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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조용히 해! 사람들 불러 모을 일 있냐? 이 미친년은, 뭐야, 손가락도 하나가 없네? 제값 주고 팔기는 이미 글렀잖아. 넌 바로 성노예 신세일 줄 알아!”
타박하던 질레빌이 가까이 다가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카리나의 머리를 대여섯 번 연속으로 강타하고 그녀의 배를 무릎으로 갈기자 카리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했다. 다리의 힘이 풀려 버렸다. 그래도 팔뚝은 계속 물고 있어서 남자는 그녀의 무게대로 팔뚝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녀의 무게가 작용해 아예 팔뚝의 살점이 이빨에 의해 뜯겨질 것 같아 빌터는 공포에 질린 신음을 냈다.
“독한 걸 보니 광산에 팔아도 살아남겠어.”
그 상황을 지켜보던 질레빌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카리나의 목을 두 손으로 졸랐다. 큰 손이 그녀의 목을 살점 하나 안 보일 정도로 감쌌다.
“커억…….”
단번에 숨통을 조이는 힘에 생리적인 고통으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남자는 죽이려고 아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숨을 쉬지 못하자 입가에서 침이 흘렀다. 입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신음하던 남자가 제 팔을 그녀의 입에서 빼내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던지 그녀가 물고 있던 살점은 이빨 자국이 깊숙이 박혀 살점이 덜렁거릴 정도였다. 조금만 더 물고 있었더라면 뼈가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위험한 일을 하고 다니는지라 항상 상비하고 있는 약을 서둘러 펴 바르는 남자의 손길이 다급했다. 남들은 태연히 위험 속에 밀어 넣으면서 자신의 고통에 민감한 추잡한 인간상이 정신을 잃어 가는 그녀의 망막에 맺힌다.
“카리나!”
남자들의 힘에 밀려 옴짝달싹 못 하던 쥬다의 눈이 홉떠졌다. 침을 흘리며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은 숨이 끊어질 듯해 한시가 급해 보였다. 팔을 빼내 뻗으려고 해 봐도 성인 남성이 여럿 붙어 있는지라 좀처럼 뿌리칠 수 없었다. 이대로 더 지체한다면 그녀의 목숨이 위험했다. 다급한 마음에 억류된 상태로 온몸을 던져 카리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남자를 쳤다. 몸무게를 이용해 돌진했던 터라 붙잡고 있던 사내들이 순간 쥬다를 놓쳤고, 그 기세에 밀린 남자가 카리나를 놓았다.
카리나는 졸린 목이 풀리자마자 피를 입가에 줄줄 흘린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온몸을 저미는 고통에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카리나가 정신을 잃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땐 아직도 새벽녘의 음침한 길거리였다. 아득, 이가 갈렸다. 쥬다를 부르고 싶었으나 멍청한 짓은 한 번으로 족했다. 우선 남자들이 아직도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이 깨어났음을 숨기기 위해 숨소리를 죽였다. 눈만 뜬 채로 장내의 상황을 관찰했다.
션이 물었다.
“저 년은 누가 들어?”
“게릭, 네가 업고 가야겠다.”
“근데 빌터를 그렇게 물어뜯은 걸 보면 여간 독한 년이 아닌데……. 넘겼다가 우리가 피해를 입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언제 그런 걸 신경 썼냐. 넘기기만 하면 되지. 그 뒤에 길들이든 팔다리를 자르든 지들 몫이지. 빌터, 약 바르니 어떠냐. 견딜 만하냐?”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는 있으나 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좋은 척 묻고는 있으나 빌터는 쉬기는커녕 쥬다의 다리를 사력을 다해 결박하고 있는 중이었다. 빌터의 사정은 질레빌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는지 예의상 묻고 난 뒤로 빌터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할 일을 마쳤다는 양 무심히 고개를 돌린 질레빌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신경질을 냈다.
“야, 딴말하지 말고 이제 좀 비켜라. 데려가야 해. 지금도 늦었어.”
션이 목을 움츠렸다. 그 큰 덩치로 아이처럼 고개를 저었다.
“한 번만, 형님. 나 한 번만 하자.”
쥬다는 손목과 온몸을 결박당한 채 땅에 눕혀진 상태였다. 보통은 더 확실하게 제압하기 위해 엎드리게 하는데 그의 얼굴에 상처가 날까 봐 똑바로 눕힌 채 결박했다. 션은 쥬다의 하체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그의 엉덩이가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쥬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혐오감을 참는 표정이 선연했는데, 그것마저도 좋다고 션은 마냥 헤실거렸다.
카리나가 기절해 있는 내내 그들은 그렇게 실랑이를 했던 모양이었다.
“생각을 좀 해 봐. 이 정도면 대장이 아니라 빌레너에도 최고가로 넘길 수가 있다고! 아니면 영주에게 바쳐도 한몫은 단단히 챙길 거야.”
“그래도…….”
“네가 그렇게 눈앞만 생각하니까 아직도 그 꼴로 살고 있는 거야.”
