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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하티를 앞으로 밀치듯이 끌고 들어온 남자는 으슥한 어느 뒷문 앞 쓰레기통에 앉았다. 그리고 바지 지퍼를 내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자, 빨아 봐.”
남자는 주춤주춤 다가오는 하티를 핥듯이 바라보았다. 특히 도톰한 붉은 입술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그가 물었다.
“제법 빨아 봤나? 혀는 좀 쓸 줄 알고?”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군 하티가 “조금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나 받고 빨아 주지?”
“……30불.”
“그래? 이번엔 공짜로 빨아야겠어. 이건 테스트니까.”
“네.”
“대신 잘 빨면 더 좋은 데 소개해 주지. 열심히 해 봐.”
남자는 이 예쁘고 고상한 얼굴에 좆을 박아 댈 생각을 하자 잔뜩 달아올랐다. 하티가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부탁드려요.”
그러더니 남자를 올려다보며 나른하게 처진 눈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에 남자는 감탄사 같은 욕을 내뱉으며 하티의 뺨을 쓰다듬었다.
“저 다리 만지는 거 좋아해서요.”
“그래서?”
“엉덩이 좀 들어 주실래요?”
“뭐?”
갑자기 사람이 돌변한 듯 겁먹은 태도를 버린 하티가 눈웃음을 치자 남자는 홀린 듯이 그가 시키는 대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하티는 망설이지도 않고 남자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남자의 허벅지 안쪽을 쓸며 더 다가와 앉았다. 몽롱하게 풀린 남자의 눈이 황홀한 듯 하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하티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살결을 스치고 쓰다듬으며 예민한 허벅다리 안쪽 피부를 어루만졌다. 사내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쾌감에 부르르 떨어 보이고는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하아― 갈보 년이.”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흥분으로 성기가 바싹 일어섰다. 하티는 웃으며 남자의 허벅지 안쪽에 얼굴을 기댔다. 보드라운 살결이 허벅지 안쪽 살에 와 닿고 머리카락이 다리를 간질였다. 남자의 숨결이 부쩍 거칠어졌다.
“한 번 싸고 나면 정말 소개해 주는 거죠?”
하티가 말할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저려 왔다. 따뜻한 입김이 애무하듯 솜털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래― 돈방석에 앉게 해 줄 테니까, 이년아, 씨발, 빨리!”
“고마워요.”
쪽, 하고 허벅지 안쪽에 키스하는 조그마한 머리통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사내가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틀어잡아 성난 자지에 들이밀려는데 뭔가 허벅지 안쪽이 뜨끔했다.
“……어?”
예쁜 얼굴 아래로 시뻘건 살점이 보였다. 소년이 입을 우물거리며 퉤, 하고 뱉어 내는 것은 자신의 허벅지 안쪽 살인 것 같았다. 새빨간 혀로 입술을 축이고 가냘픈 숨을 내뱉은 하티는 뜯겨 나간 허벅지 안쪽에 얼굴을 묻었다. 끊어진 대동맥에 입을 처박고 실컷 빨아 당겼다. 흔든 후 바로 딴 탄산처럼 뜨거운 피 분수가 한가득 그를 적셨다. 혀로 여린 살결을 헤집으며 어미젖을 빠는 아기처럼 빨아 댔다.
남자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퍼덕였지만, 순식간에 체내의 수분이 빨려 나가 큰소리 한번 못 내 보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양껏 들이마신 하티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파리한 안색으로 고개를 젖히고 말이 없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나른한 눈가에 촉촉하게 젖은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하아― 차암― 열심히 빨아 줬는데 정신을 놓을 만큼 좋았던 건가?”
물론 남자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큭큭 웃은 그는 아직도 흘러내리는 피에 입술을 비비며 혀로 핥아 댔다. 남자의 피는 아직도 따뜻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죽어 버리고― 싸늘하게 식을 것이었다. 하티는 배시시 웃으며 늘어진 남자에게 말했다.
“하는 수 없지, 그럼 소개는 다른 남자한테 받도록 할게.”
그 말처럼―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 일행이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일행인 다른 남자가 제 발로 개미굴로 기어 들어왔다. 그가 골목 입구에서 안쪽을 보며 소리쳤다.
“어이! 아직이야?”
대답은 당연하게도 돌아오지 못했다.
“미친놈.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혀를 찬 그는 어두컴컴한 통로로 걸어 들어왔다.
“작작 좀 하고 빨리 싸. ……어이?”
바로 뒤까지 다가온 남자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손을 뻗어 하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헉! 씨발! 이게 뭐야!?”
시선이 마주친 하티의 눈동자가 잔인한 쾌락으로 빛났다. 그 즉시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남겨 놓고 공중으로 붕 떴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내장이 진탕 되어 찌그러졌다. 코끼리에게 밟힌 꼴로 쿨럭, 쿨럭 조각난 내장을 입으로 토하며 남자는 꿈틀거렸다.
