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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5화)
6. 신화의 시작(3)


―그게 무엇이 되었든 상관하지 않겠다! 나는 오로지 내 본능에 따라 행동하면 되는 일!
포세이돈은 생각을 접었다.
그에게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사건에 대한 걱정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될 일인 것이다.
포세이돈은 저 아래의 조그마한 범선을 내려 보았다.
―일어나라, 인간들아!
부오오오오오오!!
그리고 정말 미세한 양의 바람을 범선을 향해 흘려보냈다.
그러자 돛도 펼치지 않은 범선이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쿵, 데구르르르, 쿵!
그로 인해 배 안의 기물들과 선원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여기저기에 부딪혔다.
“악! 뭐야?!”
“컥,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깨우는 거야?”
“이 발 좀 치워!”
깨어난 선원들은 포세이돈에게 느낀 엄청난 공포감으로 그가 나타난 사실을 잠시 잊은 채 서로를 향해 욕설을 날리며 소란을 떨다가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
“……이런 젠장, 꿈이 아니었어.”
“으악!!”
몇몇 선원들의 비명 소리에 마에스터와 카론, 그리고 다른 선원들도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포세이돈은 그런 선원들의 모든 시선과 마주했다.
그의 시선에 모든 선원들이 행동을 멈췄다.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다.
포세이돈이 몸 밖으로 흘러나가는 모든 기운을 차단하고 있었기에 그들이 감히 포세이돈과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도 한때는 인간이었기에 그들을 어찌할 생각이 없던 포세이돈은 불현듯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붉은 머리의 덩치 큰 사내, 카론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기분 나쁘게 생겼어. 마음에 들지 않아.’
범선을 내려다보는 포세이돈의 한쪽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꿀꺽.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또다시 배 위로 울려 퍼졌다.

