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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리고 그의 예상처럼 하티는 평소와 같이 잘 자고 잘 놀고 있었다. 물론 배곯을 일 따위는 없다. 하티가 굶을 걸 걱정하느니 세계의 기아에 처한 어린이를 걱정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리라.
다만 하티는 평소와 다르게 분명한 목적지를 가지고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지난밤 그가 죽인 아이의 어깨에 있던 문양, 사원의 문양을 찾아서였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하티에게도 신경 쓰이는 존재는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오컬트의 성을 쌓은 사원의 수장이었다. 그야말로 신비의 끝판왕 격인 존재. 그의 그늘이 자신의 영토에까지 드리어져 있었다니! 비위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존재의 신비로 따지자면 흡혈귀도 만만치 않지만― 정작 현대의 흡혈귀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비과학의 산물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애초에 침팬지와 인간이 다르듯이 그저 인간과 흡혈귀는 다른 종일 뿐이었다. 어쩌면 뱀파이어는 인간의 돌연변이라든가 진화한 다음 형태일 수도 있었다. 종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 이후에도 생존할 수 있도록 극도로 활성화된 세포를 가지게 된 대신 햇빛에 취약하다거나. 뭐― 그 또한 하나의 설일 뿐이지만.
어쨌든 흡혈귀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근원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었고, 과학의 발전은 그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와서 흡혈귀 중 자신이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믿는 이는 드물었다.
그런 흡혈귀들에게조차 사원의 지배자는 신비의 대상이었으니, 그의 정체와 근원을 아는 자는 전무할 것이다. 어째서 흡혈귀가 아닌 존재가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지, 그의 기묘한 주술은 어떻게 이치와 이치가 아닌 것을 관통하여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
온갖 미지의 것들로 둘러싸인 괴수는 흡혈귀 따위가 아니라 바로 그였다.
그리고 하티는 그 괴수를 싫어했다.
그들의 관계를 들여다보자면 역사는 무려 천 년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너무 오래되어서 언제 시작되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단지 꽤나 주기적으로 그 섬뜩한 문양과 재회할 수 있었는데 심지어 몇 번은 납치되어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그 성가신 놈에게서 탈출한 전적도 있었다. 하티는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흥, 코웃음을 쳤다.
“죽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그 자신이 그러하듯 사원의 지배자도 웬만해선 죽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대체 그 술법사의 정체가 뭔지. 본인은 켈트 족의 드루이드 출신이라 말하지만 그마저도 믿기 힘들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서 속 시원했더니만.”
사원의 부속품이라면 눈에 띄는 족족 죽여 버려도 성에 차지 않았다. 언제 또 자신이 잠들어 있는 동안 관째로 옮겨 감금하려 들지 몰랐다. 절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래도 차라리 실험을 하겠답시고 감옥에라도 가둬 놓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지저 깊은 곳에 묻어 버리기라도 하면 그도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바로 그것이 하티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형벌이었다.
제아무리 제멋대로인 하티라도 두 번 다시 땅속에 파묻히고 싶진 않았다. 영원히 지속될지도 모르는 유폐라니! 심지어 땅은 생명과 죽음의 근원인지라 그 속에 들어가 있자면 소멸할 수조차 없었다. 으으― 끔찍하기도 하지.
부르르 떨어 보인 하티는 얼른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부지런히 이동했다.

북미에 자리 잡은 식용 인신매매 업체는 크게 꼽아 두 곳이다. 그중 시장 점유율을 과반수로 차지하고 있는 회사는 덩굴 사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면 세계에서는 통칭 ‘사원’이라 불리는 집단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들은 5대륙 각국의 인종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부터 장년까지 다양하게 양질의 식재료를 조달하기로 이름 높았다.
‘가까운 대도시를 방문해 주신다면 최상의 서비스와 품질로 고객님을 모시겠습니다.’
물론 주 고객층은 뱀파이어다.
하티는 흡혈귀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살롱의 입구를 보고 혀를 찼다. 버젓이 간판에 넝쿨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던 것이다. 자꾸자꾸 피에 굶주린 괴물들이 들뜬 얼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었다. 혈액 레스토랑을 이용해 본 적 없는 하티에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대체 뭘 하는 곳인고?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윽고 넝쿨 문양이 양각된 손잡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뭐가 뭔지 모르는 사이에 가장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직원 중 누군가가 단번에 하티를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덩굴 사원 뉴욕 지점.
“별미를 원하신다면 인간의 피를 마시게 한 세르비아인은 어떻습니까? 연령은 28세, 성별은 남자입니다. 젊고 몸 관리가 아주 잘 된 특상품이죠. 아니면 아편에 중독된 19살 중국인 여자도 있습니다. 지금 드시기 딱 적당히 취한 상태입니다.”