하티는 그런 남자의 등에 올라타 앉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그의 한 팔을 들어 쓰다듬었다. 하아― 하아― 하티의 초점이 흐려지고 뜨거운 숨결이 대기 중에 흩어졌다. 그는 남자의 옷을 찢어발겨 맨살이 드러나게 하여, 아주 연한 안쪽 팔뚝 살을 혀로 핥았다.
“금방 아프지 않게 되니까―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살기등등하게 길어진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북,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입 안 가득 따뜻한 피가 흘러들어 왔다. 하티는 허리를 뒤틀며 쾌락으로 몸을 떨었다. 찬란했던 생명의 파편이 산산이 흩어지며 해변의 모래알처럼 반짝거렸다. 언젠가 보았던 한여름의 백사장이 떠올랐다. 태양 빛이 쏟아져 내리고 파도는 끊임없이 몰아치고 건강한 아이들은 나체로 헤엄을 치던 그 풍경. 빛처럼 반짝이고 순식간에 사라져 갈 가장 싱그러운 때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영화로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생의 환희란 그토록 찰나와 같았추가다. 그것을 빨아들이며 그는 허기를 달래고 꿈을 꾸고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다시 얼음처럼 차가운 어둠이 찾아왔다.
목숨이 끊어진 시체의 팔을 놓아 버린 하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통 앞이 붉게 물들고 젖어 있었다. 정액을 흘리며 성기를 내놓은 남자 역시 어느샌가 심장이 멎어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시체장사꾼들이 나타났다. 그들 사이에는 역시나 덩치 큰 사내, 그의 가장 가까운 종도 있었다. 그가 엉망이 되어 있는 하티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버지.”
실질적으로 하티의 혈족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하티의 세 번째 자식 카스파르였다.
세 번째 자식이라고는 해도 무리를 이끌었던 자 중 세 번째라는 것뿐이지 실제로 하티의 몇 번째 종인지는 모른다. 덧붙이자면 첫째와 둘째는 살해되었다. 불멸자라 하더라도 심장이 파괴되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그들은 영주 하티의 손에 심장이 꿰뚫려 아침 해 아래로 추방당해 불태워졌다고 한다.
대체로 예속된 흡혈귀는 자신의 창조주에게 지고한 복종을 바친다. 그렇긴 해도 하티의 자식들에게는 그 복종의 의미가 좀 남달랐다. 하티는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창조주였다. 그는 피를 주는 인간과는 달리 도움이 안 되는 동족을 업신여겼다. 무관심을 넘어 성가시게 여겼다. 그런 무차별적인 박해는 자신의 종이라고 해서 딱히 피해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는 없느니 못한 해충 취급이었다.
그런데도 하티의 종들은 그를 사랑했다. 신성하게 떠받들고 끔찍이 보살펴야 할 대상처럼 유난을 떨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록스타를 쫓아다니는 그루피 수준이었다. 민폐 그 자체인 아버지를 진심으로 경애했다. 다른 혈족이 보기에는 ‘대체 왜 저러고 사나?’ 싶을 정도로 처절한 짝사랑이었다.
카스파르는 그런 팬덤의 정점에 선 흡혈귀, 말하자면 팬클럽 회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를 향한 그의 애정은 이미 도를 넘었으며,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치를 거슬러 광기로 치달은 지 오래였다. 파더 콤플렉스 따위로 얕보면 곤란하다. 아버지가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갈라 내장도 꺼내 씹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카스파르 역시 혈족의 지도자. 사랑하는 아버지가 마음껏 식성대로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지만, 다른 혈족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도 익히 공감하고 있었다.
하티의 존재는 인간과 흡혈귀 모두를 붕괴시킬 만한 요소였다. 그는 흡혈귀 역사상 한 손에 꼽히는 대식가였다. 나머지 대식가들이 모조리 영원의 종말을 맞이했으니 결국 그는 마지막 남은 대식가인 셈이었다. 확실히 그의 식사량은 사회의 존속 자체를 위협했다.
그가 먹어 치우는 양이 하루에 최저로 잡아 두 명이면 한 달에 60명, 일 년이면 730명이 넘는다. 10년이면 7,300명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무슨 전쟁 지역도 아니고 혈족의 생활 터전은 뉴욕이었다. 게다가 바이오리듬이 폭주하는 날에는 하룻밤 새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먹어 치우는 아버지이지 않은가?
애초에 현대에 이르러서 다른 흡혈귀들은 식사를 한다고 해서 무는 족족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한 번 인간을 사면 잘 먹이고 살찌워 언제까지고 피를 빨아먹는다. 효율성의 재고. 인간에게나 흡혈귀에게나 인기 최고의 경제관념이다. 결국 지금 시대에 그처럼 무식하게 살인하는 괴물은 멸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일각에서는 하티 영주를 다시 땅에 파묻어 버리라고까지 했다. 그도 아니면 내전 지역으로 이사하든가. 덕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으로 팬클럽 회장 카스파르는 똑똑하고 유능하며 사려 깊고 상냥한 한편 어딘가 좀 비뚤어진 흡혈귀로 자라 버렸다.
