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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이 열리면 1권
2화
#1 (2)
“아빠.”
도움을 요청하는 나의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린 양의 목을 도끼로 내리쳤다.
“아빠!”
내 입에서 비명처럼 외침이 터졌다. 도와 달라고 한 건 어린 양을 죽여 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째서 무참히 양을 죽인 거야?”
“어째서라니.”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서며 미소 지었다.
“식사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었어?”
잘린 양의 머리가 내 두 손에 놓였다. 어린 양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양의 얼굴을 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하지만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한 손길은 없었다. 언제나 온화했던 아빠는 내게 차갑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아빠가 한 말을 또 잊었구나. 음식은 식기 전에 먹어야 착한 아이라고 했지?”
그가 내 입을 벌리려고 하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미지근한 눈물이 눈가에 매달려 있었다. 울지는 않았으나 울고 싶을 만큼의 악몽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손등으로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 내고 가만히 어둠을 응시했다. 전에도 이런 꿈을 꿨던가. 어린 양의 슬픈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게 그런 것도 같았다.
침대가 약간 흔들렸다. 여정에 지친 얼굴로 깊이 잠이 든 그가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입술을 앙다물고 꿈의 공포를 홀로 이겨 내고자 했다. 지친 아빠에게 또 다른 짐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약하고 어렸고 동시에 병까지 있는 존재로 그에게 큰 짐이 되는 딸이었다.
‘꿈 이야기를 하면 아빠가 또 슬픈 얼굴을 할 거야.’
언젠가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한없이 슬픈 얼굴을 했다. 그 뒤로 꿈 이야기는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왜 자꾸 꿈에서 아빠가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의 이해를 위해 그에게 슬픈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의 그는 여전히 다정한 아빠였으니까.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선술집의 이 층 마지막 방에서 생활했다. 아빠의 친구라는 사람에게서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루에 한 통씩 친구에게 보낸 우편 편지만 일곱 장이 넘었다. 아빠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선술집 주인은 우리를 인내하지 않았다. 선불인 숙박비를 독촉했고 숙박비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자 하루 두 끼 빵을 제공하지 않으며 심통을 부렸다.
“애가 묵는 값은 반값을 더 내야 한다고 했잖아. 돈도 없으면서 남의 집에 붙어 있는 심보는 대체 뭐야?”
성미 급한 그의 목소리는 이 층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나에 대한 숙박비가 하루 밀리자 그는 당장 오늘 밤 떠나라고 했다. 아빠는 낡은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동전을 탈탈 털어 주인에게 넘긴 후 오늘 안에 숙박비를 내겠다고 약속을 했다. 성난 주인의 언행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가 죽어 주인장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문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보며 그가 애써 웃어 보였다.
“밖에 좀 나갔다 올게.”
“또 친구한테 편지를 보내려고요?”
“아니. 일거리를 찾아보고 오려고.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돈이 바닥이 났구나.”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 있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린 딸을 혼자 두고 가야 하는 그의 불안감까지 털어 내진 못했다.
“아빤 열쇠를 가지고 갈 테니 안에서 문 꼭 잠그고 있어.”
그는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챙김의 말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아래층이 술집이다 보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가 가고 허름한 선술집 이 층에 홀로 남겨졌다. 나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잠시 훌쩍였다. 협소한 방 안은 답답하고 외로웠다. 나는 놀 거리 하나 없는 그 방 안에서 아침을 보내고 낮을 지나쳐 밤까지 혼자 있었다.
창문을 통해 템스 강의 찰랑이는 물결 소리가 들렸다. 바다와 만난다는 저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흙탕물이라지? 희한하게도 강바닥 아래 갯벌이 자리 잡고 있다지? 크기도 작은데 온 세상의 배가 이곳을 통과하려고 아등바등한다지? 저 물속에 뭐가 가라앉아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혼자서 템스 강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각을 멈췄다. 그가 내게 템스 강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해 줬던가. 아니다. 항구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지 모르나 강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 지식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난 항구는 처음이고 템스 강은 평생 본 적도 없는데.
