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베이비 원정대 6화
02. 다른 행성으로 (2)


온몸의 수분을 뽑아내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울어 대던 루이스의 마음은 한참 뒤에 겨우 진정되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넋이 나가 있는 루이스에게 절대 나가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둔 데이브는 곧장 함선 내 마트로 향했다.
수건과 티슈 등 가장 시급한 물건들을 담은 데이브는 서둘러 루이스의 객실로 돌아왔다. 다행히 루이스는 그가 나가기 전 모습과 똑같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쉰 데이브는 말없이 수건에 물을 적셔서 루이스의 머리에 툭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방으로 향해 사 온 허브차를 따뜻하게 우려냈다. 머리 위에 젖은 수건을 쓴 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루이스에게 데이브는 찻잔을 내밀었다.
한참 뒤에 천천히 찻잔을 받아 드는 루이스를 말없이 바라보던 데이브는 머리 위에 얹어져 있는 수건을 들었다.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루이스의 얼굴을 박박 닦아 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쩍쩍 갈라지고 쉬어 버린 목소리는 마치 거위의 울음소리를 듣는 듯했다. 데이브는 순순히 루이스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찻잔을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은 후 수건을 받아든 루이스는 천천히 엉망이 된 자신의 얼굴을 닦아 냈다.
“이제 좀 진정이 돼?”
“……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루이스를 바라보며 데이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루이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됐어, 이해하니까.”
툭 내던지듯 대답하는 데이브의 목소리에 루이스는 쓰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또다시 한참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넋을 놓은 얼굴로 앞을 응시하던 루이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데이브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진심으로 루이스는 그렇게 덧붙였다. 진심이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무사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마음을 다잡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혼자서 타 행성으로 도망쳤다면 어땠을까.
분명 혼자서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을 겪어 본 많은 이들이 자신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럽고 지혜로우며 여유롭다고 말했다. 그런 매력에 미하엘이 빠져든 것이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루이스는 이번 일로 자신은 나약한 겁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낳지도 않았는데. 아직 넘을 산이 너무도 많은데. 그런데 벌써부터 도망치려는 마음이 들다니. 배 속의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당신이 없었으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고마워요.”
“…….”
“마음 단단히 먹을게요. 이제 안 울 겁니다. 정말로.”
힘겹게 입꼬리를 올리고 웃음 짓는 루이스에게 데이브는 아무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아마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몇 번이나 좌절하고 무너질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고 견뎌 내야 하는 일이 수백 번도 더 생길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울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식처럼 아끼는 아이를, 부모님을, 고향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울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데이브는 루이스에게 ‘울지 마’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
조용히 대답하는 데이브에게 애써 미소 지은 루이스는 협탁에 올려놓았던 찻잔을 들었다. ‘잘 마실게요’라고 중얼거리듯 말한 후 차를 머금었다. 따뜻하고 향긋한 허브차가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듯했다.
팔짱을 끼고 차를 홀짝이는 루이스를 조용히 바라보던 데이브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쉬겠어?”
“아뇨.”
고민 없이 곧바로 대답하는 루이스의 모습에 데이브는 내심 놀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산부인과에 방문해 아이에게 이상은 없는지 간단하게 검사를 받은 후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했지만 루이스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인 탓에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어차피 저녁 6시 이후로 병원들은 모두 문을 닫기 때문에 산부인과는 다음에 들러야만 했다. 이렇게 방 안에 덩그러니 앉아서 잡생각에 빠져 있기보다는 뭘 하든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정말 괜찮다는 듯 미소 지으며 루이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데이브에게 말했다.
“나가요, 우리. 바람이라도 쐐요.”
