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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7화)
7. 비장의 필살기(2)


모비딕.
그는 심해의 수문장이자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바다의 포식자였다.
그가 거대한 입을 열고 바다를 흡입하면 그 속에 담긴 플랑크톤이며 물고기들, 상어, 고래, 오징어, 해파리, 해초, 바다 새 등 그 어떠한 것이라도 그의 먹이가 되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모비딕의 방어 장막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불가능해 보였고 실제로도 수많은 바다의 강자들이 모비딕에게 도전했지만 모두 다 그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비딕이 자비를 베푸는 도전자는 오로지 각 해역의 지배자들.
각 해역의 제왕들이 사라지면 해당 해역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기에 모비딕은 자신에게 도전해 오는 바다의 포식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왕들은 집어삼키지 않았다.
그것은 심해의 수문장이자 중앙해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그로서는 어쩌면 사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바다의 혼란을 막고 심해로 가는 길을 지키며 혹시라도 발생할 중앙해로의 생명체 이동을 막는 사명, 그게 바로 모비딕이 수만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이유였다.
바다의 한 영역에서 수만 년을 살아온 모비딕에게 힘을 믿고 도전해 오는 포식자들은 어쩌면 고마운 존재들이었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긴 세월을 살아온 그가 삶이 지겹지 않게 만들어 주는 일종의 장난감도 같은 역할을 그들이 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장난감들은 놀이가 끝나면 모두 모비딕의 뱃속으로 사라졌지만.
배가 고프면 입을 열어 바다를 빨아들이고 배가 부르면 가만히 한자리를 돌며 헤엄을 쳤다.
그러다 도전자가 오면 싸워 주고 잡아먹는다.
그게 그의 하루의 일상이자 평생 동안의 삶이었다.
모비딕은 오늘도 심해의 입구를 지키는데 여염이 없었다.
‘도전자!’
식사를 마치고 헤엄을 치며 심해의 입구를 지키던 모비딕의 감각에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강렬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오래전에 몇 번 자신을 찾아와 무료한 일상을 재미로 채워 주었지만 잡아먹을 수는 없었던 동해의 제왕, 포세이돈이었다.
―너는 심해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모비딕은 모습을 드러낸 포세이돈을 향해 도전자가 찾아오면 통상적으로 하는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 말은 수만 년간 도전자들에게 해 왔던 말이고 도전자들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명을 달리했었다.
하지만 눈앞의 포세이돈은 벌써 세 번째로 듣는 지겨운 말이었다.
―닥치고, 죽을 준비는 됐나? 모비딕!!
포세이돈의 핏빛 눈동자가 강렬하게 번뜩였다.

쿠오오오오오오!!
쩌저적, 쩌적!
포세이돈과 모비딕,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주변의 바다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쿠릉!
하늘에서 먹구름이 모여들며 바람이 거세졌다.
모비딕의 앞에서 발현되는 포세이돈의 권능!
‘이 날을 위해 100년이라는 시간을 더 참고지내야만 했다. 이놈 모비딕, 반드시 씹어 삼켜 주마!!’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모비딕과의 세 번째 전투를 벌이기 위해 포세이돈은 또 다시 100년이라는 세월을 더 수련에 매진해야만 했다.
그 시간은 포세이돈에게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포세이돈은 모비딕을 쓰러뜨릴 방법을 생각해 냈지만 그것을 곧바로 실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포세이돈은 100년의 시간을 이를 갈며 모비딕을 쓰러뜨릴 날만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모비딕, 심해를 지키는 수문장. 내가 오늘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 너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쿠오오오오오오오!!
주변의 해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해류의 소용돌이가 더욱 거세졌다.
소용돌이의 압력이 강해지자 모비딕의 몸 주위로 은회색의 투명한 막이 생겨나며 그에 대항했다.
카가각, 카각!!
그들이 싸우는 곳이 바다가 아니라 육상이었다면 모비딕의 방어 장막에 불똥이 튀었을 것이다.
