모가 큰 범선에서 투창이나 작살을 무기라고 꺼내 온 것을 보면 아직 화약이나 대포 따위가 발명되기 이전인가? 그러면 15세기 이전쯤의 문명 수준이라 보면 되겠어.
답답한 마음을 털어 버리고 비달가라에게서 흡수한 비행 능력으로 마음껏 창공을 활보하던 포세이돈.
그는 이내 감각을 자극하는 익숙한 느낌을 받고 바다 속으로 내려앉았다.
쿠와아아아아앙!!
―인간!
진화를 거듭할수록 극도로 발달되는 감각은 자신에게 전달되는 느낌이 인간의 파장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단번에 알아냈다.
포세이돈은 종종 궁금해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바다에서 다시 태어난 것일까?’
처음 포이사르돈으로 진화하여 예전의 이성을 회복했을 때는 그저 죽음을 맞이하면 곧바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부여된 어떤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닐까?’
포세이돈은 400년 이상의 시간을 살아온 이 세상이 예전에 종환으로서 살아온 지구와는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
그것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기억과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바다의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 것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 왔다.
‘진화란 보통 자연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오랜 시간 동안 대를 이어 진행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와 같이 한 개체가 400년 동안 7번의 진화를 거듭했다는 사실은 보통의 경우로 설명하기 힘들다.’
이성적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히 제기되는 의문이었지만 바다의 대괴수로 변화한 포세이돈에게는 그리 중요한 의문점이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이성보다 본능이 월등히 앞선 그였기에.
―나는 왜 이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것인가?
하지만 이런 근원적인 의문은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나약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다시 포세이돈의 머리 한쪽에 자리 잡았다.
‘모든 과정에는 결과가 있는 법이다. 내가 인간에서 대해의 절대자인 포세이돈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과정, 그렇다면 그에 따르는 결과가 반드시 있다!’
포세이돈은 생각을 빠르게 정리했다.
‘나는 대해의 제왕으로 다시 태어났다.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로 말이다. 그렇다면 그 힘을 바탕으로 이 세상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내 탄생과 진화로 종결되어 지는 결과일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알 수가 없다.
저 나약한 인간들로서는 감히 대항조차 하기 힘든 강한 힘을 가진 자신이 과연 이 세상에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