어쨌거나 하티의 세 번째 자식 카스파르는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오늘도 아버지를 마중 나왔다. 이 정도 성의도 보여 주지 않으면 당장에 다른 이웃의 혈족들이 온갖 불평불만을 싣고 물어뜯으러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권속들의 요청을 듣자마자 날아왔더니 바로 보이는 게 또 성대하게 한바탕한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만찬 매너는 어느 하나 얌전한 구석이 없었다. 먹으면서 온통 얼굴에 묻히고 몸에 흘리는 건 기본이고 음식들까지 엉망으로 짓이겨 놓고는 했다. 어떤 때 보면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는 단지 죽이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포악했다.
인간을 먹는 것은 흡혈귀만이 아니었다. 같은 인간도 인간을 필요로 했다. 보통 하티가 먹고 남긴 고기는 인간 업자들에게 되파는 경우가 많았다. 쓸 만한 장기는 모두 재활용되는 것이었다. 성기를 내놓고 죽은 인간은 그나마 제법 팔리겠지만, 다른 한쪽은 건질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카스타르는 한숨을 내쉬며 하티에게 다가가서 그를 안아 들었다. 실컷 먹고 기분 좋아진 아버지는 이럴 때만 얌전했다. 보드라운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진 않았을까 그는 아버지의 발바닥을 혈족의 다른 아이에게 닦게 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시는 게 어때요?”
벌써 세 명이나 먹어 치웠잖아요? 영주 하티는 작게 하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타르는 그런 하티의 얼굴에 묻은 피를 핥았다. 아버지는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금세 포기한 건지, 기분 좋아서 이 정도의 귀찮음은 허락해 주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축 늘어졌다. 그런 아버지가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 모르는 카스타르는 어미 개처럼 싹싹,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핥았다. 그리고 커다란 담요로 아버지를 덮어 가렸다.
“처리해.”
혈족들이 현장 정리를 시작했다. 그는 거리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하티를 태웠다. 이윽고 이런 거리에 통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롤스로이스 한 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리를 떠나갔다.
배가 부른 하티는 너그러워진다. 그는 포만감과 행복이 직결되는 남자였다. 카스파르는 평소처럼 일출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아버지의 옆에서 찬찬히 거들었다. 밤에는 부랑자처럼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면서 꼭 잠들기 직전만은 신사처럼 차려입는다. 이해하기 힘든 취미다. 어차피 해가 뜨고 감상 중인 한 곡이 끝나면 곧장 잠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마도 나름대로 태양을 향한 경외심을 바치는 것이리라.
하티의 세 번째 자식은 공손히 그의 벗은 옷가지를 받아 들며 말했다.
“사냥하고 싶으신 거라면, 사 온 인간들을 저택에 풀어놓겠습니다.”
“일 없다.”
“그럼 적어도 품위고 체통이고 없이 맨발로 부랑자처럼 거리를 거닐진 말아 주세요. 지금 이 모습으로도 좋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몸에 딱 맞는 양장을 차려입은 하티는 귀족 가의 아름다운 막내 도련님처럼 우아하고 품위 넘쳤다. 한껏 배를 채워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두 뺨과 도톰한 붉은 입술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적어도 이 모습이라면 다른 혈족이 비아냥거리듯 헐뜯거나 무시하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의 아버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괴물이자 신비였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겉모습을 갖추기만 해도 밤의 일족들은 그 본질을 금세 기억해 낼 것이었다.
하티는 그런 생각을 하는 카스파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코웃음을 쳤다.
“내게 득 될 것 하나 없는 족속들인데 왜 내가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하지?”
카스파르는 손가락으로 두 눈꺼풀 위를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말썽쟁이 아버지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이 드시잖아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아버지. 인간들은 더 무자비해졌고요.”
“모처럼 맞는 소릴 하는구나. 그래,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 치워도 인간이 스스로를 죽이는 수만큼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구나.”
“다들 아버지처럼 되는 대로 먹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에 하티는 잔인하게 입매를 뒤틀며 웃었다.
“그럼 그놈들부터 죽여야지.”
먹이 경쟁 따위는 질색이다. 그는 영역 싸움이랍시고 피를 빠는 괴물들을 수두룩하게 죽여 왔다. 이제 와서 그런 청소를 새삼스레 꺼릴 리 없었다.
카스파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싸구려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것만이라도 그만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잔소리꾼아. 내가 왜 아직 널 불태워 버리지 않았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면전에서 그런 잔혹한 소리를 하는 하티다. 그를 사랑하는 카스파르는 이젠 이런 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가슴이 따끔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저 조그맣고 모양 좋은 머리통을 한 대 갈겨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제법 하극상이 무르익은 푸념을 속으로 되뇔 정도였다.