마치 칼날처럼 모비딕의 방어 장막을 할퀴는 포세이돈의 소용돌이!
―오늘에야말로 똑똑히 가르쳐 주마! 이 바다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쿠오오오오오오와!!
높이가 100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해일이 일어났다.
콰과과과과과광!!
해저의 지면이 솟구치며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해일의 높이를 증폭시켰다.
해저화산이 폭발하고 바다 위로 강력한 태풍이 불어왔다.
태풍은 여러 개의 토네이도를 생성해 해류의 소용돌이와 합쳐졌다.
스아아아아아아아아!!
우르르릉, 번쩍!
그리고 그 위로 떨어져 내리는 낙뢰!
현세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이 싸우는 바다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이것은 오로지 포세이돈의 힘이 불러일으킨 현상!
모비딕은 아직 방어 장막을 제외하고는 어떤 권능도 발현하지 않고 있었다.
포세이돈 혼자서 심해의 입구에서 현세의 지옥을 강림시킨 것이다.
아무리 대해의 제왕의 자리에 있다고는 하지만 단 한 명이 가지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힘이었다.
모비딕은 흥미가 생겼다.
이때까지 그가 봐 왔던 수천, 수만의 포식자들 중에서 가장 강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한 권능!
‘포세이돈, 이 자라면!’
모비딕의 마음속에 일말의 기대감이 생겨났다.
그의 마음이 어찌 되었든 해저와 바다, 하늘 모두에서 일어난 엄청난 권능이 모비딕을 향해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스가아아아악!!
쩌저저저저저저저적!
우르르르르릉, 콰아아아앙!
해류의 소용돌이가 모비딕의 방어 장막을 때렸고 곧 이어 절대 냉점이 소용돌이를 비롯한 모비딕 주변의 바다를 얼려 버렸다.
그런 후에 해저의 지진으로 인한 급작스런 해류의 움직임이 모비딕의 얼어붙은 주변을 때렸다.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바다를 가득 울려 퍼졌다.
시야가 가려지고 바다 속에 혼돈이 찾아왔다.
초반부터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포세이돈!
그도 이런 공격이 모비딕의 방어 장막을 깰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선제공격의 의미는 바로 실험.
모비딕의 방대한 방어 장막을 모두 공격함으로 방어 장막의 빈틈을 찾고 자신의 강력한 공격에 대항하는 방어 장막의 반응을 살피는 것.
쿠오오오오오오.
포세이돈은 다시 시야가 트이며 은회색의 방어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멀쩡한 모습의 모비딕의 몸이 조금씩 드러나자 인상을 써 보였다.
‘역시 모비딕의 방어 장막에는 약점 따위는 없는 것인가?’
모든 공격을 막아 내는 모비딕의 완벽한 방어에 답답한 심정이 들 만도 하지만 포세이돈은 오히려 크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모비딕! 그렇지 않으면 내가 100년을 준비한 보람이 없을 것이다!!
대해의 제왕, 포세이돈.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느새 시야가 완전히 트여 모비딕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심해의 수문장, 모비딕은 포세이돈을 향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재미가 없구나.
도전자들과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는 그가 이례적으로 포세이돈을 향해 말을 걸었다.
사실 포세이돈에게서 다른 도전자들과는 틀린, 무언가 강력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모비딕이었기에 포세이돈의 첫 번째 공격은 실망 그 자체였다.
‘역시 다른 놈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
그의 기나긴 삶 속에서 단 한 번도 그에게 위기감을 들게 할 정도의 도전자들은 없었다.
사실 무언가 찌릿하고 진땀이 흐르는 도전자, 자신에게 지루함을 단 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도전자가 오기를 기다렸고, 그게 혹시 무모하게 세 번째나 자신에게 도전하는 포세이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지만 그의 첫 번째 공격에서 그런 기대를 접어 버렸다.
