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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19화)
8. 라이벌(2)
―대해의 제왕이여… 너는 심해로 들어갈 자격이 안 된다. 설령 네가 자격이 되더라도 들여보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너를 막을 수가 없겠지.
거대 백상아리, 어느 해역에도 귀속되지 않는 존재, 레비아탄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심해로 들여보내지 않는 것이 모비딕의 태초부터 정해진 사명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 사명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포세이돈을 집어삼켜 버리고 그 생명력 바탕으로 몸을 회복시키고 싶었지만 지금의 모비딕에게는 입을 벌릴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핵폭발을 막을 때에 몸 안의 모든 마나를 비롯한 생명 에너지를 써 버렸기에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상태였다.
모비딕은 몸을 떨었다.
그것이 포세이돈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부상에서 오는 고통으로 인한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했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 죽음을 직감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수명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헤엄쳐 오는 포세이돈으로 인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레비아탄… 그리고 너, 대해의 제왕으로 성장해 버린 포세이돈… 나는 결국 신의 선택을 받은 두 돌연변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조연일 뿐이었던가?
모비딕은 심장을 옥죄어오는 포세이돈에 대한 공포를 떨쳐 내버리기 위함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계속 뱉어냈다.
―그래, 수백 년 전, 레비아탄을 심해로 들여보낼 때에 벌써 알고 있었던 것이지. 나를 꺾을 누군가가 심해로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애써 무시하려 했던 거야.
모비딕이 독백을 하는 사이 어느새 포세이돈이 그의 면전 앞에 도달해 있었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 그는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그는 무엇을 위해 이런 안배를 해 놓는 것인가? 그는!
힘없이 말을 이어나가는 모비딕의 눈빛에 삶의 마지막 불꽃이 떠올랐다.
―그는 정녕 흘러가 버린 시대의 재림을 꿈꾸고 있는 것인가?!
모비딕.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심해의 바다를 지키며 살아오던 수문장이자 전 바다의 균형을 유지하는 자, 그의 마지막 유언은 그렇게 신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 찬,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것들로 끝을 맺었다.
이런 모비딕의 유언에 대처하는 포세이돈의 반응은.
―헛소리는 거기까지. 죽을 때가 되니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는구나, 흰 고래. 이제 죽어라!! 크와아아아아아악!!
스스로가 약속대로 포세이돈은 상하좌우로 크게 벌어진 입으로 모비딕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그의 남은 몸 전체를 창날보다 날카로운 이빨로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콰드득!!
생살을 씹는 잔인한 소리가 텅 빈 바다 속에 울려 펴졌다.
심해의 입구, 한때는 무수히 많은 바다 생물들이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던 바다였지만 지금은 오로지 포세이돈과 모비딕만이 살아남아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하나는 포식자로서, 하나는 먹잇감으로서.
콰드득!!
모비딕의 붉은 피가 시야를 흐렸고 진한 피 냄새가 그의 후각을 마비시켰다.
콰드득!!
입안을 통해 뇌 속으로 전달되는 살 씹는 소리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콰드득!!
오로지 입안에는 모비딕의 진한 피 맛만 느껴질 뿐이었다.
콰드득!!
오감을 마비시키는 진한 승리와 피의 쾌감 속에서 포세이돈의 눈동자가 더욱더 진하게 빛을 발했다.
―이제 출발한다. 심해 속으로!!
수중 염동력, 뇌파 장막, 해저 충격파, 해수 캐논, 신체 변환, 해저 안개, 수질 변환 등의 권능이 생겨났다.
모비딕을 잡아먹음으로서 새로운 권능들이 추가되고 몸집이 커지며 신체가 더욱더 강력하게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이제는 심해로 들어서는 자신을 막아설 장애물이 사라진 것이 포세이돈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의 몸이 심해를 향해 움직였다.
움찔!!
그런데 막 심해를 향해 들어가는 포세이돈의 척추를 타고 흐르는 섬뜩한 기분이 그를 붙잡았다.
그것은 그가 아직 포이사르돈 시절에 느낀 레비아탄에 대한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었다.
―포이사르돈이여! 더 성장하고 더 진화해서 나에게로 찾아와라. 이것이 네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크하하하하하!!
그렇게 말하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던 레비아탄의 환상이 포세이돈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이!!
포세이돈은 분노했다.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지금 당장 심해로 들어가 레비아탄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수백 년 전, 레비아탄이 그에게 남긴 공포심은 대해의 제왕이 된 지금의 포세이돈을 망설이게 할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그는 ‘공포’라는 단어를 외면하고 살아왔지만 막상 심해로 향하는 장애물이 사라지고 레비아탄과 싸울 마음을 먹자 그 먹먹한 감정에 잠식되어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내가! 이 포세이돈이 겁내고 있는 것인가?!
쿠르르르르르릉, 콰아아아아앙!!
포세이돈의 주변 바다가 터져 나갔다.
그로 인해 엄청난 여파가 바다를 쓸고 지나갔지만 포세이돈의 마음은 오히려 진정되어 가고 있었다.
―레비아탄…….
어느새 냉정을 되찾은 포세이돈의 입에서 불러진 그 이름, 레비아탄.
포세이돈은 그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기다려라, 레비아탄. 곧 너에게로 가겠다.
포세이돈은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영역인 동해를 향해 사라졌다.
레비아탄, 또는 리탄, 샤리탄으로도 불리는 바다 속의 거대한 악마.
레비아탄은 본래 20미터 크기의 백상아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종환이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순간 원래의 힘을 각성했다.
그것은 신에 대항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빛을 집어삼킨 악마, 레비아탄으로의 각성, 바로 그것이었다.