그래도 카스파르의 비난과는 다르게 하티에게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남자를 먹이로 더 선호하는 까닭은 그들이 새끼를 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고대부터 살아온 그는 인간 사회는 모계 사회인 쪽이 훨씬 더 능률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인간이 양계장의 수컷 병아리를 태어나자마자 처분해 버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인도적이었고.
왜 이 역겨운 것들은 산 채로 조금씩 인간을 뜯어 먹는 게 훨씬 더 비위 상하는 일인 줄 모르는 걸까? 적어도 하티는 천천히 죽어 가며 삶에 대한 희망도 욕망도 없이 마음이 죽어 버린 반송장을 먹고 싶진 않았다. 절망으로 얼룩진 그 맛은 자신들에게도 겨우 끼니를 때우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이로움도 없었다. 자신의 자식을 포함한 요즘 시대의 괴물들은 왜 그 사실을 외면하는 걸까?
산 인간들조차도 방목해 키운 고기를 선호하는 세상인데 말이야.
동틀 무렵, 카스파르는 테라스로 나가려는 아버지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고개를 묻었다. 흠뻑 들이마신 숨에선 달콤한 꿀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귀찮다는 듯 한 손으로 그를 떼어 낸 하티는 커다란 암막 천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테라스로 나아갔다. 카스파르는 그 뒷모습을 보며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레코드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곧이어 반짝이는 음의 파도가 몰아쳤다. 기지개를 켠 하티는 선베드 위에 올라가 잔뜩 천을 끌어모아 쥐고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멀리서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 빛이 수평선 너머로부터 치열하게 솟아올랐다. 저택의 모든 창문이 굳게 닫히고 두터운 암막 커튼은 일제히 빛이라곤 새어 들어올 수 없도록 조금의 빈틈도 없이 꼼꼼하게 쳐졌다.
카스파르 역시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을 닫고 아버지가 몸을 누이는 관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관 옆에 둔 옷가지가 아무리 좋아도 아버지는 밤이 되면 엉성한 옷차림으로 신발도 신지 않고는 뛰어나가 버리겠지?
아아, 사랑스러운 아버지.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애틋하게 테라스의 커튼을 움켜쥐고 그 너머에 있을 하티를 생각했다.
***
잠에서 깬 하티는 높은 첨탑 끝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은 가늘게 기울어 있었고 밤하늘은 별빛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맸다. 멀리 보이는 마천루의 불빛들도 아스라이 흐려 보였다. 때때로 불빛에 반짝이는 티파니 목걸이 같다고 생각해 왔던 야경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부쩍 시계가 어두웠다.
그는 밤하늘 속에 얼굴을 묻고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고, 괴물이 괴물을 잡아먹는다. 먹음으로 생존해 왔던 날들이 흐릿해졌다.
그는 생각하고 감상에 잠기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것들이 최종적으로는 생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시간 속에서 제일 먼저 도태되어 가는 것 중 하나였다. 오래 산 흡혈귀들이 으레 그러하듯 미쳐 날뛰다 살해당하거나 자살해 버리는 결말을 하티는 원하지 않았다. 그저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만이 하루라도 더 참되게 살아가도록 그를 도왔다. 눈을 뜨고 생존만을 생각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사냥하고 먹어 포만감 속에 잠들었다. 그토록 충실한 하루들로 밤을 채우려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어제와 1년 전이 같고 1년 전과 100년 전의 일상이 같았기에 시간은 모호해진다. 기억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필요도 없었다. 그는 지나간 무수한 시간을 떠올리지 않았다.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만을 생각했다.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갈증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괜찮았다. 타자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배고픔은 다른 말로 삶에 대한 욕망이기도 했다. 피를 마시고 살아가는 행위를 도외시하기 시작하면 흡혈귀는 급격히 죽어 가게 된다. 이미 죽은 하티지만, 죽음 속에서 허물어져 썩어 버리는 것이 몹시도 두려웠다. 그가 어둠에 기생하는 괴물로 살아가는 동안 진짜 시체가 되어 버릴 만한 위험은 몇 번이고 있었다.
어느 날 허기짐이 사라진 그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유령처럼 세계를 떠돌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괴롭기만 했다. 그러다 바닷속에 빠진 적도 있었고 태양 아래서 불타올랐던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소멸할 때가 온 것이라 받아들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종래에는 결국 부활하지 않았던가? 소름 끼치는 기억이다.
그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하티를 앞으로 밀치듯이 끌고 들어온 남자는 으슥한 어느 뒷문 앞 쓰레기통에 앉았다. 그리고 바지 지퍼를 내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자, 빨아 봐.”
남자는 주춤주춤 다가오는 하티를 핥듯이 바라보았다. 특히 도톰한 붉은 입술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그가 물었다.