“괜찮겠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묻는 데이브에게 루이스는 활짝 웃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일단 나가자. 일단 나가서 군것질을 하든, 함선 내 시설을 구경하든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침대에서 일어난 루이스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일어나듯 함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미하엘이 수를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새파랗게 질렸던 루이스는 이내 함선 내부에 울려 퍼지는 안내 방송에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저희 루미너스 38호 함선은 현재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선체에 다소 흔들림이 있을 수 있으니 야외 활동을 즐기시는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을 위해 잠깐 움직임을 멈추어 주시고, 선체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라는 안내 멘트와 함께 다시금 방송이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깊이 들이마신 루이스는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역시 미하엘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이었던 걸까, 이대로 잡히고 만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차라리 솔직하게 아이가 생겼다고 털어놓을 걸 그랬나…….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를 가지면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흔들거리던 선체가 점점 안정을 되찾고, 움직임이 거의 없다시피 고요해지자 발걸음을 멈추고 가까운 벤치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다시금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가요, 데이브. 우리 아무거나 뭐라도 보러 가요.”
미하엘을, 첸을 잊어버릴 수 있게. 루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함선 내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작은 도시 하나가 그대로 함선 내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태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변가부터 시작해서 아름다운 숲, 그리고 등산을 즐길 수 있는 등산로가 구비되어 있는 산까지.
이곳이 우주선 안이라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우선 렌터카를 빌릴 수 있는 시설로 향했다. 금전적으로 부족한 승객들은 넓은 내부를 돌아다니기 위해 버스를 이용하겠지만, 부유한 승객들은 선내 렌트 시설을 이용해 렌터카를 빌릴 수 있었다.
루이스가 임산부이기도 하고 금전적으로 부족하진 않았기 때문에 데이브는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딱히 차에 큰 관심이 없던 루이스는 데이브의 의견을 따랐다.
번지르르하고 붉은 오픈카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낯이 뜨거워졌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면허 없는 뚜벅이는 그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우선 선내 전체를 한 바퀴 쭉 돌아보기로 했다. 그저 어떤 시설이 있는지, 어떤 곳이 있는지 구경만 할 목적으로 드라이브만 했는데도 거의 두 시간 가까이 흘렀다.
선체의 중앙은 각종 시설들과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 승객들의 호텔이 위치하고 있었고 선체의 동쪽과 남쪽은 이코노미 호텔, 그리고 서쪽은 해변가, 북쪽은 등산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선체의 천장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루이스는 멍하게 중얼거렸다.
“우주선 안이라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요.”
“과학 기술의 발전이지 뭐. 타이나의 우주선은 꽤나 뛰어나니까.”
“우주선도 행성마다 다른 건가요?”
“당연하지, 이런 시설들 없이 그저 객실로만 이루어진 우주선도 있어. 그런 함선은 인명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편이지.”
다치더라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응급 치료 센터가 다니까. 데이브의 말에 루이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타이나의 민간 우주선의 경우는 선내에 종합 병원이 기본 두 곳 이상 구비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운항을 끝내기 위해 최상의 실력을 가진 제국군을 배치했다. 아마 우주 해적들에게 공격을 당하더라도 끄떡없을 것이다. 타이나의 우주 산업은 주변 행성들 중에서도 최상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후진 우주선은 안 타.”
임산부 데리고 가려면 돈 깨지는 건 감내해야지. 웃음 어린 목소리로 데이브는 말을 이었다. 그의 말에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부분도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까?”
“당연하지. 날 뭘로 보나? 네가 아니었으면 지구까지 1년이면 도착해.”
너 때문에 좋은 함선 편 알아본다고 기간이 오래 걸린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데이브에게 루이스는 소리 내어 웃어 주었다. 그것 참 감사하군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루이스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푸른빛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보이는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는 루이스를 힐끗 바라 본 데이브는 작게 웃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스크린 쇼군. 지금 우리가 저기에 있는 거야.”
“아…….”
정말 아름답네요, 우주는.
수천억 개의 별들이 수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이 우주선 안에 있다고는 믿기지 않았었는데, 이제 확실히 실감이 난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타이나에서 봤던 밤하늘과는 차원이 다른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두려움까지 생겼다.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것만 같은 우주의 모습은 정말 경이로웠다.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고 있자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루이스는 천천히 선체 천장이 다시금 푸른 하늘로 바뀌어 가자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보고 싶어?”
“음, 잘 모르겠어요. 정말 아름답긴 한데 조금 무섭달까?”