“더구나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게 있다니 대체 뭐가.”
나는 창문에서 물러났다. 저 검은 물이 평소의 나를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아는 것처럼 검은 입을 벌리고 출렁출렁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잠긴 방문 앞에 등을 기댄 채 템스 강을 경계했다.
“아빠. 대체 언제 올 참이야?”
우린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가족이다. 떨어져 있다는 게 이렇게 공허하고 견디기 힘든 걱정을 주는지 몰랐다. 밖으로 나간 그가 어떤 일을 구하고 있는지 뒤늦게 걱정이 됐다. 낯선 도시에서 방황하진 않는지, 오는 길을 잊어버리진 않았는지, 모든 게 걱정이고 근심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어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잠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눈이 빨개지도록 그를 기다리다가 늦은 새벽에 다시 그를 만났다.
“아, 아빠.”
놀랍게도 주인이 그를 업고 들어왔다. 주인은 곧장 침대 위의 이불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그 위에 그를 눕혔다. 이상했다. 그는 아침에 헤어진 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철근을 옮기다가 그 아래 깔렸다더라. 함께 일하던 노동자 둘은 그 자리에서 죽고 너희 아빠는 용케 꺼냈는데 이미 다리가 잘린 뒤라더군.”
나는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삼켰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물수건으로 피나 좀 닦아. 네 아비를 죽게 내버려 둘 참이 아니라면.”
나는 충격을 억지로 참아 내며 그의 입속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천을 꺼내기 위해 서둘러 손을 뻗었다.
“그건 놔둬. 고통을 못 이기고 무의식적으로 혀를 잘못 물면 더 낭패니 놔둬야 해.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
주인이 어리석은 나를 밀쳐 내고 정신을 잃은 그를 살펴 주었다. 누군가 물이 든 나무통을 들고 와 침대 옆에 놔 주었다. 주인은 절단된 다리를 동여맸던 천을 풀고 새 걸로 갈아 줬으며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핏물을 대충 닦아 물통에 다시 담았다. 기절한 그는 무의식 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는지 잘린 허벅지를 연신 움찔거렸다.
“의사는요? 의사는 언제 와요?”
나는 다급하지만 애원하는 목소리로 주인에게 물었다.
“그런 건 없어.”
“없다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쪽에 사는 의사가 지저분한 동쪽의 항구까지 와 줄 것 같냐? 당장 죽어 가는 사람보다 귀족들의 뒤꿈치에 붙은 각질을 떼어 주느라 바쁜 게 그들이야. 그러니 의사가 와 줄 거라는 헛된 희망은 갖지 말고 다리 지혈이나 잘해. 아비 없는 고아가 되기 싫으면. 알겠냐?”
주인은 귀찮은 고생을 했다며 신경질을 냈다.
“밖이 소란스러워 구경하던 게 잘못이지. 잠도 못 자고 이게 무슨 난리인지, 원.”
주인이 말하길 아빠는 그가 살린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또한 내일 아침이면 방을 비우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면서 지혈하기 위해 쓴 천 값은 제외해 주겠다고도 말했다.
그가 돌아가고 나는 방에서 혼자 울었다. 끊어질 듯 간헐적인 숨소리로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그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아빠. 아빠 친구는 언제 와요? 그는 왜 아빠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예요?”
나는 눈을 뜨지 않는 그에게 밤새 그것을 묻고 또 물으며 울기만 했다.
피 냄새가 가득한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내가 울음을 그친 건 다음 날 늦은 오전, 그가 눈을 떴을 때였다. 안개가 아침 해를 가린 시간에 그가 죽음에서 벗어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아벨라.”
익숙한 목소리에 감정이 격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밤새 그의 손을 잡고 있었으면서 나는 그 손을 놓칠세라 더욱 깊이 움켜쥐었다. 그러나 안도감과 원망이 섞인 마음에 나는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죄를 저질렀다. 눈을 떠서 다행이라거나, 이제 괜찮은 거냐는 말 대신 밤새 중얼거리던 질문을 했을 뿐이다.
“대체 왜! 아빠 친구는 아빠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예요?”