션이 미련 가득한 손으로 쥬다의 상체를 쓰다듬자, 카리나를 질레빌이 혀를 찼다.
“이 색에 미친 자식아. 얼마 전엔 마스터의 여자를 건드려서 좆대가리를 잘릴 뻔하더니, 이번에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날려 버리려고 하냐!”
“그 얘긴 하지 말라고 했잖아, 형님. 그 계집이 화장 기술로 날 얼마나 속여 먹었는데. 대장도 참, 그런 못생긴 년을 어떻게 끼고 산대.”
말이 통하지 않아 질레빌이 답답한 표정으로 가슴을 탁탁 쳤다. 게릭과 빌터는 쓰잘데기 없는 대화가 이어지자 불만 가득한 얼굴을 숙였다.
“어차피 구멍 하나야. 그런 구멍, 일만 잘 되면 백이라도 네 품에 안겨 줄게.”
“형님, 이 사람을 보쇼. 어떻게 그저 그런 구멍 하나라고 표현할 수가 있어?”
션이 정색을 하자 질레빌이 인상을 쓰더니 쥬다의 얼굴을 흘끗 보고 얼른 시선을 돌렸다. 평생을 뒷골목에서 굴러먹었던 그도 이런 미인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션의 애걸에 넘어갈까 봐 아예 시선을 주지 않았다.
“형님, 나 이런 마음은 처음이오. 이 사람이라면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아. 그냥 다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살면 안 될까? 우리 셋이 말야.”
그렇게까지 말이 이어지자 질레빌은 션보다 더하게 표정을 굳혀 정색했다.
‘이 자식이 누구 인생을 망치려고.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사내새끼 셋이서 잘만 살겠다. 에라, 멍청한 놈.’
속마음을 숨긴 질레빌이 마음을 달래고 목소리를 깔았다.
“야, 빌레너를 생각해 봐. 영주는 잘못하다간 우리 목이 달아날 수가 있으니까, 차라리 빌레너가 나을 수도 있어. 그 새끼들한테 넘기자. 그럼 그 사람은 없겠지만 저택 하나 사 놓고 온갖 구멍들로 채워 둘 수 있어. 너 좋아하던 쿠키도 고급진 걸로 양껏 먹을 수 있다고.”
“아니 그래도 말이지……. 그럼 우리 한 번만 박아 보자. 형님도 같은 생각하고 있잖아. 우리 평생에 언제 또 이런 사람을 만나 보겠소?”
“션, 잘 생각해 봐.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근데 너 그 새끼들 알잖아. 돈만 되면 아무것도 안 가리는 거. 물건에 손댄 거 알면 그 핑계로 돈을 주기는커녕 얻어맞고 쫓겨날 수도 있다고! 상도덕도 없는 자식들인 거 잊었어?”
쥬다와 카리나가 방문했던 경매장은 이런 이들에겐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꿈의 장소로 여겨지는 듯했다. 질레빌의 계속된 설득에 션은 고민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또 눈은 아래 깔린 몸을 샅샅이 훑고 있어, 확실히 생각을 정하진 않은 것 같았다.
카리나는 저 남자가 좀 더 시간을 끌어 주길 바라면서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션은 금방 마음을 잡았다.
“알았어, 형님. 어차피 이 사람은 계속 갖고 있지도 못할 거야. 그럴 바에야 먼저 팔아 버리는 게 낫겠지.”
“잘 생각했다.”
“바로 넘기게?”
“원래 이런 물건은 손에 들어오면 바로 처분을 해야 해. 어지간해야 가격 올리려고 간 보는 거지. 문제 생기기 전에 움직이는 게 나아.”
“하루 정도는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밥도 먹여 주고, 옷도 입혀 주고, 잠도 같이 자고.”
“인형인 줄 알아? 됐어, 미련 갖지 마. 너 저번에 홍등가 제니가 귀엽다고 했잖아. 비싸서 못 안았다고. 이 물건 넘기고 나면 삼 일은 같이 있게 해 줄게.”
“제니 그새 몸값이 더 올랐던데! 정말이지? 딴소리하면 안 돼, 형님.”
생각을 길게 할 시간이 없었다. 상의가 몸에 딱 달라붙는 드레스였기 때문에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독초 주머니는 여관방에 있었다. 지금 카리나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많지가 않았다.
카리나는 혀로 오른쪽 아래 어금니 자리를 더듬었다. 맨 안쪽의 어금니 자리에는 단단한 이빨 대신 가죽으로 빈틈없이 감싼 큐브 모양의 물건이 있었다. 치아 자리에 심어 놓은 만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반 티스푼의 양으로 강 하류의 모든 물고기를 죽일 수 있을 정도니 성인 남자 네 명에겐 치사량의 양이 될 수 있었다.
마체르트의 노력으로 카리나는 안전한 곳에서 자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소셀런스를 잊어 본 적은 없었다. 마체르트가 누누이 가르쳐 온 것 또한 어떤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대비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강권으로 십대 중반의 나이에 어금니를 빼고 위급 상황에 쓸 수 있는 무기를 심어 놓았다.
