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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원정대 5화
01. 결심 (5)
루이스가 들고 있던 휴대 전화가 울렸다. 데이브였다.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던 루이스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은 무사히 마쳤냐는 데이브의 물음에 루이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헬기가 도착할 때까진 대략 20분 정도 걸린다는 그의 말에 루이스는 조용히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 애비 버리고 갈 거면, 적어도 잘살기나 해라.”
“……네, 아버지.”
“가는 거 보고 가마.”
“……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헬기가 도착할 때까지, 두 부자는 그렇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무슨 말을 물어야 할까 속으로만 삭였다. 그렇게 20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끝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탁탁탁, 하고 헬기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루이스는 조용히 등을 돌렸다. 메고 왔던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쓴 루이스는 그대로 말없이 집을 나서려다 이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곤 다시금 거실로 향했다.
머핀 몇 개와 쿠키들을 봉투 안에 담은 루이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련 없이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아버지.”
“…….”
짧게 목례를 한 루이스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여니 집 앞에 위치한 들판에 헬기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 데이브는 헬기 앞에 서서 말없이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헬기 쪽으로 걸어가던 루이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빠.”
무언가 망가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 지금껏 참고 참아 왔던 것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그런 소리. 가슴 언저리에 꽉꽉 숨겨 두고 숨겨 두었던 것들이 그대로 가슴을 박차고 나와 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 하고 입가에서 작게 숨이 터져 나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루이스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문손잡이를 잡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첸을 바라보았다.
“아빠, 어디 가요?”
“…….”
문손잡이에서 손을 뗀 아이는 천천히 루이스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루이스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향해 다가가지도, 아이를 부르지도 못했다.
자신의 앞에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에게 루이스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린 루이스는 아이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우리 아들, 내 새끼, 사랑하는 내 아이.”
루이스는 자신의 품에 아이를 꼭 끌어안고 괴롭게 신음했다. 그의 속눈썹은 잘게 떨리고 있었고, 입술은 괴로움을 삼키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슬퍼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제 나약함은 버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첸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빠, 왜 그래요?’ 하고 물어 왔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질문에 루이스는 쓰게 웃었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의 작은 몸을 떼어 낸 루이스는 아이의 눈을 몇 초간 말없이 응시했다.
“첸. 우리 아들.”
“네, 아빠.”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넌 모를 거야.”
예쁘고, 사랑스럽고, 안타깝기만 한 내 아이. 루이스는 괴로움을 짓이기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빤…… 좀 있으면 멀리 갈 거란다.”
“……멀리?”
아이의 눈에 두려움과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그걸 모를 리 없었기에 루이스의 가슴은 괴롭게 타들어가기만 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비록 친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첸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핏덩이였다.
하지만 그런 첸 때문에 다른 하나의 생명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평생을 속죄해도 모자랄 죄를 짓게 된다 하더라도, 루이스는 자신의 아이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 멀리. 더 이상 못 볼지도 몰라.”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루이스를 불안함 섞인 눈동자로 올려다보던 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된 어린아이에게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고 참혹했다. 하지만 이겨 내야만 했다.
루이스는 말없이 첸의 눈가를 부드러운 손길로 닦아 냈다. 그러자, 첸의 울먹임이 더 심해졌다. 루이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울지 마, 울지 마. 네가 그렇게 울면, 내 가슴이 찢어져.”
“어디 가는데요? 나도 갈래요. 못 보는 거 싫어요.”
“안 돼, 아빠가 지금부터 갈 곳은…… 아빠 말곤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이거든.”
“흑, 흐윽.”
이미 아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으며 단단히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눈물을 재빨리 닦아 냈다. 눈물 따위를 흘릴 정도로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대로 아이의 어깨를 움켜쥐고 눈을 맞췄다.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어미의 품을 세상에 태어난 지 3년이나 지난 후에야 겪을 수 있었던, 그런 불쌍하고도 한없이 불쌍한 아이었다.
“제가, 제가…… 진짜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나 버리고 가는 거예요?”
“아니, 아니야. 아빤 누구보다도 널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널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 줄 수 있어.”
“그런데 왜요? 왜 나 버리고 가는 거예요?”