그가 힘겹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또한 나를 향해 걱정하지 마, 오래 기다렸지,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구요? 아빠가 주소를 잘못 쓴 건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다고 했다.
“만남이 쉽지 않아. 말했듯이 그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니까.”
“편지를 다시 보내 봐요.”
“매일 보내고 있어.”
“내가 직접 전달할게요. 친구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려 줘요.”
“그에게 보내는 건 일반적인 편지가 아니야. 네가 그에게 편지를 보낼 수는 없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의 만남엔 절차가 있다는 말이야. 복잡한 표식의 절차. 그는 평범하지 않아서 그를 만나려면 그런 방법을 써야 해.”
“친구잖아요. 친구끼리 편지조차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답답함이 더욱 커졌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데 자꾸 대답을 독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나는 그를 회유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그만 돌아가요. 네?”
“그럴 수는 없어.”
“제발, 아빠. 우린 지금 가난한 상태잖아요.”
“걱정 마. 아빠 친구는 돈을 받지 않을 거야. 네 말대로 친구잖아.”
“아빠!”
“날 믿어.”
“내 병은 아빠 친구도 별수 없을 거예요. 아빠도 알잖아요.”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며 죄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런던에 온 이유는 내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사냥꾼인 그가 목숨을 걸고 잡은 곰의 가죽과 다양한 산짐승들은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었으나 병치레 비용을 위해 모두 헐값으로 사라졌다.
“달리지 않을게요. 앞으로 무리해서 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지금껏 말 잘 들었잖아요. 그러니 돌아가요. 우리가 살던 숲으로.”
나는 촉촉해진 눈을 차마 숨기지 못한 채 그를 보챘다. 내 병을 고치려 무리하게 이곳까지 왔다가 그가 다쳤으니 죄책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내가 병을 고친다 해도 아빠가 이렇게 다치면 아무 소용없어요. 내 유일한 가족은 아빠뿐인걸요.”
나는 울었고 그는 울음을 참았다. 우린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한참 그렇게 있었다. 내가 방을 나온 건 그가 물을 찾으며 목마름을 토로했을 때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을 찾는 내게 주인은 그 정도라면 고비는 넘겼으니 방을 빼라고 했다.
“약속한 날이다. 사정은 어느 정도 봐줬으니 냉정하다 생각 마.”
“물부터 주세요. 한 잔이면 돼요.”
“내 말 못 들은 거야? 눈을 떴으면 대충 짐을 챙겨 나가라구.”
“물부터!”
주인을 노려보는 내 눈이 예의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의 입장을 모르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조금은 친절하길 바랐다.
“물부터 달라구요.”
“뭐, 뭐야? 이 조그만 게 어디서!”
“이곳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그에게 이미 연락을 해 놓은 상태구요. 방값은 내고 갈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처음에 말했던 액수 그대로 지불할게요. 그러니 물부터 줘요. 깨끗하고 맑은 물로. 템스 강의 썩은 물이 아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
내가 어떤 눈초리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단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다. 지금의 억울한 상황과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해서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니 주인이 약간 놀란 얼굴로 서둘러 컵에 물을 따라 건네준 건 나의 눈빛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린아이의 치켜뜬 눈동자가 어른을 협박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까치발을 들고 주인이 내민 물컵을 서둘러 받아 이 층으로 달려갔다. 아빠의 친구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온다 해도 지금의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심장을 고치는 의사지 잘린 다리를 복원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을 테니까.
물을 마신 그는 다소의 고통이 사그라드는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그가 나를 놔두고 외출을 했던 것과 동일하게 밖에서 문을 잠그고 선술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턱대고 들녘으로 달려가 들에 핀 꽃을 무던히도 많이 뽑았다. 아무거나 무작위로 뽑은 꽃의 뿌리는 하천에 씻었고 줄기는 날카로운 돌로 가지런히 다듬어 크기를 통일했다. 나는 그것을 품에 안고 서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꽃 사세요. 꽃 사세요.”