“우주란 게 원래 그렇지. 자, 어디로 갈까? 원하는 데로 모셔다드리지.”
데이브의 말에 루이스는 흐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이내 가방에서 선내 지도를 꺼냈다. 관광지, 우주 체험 센터, 영화관, 중앙 타워 등 가 볼 만한 곳들을 쭉 훑어 내리던 루이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데이브, 배 안 고파요?”
‘인기 행성 먹거리 골목’이었다.
주로 레스토랑이나 음식 노점상이 즐비한 골목은 관광지로 사랑받고 있는 행성들의 고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타 행성에 방문하지 않고도 그 행성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승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듯했다.

예상대로 골목은 승객들로 바글바글했다.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오자 루이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임신을 하긴 했던 모양인지 갑작스레 미친 듯이 입맛이 동하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음식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먹고 싶었다. 눈을 빛내며 식당을 두리번거리던 루이스는 데이브를 돌아보았다.
“데이브! 뭐 먹을까요?”
“네가 원하는 걸 골라.”
임산부가 있는데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겠는가. 설사 루이스가 자신은 절대로 못 먹는 벌레 튀김을 먹자고 하더라도 따라 줘야 하지 않겠는가. 눈을 빛내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루이스의 뒤를 묵묵히 따라 다니며 데이브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기운을 차린 것 같아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연신 와아, 와아 감탄하며 여기저기를 구경해 대던 루이스가 활짝 웃으며 데이브를 불렀다. 루이스의 발을 붙잡은 곳은 다름 아닌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였다.
풀풀 풍겨 오는 돼지 특유의 비린내에 데이브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데이브는 발효 식품이나 덜 익힌 고기 등 향이 심하고 보양식에 가까우며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은 죽어도 입에 못 대는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냄새부터 거부감이 팍팍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임산부가 먹고 싶다는데.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돼지 내장에 피와 갖가지 식재료를 넣어서 찐 음식이래요.”
“아, 음…… 그래.”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치미는군. 포장마차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쭉 읽어 내린 데이브는 루이스가 볼 수 없게끔 고개를 돌리고 혀를 내둘렀다. 제발 루이스가 이 음식을 자신에게 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은근 식성이 와일드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도 거리낌 없이 먹었고 냄새가 심할 정도로 오래 숙성된 고기나 발효 식품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삼켰다. 아무래도 이런 음식이랑 잘 맞는 듯싶었다.
“맛있겠다! 우리 이거 먹어요.”
“음, 그래.”
“이건 지구의 음식이랍니다. 마침 우리가 갈 행성의 음식이라 더 먹어 보고 싶네요.”
흠흠.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루이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데이브는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을 토해 냈다. 도저히 자신은 먹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데 말이다. 이런 음식을 왜 먹고 싶어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식성은 다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짐승의 내장에 피를 넣고 찐 음식이라니. 소위 말하는 어린애 입맛이었던 데이브는 당장이라고 올릴 것 같이 안색이 창백해졌다.
“식성이 참…… 특이하군.”
“아무래도 어렸을 때 별의별 걸 다 먹고 자랐으니까요.”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루이스는 곧바로 2인분을 주문했다. 2인분을 외치는 루이스의 목소리에 다시금 헛기침을 토해 낸 데이브는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 정말 먹어 보라고 권하면 어떡하지’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루이스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무 막대를 들었다. 까맣고 동그란 내장 안에 다진 듯한 식재료가 꽉 채워져 있었다. 고소하게 풍겨 오며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루이스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한입 베어 물었다.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우물거리던 루이스는 옆에 앉아 있는 데이브에게 시선을 돌렸다. 루이스와 시선이 마주친 데이브는 얼음처럼 굳은 채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브를 말없이 바라보던 루이스는 큭, 하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세요. 먹어 보란 소리 안 합니다. 데이브는 이런 음식 못 먹죠?”
“알고 있었어?”
“안 봐도 뻔하죠. 귀족이니까.”
데이브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표정을 굳혔다. 그래, 귀족들이 냄새나고 고급스럽지 못한 서민들의 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은 맞다. 그건 데이브뿐만이 아니었다. 미하엘도, 잔나도, 자신이 아는 모든 귀족들이 다 그럴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미하엘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툭 말을 내던진 루이스는 순간 표정을 굳히고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는데.”