아이가 울먹임 섞인 목소리로 물어 왔다. 루이스는 괴로움 어린 웃음을 애써 지으며 아이의 몸을 감싸 안았다. 머리에 입을 맞춘 후 쉬이, 하고 등을 토닥이며 루이스는 눈을 감았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지만…… 하지만 첸, 이것 하나만 명심해. 아빤 평생 널 사랑할 거라는 걸.”
마음 같아선, 이 아이 또한 데리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아이는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다. 이 아이마저 데리고 떠나 버린다면, 아마 그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 힘겨울 수도 있을 그 여정을, 사랑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다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테일러 가문은 부유하고 안전하며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적어도,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을 터였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날이 올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꼭 돌아오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언젠가 꼭 돌아오겠노라. 꼭 돌아와서 기특하다 쓰다듬고 지금처럼 꽉 끌어안아 주리라. 뜨거운 눈물로 이마에 입 맞춰 주며 사랑한다 말해 주리라. 하지만 그 말을 직접 해 줄 수는 없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꼭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 아이가 헛된 희망을 품고 오지 않을 자신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만 가셔야 합니다.”
눈물을 삼키며 그는 아이의 몸을 떼어 냈다. 아이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지며 그를 목 놓아 불렀다. 멀어지는 자신을 달려와 잡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루이스는 조각조각 잘려 나가는 가슴 언저리를 꽉 눌러야만 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잘라 내는 고통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달려가 끌어안고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어미는 상상 이상으로 독해지는 법이다. 루이스는 그렇게 목 놓아 우는 아이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헬기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아빠, 하고 찢어져라 자신을 부르는 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멈칫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리던 루이스는 이내 터질 듯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금 앞을 바라보았다. 헬기에 몸을 싣고,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자 루이스는 그대로 눈물을 터트렸다.
차마 입을 벌리고 목 놓아 울 수 없어 막혀 오는 목을 손으로 꽉 붙잡은 채, 끅끅거리며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한 헬기 안, 그렇게 루이스는 힘겹게 울음을 참아 냈다.
02. 다른 행성으로 (1)
우주 공항에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묘하게 국가 보안 기관의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항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은밀히 움직일 수 있었다.
헬기를 타자마자 루이스는 아버지에게 첸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송하고는 곧바로 가드가 들고 있던 무전기로 계속해서 수신을 보냈다. 헬기를 탄 후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엔 혹시나 미하엘이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보안 팀이 낌새를 눈치채고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했지만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헬기 안에서 인피면구를 착용한 루이스와 데이브는 우주 공항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우주 공항은 여러 가지 위험 요소 때문에 그 주변은 드넓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보안기관의 눈을 피해서 헬기를 착륙시킬 수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돼. 시간이 없어.”
“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얼른 수속을 밟은 뒤 탑승해야만 했다. 우주 공항은 웬만한 대도시 하나만큼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최소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이어지는 긴 운항을 견디기 위해서 만들어진 함선들은 최소 작은 지역 도시 하나 정도의 크기였기에 정거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을 수밖에 없었다.
정거장 안으로 들어선 데이브는 처음 겪는 정거장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루이스를 침착하게 이끌었다.
우주여행을 즐기는 관광객들은 각 공항에 설립된 연합 센터에 가서 우주 공용어를 이용할 수 있게끔 내장 메모리 칩 이식 시술을 받게 된다. 행성 간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불편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식 시술은 그저 주사 한 방이면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데이브와 루이스 또한 칩 시술을 받았다.
이제 뮌 행성인으로 위장을 해서 빠르게 지구로 이동해야 하는데, 타이나어를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철저히 공용어를 사용했다. 만약 자신들을 목격한 관광객들이 타이나군에게 타이나어를 사용하던 승객을 봤다는 증언을 한다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속 센터로 가서 탑승 수속을 마친 뒤에 8―E번 게이트 가서 탑승하면 돼. 우리가 탈 함선은 루미너스 38호야. 4개월 후에 제 77 환승 센터에 도착할 거야.”
“……네.”
