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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원정대 4화
01. 결심 (4)


루이스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미하엘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허니, 힘든 일이 있으면 뭐든지 나한테 말해. 바라는 것도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내가 지금 목숨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당신은 들어줄까?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달싹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미하엘의 얼굴이 너무도 다정해서, 정말 진심이라는 듯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어서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입을 벌렸다.
지금이라면 그가 마음을 바꾸었을지도 몰라. 임신하기 전엔 아이를 거부했었지만, 그래도 생긴 아이를 설마 지우라고 할까. 그래, 아닐 거야. 날 이렇게 사랑하잖아.
“미하엘.”
“그래.”
루이스는 최대한 긴장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첸이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동생이 갖고 싶다고 하던데…….”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렇겠군. 형제가 없으니까.”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듯했다. 입술을 열고 말을 꺼내려던 루이스는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입양을 알아볼까? 네 생각은 어때? 아니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괜찮을 거야.”
“……네, 첸이 기뻐할 거예요.”
가슴이 뒤틀렸다. 마지막 희망을 스스로 짓밟았다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하는 미하엘은 계속해서 기쁜 듯 애완동물과 입양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루이스는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달라지지 않았구나. 혹시나 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헛된 희망을 품었던 루이스는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자신이 어리석었다. 선택지는 하나였다.
“허니, 정말 미안해. 당신과 정말 떨어져 있기 싫지만 또 출장이 있어.”
“전 괜찮아요. 당신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까.”
“사랑해. 넌 내 전부야. 다신 이혼하자는 말은 꺼내지 마. 정말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어.”
“네, 미안해요. 다신 그런 투정 안 부릴게요. 나도 사랑해요.”
루이스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활짝 웃으며 미하엘의 품에 안겼다. 그의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서글프게 웃음 지었다.
미하엘의 출장일이 앞으로 다가왔다. 약 보름 정도 저택을 비우게 된 미하엘은 정말 떨어지기 싫다고 징징거리며 루이스를 안고 어리광을 부렸다. 루이스가 데이브에게 받아 낸 호르몬 억제제 덕분에 임신으로 인해 변한 호르몬을 미하엘은 눈치채지 못했다.
데이브는 돈으로 매수한 산부인과 의사를 지인이랍시고 테일러 가문에 함께 동행해 루이스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다행히 산모도, 아이도 건강했다. 임신 초에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적당한 성관계는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니 걱정할 것 없다는 의사의 조언에 루이스는 잠자리를 원하는 미하엘에게 순순히 응했다. 미하엘은 루이스가 피임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믿으며 노팅 또한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아이가 들어섰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눈치였다.
“헤어지기 싫어.”
“어리광 좀 그만 부려요. 빨리 돌아오면 되잖아요?”
“허니…….”
루이스를 껴안고 한참을 징징거리던 미하엘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애처롭게 말을 이었다.
“돌아오자마자 휴가를 쓸 거야. 허락해 주지 않으면, 뭐 반란이라도 일으키지 뭐.”
“어린애도 아니고.”
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루이스에게 미하엘이 다시금 입을 맞춰 왔다. 수많은 하인들과 직속 보좌관, 집사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은 것인지 끈적한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각하, 이만 가셔야 합니다.”
“눈치 없기는. 그래서 네가 연애를 못 하는 거다.”
허이구? 얼마 전까지 이혼하자는 부인한테 똥강아지처럼 매달리던 주제에! 카일은 속으로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그러든 말든 관심도 없다는 듯, 루이스에게 다시금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미하엘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녀올게. 사랑해, 허니.”
“저도 사랑해요.”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연인의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미하엘이 울며 겨자 먹기로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도 계속해서 손을 흔드는 루이스를 백미러로 끊임없이 바라보며 미하엘은 연신 미소 지었다.
빨리 출장을 끝내고 돌아와 뜨거운 밤을 보내야겠다. 그리고 둘이서 느긋하게 휴양지를 고르고, 곧바로 전세기를 띄워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둘만의 여행에 방해꾼 아들을 데려갈 마음은 없었다.