―인간들!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뱃머리를 들이미느냐?!
“커억!”
“흑!”
털썩, 털썩.
인간들은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포세이돈의 목소리에 각자의 목이나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포세이돈이 의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극미한 살기를 살짝 흘려보냈기에 그들로서는 대항할 수가 없었다.
평소의 0.1%도 안 되는 살기였지만 그 정도의 살기도 감히 인간들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인간들뿐만 아니라 육지의 생명체들 중에서 포세이돈의 살기를 감당할 능력이 있는 생명체는 몇 안 되었다.
살기만으로도 상대를 죽여 버릴 수 있는 포세이돈의 엄청난 힘!
물론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이 포세이돈뿐만 아니라 다른 바다의 제왕들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 그 제왕들의 수는 몇 남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해와 남해의 제왕을 포세이돈이 먹어 버렸기에 심해의 수문장인 모비딕과 레비아탄을 포함하더라도 그와 동급인 괴수의 숫자는 다섯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심해에는 어떤 포식자들이 기다라고 있을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한 해역의 제왕들보다 강한 포식자들이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찌 됐든 포세이돈의 행동으로 선원들이 공포에 떨자 마에스터는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자신이 이 항해에 그들을 끌어들였으니 그들이 저 괴물의 밥이 된다면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렇게 되면 자신도 마찬가지로 괴물의 밥이 되어 있을 테지만.
‘으으으.’
그런 생각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마에스터가 선원들을 대표해서 포세이돈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사실 마에스터도 가이아 대륙 전체에 명성을 떨치는 모험가이자 무역가, 그리고 선단의 책임자로서 당당하게 바다의 괴수인 포세이돈에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의 의도와 달랐다.
“커억…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다, 다시는 서해 바다로 배를 띄우지 않겠습니다.”
마에스터의 말에 포세이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크하하하하하! 그 말을 나에게 전해 주러 이렇게 먼 바다로 나온 것이냐? 인간은 가진 것에 비해 많은 것을 이루어 내지만 이렇게 때때로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곤 하지.
쩌저적, 쩌저저저저저적!!
포세이돈의 몸에서 냉기가 일어나며 주변의 바다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었다.
츠츠츠츠츠츳!
수평선이 보이는 모든 해역을 얼려 버린 포세이돈!
눈에 보이는 모든 바닷물을 얼리는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저럴 수가!! 정령 이 괴물은 바다의 신이란 말인가?!’
마에스터는 차마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경악성을 외쳤다.
마에스터뿐만 아니라 배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모든 선원들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주변의 바다에서 얼지 않은 곳은 트리니다 호가 떠 있는 반경 100미터 정도의 바닷물뿐이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바닷물이 보이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두우우웅.
쿠우우우우우웅!
“어… 어?!”
“배가… 왜?!”
“꽉 잡아!!”
갑자기 배가 심하게 흔들리며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포세이돈으로 분한 종환이 트리니다 호의 아래에 거대한 빙하를 생성시켜 해수면으로 떠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쩌저적, 꽈직!
빙하가 얼어붙은 해수면을 부숴 버리며 떠올랐다.
직경이 500백 미터가 넘고 높이가 300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가 물에 잠긴 부분 없이 안전히 얼어붙은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포세이돈은 깨져 버린 해수면을 다시 얼리고 빙하를 빙판 위에 올려놓았다.
“어… 어! 이건 말도 안 돼!!”
“해신! 해신이다!!”
“살려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목숨만은……!”
“저는 병든 노모가 있어요.”
“저는 딸린 처자식이 아홉입니다.”
선원들은 가공할 포세이돈의 능력에 몸을 움직이기 힘든 가운데 무릎을 꿇고 그를 향해 애원했다.
이에 포세이돈의 눈빛이 변했다.
―내 이름은 포세이돈!!
쿠우우우우우우우웅!!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
포세이돈의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그가 하늘 위로 그 거대한 몸을 드러내자 하늘에 먹구름이 깔리고 돌풍이 불었다.
쿠르르릉, 번쩍!!
뿐만 아니라 먹구름 속에서 천둥, 번개가 생겨나 얼어붙은 바다를 때렸다.
그사이 그 거대한 몸체를 완전히 드러낸 포세이돈의 가공할 모습!! 그 모습은 가히 바다와 창공의 폭군! 그 이상의 것이었다.
쿠오오오오오오!!
우르르르릉, 콰쾅!!
사방으로 번개가 떨어져 내렸고 하늘에서 폭설이 휘몰아쳤다.
마에스터를 비롯한 선원들은 말을 잃었다.
그들은 자신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침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넋이 나가 있었다.
길이가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해룡이 눈앞에서 천둥, 번개, 바람을 동반하며 하늘에 떠 있는 모습에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무릎을 꿇은 채 포세이돈의 처사를 기다릴 뿐이었다.
“해신… 포세이돈.”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선원들은 바다에 나온 것을 후회했고, 그전에 범죄를 저지른 것을 후회했다.
자신을 이 바다에 나오게 만든 모든 것들을 후회했고 반성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 마리 새로 태어나고 싶다.’
선원들은 목숨을 포기했다.
저 거대한 초월자 앞에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목숨에 대한 애착이나 삶의 미련들을 접어 두었다.
그저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 태어나게 되면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들이 지나갔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정직하고 착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너무 다른 사람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나 자신에게 책임감 없는 인생을 살았어. 이렇게 죄인이 되어 바다에 나오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신의 심판을 받기 위함이었는지 몰라.’
선원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해 바다는 왔으면 안 될 곳이었다. 내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마에스터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만 한다니.
‘서해 바다의 전설은 옳았어. 내가 틀렸다.’
카론도 반성했다.
‘아, 이 한 많은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다음 생애도 부디 인간으로 태어나 내가 죄지었던 것들을 갚아 나가야겠다. 사람들에게 헌신하며 사는 인생을 살겠어.’
그렇게 트리니다 호의 모든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포세이돈의 심판을 기다렸다.
모두의 시선이 포세이돈을 쫓았다.
쿠르르르르르르릉!!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얼굴을 때리던 돌풍이 어느새 태풍으로 변모하고 하늘은 더욱더 어두워졌다.
그 속에서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세상을 굽어보던 포세이돈의 시선이 트리니다 호의 선원들을 향해 내려졌다.
―누구든 나에게 도전하고 싶다면 이 바다로 와도 좋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핏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다음번부터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휘오오오오오오오!!
구르르르르릉!!
포세이돈의 몸에서부터 시작된 태풍의 바람이 트리니다 호가 올라선 빙하를 스케이트 태우듯 동쪽을 향해 날려 보냈다.
덜컹, 스르르르르르!
빙판 위를 미끄럼 타듯이 포세이돈과 멀어지는 트리니다 호!
그들의 시선이 점점 멀어지는 포세이돈을 쫓았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쿠르르르르르릉, 쾅쾅!!
휘오오오오오오오오!!
포세이돈이 크게 웃자 천둥과 번개, 그리고 휘몰아치는 바람과 눈발이 더욱 거세졌다.
선원들은 포세이돈의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져 그의 모습을 끝까지 눈에 담았다.
그것은 절대자의 모습, 전설 속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해신의 모습이었다.

해상 강국인 에스카다 왕국의 제3의 항구라 불리는 바르샤 항.
하루에 드나드는 범선만 수십 척에 이르고 근처에서 조업하는 어선의 수가 수백 척에 이르는 거대 항구로서 바르샤 항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자, 도미가 싱싱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도미를 볼 수가 없어요!”
“여기 이 대하 좀 주세요.”
“와, 저기 봐! 고래가 잡혔나 봐!”
“정말이네? 구경 가자!”
“이번에는 참치 원양선이 별로였다는구만.”
“네르카 선단에서 선원 모집합니다.”
선원, 어부, 상인,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바르샤 항을 생동감 넘치게 만들었다.
“응? 저게 뭐지?”
“응? 뭐가? 배…인가?”
그때, 누군가가 수평선에서 항구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거대 물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 뭐야?”
“서…설마, 빙하!!”
“무슨 말이야, 6월에 빙하라니!”
바르샤 항의 모든 사람들이 부두 쪽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직경이 500미터,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가 100미터에 이르는 새하얀 빙하였다.
빙하는 영상 25도가 넘는 기온 속에서도 녹아내린 흔적 없이 항구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북해에서 흘러온 것인가?”
“그게 문제가 아니라 계속 항구 쪽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
“피, 피해!!”
“꺄악!”
한참 동안 항구로 떠내려 오는 빙하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빙하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제 서야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는 빙하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로 살기 위해 밀치고 당기고 밟히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는 사람 없이 부두의 외각에서 멀리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