평범하게 찢어진 눈과 낮고 둥근 코, 그리고 작고 얇은 입술에 얼굴을 뒤덮고 있는 주근깨는 아무리 봐도 루이스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데이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마 평소 그에게 죽을 듯 매달리는 여자들이 지금 그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 혀를 내두르며 질색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탑승 수속 센터로 가기 위해선 정거장 내에 위치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다. 절대로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루이스와 데이브는 택시를 타고 수속 센터로 향했다. 정거장 내 택시는 이용 요금이 엄청나게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수속 센터를 향하는 내내 루이스는 멍하게 창밖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타 행성으로 이어지는 정거장이다 보니 크기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정거장 내에는 호텔이나 다른 부가적인 이용 시설 또한 수십 채 이상 건설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데이브 또한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다. 새로운 안식처에 도착할 때까진 자그마치 2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아마 루이스는 아이 또한 함선 내에서 낳아야만 할 것이다.
“루솔 블리소그, 제이미 아디게일 님. 77 환승 센터행 루미너스 38호 함선 비즈니스석 예약되어 있는데,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신분증이랑 여권 보여 주시겠습니까?”
데이브는 곧바로 준비해 두었던 위조 여권과 신분증을 제출했다. 수속 센터 안내원은 곧바로 두 사람의 여권과 신분증을 확인했다. 컴퓨터와 연결된 깔끔한 유리판에 여권과 신분증이 엎어졌다. 띠릭,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정보가 나타났다. 혹시나 위조된 게 들키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보를 확인한 안내원은 곧장 탑승권을 뽑아 건넸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순조롭게 잘 끝난 것 같았다.
“한 시간 후 탑승 수속이 마감됩니다. 8―E번 게이트로 가셔서 탑승하시면 됩니다. 맡기실 짐은 없으십니까?”
“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연신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탑승권을 받아 든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들키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도착하는 데에 3개월 이상이 걸리는 운항의 경우는 탑승 수속이 마무리되고, 이륙할 때까지 거의 보름 이상이 걸렸다. 루이스와 데이브는 함선이 이륙하는 당일에 시간을 맞춰서 일을 마무리 지은 것이었다. 루미너스 38호 함선은 약 세 시간 후에 안정적으로 이륙할 것이다.
대기권을 벗어난 후 부터는 빠르게 환승 센터를 향해 쉬지 않고 운항할 터이니 아마 내일쯤이면 타이나 행성을 벗어나고도 남을 것이다.
“함선 내 이용 시설은 비싸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바로 탑승하도록 하지.”
“잔나한테 돈도 많이 받았을 텐데…… 돈 없는 척하는 거예요, 지금?”
루이스는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 속은 그게 아닐 거란 것을 데이브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브는 그런 것 따위를 일일이 신경 쓰며 같이 괴로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 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서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데이브, 우주여행 몇 번 정도 해 봤어요?”
“나? 세 번 정도? 잔나가 지원을 끊는 바람에 그 이상 못했지.”
루이스는 ‘그렇구나’ 하고 대답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주여행이란 돈 많은 부자들만의 특권이었다. 딱 4개월이 걸리는, 환승 센터까지 운항하는 루미너스호의 탑승 비용은 일반 서민 한 명의 연봉보다 비쌌다. 우주 공항 내부만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여행을 부담 없이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루이스와 데이브만 해도, 환승을 아홉 번을 거쳐야만 지구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웜홀을 통한 환승을 이용하지 않고 직행 운항을 이용할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직행 운항은 최근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웜홀을 통과하면 운항 기간이 극도로 최소화되는 반면 직행 운항의 경우 그 기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최근 우주 항공사에선 직행 운항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약 이백 년 전까지만 해도 10년 이상이 걸리는 직행 운항이 거의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행성들이 우주 공간에 만들어진 환승 센터를 이용한 환승 운항을 이용하고 있었다. 환승 센터는 생겨난 이후 급속도로 불어나 몇백 개가 넘었고, 수천 개의 행성들이 환승 센터를 이용했다.
“아이를 낳는 데에는 문제없을 거다. 기본적으로 함선 내에 종합 병원이 두 개 이상 구비되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네.”
“함선을 타는 건 처음이지? 함선 안엔 별의별 것이 다 있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해변도 있지. 궁금하지 않아?”
그렇게 물어오는 데이브에게 루이스는 힘겹게 미소 지으며 작게 대답했다.
“네. 궁금하네요.”
“전혀 궁금하다는 표정이 아닌데.”