―크르르르르르, 이것으로 자격을 갖추었다.
레비아탄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가 있는 곳은 서해의 제왕,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다 악어, 크로커다일의 영역인 서해의 해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크로커다일은 서해에 없었다.
그는 이미 몇 주 전에 레비아탄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크로커다일뿐만 아니라 중앙해의 제왕 씨로칸 킹도 이미 레비아탄에게 먹힌 지 오래 되었다.
레비아탄은 그들을 먹어치움으로서 포세이돈과 같은 대해의 제왕에 올라선 것이다.
서해와 중앙해를 책임지는 대해의 제왕으로.
포이사르돈이 기억 속에 남은 레비아탄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40미터였던 몸길이는 어느새 1킬로미터가 넘어 있었고 백상아리를 닮았던 외모는 상어와 악어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머리를 가진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포세이돈의 외모와도 흡사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레비아탄.
그의 피부는 온통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오로지 눈동자만이 얼음처럼 하얀 날카로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심해 속으로 들어갔던 그가 왜 이런 모습으로 서해에 있는 것일까.
―심해의 제왕, 크라켄!
스르르르르륵, 파핫!!
그가 심해의 제왕인 대괴수 크라켄을 떠올리자 주변의 바다가 암흑으로 물들며 순식간에 죽음의 바다로 변해 갔다.
해초들은 말라 비틀어 모래로 변해 버렸고 바다 속을 노닐던 물고기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크라켄과 함께 레비아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존재.
그는 바로.
―포세이돈!
신의 힘을 얻기 위해 레비아탄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경쟁자이자 목표인 포세이돈.
레비아탄은 그가 대해의 제왕이 되어 자신과 겨룰 힘을 갖추기를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다.
바로 자신과 대해의 신, 해신의 자리를 놓고 겨룰 날만을 말이다.
―대해의 제왕이 되어 심해의 절대자, 크라켄을 쓰러뜨리는 자만이 해신의 권능을 손에 얻을지니!!
레비어스에서 레비아탄으로 각성하는 순간 그의 머리를 강타한 강렬한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레비아탄의 사명이자 삶의 목표인 것이다.
―대해의 제왕으로서의 자격은 갖추었다. 그러나 크라켄을 쓰러뜨리기에는 아직 역부족.
레비아탄은 심해로 들어가 무수히 많은 괴수들을 뚫고 크라켄과 맞붙었었다.
돌아온 결과는 자신의 처절한 패배.
크라켄은 여타의 괴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지막지한 폭군이었다.
레비아탄은 큰 상처를 입은 채 심해에서 벗어나 중앙해로 이동했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해!!
레비아탄은 곧바로 중앙해의 제왕, 거대 바다뱀 씨로칸 킹을 공격했다.
―씨로칸 킹! 나를 위한 제물이 되어라!
레비아탄은 이미 해역의 제왕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처를 입은 상태로도 씨로칸 킹을 집어삼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대해의 제왕으로서의 권능을 얻은 레비아탄. 그의 차가운 시선이 동쪽을 향해 움직여졌다.
―이제 너의 차례다, 포세이돈!!
서로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포세이돈과 레비아탄은 서로를 향해 그렇게 약속하듯 선언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말이다.
9. 파괴의 신(1)
모비딕을 쓰러뜨린 후 50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포세이돈의 종횡에 어지러워졌던 바다는 안정되었다.
제왕인 포세이돈의 잦은 출타와 감정 변화로 엉망이 되어 버린 동해, 북해, 남해는 후일을 도모하기로 한 그의 결정으로 차차 정비되어 갔고, 그가 자신의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자 다른 바다들도 자연스레 평화를 되찾았다.
심해의 수문장인 모비딕의 부제로 인해 그동안 금기시 되어 오던 서해와 중앙해, 심해와, 동해 생물들의 이동이 실현되나 싶었지만 그것은 포세이돈의 간단한 행위로 인해 가로막혔다.
쿠와아아아아악!
쩌저저저적!!
포세이돈이 모비딕을 먹어 치운 후 더욱 강해진 힘으로 동해와 심해를 연결하는 접점 지역의 바다를 모두 얼려 버린 것이다.
빙하를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교도소의 담벼락처럼 심해를 둘러싼 모든 동해의 경계를 얼려 버린 포세이돈의 엄청난 힘에 모든 바다 생물들이 몸을 떨었다.
두께 약 100미터의 얼음 방벽 안에는 바다를 노닐던 플랑크톤이나 어류, 어룡, 수장룡, 돌고래, 상어, 오징어, 문어, 고래 등 다수의 생명체들이 함께 얼어붙어 버렸지만 포세이돈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으로 중앙해나 심해로 통과하려는 바다생물들은 없어질 것이다.
심해로 향하는 바닷길을 막아 버린 포세이돈은 그 후 500년 간 더욱 커져 버린 몸속에 바다의 마나를 쌓는 한편, 새로 생긴 권능들과 기존에 가지고 있었지만 최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던 모든 능력들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포세이돈이 가장먼저 확인한 권능은 신체 변환 능력이었다.
신체 변환이라는 말에 혹시나 다른 종류의 생명체로 변신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체 변환 기능으로 인간으로 변환이 가능하다면 대륙으로 나가 육지의 상황을 파악하고 인간의 세계를 접할 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신체 변환!
하지만 신체 변환이라는 기능은 변신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변환이었다.
포세이돈의 신체의 각 부분을 조금 더 강화하거나 크기를 변환시키거나 재질을 바꾸는 정도의 변환만이 가능한 기능이었다.
‘역시 열쇠는 레비아탄에게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