파도 소리와 섞이는 연인의 신음 소리는 분명 황홀할 것이다. 그렇게 미하엘은 앞으로 다가올 행복에 취해 웃음 지었다.

“집사님. 잠깐 친정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친정에 말씀이십니까?”
“네, 가드는 최소한만 붙여서 며칠만 다녀오겠습니다.”
“예, 제가 함께할까요?”
“아뇨, 혼자 다녀오려고요.”
“알겠습니다.”
루이스가 친정에 다녀오는 것은 종종 있던 일이기에 집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집사의 모습에 내심 안도하며 루이스는 재빨리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
항상 미하엘과 연락할 때 쓰는 휴대 전화는 이미 위치 추적기가 달려 있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잔나는 눈치채지 못하게 루이스의 휴대폰에 프로그램 하나를 설치해 두었다.
잔나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우성 알파였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에 그녀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루이스가 저택에서 한 발자국만 멀어지면 곧바로 위치 추적기가 실시간으로, 미하엘의 휴대 전화로 정보를 알렸다.
심어 놓은 프로그램은 그 위치 추적 정보를 중간에 가로채 바꾼 뒤 원격으로 조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주 공항에 도착한 루이스의 위치는 친정으로 바뀌어 미하엘의 휴대 전화로 날아갈 것이다.
[어떻게 됐어?]
[미하엘은 방금 출발했어요. 이제 가드들만 따돌리면 돼요.]
[알았어. 가르쳐 준 장소로 곧장 오면 돼.]
[알겠어요.]
데이브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루이스는 가방 하나를 꺼냈다. 떠나는 날이 다가왔을 때, 분명 심하게 떨릴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살면서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행성으로 영영 떠나는 것이었다.
눈물도 나오고 두렵고 떨릴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앞으로 다가오니 전혀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루이스는 문득 무서울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자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대 전화, 그리고 옷 한 벌 등 최대한 의심을 사지 않게 최소한의 짐을 싸고 모자를 쓴 루이스는 방을 나섰다.
방을 나오자마자 집사와 첸이 그를 반겼다.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짓는 루이스에게 집사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도련님께서 마님과 함께 가시겠다고…….”
집사의 말에 루이스는 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루이스와 함께 갈 것이라고 믿는 듯했다.
“첸, 오늘은 아빠랑 같이 못 가.”
“왜요? 할아버지 보고 싶은데.”
“…….”
루이스는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첸이 따라 가고 싶다고 나서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종종 친가에 들를 때 첸을 데리고 갔던 것 때문인가 싶어 루이스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루이스의 표정을 바라보며 집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첸을 데려가지 않을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가려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싶어 집사는 연신 루이스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아빠랑 같이 가고 싶어?”
“응!”
“그래, 아빠랑 같이 할아버지 보러 가자.”
“차를 준비할까요?”
루이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드는 한 명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루이스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루이스의 친가는 테일러가에서 고작 한 시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빵집을 운영하던 루이스의 아버지는 루이스의 형에게 가게를 물려준 뒤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집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에 들판과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헬기가 착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어차피 아버지가 계시니 첸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루이스의 부친 또한 아들의 일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루이스가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 아들이 꺼내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대체 왜 결혼을 했냐고, 당장 이혼하라고 날뛰는 아버지에게 루이스는 울며 빌었다.
제발 도와 달라고. 정말 죄송하다고. 그가 임신 사실에 대해 알게 하고 싶지 않다고. 아버지 자식 한 번만 살려 달라고. 미하엘이 낙태를 하겠다고 협박을 한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알게 된다면, 아마 아버지인 그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그는 눈물을 흘리며 못난 아들을 욕했다. 미하엘 테일러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려 그 집에 들어가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구나.
가슴을 쥐어뜯는 아버지에게 루이스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창밖을 응시하는 루이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분명 지금쯤 자신의 위치가 미하엘에게 전송되었을 것이다. 일을 할 땐 일에 집중하기 위해 최대한 연락을 자제하는 미하엘의 특성 덕분에 루이스는 천천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입양을 알아볼까? 네 생각은 어때? 아니면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괜찮을 거야.’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땐, 정말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내가,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 그렇게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그래, 자신은 미하엘을 믿지 못한다.