데이브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짐을 최소한으로 줄였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생활용품 등은 함선 내에서 구매해야만 했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놓아야만 했다. 그중 최악은 함선이 출발하기 전에 테일러 가문의 보안 팀에 붙잡히는 것이다.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탑승을 끝내면 아무리 대귀족의 보안 팀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다. 탑승을 끝낸 승객을 수사하는 것은 영장을 발급받은 제국군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미하엘이 루이스의 야반도주를 눈치채서 지금 우주 공항으로 오고 있다고 해도, 함선에 탑승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함선 편은 그렇게 자주 있는 게 아니었다. 탑승객 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최소 몇 달 동안 탑승 수속을 거친다. 아마 미하엘이 알아차리고 자신들을 추적한다 하더라도 최소 몇 개월 뒤에 다음 함선을 타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지낼 곳은 여기야.”
탑승을 끝낸 후 함선 내 이동 시설을 이용한 데이브와 루이스는 비즈니스석 승객들이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정말 말 그대로 고급 호텔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머물 방으로 향한 두 사람은 각자 방에서 짐 정리를 끝낸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4개월간의 운항이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활용품과 옷가지 등을 구비해 놓아야만 했다. 방 안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기본적으로 4인 1실, 2인 1실 등 좁은 방 안에서 여러 명과 지내야 하는 이코노미석과는 달리 비즈니스석은 개인실이 제공되었다.
깔끔한 침대와 갖가지 가구들까지. 이코노미석은 여러 개의 방과 하나의 공용 주방과, 욕실이 붙어 있는 방식이지만 비즈니스석은 방마다 주방과 욕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 커튼을 펼친 루이스는 강한 태양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인공 태양이었지만 진짜 태양과 거의 비슷했다. 창문 너머로 함선 내 수많은 건물들과 승객들을 바라보던 루이스는 이내 다시금 커튼을 쳤다.
침대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꺼냈다. 지퍼를 열고 여권과 신분증, 통장 등 중요한 물건들을 객실 내에 구비되어 있는 금고에 넣은 후 짐정리를 했다. 가방을 뒤지던 루이스는 문득 손에 잡히는 것을 꺼냈다. 작은 액자였다.
활짝 웃고 있는 미하엘과 그런 미하엘의 어깨에 앉아 있는 첸. 행복하게 목마놀이를 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에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하, 하고 애처롭게 숨을 내쉬었다.
보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고작 사진 한 장 따위로 이렇게 무너질 거면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고통스레 일그러진 얼굴로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루이스는 똑똑, 하는 노크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갔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자 데이브가 보였다. 루이스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데이브에게 매달렸다.
“데이브, 나 안 되겠어요! 못 해요, 난 못 해요……!”
“루이스?”
“못 해, 난 못 해. 돌아갈래, 내릴래. 내릴래요…….”
엉엉 울며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루이스의 어깨를 붙잡은 데이브는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정신 차려.”
“어떻게 가…… 어떻게, 어떻게…….”
루이스, 하고 데이브가 다시금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완전히 풀린 눈으로 흐으, 흐으 신음하는 루이스의 얼굴을 붙잡은 데이브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떠나기로 했잖아. 이제 와서 번복할 셈이야?”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서 미하엘에게 아이를 빼앗기길 원해? 정말 그걸 원하는 거야?”
“흑, 흐윽…….”
루이스가 애처롭게 흐느꼈다. 아무리 루이스가 어른스럽다 해도 고작 스물네 살이었다. 아직 너무도 어리고 철없는 나이였다. 멀쩡한 게 이상했다. 루이스와 함께 떠나면서 한 번쯤은 이렇게 무너질 것이라고 데이브는 진즉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데이브가 생각했던 것보다 루이스는 훨씬 더 마음이 약했다. 어쩌면,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한 게 기적일지도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돌아가 봤자 너만 괴로워질 뿐이야.”
아이를 지키기로 했잖아. 데이브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데이브에게 매달린 채로 작게 흐느끼던 루이스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데이브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01. 결심 (5)
루이스가 들고 있던 휴대 전화가 울렸다. 데이브였다.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던 루이스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일은 무사히 마쳤냐는 데이브의 물음에 루이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헬기가 도착할 때까진 대략 20분 정도 걸린다는 그의 말에 루이스는 조용히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 애비 버리고 갈 거면, 적어도 잘살기나 해라.”
“……네, 아버지.”