그곳에는 각양각색의 괴물들이 만찬을 즐기기 위해 들뜬 얼굴로 메뉴를 고르는 해괴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한 번도 식용 인간을 사 먹어 보지 못한 하티는 제법 충격을 받았다.
이 무슨 사냥 본능이 모조리 거세된 식탁의 풍경인지? 그보다 그 야비한 놈이 이렇게나 흡혈귀의 삶 바로 지척까지 접근해 있었단 것이 충격적이었다. 자본주의가 무섭긴 무섭구나.
하티가 시골뜨기처럼 넋 놓고 있자니 안내원이 그를 소파로 이끌었다.
“로드 하티. 저희 지점을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그리고는 덩굴 사원에 대한 소개라든가 이런저런 특선 메뉴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군.’ 하고 말 일이지만 적어도 그의 취향은 아닌지라 불쾌감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불쾌감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사원의 지배자였다.
“제 발로 내 사업장에 굴러 들어오다니 별일이 다 있군.”
앞서 소개했던 오컬트의 정점에 서 있는 신비의 괴물이 이토록 대수롭지 않게 출현하다니. 보통 최후의 최후까지 나타나지 않을 최종 보스가 그의 정체이지만 그 정체와는 별개로 그는 별난 자였다. 의외성의 화신이기도 했고 제법 쉬운 남자이기도 했다. 짙은 흑발의 사내는 뭘 처먹었는지 수십 세기가 지나도록 언제나 같은 모습이었다.
그를 마주한 하티의 눈매가 매서워지며 비죽 송곳니가 자라났다. 그런 그를 보며 사원의 지배자는 과장된 제스처로 달랬다.
“안심해, 아기 양아. 나는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단다.”
하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 매섭게 돌변했다.
“아직도 안 뒈졌나?”
“죽으려야 죽을 수가 없단다. 그러게 내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도를 알려 달라지 않았니?”
“알았으면 진작 내 손으로 죽였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와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로구나. 귀엽기도 하지.”
죽일 수만 있으면 백 번도 만 번도 더 죽였다.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웅다웅하며 살아왔던가? 그러나 수십 세기를 싸웠어도 서로를 죽이지 못한 그들이었다. 하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게 다 뭐야? 흡혈귀들을 죄다 이빨 빠진 돼지로 만들 속셈이냐?”
“세상이 얼마나 변했는데. 아기 양은 어수룩해서 세상 물정 모르긴 매한가지로구나. 요즘 세상엔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단다. 세상 참 좋아졌단다.”
생긋 웃는 얼굴이 제법 선해 보인다만 저 몹쓸 종자처럼 통속적인 인간도 또 없었다. 그는 사르르 눈을 접고 웃으며 하티를 꼬셨다.
“내 아기 양이 배곯을까 봐 이렇게 커다란 농장 만들었는데 이제 그만 내 집에서 같이 살지 않겠느냐?”
하티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상대는 자신을 납치 감금에― 억지로 온갖 종류의 먹이를 먹이고, 햇볕에 굽기도 하고,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거나 심장에 말뚝 13개를 박질 않았던가? 팔다리를 떼어다가 붙이기도 하고 그의 피로 뱀파이어를 만드는 실험을 했던 전적이 있는 또라이였다. 귀여운 척 볼을 부풀리는 잘난 면상을 그저 때려 주고 싶을 뿐이다. 어디 한번 이번 세기도 전쟁으로 지새워 봐?
하티의 기막혀하는 표정에도 사원의 지배자는 그저 귀엽단 듯이 하티를 바라보았다.
“그리 날 세우지 말려무나. 내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 줄 마음 가득하거늘.”
“그럼 접시 물에라도 코 박고 죽어.”
“불가능하단다.”
앙칼지게 구는 고양이일수록 길들이면 더 살가운 법이다. 하티가 가르랑거리며 몸을 비벼 댈 게 눈에 선한 사원의 지배자는 입맛을 다셨다. 남자라면 무릇 가성비가 어마어마하더라도 비싸고 좋은 차를 몰고 싶은 법이다. 하물며 그는 스스로 자신이 능히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 하티를 거느릴 자격이 된다고 자신했다.
“지배인님, 접대용 시음 음료를 내올까요?”
뒤로 다가와 그에게 묻는 남자는 이빨이 삐죽 튀어나온 흡혈귀였다. 금발 사내는 빙긋 웃으며 “물러나 있으세요.” 하고 점원을 물렸다. 하티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러더니 아주아주아주아주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하여 비꼬듯이 말꼬리를 질질 잡아끌며 되물었다.
“지~ 배~ 인~?”