“제법 빨아 봤나? 혀는 좀 쓸 줄 알고?”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군 하티가 “조금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나 받고 빨아 주지?”
“……30불.”
“그래? 이번엔 공짜로 빨아야겠어. 이건 테스트니까.”
“네.”
“대신 잘 빨면 더 좋은 데 소개해 주지. 열심히 해 봐.”
남자는 이 예쁘고 고상한 얼굴에 좆을 박아 댈 생각을 하자 잔뜩 달아올랐다. 하티가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저, 부탁드려요.”
그러더니 남자를 올려다보며 나른하게 처진 눈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에 남자는 감탄사 같은 욕을 내뱉으며 하티의 뺨을 쓰다듬었다.
“저 다리 만지는 거 좋아해서요.”
“그래서?”
“엉덩이 좀 들어 주실래요?”
“뭐?”
갑자기 사람이 돌변한 듯 겁먹은 태도를 버린 하티가 눈웃음을 치자 남자는 홀린 듯이 그가 시키는 대로 엉거주춤 일어났다. 하티는 망설이지도 않고 남자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남자의 허벅지 안쪽을 쓸며 더 다가와 앉았다. 몽롱하게 풀린 남자의 눈이 황홀한 듯 하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하티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살결을 스치고 쓰다듬으며 예민한 허벅다리 안쪽 피부를 어루만졌다. 사내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쾌감에 부르르 떨어 보이고는 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하아― 갈보 년이.”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흥분으로 성기가 바싹 일어섰다. 하티는 웃으며 남자의 허벅지 안쪽에 얼굴을 기댔다. 보드라운 살결이 허벅지 안쪽 살에 와 닿고 머리카락이 다리를 간질였다. 남자의 숨결이 부쩍 거칠어졌다.
“한 번 싸고 나면 정말 소개해 주는 거죠?”
하티가 말할 때마다 허벅지 안쪽이 저려 왔다. 따뜻한 입김이 애무하듯 솜털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래― 돈방석에 앉게 해 줄 테니까, 이년아, 씨발, 빨리!”
“고마워요.”
쪽, 하고 허벅지 안쪽에 키스하는 조그마한 머리통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결국 참지 못한 사내가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틀어잡아 성난 자지에 들이밀려는데 뭔가 허벅지 안쪽이 뜨끔했다.
“……어?”
예쁜 얼굴 아래로 시뻘건 살점이 보였다. 소년이 입을 우물거리며 퉤, 하고 뱉어 내는 것은 자신의 허벅지 안쪽 살인 것 같았다. 새빨간 혀로 입술을 축이고 가냘픈 숨을 내뱉은 하티는 뜯겨 나간 허벅지 안쪽에 얼굴을 묻었다. 끊어진 대동맥에 입을 처박고 실컷 빨아 당겼다. 흔든 후 바로 딴 탄산처럼 뜨거운 피 분수가 한가득 그를 적셨다. 혀로 여린 살결을 헤집으며 어미젖을 빠는 아기처럼 빨아 댔다.
남자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퍼덕였지만, 순식간에 체내의 수분이 빨려 나가 큰소리 한번 못 내 보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 양껏 들이마신 하티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파리한 안색으로 고개를 젖히고 말이 없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나른한 눈가에 촉촉하게 젖은 흥분이 깃들어 있었다.
“하아― 차암― 열심히 빨아 줬는데 정신을 놓을 만큼 좋았던 건가?”
물론 남자는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큭큭 웃은 그는 아직도 흘러내리는 피에 입술을 비비며 혀로 핥아 댔다. 남자의 피는 아직도 따뜻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죽어 버리고― 싸늘하게 식을 것이었다. 하티는 배시시 웃으며 늘어진 남자에게 말했다.
“하는 수 없지, 그럼 소개는 다른 남자한테 받도록 할게.”
그 말처럼―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 일행이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일행인 다른 남자가 제 발로 개미굴로 기어 들어왔다. 그가 골목 입구에서 안쪽을 보며 소리쳤다.
“어이! 아직이야?”
대답은 당연하게도 돌아오지 못했다.
“미친놈.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구만.”
혀를 찬 그는 어두컴컴한 통로로 걸어 들어왔다.
“작작 좀 하고 빨리 싸. ……어이?”
바로 뒤까지 다가온 남자는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손을 뻗어 하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헉! 씨발! 이게 뭐야!?”
시선이 마주친 하티의 눈동자가 잔인한 쾌락으로 빛났다. 그 즉시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남겨 놓고 공중으로 붕 떴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내장이 진탕 되어 찌그러졌다. 코끼리에게 밟힌 꼴로 쿨럭, 쿨럭 조각난 내장을 입으로 토하며 남자는 꿈틀거렸다.
하티는 그런 남자의 등에 올라타 앉았다.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듯 그의 한 팔을 들어 쓰다듬었다. 하아― 하아― 하티의 초점이 흐려지고 뜨거운 숨결이 대기 중에 흩어졌다. 그는 남자의 옷을 찢어발겨 맨살이 드러나게 하여, 아주 연한 안쪽 팔뚝 살을 혀로 핥았다.