길에는 이미 꽃을 파는 소녀가 있었다. 누추한 차림의 그 소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사 달라고 애원했다. 어제 딴 꽃인지, 아니면 그제 딴 꽃인지 알 수 없는 시들한 꽃을 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맨발의 소녀에게는 생기가 없었다. 부모의 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억지로 꽃을 파는 표정이었다. 더구나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소녀는 모르는 듯했다.
나는 그 소녀를 보며 전략을 짰다. 가난한 행인들은 모두 제외하고 한눈에 봐도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만 지켜보다가 곧장 그들에게 달려가 꽃을 내밀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이랍니다. 햇살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사랑하는 당신의 연인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거예요. 향내를 맡아 보시겠어요? 하루 종일 당신의 집에 싱그러움을 선사할 거예요.”
마차의 마부들은 거지들에게 넌더리가 나는 듯 마차로부터 떨어지라며 지팡이나 채찍을 휘둘러 댔지만 모두 실패한 건 아니었다. 나는 세 번 중 한 번은 성공했다.
“말하는 게 음유시인 같구나. 그래, 꼬마 아가씨. 그 꽃은 얼마에 팔지?”
“얼마의 값어치가 있다고 보시나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지만 들꽃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값을 매길 수가 없어서요.”
한 신사는 당돌한 내 말에 껄껄 웃으며 마차 안에 있는 애인에게 꽃의 반을 사 주기도 했다. 나의 빈 주머니는 그렇게 동전으로 가득 찼다. 지폐도 있었다. 그러나 꽃을 전부 다 팔기 전에 나는 그 거리를 관리하는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몰매를 맞았다. 지역마다, 구역마다, 골목마다, 주인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동전은 모두 빼앗겼지만 다행히 지폐는 빼앗기지 않았다. 입안에 욱여넣고 결코 입을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돈을 사수하느라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아 뒷골목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맞았다.
2화
#1 (2)
“아빠.”
도움을 요청하는 나의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린 양의 목을 도끼로 내리쳤다.
“아빠!”
내 입에서 비명처럼 외침이 터졌다. 도와 달라고 한 건 어린 양을 죽여 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어째서 무참히 양을 죽인 거야?”
“어째서라니.”
그가 나를 향해 돌아서며 미소 지었다.
“식사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었어?”
잘린 양의 머리가 내 두 손에 놓였다. 어린 양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양의 얼굴을 보며 나도 같이 울었다. 하지만 눈물을 닦아 주는 따뜻한 손길은 없었다. 언제나 온화했던 아빠는 내게 차갑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아빠가 한 말을 또 잊었구나. 음식은 식기 전에 먹어야 착한 아이라고 했지?”
그가 내 입을 벌리려고 하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미지근한 눈물이 눈가에 매달려 있었다. 울지는 않았으나 울고 싶을 만큼의 악몽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손등으로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 내고 가만히 어둠을 응시했다. 전에도 이런 꿈을 꿨던가. 어린 양의 슬픈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게 그런 것도 같았다.
침대가 약간 흔들렸다. 여정에 지친 얼굴로 깊이 잠이 든 그가 몸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입술을 앙다물고 꿈의 공포를 홀로 이겨 내고자 했다. 지친 아빠에게 또 다른 짐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약하고 어렸고 동시에 병까지 있는 존재로 그에게 큰 짐이 되는 딸이었다.
‘꿈 이야기를 하면 아빠가 또 슬픈 얼굴을 할 거야.’
언젠가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한없이 슬픈 얼굴을 했다. 그 뒤로 꿈 이야기는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왜 자꾸 꿈에서 아빠가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의 이해를 위해 그에게 슬픈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의 그는 여전히 다정한 아빠였으니까.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여전히 선술집의 이 층 마지막 방에서 생활했다. 아빠의 친구라는 사람에게서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하루에 한 통씩 친구에게 보낸 우편 편지만 일곱 장이 넘었다. 아빠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선술집 주인은 우리를 인내하지 않았다. 선불인 숙박비를 독촉했고 숙박비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자 하루 두 끼 빵을 제공하지 않으며 심통을 부렸다.
