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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6화)
6. 신화의 시작(4)
그 직후, 빙하가 부두에 바짝 다가섰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부두의 외각, 수많은 배들이 정박한 부두로 접근한 빙하는 범선이며 어선들을 죄다 박살 내며 부두로 접근하더니 이내 항구에 정박한 배들처럼 부두 앞에 멈춰 섰다.
“…….”
말을 잃은 사람들.
빙하가 부두에 정박하다니!
‘저, 저기 봐! 저 위에 뭔가가 있다!”
“정말이네! 빙하 위에… 배가!”
빙하 위에 얹어져 있는 정체불명의 배를 목격한 사람들이 소란을 떨었다.
몇 시간이 지나 바르샤 항을 지키는 해군들이 출동했다.
바르샤 항의 해군 책임자는 거대한 빙하를 올려다보더니 기가 막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허, 어것 참. 이제 여름의 초입인데 빙하가 우리 항에 정박하다니. 게다가 빙하 위에 저것이 배란 말인가?”
해군 책임자는 구경하듯 빙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자신의 뒤에 시립하고 있는 해군 장교에게 지시했다.
“자네, 저 빙하 위에 얹어진 범선에게 항구 수리비와 입항세를 받아 오도록 하게.”
“네? 제독님, 무슨 분부이신지…….”
해군 대위 닉슨은 얼빠진 표정으로 제독에게 되물었다.
“부하들을 데리고 빙하 위에 얹어진 범선의 정체를 밝히란 말이네. 어떤 배인지. 사람이 타고 있기는 한건지. 그리고 빙하의 정체가 뭔지!”
“예… 예! 알겠습니다.”
“어서, 움직이게!”
해군 대위 닉슨은 제독의 명령에 부하들을 시켜 등산 장비를 가져오게 하고는 빙하의 코앞에 섰다.
“명령이니까… 따라야 하겠지?”
막상 빙하를 오르려던 닉슨은 막막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 제독을 바라보았다.
끄덕.
그런 닉슨에게 제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치.
‘그래, 고생해∼ 나는 여기서 네가 다치지 않도록 지켜보고 있을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조만간 제대를 하던가 해야지, 이거야 원.”
닉슨은 그래도 빙하가 직각의 경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약간 대각선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뭐하나? 어서 빙하 위로 올라가자!”
“…옛, 썰!”
콰득.
닉슨과 그의 부하들 수십 명이 등산 장비를 완전무장한 채 빙하를 오르기 시작했다.
높이 100미터의 빙하, 이곳을 오르다 밑으로 떨어지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기에 그들은 최대한 조심조심 움직이며 빙하를 올랐다.
터억!
“조만간에 제대를……!”
닉슨은 고생 끝에 빙하의 윗부분으로 손을 내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가 빙하 위에 올라 목격한 범선의 정체는.
“이것은! 트리니다 호!”
범선의 정체는 신대륙과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자신만만하게 떠났던 마에스터의 트리니다 호였다.
출항식이 있을 때 자신도 제독의 등 뒤에 시립한 채로 출항하는 트리니다 호를 보았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2주 전에 에스카다 왕국을 떠났던 트리니다 호가 어째서 빙하에게 업힌 채로 바르샤 항으로 되돌아왔다는 말인가?
“누구 없습니까? 나는 바르샤 항의 해군 대위 닉슨이요! 마에스터 경은 나와 보시오!”
닉슨은 트리니다 호를 향해 소리쳤다.
“마에스터 경! 모습을 드러내시오!”
“…….”
아무리 크게 외쳐도 묵묵부답.
트리니다 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부관, 자네가 배 위로 올라가 확인하고 오게.”
“…….”
빙하를 오르느라 기운이 없는 닉슨은 부관에게 다시 갑판까지의 높이가 10미터가 넘는 트리니다 호에 기어 올라갈 것을 지시했다.
부관은 얼빠진 표정으로 닉슨을 바라보았지만 닉슨의 의지는 강경했다.