“가는 거 보고 가마.”
“……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헬기가 도착할 때까지, 두 부자는 그렇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무슨 말을 물어야 할까 속으로만 삭였다. 그렇게 20분이 지날 때까지, 두 사람은 끝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탁탁탁, 하고 헬기의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루이스는 조용히 등을 돌렸다. 메고 왔던 가방을 메고 모자를 쓴 루이스는 그대로 말없이 집을 나서려다 이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곤 다시금 거실로 향했다.
머핀 몇 개와 쿠키들을 봉투 안에 담은 루이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련 없이 웃었다.
“잘 먹겠습니다, 아버지.”
“…….”
짧게 목례를 한 루이스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여니 집 앞에 위치한 들판에 헬기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 데이브는 헬기 앞에 서서 말없이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헬기 쪽으로 걸어가던 루이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빠.”
무언가 망가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 지금껏 참고 참아 왔던 것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그런 소리. 가슴 언저리에 꽉꽉 숨겨 두고 숨겨 두었던 것들이 그대로 가슴을 박차고 나와 버리는 것만 같았다.
하, 하고 입가에서 작게 숨이 터져 나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 루이스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문손잡이를 잡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첸을 바라보았다.
“아빠, 어디 가요?”
“…….”
문손잡이에서 손을 뗀 아이는 천천히 루이스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루이스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이를 향해 다가가지도, 아이를 부르지도 못했다.
자신의 앞에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에게 루이스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린 루이스는 아이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우리 아들, 내 새끼, 사랑하는 내 아이.”
루이스는 자신의 품에 아이를 꼭 끌어안고 괴롭게 신음했다. 그의 속눈썹은 잘게 떨리고 있었고, 입술은 괴로움을 삼키는 듯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슬퍼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제 나약함은 버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첸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빠, 왜 그래요?’ 하고 물어 왔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질문에 루이스는 쓰게 웃었다. 품에 안고 있던 아이의 작은 몸을 떼어 낸 루이스는 아이의 눈을 몇 초간 말없이 응시했다.
“첸. 우리 아들.”
“네, 아빠.”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넌 모를 거야.”
예쁘고, 사랑스럽고, 안타깝기만 한 내 아이. 루이스는 괴로움을 짓이기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아빤…… 좀 있으면 멀리 갈 거란다.”
“……멀리?”
아이의 눈에 두려움과 불안함이 피어올랐다. 그걸 모를 리 없었기에 루이스의 가슴은 괴롭게 타들어가기만 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비록 친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첸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핏덩이였다.
하지만 그런 첸 때문에 다른 하나의 생명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평생을 속죄해도 모자랄 죄를 짓게 된다 하더라도, 루이스는 자신의 아이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 멀리. 더 이상 못 볼지도 몰라.”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루이스를 불안함 섞인 눈동자로 올려다보던 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된 어린아이에게 비수를 꽂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고 참혹했다. 하지만 이겨 내야만 했다.
루이스는 말없이 첸의 눈가를 부드러운 손길로 닦아 냈다. 그러자, 첸의 울먹임이 더 심해졌다. 루이스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울지 마, 울지 마. 네가 그렇게 울면, 내 가슴이 찢어져.”
“어디 가는데요? 나도 갈래요. 못 보는 거 싫어요.”
“안 돼, 아빠가 지금부터 갈 곳은…… 아빠 말곤 아무도 갈 수 없는 곳이거든.”
“흑, 흐윽.”
이미 아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으며 단단히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눈물을 재빨리 닦아 냈다. 눈물 따위를 흘릴 정도로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그대로 아이의 어깨를 움켜쥐고 눈을 맞췄다.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어미의 품을 세상에 태어난 지 3년이나 지난 후에야 겪을 수 있었던, 그런 불쌍하고도 한없이 불쌍한 아이었다.
“제가, 제가…… 진짜 아들이 아니라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나 버리고 가는 거예요?”
“아니, 아니야. 아빤 누구보다도 널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널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어 줄 수 있어.”
“그런데 왜요? 왜 나 버리고 가는 거예요?”