“금방 아프지 않게 되니까― 조금만 참아요.”
그리고 살기등등하게 길어진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북,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입 안 가득 따뜻한 피가 흘러들어 왔다. 하티는 허리를 뒤틀며 쾌락으로 몸을 떨었다. 찬란했던 생명의 파편이 산산이 흩어지며 해변의 모래알처럼 반짝거렸다. 언젠가 보았던 한여름의 백사장이 떠올랐다. 태양 빛이 쏟아져 내리고 파도는 끊임없이 몰아치고 건강한 아이들은 나체로 헤엄을 치던 그 풍경. 빛처럼 반짝이고 순식간에 사라져 갈 가장 싱그러운 때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영화로밖에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했다. 생의 환희란 그토록 찰나와 같았추가다. 그것을 빨아들이며 그는 허기를 달래고 꿈을 꾸고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다시 얼음처럼 차가운 어둠이 찾아왔다.
목숨이 끊어진 시체의 팔을 놓아 버린 하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통 앞이 붉게 물들고 젖어 있었다. 정액을 흘리며 성기를 내놓은 남자 역시 어느샌가 심장이 멎어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시체장사꾼들이 나타났다. 그들 사이에는 역시나 덩치 큰 사내, 그의 가장 가까운 종도 있었다. 그가 엉망이 되어 있는 하티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버지.”
실질적으로 하티의 혈족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는 하티의 세 번째 자식 카스파르였다.
세 번째 자식이라고는 해도 무리를 이끌었던 자 중 세 번째라는 것뿐이지 실제로 하티의 몇 번째 종인지는 모른다. 덧붙이자면 첫째와 둘째는 살해되었다. 불멸자라 하더라도 심장이 파괴되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다. 그들은 영주 하티의 손에 심장이 꿰뚫려 아침 해 아래로 추방당해 불태워졌다고 한다.
대체로 예속된 흡혈귀는 자신의 창조주에게 지고한 복종을 바친다. 그렇긴 해도 하티의 자식들에게는 그 복종의 의미가 좀 남달랐다. 하티는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창조주였다. 그는 피를 주는 인간과는 달리 도움이 안 되는 동족을 업신여겼다. 무관심을 넘어 성가시게 여겼다. 그런 무차별적인 박해는 자신의 종이라고 해서 딱히 피해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대체로는 없느니 못한 해충 취급이었다.
그런데도 하티의 종들은 그를 사랑했다. 신성하게 떠받들고 끔찍이 보살펴야 할 대상처럼 유난을 떨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록스타를 쫓아다니는 그루피 수준이었다. 민폐 그 자체인 아버지를 진심으로 경애했다. 다른 혈족이 보기에는 ‘대체 왜 저러고 사나?’ 싶을 정도로 처절한 짝사랑이었다.
카스파르는 그런 팬덤의 정점에 선 흡혈귀, 말하자면 팬클럽 회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를 향한 그의 애정은 이미 도를 넘었으며,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치를 거슬러 광기로 치달은 지 오래였다. 파더 콤플렉스 따위로 얕보면 곤란하다. 아버지가 원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갈라 내장도 꺼내 씹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긴 해도 카스파르 역시 혈족의 지도자. 사랑하는 아버지가 마음껏 식성대로 허기를 채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지만, 다른 혈족이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도 익히 공감하고 있었다.
하티의 존재는 인간과 흡혈귀 모두를 붕괴시킬 만한 요소였다. 그는 흡혈귀 역사상 한 손에 꼽히는 대식가였다. 나머지 대식가들이 모조리 영원의 종말을 맞이했으니 결국 그는 마지막 남은 대식가인 셈이었다. 확실히 그의 식사량은 사회의 존속 자체를 위협했다.
그가 먹어 치우는 양이 하루에 최저로 잡아 두 명이면 한 달에 60명, 일 년이면 730명이 넘는다. 10년이면 7,300명이다. 누가 봐도 이상하다. 무슨 전쟁 지역도 아니고 혈족의 생활 터전은 뉴욕이었다. 게다가 바이오리듬이 폭주하는 날에는 하룻밤 새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먹어 치우는 아버지이지 않은가?
애초에 현대에 이르러서 다른 흡혈귀들은 식사를 한다고 해서 무는 족족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한 번 인간을 사면 잘 먹이고 살찌워 언제까지고 피를 빨아먹는다. 효율성의 재고. 인간에게나 흡혈귀에게나 인기 최고의 경제관념이다. 결국 지금 시대에 그처럼 무식하게 살인하는 괴물은 멸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일각에서는 하티 영주를 다시 땅에 파묻어 버리라고까지 했다. 그도 아니면 내전 지역으로 이사하든가. 덕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으로 팬클럽 회장 카스파르는 똑똑하고 유능하며 사려 깊고 상냥한 한편 어딘가 좀 비뚤어진 흡혈귀로 자라 버렸다.