‘이런, 제기랄. 조만간에 제대해야지, 원.’
부관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는 힘없이 대답했다.
“옛, 썰…….”
부관이 터벅 걸음으로 힘없이 트리니다 호를 향해 걸음을 옮길 때, 불현듯 트리니다 호의 선수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마에스터 경!”
전 세계에 명성 높은 모험가이자 항해가인 페르디난드 마에스터였다.
“마에스터 경!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체 이 빙하는 뭐고, 왜 트리니다 호가 빙하위에 얹어진 채 바르샤 항으로 온 것입니까?”
닉슨의 물음에 마에스터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하더니 그의 메마른 입술이 움직였다.
“해신… 포세이돈.”
“뭐라고요? 무슨 말입니까? 마에스터 경!”
마에스터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닉슨은 큰 소리로 되물었다.
“해신, 포세이돈… 서해의 바다는… 도전할 수 없는 바다였소.”
해신 포세이돈!
그의 신화와 전설이 인간들에 의해 전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7. 비장의 필살기(1)
마에스터 일행과의 에피소드가 있은 후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정도의 힘으로는 흰 고래 자식을 이길 수가 없어! 빌어먹을! 대해의 제왕인 내가, 그 따위 문지기 자식한테 이길 수가 없다니! 크아아아아악.
해저에서 바다의 마나를 몸에 쌓던 포세이돈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모비딕의 생각에 분노하며 난동을 부렸다.
쿠르르르르릉!!
쏴아아아아아아!!
쩌저저저저적!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해류의 소용돌이가 일고 해저에 지진이 일어났으며, 주변의 바다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는가 하면 해수면에서는 거대한 해일이 발생했다.
그저 몸을 꿈틀거렸을 뿐인데 바다 안과 밖은 그야말로 난리가 나 버렸다.
포세이돈은 오랜 세월 동안 모비딕을 꺾고 심해로 들어갈 방법을 고심해 보았지만 도대체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벌써 모비딕에게 두 번이나 패하지 않았던가.
포세이돈은 확실하게 모비딕을 꺾을 방법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와의 싸움을 벌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세 번의 패배는 스스로를 절대자로 인식하고 있는 포세이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무슨 방법?! 고래 자식은 강하고 나는 그보다 약하다!! 약한 내가 어떻게 그 자식을 이길 수가 있겠어? 빌어먹을 레비아탄 자식!!
어울리지 않게 자기 비하를 하는 포세이돈.
포세이돈은 하필이면 심해 속으로 숨어 버린 레비아탄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뿌드득.
그가 이를 갈자 하늘에 먹구름이 끼며 양전하와 음전하의 이동이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우르르르릉, 우르릉!
그러자 먹구름 사이에 번쩍거리며 스파크가 발생하더니 바다 위로 낙뢰가 떨어져 내렸다.
쿠르르르릉, 번쩍!
해저에는 해저화산이 폭발하고 해수면 위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 바다를 지옥으로 변화시켰다.
―제기랄! 놈을 죽일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내가 울화가 터져 죽어 버릴 텐데, 동해 바다가 다 무슨 소용이냐?! 크아아아아아악!!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해류의 소용돌이가 얼어붙어서 빙하가 되고, 빙하가 되어 떠오른 소용돌이 위에 번개가 쳐서 반 토막을 만들었다.
그 위로 해일이 일어 빙하가 떠내려가고 멋대로 춤추는 해류를 따라 가라앉았다가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아마 이런 광경을 두고 ‘난리’라는 말을 쓰지 않을까.
콰과과과광, 쩌어엉! 콰직!!
미친 듯이 발악을 해대는 포세이돈, 그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동해 바다.
포세이돈은 시야를 가리는 물보라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진화를 거치면서 생겨난 능력들이 많기도 하구나. 게다가 하티카탄과 비달가라에게서 흡수한 능력까지 더하면 이건 정말 포세이돈, 그 단어 그대로다.’