“놀랐느냐? 놀랄 것도 없단다. 이 몸은 지금 덩굴 사원 뉴욕 지점의 점장을 맡고 있단다. 물론 부업이지. 비밀이니 소문내면 안 돼. 알겠지, 아기 양아?”
세상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주술사가 기나긴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드디어 미쳐 버린 게 아닐까? 아니, 미치긴 이미 오래전부터 미쳐 있었지. 문득 그의 뇌를 갈라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는 사원의 지배자도 똑같은 심리로 하티의 몸을 가르고 잘라 보았음은 알지 못했다.
“설마 저것들이 네 본신의 정체를 모른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 사랑스러운 아기 양, 안 본 사이 제법 뇌라는 걸 쓰게 된 모양이구나.”
얼마 전부터 이놈 냄새를 풍기는 족속들이 부쩍 늘어났다 했더니, 설마 아예 이 동네에 정체를 숨기고 자리를 잡았을 줄이야. 하티는 인상을 썼다.
“우연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무얼 말이냐?”
“하필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를 말해 보실까?”
“호오― 설마 자신 때문이라고 여기는 건가?”
“아니라는 거냐?”
“자의식 과잉이란다.”
하티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손으로 짚었다. 그 모양을 보며 사내는 빙글빙글 웃었다.
“모처럼 방문했으니 아기 양에게 식사를 대접해야겠구나. 넌 아무거나 다 복스럽게 잘 먹지만 그래도 꽤 구미에 맞을 것 같은 재료가 있단다.”
하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 없어.”
그리곤 덧붙였다.
“돈놀이에 빠졌으면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 나 건드리지 말고.”
“물론 아기 양에게 돈을 받을 생각은 없단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기 양은 돈 따위 안 들고 다닌단 것도 익히 알고 있지. 그냥 배불리 먹고 귀여움 받으면 되지 않겠니?”
그간 늑대 하티의 근원이 궁금했던 사원의 지배자는 그동안 참 징그럽게도 굴었더랬다. 하티를 통해 흡혈귀 근원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믿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거칠 것 없는 하얀 흡혈귀를 적으로 두는 것은 사원의 지배자나 되는 인물에게도 사소한 일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계속 다투기보다는 곁에 두고 관찰하는 편이 더 이익이겠지. 지켜보는 재미도 상당하고.
물론 그에게 크게 당한 전적이 있는 하티는 항상 날을 세우고 경계하는 편이었다. 복슬복슬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하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사원의 지배자는 그 모습에 또 입술이 말라 왔다.
하티가 말했다.
“나도 무턱대고 실랑이하긴 귀찮아. 더 이상 몹쓸 장난을 치지 않겠다고 나무에 걸고 맹세하면 이쪽도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할 생각은 없어.”
즉 하티는 답지 않게 협상을 할 셈으로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의심쟁이 양이네. 뭐― 좋단다. 화친의 의미로 선물을 주지.”
지배자의 손짓에 따라 덩치 큰 흑인 사내가 점원의 뒤를 따라 하티의 테이블로 왔다. 키가 거의 2m에 육박하는 근육질의 수컷이었다. 최면에 걸린 듯 얌전한 태도였지만 반면 온몸을 수놓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훈장처럼 빛났다. 아주 사나운 기세가 올올이 뿜어져 나온다. 제법 위험한 짐승이렷다. 사원의 지배자가 말했다.
“시에라리온 내전 당시 소년병 출신의 반군이란다. 일백 명이 넘는 동족을 살육했고 수백 명의 팔을 도끼로 잘라 낸 악당이지. 삼십 대의 아주 건장한 남자란다. 네 식성에 딱 맞지 않니?”
그의 말이 끝나자 눈앞의 요리에게서 변화가 생겼다. 흐리멍덩하던 눈빛이 아주 매서운 살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면에서 풀려나는 모양이었다.
“죽이는 맛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 알고 있단다. 팔딱팔딱 신선한 재료이니 맘껏 맛보려무나. 물론 먹기 전에 즐겨도 상관없단다. 여기는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레스토랑이니까.”
하티는 미간을 찌푸렸다. 싫어도 놈의 말뜻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인간과 섹스라도 하라는 말인가?
본능이라고는 그저 식욕에만 모두 치우친 것 같은 하티지만 그 역시 정욕에 휩싸이는 때가 없진 않았다. 사냥하기 위해 유혹을 하다 보면 때때로 포식 전의 흥분인지 그다음 순서에 대한 기대인지 모호해질 정도로 아릿하게 몸이 떨리곤 했다. 하지만 먹이와 교접하는 짓은 정말이지 비위 상하는 짓이었다. 신성한 먹거리에 대한 모독이고 스스로의 한 끼 식사에 똥물을 뿌리는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문란한 사냥법과는 어울리지 않게 희한한 결벽이 있었다.