어쨌거나 하티의 세 번째 자식 카스파르는 행복한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오늘도 아버지를 마중 나왔다. 이 정도 성의도 보여 주지 않으면 당장에 다른 이웃의 혈족들이 온갖 불평불만을 싣고 물어뜯으러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권속들의 요청을 듣자마자 날아왔더니 바로 보이는 게 또 성대하게 한바탕한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만찬 매너는 어느 하나 얌전한 구석이 없었다. 먹으면서 온통 얼굴에 묻히고 몸에 흘리는 건 기본이고 음식들까지 엉망으로 짓이겨 놓고는 했다. 어떤 때 보면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는 단지 죽이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포악했다.
인간을 먹는 것은 흡혈귀만이 아니었다. 같은 인간도 인간을 필요로 했다. 보통 하티가 먹고 남긴 고기는 인간 업자들에게 되파는 경우가 많았다. 쓸 만한 장기는 모두 재활용되는 것이었다. 성기를 내놓고 죽은 인간은 그나마 제법 팔리겠지만, 다른 한쪽은 건질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카스타르는 한숨을 내쉬며 하티에게 다가가서 그를 안아 들었다. 실컷 먹고 기분 좋아진 아버지는 이럴 때만 얌전했다. 보드라운 발바닥에 상처가 생기진 않았을까 그는 아버지의 발바닥을 혈족의 다른 아이에게 닦게 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시는 게 어때요?”
벌써 세 명이나 먹어 치웠잖아요? 영주 하티는 작게 하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타르는 그런 하티의 얼굴에 묻은 피를 핥았다. 아버지는 간지러운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금세 포기한 건지, 기분 좋아서 이 정도의 귀찮음은 허락해 주는 건지 알 수 없으나 축 늘어졌다. 그런 아버지가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 모르는 카스타르는 어미 개처럼 싹싹,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핥았다. 그리고 커다란 담요로 아버지를 덮어 가렸다.
“처리해.”
혈족들이 현장 정리를 시작했다. 그는 거리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하티를 태웠다. 이윽고 이런 거리에 통 어울리지 않는 근사한 롤스로이스 한 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거리를 떠나갔다.
배가 부른 하티는 너그러워진다. 그는 포만감과 행복이 직결되는 남자였다. 카스파르는 평소처럼 일출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아버지의 옆에서 찬찬히 거들었다. 밤에는 부랑자처럼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면서 꼭 잠들기 직전만은 신사처럼 차려입는다. 이해하기 힘든 취미다. 어차피 해가 뜨고 감상 중인 한 곡이 끝나면 곧장 잠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마도 나름대로 태양을 향한 경외심을 바치는 것이리라.
하티의 세 번째 자식은 공손히 그의 벗은 옷가지를 받아 들며 말했다.
“사냥하고 싶으신 거라면, 사 온 인간들을 저택에 풀어놓겠습니다.”
“일 없다.”
“그럼 적어도 품위고 체통이고 없이 맨발로 부랑자처럼 거리를 거닐진 말아 주세요. 지금 이 모습으로도 좋잖아요?”
아닌 게 아니라 몸에 딱 맞는 양장을 차려입은 하티는 귀족 가의 아름다운 막내 도련님처럼 우아하고 품위 넘쳤다. 한껏 배를 채워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두 뺨과 도톰한 붉은 입술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적어도 이 모습이라면 다른 혈족이 비아냥거리듯 헐뜯거나 무시하진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의 아버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괴물이자 신비였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겉모습을 갖추기만 해도 밤의 일족들은 그 본질을 금세 기억해 낼 것이었다.
하티는 그런 생각을 하는 카스파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코웃음을 쳤다.
“내게 득 될 것 하나 없는 족속들인데 왜 내가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하지?”
카스파르는 손가락으로 두 눈꺼풀 위를 지그시 누르며 눈을 감았다. 말썽쟁이 아버지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이 드시잖아요? 세상이 바뀌었어요, 아버지. 인간들은 더 무자비해졌고요.”
“모처럼 맞는 소릴 하는구나. 그래,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 치워도 인간이 스스로를 죽이는 수만큼은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구나.”
“다들 아버지처럼 되는 대로 먹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에 하티는 잔인하게 입매를 뒤틀며 웃었다.
“그럼 그놈들부터 죽여야지.”
먹이 경쟁 따위는 질색이다. 그는 영역 싸움이랍시고 피를 빠는 괴물들을 수두룩하게 죽여 왔다. 이제 와서 그런 청소를 새삼스레 꺼릴 리 없었다.