“애가 묵는 값은 반값을 더 내야 한다고 했잖아. 돈도 없으면서 남의 집에 붙어 있는 심보는 대체 뭐야?”
성미 급한 그의 목소리는 이 층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나에 대한 숙박비가 하루 밀리자 그는 당장 오늘 밤 떠나라고 했다. 아빠는 낡은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동전을 탈탈 털어 주인에게 넘긴 후 오늘 안에 숙박비를 내겠다고 약속을 했다. 성난 주인의 언행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가 죽어 주인장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문 뒤에 숨어 있던 나를 보며 그가 애써 웃어 보였다.
“밖에 좀 나갔다 올게.”
“또 친구한테 편지를 보내려고요?”
“아니. 일거리를 찾아보고 오려고.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돈이 바닥이 났구나.”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 있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린 딸을 혼자 두고 가야 하는 그의 불안감까지 털어 내진 못했다.
“아빤 열쇠를 가지고 갈 테니 안에서 문 꼭 잠그고 있어.”
그는 몇 번이나 다시 돌아와 챙김의 말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아래층이 술집이다 보니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가 가고 허름한 선술집 이 층에 홀로 남겨졌다. 나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잠시 훌쩍였다. 협소한 방 안은 답답하고 외로웠다. 나는 놀 거리 하나 없는 그 방 안에서 아침을 보내고 낮을 지나쳐 밤까지 혼자 있었다.
창문을 통해 템스 강의 찰랑이는 물결 소리가 들렸다. 바다와 만난다는 저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흙탕물이라지? 희한하게도 강바닥 아래 갯벌이 자리 잡고 있다지? 크기도 작은데 온 세상의 배가 이곳을 통과하려고 아등바등한다지? 저 물속에 뭐가 가라앉아 있는지도 모르고.
나는 혼자서 템스 강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각을 멈췄다. 그가 내게 템스 강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해 줬던가. 아니다. 항구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지 모르나 강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 지식은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난 항구는 처음이고 템스 강은 평생 본 적도 없는데.
“더구나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게 있다니 대체 뭐가.”
나는 창문에서 물러났다. 저 검은 물이 평소의 나를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아는 것처럼 검은 입을 벌리고 출렁출렁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잠긴 방문 앞에 등을 기댄 채 템스 강을 경계했다.
“아빠. 대체 언제 올 참이야?”
우린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 가족이다. 떨어져 있다는 게 이렇게 공허하고 견디기 힘든 걱정을 주는지 몰랐다. 밖으로 나간 그가 어떤 일을 구하고 있는지 뒤늦게 걱정이 됐다. 낯선 도시에서 방황하진 않는지, 오는 길을 잊어버리진 않았는지, 모든 게 걱정이고 근심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어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잠긴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눈이 빨개지도록 그를 기다리다가 늦은 새벽에 다시 그를 만났다.
“아, 아빠.”
놀랍게도 주인이 그를 업고 들어왔다. 주인은 곧장 침대 위의 이불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그 위에 그를 눕혔다. 이상했다. 그는 아침에 헤어진 내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철근을 옮기다가 그 아래 깔렸다더라. 함께 일하던 노동자 둘은 그 자리에서 죽고 너희 아빠는 용케 꺼냈는데 이미 다리가 잘린 뒤라더군.”
나는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삼켰다.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물수건으로 피나 좀 닦아. 네 아비를 죽게 내버려 둘 참이 아니라면.”
나는 충격을 억지로 참아 내며 그의 입속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천을 꺼내기 위해 서둘러 손을 뻗었다.
“그건 놔둬. 고통을 못 이기고 무의식적으로 혀를 잘못 물면 더 낭패니 놔둬야 해.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
주인이 어리석은 나를 밀쳐 내고 정신을 잃은 그를 살펴 주었다. 누군가 물이 든 나무통을 들고 와 침대 옆에 놔 주었다. 주인은 절단된 다리를 동여맸던 천을 풀고 새 걸로 갈아 줬으며 침대 아래로 떨어지는 핏물을 대충 닦아 물통에 다시 담았다. 기절한 그는 무의식 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는지 잘린 허벅지를 연신 움찔거렸다.
