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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의 제왕 1권(23화)
10. 격돌!(2)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놀지만은 않았구나.
작게 읊조린 포세이돈의 주위로 퍼져 있던 해저 안개가 더욱 짙어지고 수질이 변해 가기 시작했다.
바닷물을 구성하는 염소, 나트륨, 황산, 마그네슘, 칼슘, 칼륨, 탄산수소 등의 성분 중 산소가 합성된 성분들이 환원되며 물질의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저 안개 밖의 바닷물은 일부는 액체로 일부는 고체로 일부는 기체로 변이하며 혼란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이것은 레비아탄의 화염 공격에 대비한 포세이돈의 전략이었다.
‘이 깊은 심해 속에서 일으킨 화염이 강도가 약할 리가 없다. 더구나 화염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저 레비아탄이 아닌가? 산소란 산소는 모두 없애 주겠어!’
산소, 물질, 발화점 중 하나만 없애 주더라도 소화되는 것이 불의 성질이기에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포세이돈은 ‘수질 변환’ 권능을 이용해 바닷물의 물질 구성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닷물에 녹아 있는 산소를 없애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짓!
포세이돈의 한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는 레비아탄이 주위를 맴도는 거대 화염들을 쏘아 보냈다.
화르르르르륵!!
포세이돈이 도망칠 수 없게 전 방위를 향해 쏘아 보내진 무색 화염들.
―네 공격 또한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포세이돈이 소리치자 구성이 바뀌어 버린 바닷물이 모조리 얼어붙었다.
얼어붙지 않은 것은 오로지 레비아탄이 날려 보낸 화염들 뿐.
포세이돈은 주변을 모두 얼음 장막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뇌파 장막과 수중 염동력을 같이 사용해 몇 겹의 방어 장막을 몸에 둘렀다.
휘유웅.
몸을 둘러싼 여러 겹의 뇌파 장막, 그를 보호하는 거대한 얼음 장막, 그리고 산소가 없어져 버린 바다를 해저 안개가 둘러싸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갖추어진 데는 3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고 그 직후에 거대 화염이 들이닥쳤다.
쿠아아아아아아앙!!
쿠르르르르르릉, 후와악!
레비아탄의 화염공격은 해저 안개와 얼음 장벽을 뚫고 뇌파 장막과 충돌했다.
그 무엇도 녹일 듯한 거대 화염이었지만 궁극의 방어 능력인 뇌파 장막에 가로막혀 사그라져 버렸다.
뇌파 장막에 둘러싸여 있기에 물리적인 데미지는 받지 않은 포세이돈이었지만 장막을 뚫고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에 긴장감이 더욱 커졌다.
‘이런 공격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뼈도 남지 않고 모두 녹아 버렸을 것이다.’
포세이돈은 몇 번의 공방을 경험한 후 레비아탄에 대해 상당수 파악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공격 면에서는 레비아탄 놈이 더 앞선다. 나에게 뇌파 장막이 없었다면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공방에 우열을 가린다면 공격력은 레비아탄이 강하지만 방어력은 포세이돈이 더 뛰어나다.
그렇기에 전세를 가늠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내가 가진 공격술 중 몇 개는 이 깊은 심해에서 통하지 않는 것들이다. 심해에서 싸우는 것은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달가라에게 흡수한 권능인 태풍 생성이나 기후 조절, 또 낙뢰 등은 이토록 깊은 심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해저화산이나 해저지진도 심해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는 한 레비아탄에게 별 타격을 줄 수가 없다.
포세이돈이 고민에 쌓여 있는 사이 레비아탄의 공격이 이어졌다.
―너의 방어 장막이 얼마나 강한지 확인해 보겠다!
지이이잉!!
또 다시 들리는 이명에 포세이돈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포세이돈의 예민한 감각에 마치 실처럼 가는 무형의 칼날들이 공간을 가르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치이잉, 칭!!
포세이돈의 몸을 가리는 뇌파 장막 전체에 강한 스파크가 일었다.
치이잉, 칭! 칭!
포세이돈의 뇌파 장막은 쉽게 깨질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지만 이런 음파 공격이 지속된다면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음파 공격의 물리적인 데미지는 뇌파 장막이 막아 주고 있었지만 정신적인 데미지는 포세이돈이 감당해야 할 몫인 것이다.
―크으윽.
포세이돈의 이마에 혈관이 불거져 올랐다.
지이이이이잉!!
이대로는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었기에 포세이돈은 신체 변환 능력으로 몸을 20미터로 줄였다.
그리고 몸이 줄어들자마자 즉시 뇌파 장막을 풀어내고 해수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스가악!
―크윽!
그 과정에서 무형의 칼날이 몸에 상처를 냈지만 포세이돈은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쿠아아아아앙!
음속을 돌파하며 해수면을 향해 솟구치는 포세이돈.
음파 공격으로 인한 무형의 칼날은 사정거리가 그리 긴 편이 아니기 때문에 목표물을 놓친 레비아탄은 포세이돈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 서라!
무형 칼날에 타격 받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몸 크기를 줄인 포세이돈의 모습은 마치 대왕 고래에게 쫓기는 작은 멸치 한 마리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쿠오오오아아아, 스팟!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40초도 안 되어 돌파한 후 해수면을 박차고 나오는 포세이돈의 몸은 어느새 3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쿠오오오오오, 포세이돈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 어느새 몰려든 먹구름 속에서 낙뢰가 형성되어 포세이돈의 주위로 떨어져 내렸다.