카스파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싸구려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것만이라도 그만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잔소리꾼아. 내가 왜 아직 널 불태워 버리지 않았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면전에서 그런 잔혹한 소리를 하는 하티다. 그를 사랑하는 카스파르는 이젠 이런 소릴 하도 많이 들어서 가슴이 따끔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저 조그맣고 모양 좋은 머리통을 한 대 갈겨 줬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제법 하극상이 무르익은 푸념을 속으로 되뇔 정도였다.
그래도 카스파르의 비난과는 다르게 하티에게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남자를 먹이로 더 선호하는 까닭은 그들이 새끼를 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고대부터 살아온 그는 인간 사회는 모계 사회인 쪽이 훨씬 더 능률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인간이 양계장의 수컷 병아리를 태어나자마자 처분해 버리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인도적이었고.
왜 이 역겨운 것들은 산 채로 조금씩 인간을 뜯어 먹는 게 훨씬 더 비위 상하는 일인 줄 모르는 걸까? 적어도 하티는 천천히 죽어 가며 삶에 대한 희망도 욕망도 없이 마음이 죽어 버린 반송장을 먹고 싶진 않았다. 절망으로 얼룩진 그 맛은 자신들에게도 겨우 끼니를 때우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이로움도 없었다. 자신의 자식을 포함한 요즘 시대의 괴물들은 왜 그 사실을 외면하는 걸까?
산 인간들조차도 방목해 키운 고기를 선호하는 세상인데 말이야.
동틀 무렵, 카스파르는 테라스로 나가려는 아버지의 새하얀 머리카락에 고개를 묻었다. 흠뻑 들이마신 숨에선 달콤한 꿀 냄새가 풍기는 것만 같았다. 귀찮다는 듯 한 손으로 그를 떼어 낸 하티는 커다란 암막 천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테라스로 나아갔다. 카스파르는 그 뒷모습을 보며 라벨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레코드판을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곧이어 반짝이는 음의 파도가 몰아쳤다. 기지개를 켠 하티는 선베드 위에 올라가 잔뜩 천을 끌어모아 쥐고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며 자리를 잡았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멀리서 새벽의 어스름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붉은 태양 빛이 수평선 너머로부터 치열하게 솟아올랐다. 저택의 모든 창문이 굳게 닫히고 두터운 암막 커튼은 일제히 빛이라곤 새어 들어올 수 없도록 조금의 빈틈도 없이 꼼꼼하게 쳐졌다.
카스파르 역시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을 닫고 아버지가 몸을 누이는 관에 불편함이 없도록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관 옆에 둔 옷가지가 아무리 좋아도 아버지는 밤이 되면 엉성한 옷차림으로 신발도 신지 않고는 뛰어나가 버리겠지?
아아, 사랑스러운 아버지.
작게 한숨을 내쉰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애틋하게 테라스의 커튼을 움켜쥐고 그 너머에 있을 하티를 생각했다.
***
잠에서 깬 하티는 높은 첨탑 끝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은 가늘게 기울어 있었고 밤하늘은 별빛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맸다. 멀리 보이는 마천루의 불빛들도 아스라이 흐려 보였다. 때때로 불빛에 반짝이는 티파니 목걸이 같다고 생각해 왔던 야경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부쩍 시계가 어두웠다.
그는 밤하늘 속에 얼굴을 묻고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고, 괴물이 괴물을 잡아먹는다. 먹음으로 생존해 왔던 날들이 흐릿해졌다.
그는 생각하고 감상에 잠기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것들이 최종적으로는 생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시간 속에서 제일 먼저 도태되어 가는 것 중 하나였다. 오래 산 흡혈귀들이 으레 그러하듯 미쳐 날뛰다 살해당하거나 자살해 버리는 결말을 하티는 원하지 않았다. 그저 짐승처럼 살아가는 것만이 하루라도 더 참되게 살아가도록 그를 도왔다. 눈을 뜨고 생존만을 생각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사냥하고 먹어 포만감 속에 잠들었다. 그토록 충실한 하루들로 밤을 채우려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어제와 1년 전이 같고 1년 전과 100년 전의 일상이 같았기에 시간은 모호해진다. 기억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필요도 없었다. 그는 지나간 무수한 시간을 떠올리지 않았다.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만을 생각했다.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갈증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괜찮았다. 타자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배고픔은 다른 말로 삶에 대한 욕망이기도 했다. 피를 마시고 살아가는 행위를 도외시하기 시작하면 흡혈귀는 급격히 죽어 가게 된다. 이미 죽은 하티지만, 죽음 속에서 허물어져 썩어 버리는 것이 몹시도 두려웠다. 그가 어둠에 기생하는 괴물로 살아가는 동안 진짜 시체가 되어 버릴 만한 위험은 몇 번이고 있었다.
어느 날 허기짐이 사라진 그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유령처럼 세계를 떠돌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저 괴롭기만 했다. 그러다 바닷속에 빠진 적도 있었고 태양 아래서 불타올랐던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소멸할 때가 온 것이라 받아들였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종래에는 결국 부활하지 않았던가? 소름 끼치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