“의사는요? 의사는 언제 와요?”
나는 다급하지만 애원하는 목소리로 주인에게 물었다.
“그런 건 없어.”
“없다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쪽에 사는 의사가 지저분한 동쪽의 항구까지 와 줄 것 같냐? 당장 죽어 가는 사람보다 귀족들의 뒤꿈치에 붙은 각질을 떼어 주느라 바쁜 게 그들이야. 그러니 의사가 와 줄 거라는 헛된 희망은 갖지 말고 다리 지혈이나 잘해. 아비 없는 고아가 되기 싫으면. 알겠냐?”
주인은 귀찮은 고생을 했다며 신경질을 냈다.
“밖이 소란스러워 구경하던 게 잘못이지. 잠도 못 자고 이게 무슨 난리인지, 원.”
주인이 말하길 아빠는 그가 살린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또한 내일 아침이면 방을 비우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면서 지혈하기 위해 쓴 천 값은 제외해 주겠다고도 말했다.
그가 돌아가고 나는 방에서 혼자 울었다. 끊어질 듯 간헐적인 숨소리로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그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아빠. 아빠 친구는 언제 와요? 그는 왜 아빠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예요?”
나는 눈을 뜨지 않는 그에게 밤새 그것을 묻고 또 물으며 울기만 했다.
피 냄새가 가득한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내가 울음을 그친 건 다음 날 늦은 오전, 그가 눈을 떴을 때였다. 안개가 아침 해를 가린 시간에 그가 죽음에서 벗어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아벨라.”
익숙한 목소리에 감정이 격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밤새 그의 손을 잡고 있었으면서 나는 그 손을 놓칠세라 더욱 깊이 움켜쥐었다. 그러나 안도감과 원망이 섞인 마음에 나는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죄를 저질렀다. 눈을 떠서 다행이라거나, 이제 괜찮은 거냐는 말 대신 밤새 중얼거리던 질문을 했을 뿐이다.
“대체 왜! 아빠 친구는 아빠를 만나러 오지 않는 거예요?”
그가 힘겹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또한 나를 향해 걱정하지 마, 오래 기다렸지,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바쁜 일이 있는 모양이야.”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구요? 아빠가 주소를 잘못 쓴 건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않다고 했다.
“만남이 쉽지 않아. 말했듯이 그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니까.”
“편지를 다시 보내 봐요.”
“매일 보내고 있어.”
“내가 직접 전달할게요. 친구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려 줘요.”
“그에게 보내는 건 일반적인 편지가 아니야. 네가 그에게 편지를 보낼 수는 없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의 만남엔 절차가 있다는 말이야. 복잡한 표식의 절차. 그는 평범하지 않아서 그를 만나려면 그런 방법을 써야 해.”
“친구잖아요. 친구끼리 편지조차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답답함이 더욱 커졌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데 자꾸 대답을 독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나는 그를 회유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그만 돌아가요. 네?”
“그럴 수는 없어.”
“제발, 아빠. 우린 지금 가난한 상태잖아요.”
“걱정 마. 아빠 친구는 돈을 받지 않을 거야. 네 말대로 친구잖아.”
“아빠!”
“날 믿어.”
“내 병은 아빠 친구도 별수 없을 거예요. 아빠도 알잖아요.”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며 죄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런던에 온 이유는 내 병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사냥꾼인 그가 목숨을 걸고 잡은 곰의 가죽과 다양한 산짐승들은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었으나 병치레 비용을 위해 모두 헐값으로 사라졌다.
“달리지 않을게요. 앞으로 무리해서 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지금껏 말 잘 들었잖아요. 그러니 돌아가요. 우리가 살던 숲으로.”
나는 촉촉해진 눈을 차마 숨기지 못한 채 그를 보챘다. 내 병을 고치려 무리하게 이곳까지 왔다가 그가 다쳤으니 죄책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내가 병을 고친다 해도 아빠가 이렇게 다치면 아무 소용없어요. 내 유일한 가족은 아빠뿐인걸요.”
