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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이런 수준이니 못 보려야 못 볼 수가 없는 경고 문고였다. CCTV까지 설치되어 있다니 미친놈 아니고서야 계속할 사람은 없겠지. 게다가 이 호텔을 사용할 사람들은 체면 깨나 차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녹화까지 되고 있다니 경고를 무시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그 미친놈이 할 만한 짓을 직접 보여 주는 사람이 있었다. 닐이 입을 딱 벌렸다.
[본점에서는 외설적인 행위가 금지되어 있으며, CCTV의 촬영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또한 사설 경호원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결코 무시 못 할 수준으로 거대한 글자가 더욱 거대하게, 그리고 좀 더 위협적인 문구와 함께 깜박거렸다. 아무리 시범이라고는 해도 그냥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은데 미하일은 이제 대뜸 제 물건을 꺼내 보였다. 헉 소리를 내면서도 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바라보았다. 결코 사심이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보라고 하는 행동이면 봐 줘야지 예의 아닌가……?
그사이 미하일은 숫제 자신의 것을 노골적으로 손에 쥐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이쯤 되자 닐은 그가 그냥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장이 좀, 음, 좀…… 이상한 것 같다는 느낌이 뒤늦게 찾아왔다.
“내 것 좀 빨아 줄래, 레이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으며 미하일이 나른한 어조로 묻자 레이디 대신 닐이 움찔했다. 반면 이제까지 고분고분했던 레이디는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대신 예의 바르면서도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포옹해 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키스해 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샵의 안드로이드는 고객에게 능동적으로 접촉하지는 못하게 설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또한 안드로이드에 과한 손상을 주지 못하게끔 진열된 상품의 테스트도 안드로이드 스스로가 하거나 혹은 직원들만이 시행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닐은 잠시 소름이 끼쳤다.
직원이라면…… 제프리라든가, 제프리라든가, 제프리가 있지 않던가? 차, 차라리 손님들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안드로이드도 직원이야.”
아무튼 미하일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닐은 이제야 가까스로 이해가 갔다. 러시아에서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도 직원이고, 자신은 어쨌든 위치가 안드로이드니 나름 직원 복지, 아니 안전을 지켜 준다 이거구나.
“한번 해 볼래?”
답답할 것 같은데 발기한 상태 그대로 주섬주섬 바지를 제대로 추스르며 미하일이 물었다. 지익,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자극적이었다. 닐이 말을 더듬었다.
“네? 뭐, 뭘요?”
“명령 내려 보라고.”
괜한 상상으로 좀 찔렸던 닐이 헛기침을 하면서도 우물쭈물 레이디에게로 다가갔다. 사실은 처음 본 순간부터 내내 한번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했다.
“만져 봐도 괜찮을까요?”
“그럼. 누구처럼 아래를 박살 내 놓지만 않으면 돼.”
뼈가 숨어 있는 미하일의 허락도 얻었겠다, 닐이 조심스럽게 레이디의 손을 쥐어 보았다. 그리고 다소 충격에 빠졌다. 정말 사람 같은 체온과 사람 같은 감촉이었다. 이 아래로 오일과 강화 플라스틱 뼈대가 숨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하일의 반응이 또 뭔가 이상했다. 그가 작게 인상을 썼다.
“……직원으로 인식을 해서 그런가?”
“네?”
“아냐, 아무튼 명령 내려 봐.”
잠시 고민하던 닐은 괜히 사장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다 싶어 시킨 대로 레이디에게 명령해 보았다.
“포옹해 줄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예요.”
이상하게도 안타깝다는 느낌의 목소리라고 하면 자신의 착각인 걸까? 레이디가 아까처럼 예쁘게 속눈썹을 나비 날개처럼 깜박이고는 몸을 슬쩍 꼬면서 올려다보았다. 닐이 힐끔 미하일을 바라보니 그의 미간이 구깃구깃 구겨져 있었다.
“……계속 명령해 봐.”