“아냐, 사실이니까.”
비하하거나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째 어감이 안 좋았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데이브의 눈치를 보던 루이스는 오히려 그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 주니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음식을 먹었다.
묵묵히 음식을 씹으며 루이스는 멍하게 탁자를 바라보았다. 고작 식성 이야기가 나온 것뿐인데 무의식적으로 미하엘을 떠올린다. 자신은 뭐든지 미하엘과 이어져 있단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고작 이런 길거리 음식 하나를 먹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떠올리는구나.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미하엘은 자신의 인생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를 자신의 인생에서 완전히 잘라 내려면 생각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머릿속에서 얼굴을 내 비추는 미하엘이 원망스러워졌다.
“배부른데, 이만 갈까요?”
“고작 그만큼 먹고 되겠어?”
“네, 생각보다 배가 부르네요.”
데이브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먼저 가 보겠다고 말하며 포장마차를 나가는 루이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데이브는 상인을 불렀다.
포장마차 안에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서 계산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데이브는 두리번거리며 루이스를 찾았다. ‘설마 멀리 가진 않았겠지’라고 생각하며 루이스를 찾던 데이브는 루이스를 발견하고 입을 열려 했다.
루이스는 멍하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넋을 놓고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가족이었다. 남성 오메가와 남성 알파 부부인 듯한 남자들의 손을 하나씩 양손에 잡고 있는 꼬마 아이.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그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루이스를 부르는 게 망설여졌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모를 리가 없었기에 데이브는 자신도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스.”
“……아, 네.”
데이브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루이스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돌렸다. 데이브는 애써 모른 척하며 루이스에게 다가갔다.
“피곤하지 않아? 임산부는 피로를 빨리 느낀다고 하던데.”
“아, 조금요.”
“그럼 이만 호텔로 돌아가자.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루이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루이스는 그저 멍하게 창밖을 응시했고, 데이브는 묵묵히 운전에 집중했다. 루이스는 마치 사람을 관찰하는 것에 집착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승객들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승객들을 바라보며 루이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부디 하루빨리 과거를 잊고 마음을 편하게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데이브는 머릿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루이스는 방으로 곧장 돌아와 욕조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에 온몸을 녹이니 자연스레 마음까지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나른한 한숨을 내쉬며 멍하게 욕실 안을 바라보던 루이스는 손에 물을 적셔 얼굴을 쓸어내렸다.
찰박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루이스는 물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깊은 욕조 안에서 한참 동안 눈을 뜨고 생각에 잠겨 있던 루이스는 깊이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내밀었다.
“하아, 하아.”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역시 아직까진 그와 함께했던 자신의 지난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하루아침에 어떻게 잊겠는가. 미하엘과 지낸 시간은 고작 몇 년밖에 되지 않지만, 아마 그를 잊는 데에는 몇십 년이 걸릴 것이다.
이제 고작 하루가 지났다. 그러니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게 당연할 것이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야.”
목숨만큼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시간이 다 잊게 해 줄 것이다. 10년으로 못 잊는다면 또다시 10년을 기다리자. 그리고 또 잊히질 않는다면 다시 10년을 기다리는 거다. 그렇게 언젠가는 잊히겠지, 언젠가는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리겠지.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를 정말로 잊을 날이 다가올 것이다.
만약 평생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면 그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자. 어쩌겠는가. 목숨만큼, 아니, 목숨보다 더 사랑한 사람인데.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지금처럼 아프진 않을 것이다. 설사 잊지 못한다고 해도. 하루를 보낼 때마다 조금씩 무뎌지고, 무뎌지다 보면 언젠가 그를 떠올려도 그저 씁쓸한 미소만 짓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만 버텨 내자. 아이를 위해서. 자신을 부모로 선택해준 귀한 생명을 위해서.
“그때까지만…….”
차마 참지 못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보는 이는 아무도 없건만, 루이스는 서둘러 젖은 손으로 얼굴을 닦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