상의와 달리 풍성한 드레스 안엔 숙녀들이 입는 레이스 속옷 대신에 넓은 공간의 펑퍼짐한 속옷이 있었다. 배에 부착해 놓은 마비초가 그 안에 위치해 있다. 티가 나지 않아야 하므로 이것 또한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조금 더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새도 없이 바짝 신경을 세웠다.
몸을 지킬 요량으로 자신은 독초를, 쥬다는 단검 따위를 이용한 비도술을 익혔다. 그 역시 유사시를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자신이 기회를 만들어 쥬다를 도와야 했다.
잡담을 끝내고 일어설 채비를 하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손을 옷 아래로 내렸다. 마침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어 드레스 자락이 가까웠다. 풍성한 천 아래로 손을 넣어 배를 더듬거리자 비닐의 감촉이 느껴졌다. 서둘러 잡아 뜯고 그 안의 구슬 모양의 마비초를 꺼내었다. 두세 개의 구슬을 손안에서 굴려 단단한 형태를 우그러뜨렸다. 이게 공중에 날려 사내들의 기관지에 곧바로 들어가야 할 텐데, 다행히도 바람이 많이 부는 편은 아니었다.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사내가 쥬다를 들어 올리려는 찰나 카리나가 소리쳤다.
“쥬다, 숨 쉬지 마!”
그녀가 벌떡 일어나 그들의 머리를 향해 손을 크게 휘둘렀다. 우그러진 채 날아간 마비초가 공중에서 확 퍼졌다. 급하게 손본 탓에 펴지지 못하고 뭉친 채 떨어지는 덩어리들이 있기는 했으나 네 명의 남자가 모인 공간에는 확실히 가루가 날렸다. 마비초의 특성상 밀도가 높지 않아 공기 중에 오랜 시간 떠다닐 수 있었고, 덕분에 남자들의 기관지에도 수월히 침투할 수가 있었다.
쥬다를 붙잡고 있던 게릭과 빌터는 경악성을 지르려다가 얼굴부터 마비된 탓에 소리를 내다 말았다. 그러나 카리나가 쥬다를 향해 외쳤던 말 때문에 눈치 빠른 질레빌이 숨을 멈추어 그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부하들의 모습에 가루가 어떤 용도인지 알게 된 질레빌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게졌다. 그 눈이 매섭게 카리나를 노려보았다. 입은 금방이라도 고함을 지르려고 실룩댔지만 아직도 공중에 떠다니는 녹색 가루 때문인지 꾹 다물려 있었다.
션은 마비초를 조금 흡입했지만 질레빌이 재빨리 그의 입과 코를 두터운 손으로 막았기 때문에 부하들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이상한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모양인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가루가 계속 떠다니는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질레빌의 눈짓에 션이 굳은 얼굴을 엉거주춤 움직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크허억!”
“혀, 혀엉니임!”
질레빌이 침을 튀기며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땅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솟구친 단검이 그의 등 가운데에 박혀 있었는데, 날이 반밖에 들어가지 않아 숨이 끊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쥬다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곧장 일어나 날을 마저 박아 넣었다.



CH. 06


오벨테에는 몇 가지 유명한 것이 있는데 대륙에서 손꼽히게 화려한 암시장과 왕국을 가로질러 흐르는 넓은 강이 그것이다. 수도에 위치한 강치고는 넓고 깊은 르펜강은 여행자들에게 한 번쯤 들러야 할 명소로서 취급되었다. 상류는 유속이 빠른 반면 하류는 비교적 잔잔해 낚시나 멱을 감을 수 있어 시민들도 많이들 찾곤 한다. 빨래를 하는 여자들도 볼 수 있고, 나들이를 나오는 이들도 많아 만남의 장으로도 통하는 곳이었다.
그 르펜강의 상류 바닥엔 시체 네 구가 썩고 있었는데 고이지 않는 덕에 시독이 강을 오염시키는 일은 없었다. 그 밤, 카리나는 전투 불능 상태가 된 남자들에게 독을 쓰려다가 지금이라면 목만 졸라도 죽일 수 있는데 아깝게 독을 쓸 필요는 없겠다 싶어 생각을 고쳐먹었다.
죽이지는 않았다.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고정하기만 했다. 성인 남자의 무게만큼 무거운 돌을 구해 그 다리에 매달고 상류에 떨어뜨렸다. 더러운 피를 볼 필요는 없었다. 몸이 마비되어 제 몸이 산 채로 물에 빠질 때에도 눈만 끔벅였지 몸을 바둥거릴 수도 없었던 이들은 그대로 물속에 수장되었다.
상류의 유속이 세서 혹여나 끈이 풀려 시체가 떠오르진 않을까 싶었지만 하류가 더 발견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게다가 끈이 풀리더라도 하류로 내려오면서 날카로운 돌들에 부딪혀 발견될 땐 신원을 알 수 없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