먹기도 하고 유희 삼아 가지고 놀기도 할 것이 뻔한 요리를 보며 하티는 성가셔하는 얼굴이 되었다. 대체 저 원수 같은 놈은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저놈이 준비한 인간을 자신이 정말로 입에 댈 거로 생각했다면 정말로 이제야말로 죽을 때가 된 걸지도 모른다. 물론 배고프면 물불 안 가리고 먹어 치우는 하티인지라, 지난 역사 통틀어 저 음흉한 놈의 농간에 걸려들어 먹어선 안 될 것들을 먹은 일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망할 놈.’
99년의 유폐 이후 순한 새끼 양처럼 변한 하티이지만 본성은 여전히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였다. 하티가 피식 웃으며 먹이와 시선을 마주치자 울그락불그락 사납게 달아오르던 먹이의 얼굴이 다시 멍해졌다. 그는 홀린 듯 하티를 바라보았다.
사람 홀리는 재주.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유혹은 흡혈귀의 천부적인 재능이자 연마하기 쉬운 기술이다. 먹이가 제 발로 기어들어 오게 만드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처먹기도 더럽게 많이 처먹는 하티는 말도 못하게 유혹적이었다. 물론 그 뛰어난 재주를 그다지 적절하게 활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냥법은 오히려 맹금류가 쥐를 낚아채듯, 사자가 영양을 물어뜯듯 난폭하게 해치우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수천 년 동안 남녀를 불문하고 홀려 왔던 악마가 바라보자 먹이는 비실비실 맥을 못 추고 머리를 아래로 조아렸다. 그리고 열망으로 가득 찬 얼굴로 하티의 눈치를 살폈다. 그 꼴을 본 사원의 지배자는 웃음소리를 억누르지 못했다.
“어서 먹거라. 저 살육자 놈의 멱을 따고 흠뻑 들이마시려무나. 네가 피에 젖어 황홀경에 빠져드는 모습이 참 그리웠단다.”
얼마나 오래전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먼 옛날, 하티는 사원의 지배자를 먹으려 한 적이 있었다. 인신 공양이랍시고 자꾸 사람을 죽이는 드루이드의 피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그날, 하티는 자신의 선택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저 괴수의 피가 하티의 식도를 태우고 몸속에 들어가 상상치 못한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해일처럼 덮쳐 오는 마력의 파도에 하티는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을 뒹굴었다. 감당하지 못한 거대한 힘이었다. 심지어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이렇게 소멸되는구나 하고 스스로를 완전히 포기했었다. 물론 결국엔 살아남았지만 끝나지 않는 더러운 악연 역시 원치도 않는데 뒤따라왔다.
하티는 그때 일이 떠오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너나 처먹어!”
저 음흉한 놈이 권한 것치고 먹어서 탈 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조금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얼른 이 황당한 곳을 벗어나서 배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버지, 아버지, 하고 따르는 혈족들은 그래도 그가 자는 동안만큼은 그를 참 살뜰히도 잘 보살폈다. 그렇게 맘 놓고 푹 잘 수 있는 곳에서 단잠에 들고 싶다.
사원의 지배자가 말했다.
“이게 싫으면 다른 먹이도 많단다.”
“필요 없다니까.”
“먹성 좋은 아기 양을 먹이려고 이렇게나 커다란 농장을 만들었는데― 섭섭하네.”
떼돈 벌겠답시고 벌여 놓은 사업이면서 은연중에 책임을 전가하는 사원 지배자가 비열하기 그지없었다. 종래에 가선 또 똑같은 일들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저 괴수 놈과 불가침 협정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혐오스럽지만 어차피 죽이지도 못한다. 서로 없는 셈 치고 무시하고 지낼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다.
하티는 사원의 지배자를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렸다.
“아무튼 나 건드리지 마라. 그 말 하러 왔어.”
“까마귀를 먼저 건드린 건 너였단다. 또 여기까지 제 발로 찾아들지 않았니?”
흥, 그 맛 좋은 암살자 놈 말이로군. 하티는 지난밤 누구보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눈빛을 하고 있었던 꼬마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 식사를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원의 까마귀인 줄 알았어도 잡아먹었을 것이다. 그는 당장 먹고 싶은 걸 다른 이익을 위해 참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네 약조만 해 주면 다시는 올 일 없으니 염려 말거라.”
“매정한 아기 양이로다.”
사원의 지배자는 이렇다 저렇다 확실한 대답 없이 묘한 얼굴로 씨익 웃기만 했다.
기분 나쁜 놈. 울컥울컥, 패 버릴까? 하고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살롱으로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사원의 지배자는 피식 웃더니 “네 스토커 왔다.” 하고 아는 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