아이가 울먹임 섞인 목소리로 물어 왔다. 루이스는 괴로움 어린 웃음을 애써 지으며 아이의 몸을 감싸 안았다. 머리에 입을 맞춘 후 쉬이, 하고 등을 토닥이며 루이스는 눈을 감았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지만…… 하지만 첸, 이것 하나만 명심해. 아빤 평생 널 사랑할 거라는 걸.”
마음 같아선, 이 아이 또한 데리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아이는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었다. 이 아이마저 데리고 떠나 버린다면, 아마 그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 힘겨울 수도 있을 그 여정을, 사랑이라는 그늘 아래에서 다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테일러 가문은 부유하고 안전하며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라면 적어도,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을 터였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날이 올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온다면 꼭 돌아오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언젠가 꼭 돌아오겠노라. 꼭 돌아와서 기특하다 쓰다듬고 지금처럼 꽉 끌어안아 주리라. 뜨거운 눈물로 이마에 입 맞춰 주며 사랑한다 말해 주리라. 하지만 그 말을 직접 해 줄 수는 없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꼭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 아이가 헛된 희망을 품고 오지 않을 자신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만 가셔야 합니다.”
눈물을 삼키며 그는 아이의 몸을 떼어 냈다. 아이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지며 그를 목 놓아 불렀다. 멀어지는 자신을 달려와 잡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루이스는 조각조각 잘려 나가는 가슴 언저리를 꽉 눌러야만 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잘라 내는 고통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달려가 끌어안고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어미는 상상 이상으로 독해지는 법이다. 루이스는 그렇게 목 놓아 우는 아이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헬기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 아빠, 하고 찢어져라 자신을 부르는 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멈칫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리던 루이스는 이내 터질 듯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금 앞을 바라보았다. 헬기에 몸을 싣고,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자 루이스는 그대로 눈물을 터트렸다.
차마 입을 벌리고 목 놓아 울 수 없어 막혀 오는 목을 손으로 꽉 붙잡은 채, 끅끅거리며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프로펠러 소리가 요란한 헬기 안, 그렇게 루이스는 힘겹게 울음을 참아 냈다.
02. 다른 행성으로 (1)
우주 공항에 도착하는 데에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묘하게 국가 보안 기관의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항로를 이용했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은밀히 움직일 수 있었다.
헬기를 타자마자 루이스는 아버지에게 첸을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송하고는 곧바로 가드가 들고 있던 무전기로 계속해서 수신을 보냈다. 헬기를 탄 후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엔 혹시나 미하엘이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보안 팀이 낌새를 눈치채고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했지만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헬기 안에서 인피면구를 착용한 루이스와 데이브는 우주 공항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우주 공항은 여러 가지 위험 요소 때문에 그 주변은 드넓은 숲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보안기관의 눈을 피해서 헬기를 착륙시킬 수 있었다.
“빨리 움직여야 돼. 시간이 없어.”
“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얼른 수속을 밟은 뒤 탑승해야만 했다. 우주 공항은 웬만한 대도시 하나만큼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최소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이어지는 긴 운항을 견디기 위해서 만들어진 함선들은 최소 작은 지역 도시 하나 정도의 크기였기에 정거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을 수밖에 없었다.
정거장 안으로 들어선 데이브는 처음 겪는 정거장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그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루이스를 침착하게 이끌었다.
우주여행을 즐기는 관광객들은 각 공항에 설립된 연합 센터에 가서 우주 공용어를 이용할 수 있게끔 내장 메모리 칩 이식 시술을 받게 된다. 행성 간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불편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식 시술은 그저 주사 한 방이면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데이브와 루이스 또한 칩 시술을 받았다.
이제 뮌 행성인으로 위장을 해서 빠르게 지구로 이동해야 하는데, 타이나어를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철저히 공용어를 사용했다. 만약 자신들을 목격한 관광객들이 타이나군에게 타이나어를 사용하던 승객을 봤다는 증언을 한다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속 센터로 가서 탑승 수속을 마친 뒤에 8―E번 게이트 가서 탑승하면 돼. 우리가 탈 함선은 루미너스 38호야. 4개월 후에 제 77 환승 센터에 도착할 거야.”
“……네.”
평범하게 찢어진 눈과 낮고 둥근 코, 그리고 작고 얇은 입술에 얼굴을 뒤덮고 있는 주근깨는 아무리 봐도 루이스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데이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마 평소 그에게 죽을 듯 매달리는 여자들이 지금 그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 혀를 내두르며 질색을 할 것임이 분명했다.