“음…….”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이러기 있냐……. 어쨌든 닐은 고용주의 말을 착실하게 따랐다.
“레이디, 안아 줄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인데…….”
이쯤 되자 닐도 슬슬 문제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레이디는 아까 딱 부러지게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라고 말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말끝을 흐리기까지 했는데, 뉘앙스도 ‘들어주고 싶은데 들어줄 수 없어요’에 가까웠다. 닐이 마른침을 삼켰다.
레이디가 왜 이러는지 그 이유가 짐작이 좀 갔던 탓이다.
그러니까 언제였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만든 사고가 났던 날일 것이다. 그날 닐은 부모님과 함께 전자 제품 매장을 방문했다. 대학교 입학 기념 선물을 사러 갔기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적어도 어떤 미친놈이 저지른 사제 폭탄 테러가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전까지 닐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외동아들로 부족함 없이 살았었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닐은 한 번도 기계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냥 모든 기계가 이상하게 닐에게는 상냥하고 다정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전원을 켜면 보고 싶은 방송이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 라디오, 10년을 써도 고장이 나지 않는 컴퓨터나 전자 패드 기기, 핸드폰, 그리고 입력된 옵션 이외의 일까지 해치우는 청소 안드로이드에 하다못해 커피 머신까지…….
우연한 행운의 일치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쯤 되니 닐은 정말 자신에게 기계에게 사랑받는 재능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튼 머뭇거리며 닐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키스해 줄래, 레이디?”
이번에는 레이디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지금은 안 되고……. 영업시간이 끝난 뒤에…….”
“…….”
미하일의 눈치를 보니 그는 단순히 프로그램에 이상이 있다고만 생각했는지 인상만 쓰고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겠지. 타인의 핸드폰을 만질 때 종종 지문 인식도 없이 덜컥 잠금이 풀려 버리곤 했는데 그 주인들도 썩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미래에서는 완전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던 안드로이드의 제작자가 아닌가.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만든 물건이 오작동한다고 생각하면 별로 기분이 안 좋을 법도 했다.
“넌, 나중에 다시 한번 보고……. 아무튼 여기까진 잘 알겠지?”
“앗, 네.”
다른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거라면 정말 제프리의 말대로 그저 보여 주는 쇼에 가까울 법도 했다. 좀 수위가 높은 쇼이긴 하지만…… 일단 보수도 좋고 무엇보다 여기는 로니 크로거가 찾아올 수 없는 그런 고급 클럽이고…….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미하일이 미소를 지으며 젤을 손에 들자 이제 그가 무엇을 할지 모를 수가 없던 닐이 목울대를 울리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미하일이 조언을 던졌다.
“쉬워.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내 안드로이드들은 절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 말에 닐이 더욱 부끄러운 기분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하일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개장 시간이라 손님 한 명 없이 텅텅 비었지만 어쨌든 공개된 장소가 아닌가. 그의 발치에 멈추어 선 미하일이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명령했다.
“이제 다리를 벌려 봐.”
닐은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쎄, 마치 지금 자신이 닐 테일러가 아니라 정말 안드로이드 프리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굴을 붉히고 주저하면서도 그는 미하일의 말에 따라 다리를 벌렸다. 얼굴이 완전 빨갛게 달아올랐다. 안드로이드도 지금 자신 같은 얼굴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데 미하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닐은 저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드나? 아니면 마음에 안 드나?
“속옷도 벗어야지, 예쁜아(Pretty).”
“…….”
입술을 깨물며 닐이 속옷을 벗었다. 잠깐 움츠렸다가 슬그머니 다리를 벌리자 서서히 흥분해 단단해지는 물건을 적나라하게 보이게 되어 몹시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자신을 보는 미하일의 시선이 죽을 만큼 좋았다. 닐은 제 취향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무대 위, 그것도 환한 조명 아래서.
시선,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바로 그 시선이…….
얼핏 로니 크로거가 떠올랐으나 그때의 상황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 자신은 뒷골목 작은 갱단 두목의 값싸고 예쁘장한 걸레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프리티가 아닌가……. 비난과 경멸을 담은 시선을 받으며 강제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원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다.