구오오오오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수백 개의 토네이도가 해수면을 때리며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콰르르르릉, 콰릉! 번쩍!
시간은 밤이었다.
끊임없이 해수면을 때리는 천둥, 번개로 인해 환해진 시야에는 먹구름을 감싸 안은 채, 해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레비아탄을 내려 보는 포세이돈의 압도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종환이 살던 세상에서 전설로만 전해져 오던, 승천하는 용의 모습과도 같은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우오오오!
잠시 하늘 위에서 레비아탄을 내려다보던 포세이돈의 거대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의 목울대가 몇 차례 크게 움직이더니 입을 통해 직경 50미터 크기의 검은 구체 12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마치 여의주를 토해 내는 용의 모습과도 같았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온도가 높아지며 붉게 달아오르는 검은 구체들. 이내 구체들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완전한 액체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이것은 모비딕을 쓰러뜨렸던, 핵폭발을 사용하기 위한 전초 과정.
바로 플라즈마를 만들러내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화르르르륵!
이제 완전히 기체로 변해 버린 구체들은 검은 태양처럼 타오르며 서서히 해수면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츳츳!!
약 3미터 크기로 줄어든 열두 개의 구체들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쿠르르릉, 쿠릉!
구체 속에서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핵과 전자들이 분리되며 강한 전자기장이 형성되었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레비아탄은 자신을 포위하듯 둘러싼 열두 개의 작은 구체를 보며 인상을 썼다.
―무슨 속셈인거냐? 포세이돈.
자신의 거대 화염처럼 물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구체들이 신경 쓰이는지 레비아탄이 물어왔다.
그에 대한 포세이돈의 대답은 친절하지 못했다.
―플라즈마!!
기이이이이이잉!!
이제는 직경 30센티로 줄어든 플라즈마들.
쿠르르릉, 쿠르릉, 쿠릉!
그리고 먹구름 속에서 포세이돈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번개들.
그 둘의 콤비네이션이 포세이돈의 외침으로 완성되었다.
―끝이다, 레비아탄!!
구르르르릉, 번쩍!!
플라즈마를 향해 떨어지는 낙뢰의 수는 240여 개.
낙뢰가 플라즈마에 적중되는 순간, 모비딕을 초죽음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몇 배는 강력한 엄청난 핵폭발이 바다를 갈랐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휘우웅.
포세이돈은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몸 주위로 수십 겹의 뇌파 장막을 펼치며 핵폭발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레비아탄, 너의 최후의 순간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 주겠다!’
포세이돈의 눈동자에 희열이 차올랐다.
구우오오오오오오오!
포세이돈은 자신이 만들어 낸 엄청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바다를 대낮으로 만들어 버리는 핵폭발의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멍청한 레비아탄 놈, 이렇게도 쉽게 핵공격에 당하다니. 피할 시간은 충분했다.’
레비아탄에게는 피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하지 않고 자신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결국에는 너의 자만이 죽음을 초례한 것이다!’
포세이돈은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약 900년의 시간을 기다린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싱거운 승리이기에 허탈한 마음도 들었지만 레비아탄을 꺾었다는 생각에 전율이 느껴졌다.
‘놈은 죽었다. 더 이상 놈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내가 이겼다! 이 내가! 나 포세이돈이 승리했다!!’
쿠오와아아아아아아!!
포세이돈은 피어나는 핵구름을 내려다보며 환희, 희열 등의 감정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가 900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며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시간이 지나 핵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난 광경은.
―재미있구나, 포세이돈. 그래, 이런 한 수가 있었으니 모비딕을 꺾고 심해로 들어올 수가 있었던 것이로군.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비아탄의 모습이었다.
‘뭐야? 내가 환상을 보는 것인가?’
포세이돈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말을 잃었다.
―…….
어떻게 몇 배나 강해진 핵폭발의 여파에서 전혀 타격도 입지 않고 살아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눈앞의 레비아탄에게서 특유의 강대한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포세이돈은 환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든 표정이야, 포세이돈. 크크크크크크크, 이제 너의 밑천은 다 드러낸 것인가?
레비아탄에게는 본인조차 잊고 있던 궁극의 권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차원을 가르는 능력!
차원을 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는 없지만 차원의 틈새에서 제3자의 입장으로 이 세상을 관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오래전에 얻은 그의 권능 중에 하나였다.
‘이딴 것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그는 그 권능을 여태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도 포세이돈처럼 강함에 대한 목마름으로 평생을 살아온 존재였기에 차원의 틈새에서 세상을 엿보는 짓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레비아탄은 핵폭발이 일어나기 직전에 잊고 있던 권능을 이용해 차원의 틈새로 이동했다.
피하더라도 살아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차원의 틈새라고 해 봐야 마치 유리창 너머에서 집 안을 엿보는 것과 같기에 레비아탄은 차원의 너머에서 핵폭발의 어마어마한 여파를 눈으로 목격했다.
―포세이돈, 이런 엄청난 것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인가?!
레비아탄은 차원의 틈새 속에서 경악하고 또 경악했다.
이런 엄청난 권능이라면 벌써 신의 능력이라고 해야 옳았다.
만얀 이 공격에 노출되었더라면 자신의 이미 시체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버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