포세이돈도 다른 이들과 같은, 그저 그런 약해빠진 도전자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포세이돈은 그런 모비딕의 얼굴에서 그의 감정을 읽었다.
―크하하하, 크크크하하하하하하!
포세이돈은 바다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크게 웃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모비딕이 의아하게 바라보든 말든 인간의 삶과 괴수의 삶, 모두를 통틀어서 이보다 더 통쾌하게 웃어 본 기억을 찾기 힘들 정도로 크게 웃었다.
해역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통쾌하게 웃어젖힌 포세이돈은 웃음을 멈추고 모비딕을 응시했다.
그가 이렇게 크게 웃음 지은 이유는.
‘나는 너를 이기기 위해 이를 갈며 400년이라는 시간을 참아냈다. 그런데 너는 목숨을 건 나의 투쟁을 한낮 장난으로 여기고 있었다니!!’
포세이돈의 주위로 해류의 소용돌이가 발생하고 그의 주변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었다.
포세이돈의 한쪽 입꼬리가 위쪽으로 올라갔다.
분노한 심정과는 다르게 모비딕의 뇌로 전달되는 포세이돈의 의지는 큰 기복이 없었다.
―재미가 없다고? 너를 재미있게 만들어 주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포세이돈의 몸이 조금씩 해수면을 향해 떠올랐다.
서서히 해수면으로 떠오르는 포세이돈의 강력한 의지가 모비딕에게 전달되었다.
―모비딕! 너는 오늘 죽게 된다! 재미를 원한다면 살이 뜯기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재미를 한 번 찾아보아라!!
휘오오오오오옹!!
포세이돈의 몸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구오오오, 파핫!
그의 거대한 몸이 해수면을 뚫고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우르르르릉, 쿠오오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온통 덮었고 낙뢰가 되기 전의 번개들이 어지러이 그 속을 오고갔다.
해저지진으로 인한 해일은 포세이돈이 대류권으로 나옴으로 생긴 태풍으로 인해 더욱더 높이 치솟았다.
아마 이로 인해 육지의 생물들은 엄청난 재난에 빠졌으리라.
쿠르르릉, 번쩍!
그 모든 대자연의 재난을 조정하는 대해의 제왕, 포세이돈!
그는 마치 승천을 목전에 앞둔 이무기처럼 먹구름을 그 거대한 몸으로 휘감으며 바다 속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비딕을 쏘아보았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 봐라, 태풍!!
쿠오오오오오, 콰르르르릉!!
포세이돈의 의지가 구현됨과 동시에 초대형 태풍으로 인해 생긴 수십 개의 토네이도가 한꺼번에 모비딕의 상단을 때렸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수심이 600미터에 이르는 심해의 초입에서 포세이돈을 올려다보는 모비딕에게 해수면 위의 토네이도 공격이 닿을 리가 만무했지만 그의 토네이도 공격은 계속해서 바다를 때렸다.
콰아아아아앙! 촤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앙! 촤아아아아아!
사방으로 대량의 바닷물이 튀어 오르며 토네이도가 공격하는 해수면이 점점 낮아졌다.
물은 중력으로 인해 항상 대지와 평행을 이루게 되어 있지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토네이도 공격으로 모비딕의 상부 바다가 점점 해수면이 깎여 갔다.
이것은 비달가라가 포세이돈을 잡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으로 포세이돈이 더욱 업그레이드를 시킨 모습이었다.
그로 인해 수심 600미터에 머물고 있는 모비딕의 몸이 거의 드러났을 시점에.
흐으으으으으읍!
포세이돈이 주변의 수분과 공기를 모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촤아아아아아!
그리고 토네이도의 연속 공격으로 모비딕의 거대한 몸이 해수면 밖으로 완전히 드러난 순간!
쐐애애애애애액!!
쿠오오오오오오오!!
먹구름 속을 오가던 포세이돈의 몸이 빠르게 그를 향해 떨어져 내리며 영하 270에 이르는 엄청난 냉기를 토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