비록 그게, 닐 테일러라는 사람이 아니라 프리티라는 안드로이드를 향한 것일지라도.
착하지, 하고 어르듯 중얼거리며 미하일은 그런 닐의 위로 몸을 숙였다. 닐은 그에게서 날선 금속과 오일의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좋았다. 자신을 임시적으로 고용한 사장이 자신의 애인들보다 훨씬 신사답고 부드럽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고객들은 안드로이드의 반응을 보기 위해 직원에게 이런 행동을 시키기도 하지.”
동시에 젤로 흥건한 손가락이 닐의 물건을 쥐었다. 굳은살로 다소 단단하게 느껴지는 손이 섬세하게 어루만지자 몸이 떨렸다. 간신히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마치 그런 닐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칭찬이 떨어졌다.
“잘하는데.”
“정, 읏, 정말요?”
잠시 미하일의 눈에 이상한 빛이 감도는 것도 같았다. 난 거짓말은 절대 안 해.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런 말을 하며 미하일이 손을 내려 엉덩이 사이를 문질렀다. 잘 정돈된 손톱이 예민하고 연한 피부 위를 살짝 긁었다. 이런 호텔 사장의 직업적 윤리와 정직이 대체 무슨 상관관계인가 생각하다 깜짝 놀란 닐이 움찔 몸을 떨었다. 젤로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이 금세 하나 밀려들어 왔다.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자 곧장 미하일이 찰싹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예쁘게 신음해야지.”
“으, 알…… 알았어요.”
이제는 손가락 두 개가 제 뒤를 휘젓기 시작하자 닐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미하일은 원하는 것도 많았다. 그가 연신 이것저것 주문해 왔다. 소리가 너무 작은데. 더 야하게 내 봐. 그런 안드로이드잖아. 닐의 귀가 완전히 붉어졌다. 마치 수치 플레이라도 하는 것 같다 생각하는데 그때 미하일이 한숨을 쉬었다. 닐이 움찔했다.
“그런 소리 말고…….”
“아!”
“이런 소리.”
긴 손가락이 마침내 어딘가를 쿡 찌르자 닐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놀라 버둥거리는 그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미하일은 다시 손가락을 문질러 댔다. 닐이 몸을 떨며 다리를 모으기 무섭게 바로 제대로 벌리고 있어야 한다며 지적이 따랐다. 반쯤 울먹이면서 다리를 벌리자 미하일이 좀 더 몸을 숙였다.
“읏, 응, 잠시…마안……. 아!”
“그래, 그런 소리 말이야.”
닐은 미하일이 갑자기 완전히 집중한 얼굴이 되자 조금 겁도 질리고 무섭기도 하여 찔끔 눈물이 났다. 안에서 손가락이 집요하게 구부러지거나 특정한 분위를 세게 문지를 때마다 자꾸 움츠러드는 다리를 어찌할 방법이 없어 손으로 잡고 떨면서 숨만 헐떡거렸다. 그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해서 바라보자 미하일의 손에 로터가 들려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홍보 겸 내 장난감들 홍보도 해야 하거든.”
“하, 으…….”
“직접 넣어야 할 때도 있고.”
그런 말을 하며 닐의 손에 로터를 쥐여 주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로터를 쥔 채로 망설이며 머뭇거리고 있자 미하일이 또 이렇게 지적했다. 머뭇거리는 건 너무 길면 안 돼.
그렇게 말해 놓고는 그가 덧붙였다.
“하기 싫거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말해.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테니까.”
닐이 입술을 한번 깨물다가 미하일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로터를 쥔 손을 떨며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각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아직은…… 괜찮았다. 감당할 수 있었다.