탑승 수속 센터로 가기 위해선 정거장 내에 위치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만 했다. 절대로 걸어서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루이스와 데이브는 택시를 타고 수속 센터로 향했다. 정거장 내 택시는 이용 요금이 엄청나게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수속 센터를 향하는 내내 루이스는 멍하게 창밖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타 행성으로 이어지는 정거장이다 보니 크기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정거장 내에는 호텔이나 다른 부가적인 이용 시설 또한 수십 채 이상 건설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게 창밖을 응시하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데이브 또한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실감이 나지 않는 듯했다. 새로운 안식처에 도착할 때까진 자그마치 2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아마 루이스는 아이 또한 함선 내에서 낳아야만 할 것이다.
“루솔 블리소그, 제이미 아디게일 님. 77 환승 센터행 루미너스 38호 함선 비즈니스석 예약되어 있는데,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신분증이랑 여권 보여 주시겠습니까?”
데이브는 곧바로 준비해 두었던 위조 여권과 신분증을 제출했다. 수속 센터 안내원은 곧바로 두 사람의 여권과 신분증을 확인했다. 컴퓨터와 연결된 깔끔한 유리판에 여권과 신분증이 엎어졌다. 띠릭,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정보가 나타났다. 혹시나 위조된 게 들키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를 굴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보를 확인한 안내원은 곧장 탑승권을 뽑아 건넸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순조롭게 잘 끝난 것 같았다.
“한 시간 후 탑승 수속이 마감됩니다. 8―E번 게이트로 가셔서 탑승하시면 됩니다. 맡기실 짐은 없으십니까?”
“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연신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탑승권을 받아 든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들키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
도착하는 데에 3개월 이상이 걸리는 운항의 경우는 탑승 수속이 마무리되고, 이륙할 때까지 거의 보름 이상이 걸렸다. 루이스와 데이브는 함선이 이륙하는 당일에 시간을 맞춰서 일을 마무리 지은 것이었다. 루미너스 38호 함선은 약 세 시간 후에 안정적으로 이륙할 것이다.
대기권을 벗어난 후 부터는 빠르게 환승 센터를 향해 쉬지 않고 운항할 터이니 아마 내일쯤이면 타이나 행성을 벗어나고도 남을 것이다.
“함선 내 이용 시설은 비싸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바로 탑승하도록 하지.”
“잔나한테 돈도 많이 받았을 텐데…… 돈 없는 척하는 거예요, 지금?”
루이스는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사실 속은 그게 아닐 거란 것을 데이브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데이브는 그런 것 따위를 일일이 신경 쓰며 같이 괴로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 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서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데이브, 우주여행 몇 번 정도 해 봤어요?”
“나? 세 번 정도? 잔나가 지원을 끊는 바람에 그 이상 못했지.”
루이스는 ‘그렇구나’ 하고 대답하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주여행이란 돈 많은 부자들만의 특권이었다. 딱 4개월이 걸리는, 환승 센터까지 운항하는 루미너스호의 탑승 비용은 일반 서민 한 명의 연봉보다 비쌌다. 우주 공항 내부만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여행을 부담 없이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루이스와 데이브만 해도, 환승을 아홉 번을 거쳐야만 지구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웜홀을 통한 환승을 이용하지 않고 직행 운항을 이용할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직행 운항은 최근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웜홀을 통과하면 운항 기간이 극도로 최소화되는 반면 직행 운항의 경우 그 기간이 아주 길기 때문에 최근 우주 항공사에선 직행 운항을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약 이백 년 전까지만 해도 10년 이상이 걸리는 직행 운항이 거의 이용되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행성들이 우주 공간에 만들어진 환승 센터를 이용한 환승 운항을 이용하고 있었다. 환승 센터는 생겨난 이후 급속도로 불어나 몇백 개가 넘었고, 수천 개의 행성들이 환승 센터를 이용했다.
“아이를 낳는 데에는 문제없을 거다. 기본적으로 함선 내에 종합 병원이 두 개 이상 구비되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네.”
“함선을 타는 건 처음이지? 함선 안엔 별의별 것이 다 있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해변도 있지. 궁금하지 않아?”