나는 울었고 그는 울음을 참았다. 우린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 한참 그렇게 있었다. 내가 방을 나온 건 그가 물을 찾으며 목마름을 토로했을 때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물을 찾는 내게 주인은 그 정도라면 고비는 넘겼으니 방을 빼라고 했다.
“약속한 날이다. 사정은 어느 정도 봐줬으니 냉정하다 생각 마.”
“물부터 주세요. 한 잔이면 돼요.”
“내 말 못 들은 거야? 눈을 떴으면 대충 짐을 챙겨 나가라구.”
“물부터!”
주인을 노려보는 내 눈이 예의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의 입장을 모르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조금은 친절하길 바랐다.
“물부터 달라구요.”
“뭐, 뭐야? 이 조그만 게 어디서!”
“이곳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그에게 이미 연락을 해 놓은 상태구요. 방값은 내고 갈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처음에 말했던 액수 그대로 지불할게요. 그러니 물부터 줘요. 깨끗하고 맑은 물로. 템스 강의 썩은 물이 아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
내가 어떤 눈초리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단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다. 지금의 억울한 상황과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그대로 노출해서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니 주인이 약간 놀란 얼굴로 서둘러 컵에 물을 따라 건네준 건 나의 눈빛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린아이의 치켜뜬 눈동자가 어른을 협박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까치발을 들고 주인이 내민 물컵을 서둘러 받아 이 층으로 달려갔다. 아빠의 친구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온다 해도 지금의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심장을 고치는 의사지 잘린 다리를 복원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을 테니까.
물을 마신 그는 다소의 고통이 사그라드는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그가 나를 놔두고 외출을 했던 것과 동일하게 밖에서 문을 잠그고 선술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턱대고 들녘으로 달려가 들에 핀 꽃을 무던히도 많이 뽑았다. 아무거나 무작위로 뽑은 꽃의 뿌리는 하천에 씻었고 줄기는 날카로운 돌로 가지런히 다듬어 크기를 통일했다. 나는 그것을 품에 안고 서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꽃 사세요. 꽃 사세요.”
길에는 이미 꽃을 파는 소녀가 있었다. 누추한 차림의 그 소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사 달라고 애원했다. 어제 딴 꽃인지, 아니면 그제 딴 꽃인지 알 수 없는 시들한 꽃을 봐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맨발의 소녀에게는 생기가 없었다. 부모의 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억지로 꽃을 파는 표정이었다. 더구나 길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소녀는 모르는 듯했다.
나는 그 소녀를 보며 전략을 짰다. 가난한 행인들은 모두 제외하고 한눈에 봐도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만 지켜보다가 곧장 그들에게 달려가 꽃을 내밀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꽃이랍니다. 햇살의 기운을 가지고 있어 사랑하는 당신의 연인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거예요. 향내를 맡아 보시겠어요? 하루 종일 당신의 집에 싱그러움을 선사할 거예요.”
마차의 마부들은 거지들에게 넌더리가 나는 듯 마차로부터 떨어지라며 지팡이나 채찍을 휘둘러 댔지만 모두 실패한 건 아니었다. 나는 세 번 중 한 번은 성공했다.
“말하는 게 음유시인 같구나. 그래, 꼬마 아가씨. 그 꽃은 얼마에 팔지?”
“얼마의 값어치가 있다고 보시나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지만 들꽃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값을 매길 수가 없어서요.”
한 신사는 당돌한 내 말에 껄껄 웃으며 마차 안에 있는 애인에게 꽃의 반을 사 주기도 했다. 나의 빈 주머니는 그렇게 동전으로 가득 찼다. 지폐도 있었다. 그러나 꽃을 전부 다 팔기 전에 나는 그 거리를 관리하는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몰매를 맞았다. 지역마다, 구역마다, 골목마다, 주인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동전은 모두 빼앗겼지만 다행히 지폐는 빼앗기지 않았다. 입안에 욱여넣고 결코 입을 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돈을 사수하느라 비명이 새어 나오지 않아 뒷골목에서 참으로 오래도록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