이미 미하일이 충분히 풀어 줬기 때문인지 매끄럽고 동그란 로터는 거의 저항 없이 느릿느릿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삽입되었다. 느낌이 이상해 저도 모르게 뒤를 조이자 거의 발씬거리는 수준으로 단단해진 제 것 위에 로터의 전선이 걸쳐졌다. 미하일이 닐의 손에 친절하게 로터를 쥐여 주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세 개 더.”
그러면서 미하일이 안에 들어간 로터를 작동시키더니 흥분인지 아니면 수치심인지 모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라보는 닐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또 그 예쁘게 웃는 미소를 짓는 순간 그는 미하일이 분명 자신의 외모를 자주 활용할 줄 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까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안드로이드는 거절해서도 안 돼. 알겠지?”
“네……에.”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고 나서 닐은 손에 쥐인 로터를 뒤에 꾸욱 밀어 넣었다. 미끌거리는 젤 위로 문지르며 반쯤 밀어 넣자 이미 안에 들어가 진동하는 것과 부딪쳐서인지 손가락이 저렸다. 미하일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로터를 삼키는 뒤로 향하자 얼굴이 완전히 붉어져서 홧홧했다. 겨우 하나를 넣고 다시 힘을 주어 다른 하나를 밀어 넣었다.
두 개, 세 개까지는 어떻게든 잘 들어갔으나 네 개쯤 되자 버거운 면이 있었다. 조금만 밀어 넣어도 안쪽에서 진동하는 물건과 달각달각 부딪치며 로터가 자꾸만 미끄러졌다. 손도 덜덜 떨렸고, 귀까지 열기가 몰려 화끈화끈했다.
“도와줄까? 말만 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하일이 벌려진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닐의 시선이 방황하는 동안 그는 부드럽게 벌려진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는 벌써 닐이 어떤 부분에서 흥분하는지 눈치챈 얼굴이었다. 사실 이런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니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할 법도 했다.
“더 벌려 봐.”
미하일의 말에 바들바들 떨며 다리를 벌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허벅지를 쥐고 있는 닐의 손을 직접 옮겨 엉덩이를 잡게 했다. 벌리란 게 이제 어느 부위인지 깨달은 그가 숨을 헐떡거렸다. 로니 크로거가 종종 네 취향이지 않냐며 제 똘마니들이 보는 가운데 강요했던 모욕적인 플레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느리고 정중했으나 노골적이었으며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프리티, 제대로 잡아 벌려야지. 거기 말고 여기.”
아, 하고 외마디 신음 소리가 나왔다. 미하일이 닐의 손을 이끌어 직접 손가락을 밀어 넣어 뒤를 벌리게 한 탓이었다. 벌써 제 물건에서는 프리컴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운 자세로는 닐이 제대로 지시에 따르지 못하자 엎드리게 만든 미하일이 다시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당신이 제대로 해야 도와줄 거야. 자, 다시 해 봐.”
간신히 어깨와 뺨을 대어 엎드린 자세를 잡은 닐이 몸을 떨며 한 손을 뒤로 뻗었다. 힘든 자세라 기우뚱하자 미하일이 제대로 엎드리도록 잡아 주었다. 간신히 손을 뻗고 그가 말한 대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안에 들어가 있는 미끄러운 로터의 표면이 만져졌다. 이대로라면 로터가 다시 밀려 나올 것 같았다. 닐이 벌리던 손을 머뭇거렸다.
“프리티.”
그러나 미하일이 한 번 더 부르는 바람에 발발 떨면서 억지로 뒤를 잡아 벌렸다. 뒤가 느슨하게 벌어질수록 천천히 안에 있던 로터가 밀려 나오는 느낌이 몹시도 선연했다. 로터가 반쯤 나오자 반사적으로 뒤를 조이려 할 때였다.
“아……!”
그때서야 느긋하게 움직인 미하일이 반쯤 밀려 나온 로터를 쑥 밀어 넣었다. 닐이 튕기듯 몸을 떨자 로터를 밀어 넣는 손가락도 같이 밀려들어 왔다. 그에 손을 놔 버리자 미하일이 다시 그의 손을 직접 잡아 끌어당겼다. 의도가 명백한 행동에 닐은 부끄러움에 떨면서 다시 제 엉덩이를 잡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고 전에 없을 만큼 몹시 흥분했다.