그렇게 물어오는 데이브에게 루이스는 힘겹게 미소 지으며 작게 대답했다.
“네. 궁금하네요.”
“전혀 궁금하다는 표정이 아닌데.”
데이브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짐을 최소한으로 줄였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생활용품 등은 함선 내에서 구매해야만 했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놓아야만 했다. 그중 최악은 함선이 출발하기 전에 테일러 가문의 보안 팀에 붙잡히는 것이다. 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탑승을 끝내면 아무리 대귀족의 보안 팀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다. 탑승을 끝낸 승객을 수사하는 것은 영장을 발급받은 제국군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미하엘이 루이스의 야반도주를 눈치채서 지금 우주 공항으로 오고 있다고 해도, 함선에 탑승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함선 편은 그렇게 자주 있는 게 아니었다. 탑승객 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최소 몇 달 동안 탑승 수속을 거친다. 아마 미하엘이 알아차리고 자신들을 추적한다 하더라도 최소 몇 개월 뒤에 다음 함선을 타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지낼 곳은 여기야.”
탑승을 끝낸 후 함선 내 이동 시설을 이용한 데이브와 루이스는 비즈니스석 승객들이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정말 말 그대로 고급 호텔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머물 방으로 향한 두 사람은 각자 방에서 짐 정리를 끝낸 후 다시 만나기로 했다.
4개월간의 운항이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활용품과 옷가지 등을 구비해 놓아야만 했다. 방 안은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기본적으로 4인 1실, 2인 1실 등 좁은 방 안에서 여러 명과 지내야 하는 이코노미석과는 달리 비즈니스석은 개인실이 제공되었다.
깔끔한 침대와 갖가지 가구들까지. 이코노미석은 여러 개의 방과 하나의 공용 주방과, 욕실이 붙어 있는 방식이지만 비즈니스석은 방마다 주방과 욕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 커튼을 펼친 루이스는 강한 태양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인공 태양이었지만 진짜 태양과 거의 비슷했다. 창문 너머로 함선 내 수많은 건물들과 승객들을 바라보던 루이스는 이내 다시금 커튼을 쳤다.
침대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꺼냈다. 지퍼를 열고 여권과 신분증, 통장 등 중요한 물건들을 객실 내에 구비되어 있는 금고에 넣은 후 짐정리를 했다. 가방을 뒤지던 루이스는 문득 손에 잡히는 것을 꺼냈다. 작은 액자였다.
활짝 웃고 있는 미하엘과 그런 미하엘의 어깨에 앉아 있는 첸. 행복하게 목마놀이를 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에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하, 하고 애처롭게 숨을 내쉬었다.
보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여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고작 사진 한 장 따위로 이렇게 무너질 거면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고통스레 일그러진 얼굴로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루이스는 똑똑, 하는 노크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갔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자 데이브가 보였다. 루이스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데이브에게 매달렸다.
“데이브, 나 안 되겠어요! 못 해요, 난 못 해요……!”
“루이스?”
“못 해, 난 못 해. 돌아갈래, 내릴래. 내릴래요…….”
엉엉 울며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루이스의 어깨를 붙잡은 데이브는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정신 차려.”
“어떻게 가…… 어떻게, 어떻게…….”
루이스, 하고 데이브가 다시금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완전히 풀린 눈으로 흐으, 흐으 신음하는 루이스의 얼굴을 붙잡은 데이브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려. 아이를 지키기 위해 떠나기로 했잖아. 이제 와서 번복할 셈이야?”
“하지만,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서 미하엘에게 아이를 빼앗기길 원해? 정말 그걸 원하는 거야?”
“흑, 흐윽…….”
루이스가 애처롭게 흐느꼈다. 아무리 루이스가 어른스럽다 해도 고작 스물네 살이었다. 아직 너무도 어리고 철없는 나이였다. 멀쩡한 게 이상했다. 루이스와 함께 떠나면서 한 번쯤은 이렇게 무너질 것이라고 데이브는 진즉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데이브가 생각했던 것보다 루이스는 훨씬 더 마음이 약했다. 어쩌면,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한 게 기적일지도 모른다.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돌아가 봤자 너만 괴로워질 뿐이야.”
아이를 지키기로 했잖아. 데이브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데이브에게 매달린 채로 작게 흐느끼던 루이스는 끝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데이브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