미하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모를까. 그토록 소중히 대해 주는데. 그토록 사랑스럽게 이름을 불러 주는데. 그토록, 그토록 소중하게 살결을 매만지고 사랑을 속삭이는데.
하지만 배 속에 자리 잡은 아이를 사랑해 줄 것인지에 대해선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토록 거부하는데. 아이는 안 된다고 그렇게 거부하는데 과연 이 아이를 사랑해 줄까?
그렇게 사랑하는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산부인과에 끌고 간다는 말을 늘어놓는 그 모습. ‘아이를 가진 순간부터 네게 선택지란 없어’ 그렇게 경고하는 그 얼굴.
차라리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노팅 없는 성관계에도 아이가 생길 확률이 희박하긴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임약을 소홀히 복용한 건 자신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하며 임신 없이 결혼 생활을 지속한다 할지라도, 과연 자신이 행복했을까?
“할아버지!”
“오냐.”
툭, 말을 내던지듯 첸에게 대답해 준 그는 힐끗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씁쓸하게 웃음 짓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 동안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던 그는 쯧, 하고 혀를 차며 홱 고개를 돌렸다.
“밥은 먹었냐?”
“아니요!”
“들어와. 머핀 구웠으니까.”
헤헤, 하고 웃는 첸을 한 팔에 안은 그는 곧바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째서인지, 그리 크고 듬직해 보이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땐 그렇게 듬직하고 한없이 넓어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아버지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구나.
이제 자신은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불효를 모두 다할 것이다. 평생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날 것이고, 이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해 달라고 청할 것이다. 아버지를 마음속에서 지우고 살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 또한 잊어 달라고, 그리 친아비의 가슴을 난도질할 것이다.
루이스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은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조했다. 아버지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리면 분명 가드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집사에게 연락을 할지도 모르는데.
최대한 울지 말고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아버지의 얼굴을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속이 꽉 막혀 오는 느낌은 생생한데, 매말라 버린 듯한 눈가는 오히려 뻑뻑했다.
“2층 방을 쓰세요. 필요하면 부르겠습니다.”
“예, 부인.”
루이스는 곧바로 주방에서 커피를 내린 후 부친과 첸이 있는 거실로 향했다. 첸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 머핀을 먹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루이스는 아버지가 구운 쿠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여전하시네요, 아버진.”
“……쯧.”
미간을 찌푸린 채 아들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짧게 혀를 찼다. 뭐가 그리 좋다고 저리 웃어 대는지. 그리고 이내 무언가가 떠오른 듯 힐끗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들의 배였다.
자신의 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시선을 깨달은 루이스는 머쓱하게 손으로 배를 문질렀다. 한참 동안 아들의 배를 바라보던 그는 착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속이, 속이 아닐 것이다. 아들의 배에 아이가 들어섰는데,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혼전 계약서를 썼단다. 그런데 임신을 했단다. 그래서 야반도주를 하겠단다. 그걸 도와 달란다.
불효자도 이런 불효자가 없다. 그리 바득바득 우겨 시집갔으면, 그리 고집 부려 들어갔으면 그래도 잘살 것이지. 떵떵거리며 잘살 것이지.
“……못난 놈.”
“…….”
“아빠가 왜 못났어요? 우리 아빠 멋진데!”
아버지의 중얼거림에 루이스는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천진난만한 첸이 활짝 웃으며 외치자, 그는 ‘그래그래, 너희 아빠 멋진 놈이다’라고 대답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차라리 엉엉 울며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아버지 못난 아들 제발 용서해 달라고 매달리면 이 마음이 편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아버지는 더욱 가슴 아파하실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편이 나았다. 이리하든, 저리하든 자신이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빠…….”
“응, 그래. 졸려?”
“응.”
“아빠랑 자자. 오구, 예쁜 내 새끼.”
배가 부르니 저절로 졸음이 밀려오는 것인지 눈을 비비며 잠투정을 부리는 첸을 안아 든 루이스는 아이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며 얼굴을 문질렀다.