종환이 살던 세상에서 그리스의 신화로 내려오는, 바다의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 포세이돈.
‘아마도 내가 살던 세계의 신화 속 주인공인 포세이돈보다 이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내 능력이 신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포세이돈은 속으로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 내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권능이 무호흡, 해수 조정, 절대 냉점, 냉기 이동, 풍력 조절, 번개 생성, 태풍 생성, 해저화산, 거대 해일까지 총 아홉 가지구나. 한꺼번에 이 아홉 가지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전혀 힘들지가 않아.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능력이야.’
우르르르르르릉!!
쩌저저저저저적!!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
포세이돈은 눈앞에서 몸이 13등분이 된 채 얼어붙은 대왕 고래와 머리만 떠다니는 거대 다랑어, 그리고 열 개의 다리 중에 3개만 남은 채 해류에 떠내려가는 대왕 오징어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놈들이군, 죄가 있다면 나에게 져 주지 않는 모비딕에게 있지 너희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고 보면 이 많은 능력을 가진 내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모비딕이 일개 수문장일 뿐이라니, 심해는 대체 어떤 곳인 거야?’
모르긴 해도 모비딕만큼 강한 포식자가 수두룩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끝에는 자신의 최종 목표인 레비아탄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레비아탄의 사악한 미소를 떠올리자 겨우 진정된 포세이돈의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레비아탄!! 이 빌어먹을 자식이!!
포세이돈의 분노와 평안의 상태를 오고가며 동해 바다를 초토화시켜 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모비딕 자식을 이길 수가 있는 거야?!
쿠르르르르르릉, 콰과과과광!!
포세이돈은 난동을 부리는 와중에도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힘은 모비딕의 수준을 알 수가 없으니 누가 더 강한지는 비교할 수 없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의 강력한 권능이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거야. 강력한 이빨로 공격을 하려 해도 놈의 방어 장막에 막혀 접근을 할 수가 없으니…….’
포세이돈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는 처음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적을 알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아야만 해.’
포세이돈은 스스로의 권능을 체크해 보았다.
몸길이 1천 2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몸뚱이는 가히 신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해룡으로서의 그의 권능은 최대치까지 능력을 발전시킨 무호흡, 해수 조정, 절대 냉점, 풍력 조절을 비롯하여 30개가 넘는 강력한 능력들이 있었다.
긴 세월 동안 수련을 거듭하며 몸은 더욱 거대해졌고 자주 사용하는 권능들은 그 파워가 급격히 높아졌다.
‘음… 언제나 사용하던 기술들이라 이 중에서는 모비딕을 쓰러뜨릴… 응?’
포세이돈은 자신의 권능들 중에서 잘 사용하지 않아 잊고 있던 권능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플라즈마라…….’
플라즈마.
기체 상태의 물질에 계속 열을 가하여 만들어진 이온핵과 자유전자의 집합체.
고채, 액체, 기체와 더불어서 제4의 물질 상태로 일컬어지는 플라즈마.
종환이 살던 23세기의 시대에는 총탄을 쓰는 무기가 아니라 레이저나 플라즈마를 이용한 무기들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소시민인 종환이 플라즈마의 무기 체계에 대해 알 리가 없지만 적어도 이 플라즈마에 가능성을 걸어 볼 만하지는 않을까?
포세이돈의 뇌리에 불현듯 번뜩이는 빛 하나가 지나갔다.
쿠르르르르르르릉!!
그가 생각을 집중하자 대해의 전역에 뻗쳐 놓았던 권능이 회수되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어붙은 바다가 해동되고 해저지진과 태풍이 멈췄다. 먹구름이 걷어지고 해수면을 때리던 번개는 그와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
포세이돈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모비딕, 이제 너는 끝이다!!
번쩍!
포세이돈의 빛나는 치아가 동해 해저의 어둠 속에서 강렬히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