2층의 빈방 중 한 곳으로 들어간 루이스는 첸을 눕히고 몸을 도닥여 주며 자장가를 불렀다. 어린아이답게 손가락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첸은 곧바로 잠들었다.
이미 첸이 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몸을 도닥이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루이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빠가, 정말 미안해.”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었다. 강해져야 했다. 지금 울어 버리면 아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아이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루이스는 그 후로도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아이의 눈, 코, 입 등을 찬찬히 훑어보며 조용히 미소 짓던 루이스는 아이가 깨지 않게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닫고 1층으로 내려온 루이스는 거실로 향했다. 아까 내린 커피엔 이미 알약 두 개가 녹아내린 후였다. 커피를 잔에 부은 후 2층으로 향한 루이스는 가드가 들어가 있는 방문을 조심히 두들겼다. 노크 소리에 가드가 곧장 문을 열었다.
“커피 한잔하세요. 힘드시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여기 놔둘게요.”
생긋 웃으며 루이스는 침대 옆에 자리 잡고 있는 협탁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가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짧게 목례를 했다.
방문을 닫고 나온 루이스는 조용히 휴대폰을 들었다.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가슴에 갖다 댄 채 조용히 심호흡을 하던 루이스는 방 안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흠칫 몸을 굳혔다.
그리고 확인 사살을 하듯, 다시금 문을 두들겼다. 방 안에선 반응이 없었다. 무색무취의 강력한 수면제는 쓰디쓴 커피의 맛과 향에 가려졌다. 테일러 가문의 가드들은 기본적으로 수면제나 독약에 내성을 기르는 훈련을 한다.
그런 가드를 순식간에 뻗게 할 정도로 강력한 약이었다. 물론, 이 약 또한 데이브에게서 받아 낸 것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루이스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드를 힐끗 바라 본 후 가드의 품 안을 뒤졌다.
무전기를 발견한 루이스는 화면을 켰다. 가드는 가문의 보안 팀과 일정 시간에 한 번씩 꾸준히 신호를 주고받아야 했다. 가드의 신호가 없어지면 곧바로 보안 팀에 비상이 걸릴 것이고, 보안 팀은 무서운 속도로 루이스를 찾아낼 것이다.
[이상 없음.]
때마침 마지막으로 보안 팀의 호출에 응답한 지 30분이 지난 상태였다. 자동 응답 시스템을 이용해 연락을 취한 루이스는 무전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조용히 거실로 돌아온 루이스는 소파에 앉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매튜는 팔짱을 낀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아들이 무슨 짓을 하고 왔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빼고 말해 봐라.”
“주방에 약을 두었습니다. 여섯 시간 정도 약효가 지속되나, 그 성분이 체내에 오래 남아 있는 약입니다. 직접 드셔야 의심을 피하실 겁니다.”
가드에게 먹인 약은 거의 하루 이상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약이었지만, 약물에 내성이 없는 평범한 중년 남성인 부친에게 똑같은 약을 건넬 수는 없었다. 첸이 잠드는 시간에 맞춰 수면제를 먹으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루이스가 사라진 게 이곳이니, 아마 그는 루이스를 빼돌리는 데에 합세했을 것이라고 의심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땐 ‘차를 마시고 잠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아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라고 주장하면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하엘이 순순히 믿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 할지라도, 이렇게라도 마무리를 지어 놓아야 미하엘이 더 이상 아버지를 질책할 수 없을 것이다.
“못난 놈.”
루이스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직접 드시라고 말하는 아들이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한참 동안 거실엔 정적이 흘렀다. 조용히 손을 뻗어 먹던 쿠키를 집어 든 루이스는 묵묵히 쿠키를 베어 물었다. 달콤한 초코칩이 입 안에서 녹아들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초코칩 쿠키 하나를 입에 물고 있을 때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었다. 아버지가 구워 주신 쿠키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인 줄 알았다.
고작 쿠키 하나에 행복해하던 자신의 어린 모습을 떠올리던 루이스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쿠키는 여전히 변함이 없네요.”
“…….”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못난 놈…….”
그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신음했다. 하지만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너무도 닮은 부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