그러는 동안 미하일은 손가락을 천천히 진입시켰다. 이미 안에 들어와 있던 로터들이 더욱 깊숙하게 삽입되어 공간이 어떻게든 만들어지도록, 진입은 느릿하게 이어졌다. 엎드려 있던 닐의 다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떨렸다.
미하일은 충분하다고 느낀 이상으로 로터를 더욱 깊이 밀어 넣었고, 뒤를 헤집었으며 달그락 소리가 들리도록 손가락을 마구잡이로 움직이기도 했다. 수치스럽고도 힘든 자세를 견디던 닐이 흐느끼는 듯한 신음 소리를 내자 그제야 다음번의 로터가 뒤에 닿았다.
흐물흐물하게 잘 풀린 뒤로 다음 로터를 삽입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큰 크기도 아니었던지라, 넣지 못한 건 순전히 닐이 지나치게 긴장을 한 탓이었다. 마지막 로터를 밀어 넣고 난 뒤 후들후들 무너져 내리며 저도 모르게 애원하듯 바라보자 미하일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바지 앞섶이 아까보다도 더 불룩했다.
엉덩이 밖으로 나온 스위치들을 매만지던 미하일이 한꺼번에 작동을 시켰다. 닐의 몸이 퍼득 튀었다. 저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리며 우는 소리를 내는 걸 미하일이 저지했다. 그냥 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리를 다시 벌리는데 몹시도 수치스러웠다.
“정 견딜 수 없을 때는 그만하라는 의미로 아예 자세를 바꿔. 직원들에게도 말해 둘 테니까.”
“아으, 흐…… 응, 읏…….”
“알겠어?”
알았다는 의미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엎드리자 그제야 미하일이 닐을 놔주었다. 가고는 싶은데 직접적인 자극이 없어 닐이 카펫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제발’이라고 말해도 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미하일의 손가락이 뒤를 파고들었다. 질척거리고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퍽퍽 뒤를 헤집자 불똥이 파르라니 튀는 것 같았다.
“아, 아……!”
바르작거리는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온 손이 능숙하게 성기를 휘어잡았다. 몇 번 쥐여 흔들어지자 머리를 희게 만드는 쾌감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닐이 헐떡이면서 축 늘어지자 진동도 멎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겨우 몸을 추스르고 후들후들 떨리는 팔을 일으켜 세워 미하일을 바라보자 그는, 묘한 얼굴로 닐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닐이 겨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음, 그래.”
대강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미하일이 오늘로만 세 번째쯤 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는데, 그 시선이 앞선 것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까보다 좀 짙은 초록색처럼 보이는 눈동자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가만히 있어 봐. 긴장 풀고.”
축축히 젖은 뒤로 손가락이 느리게 기어들어 오더니 구부러졌다. 닐이 몸을 들썩하자 살살 로터가 빠져나갔다. 로터가 하나하나 뒤를 빠져나가는 느낌이 아주 적나라해 닐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얼른 뒤돌아 앉아 다리를 움츠리는데 돌연 미하일이 느긋하게 버클을 다시 풀었다. 닐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까 거기서 더 커질 수도 있는 거였어?
“이렇게 하면?”
무대가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하며 흰 글씨가 번쩍거리는 걸 본 뒤에서야 닐이 황급히 대답했다.
“아, 음……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잘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하일은 다시 바지를 제대로 입을 생각을 도통 하질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지 하루 만에 사장의 거시기를…… 그것도 대물인 그것을 두 번이나 보다니 역시 이 호텔이 그렇고 그런 곳이라 이런 걸까……. 아무튼 그가 느긋하게 이어 설명했다.
“대개 점잖게 신사 숙녀인 척하면서 돌아다니니까 안드로이드가 그렇게 말하면 이 정도에서 물러나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개중에는 정신 나간 놈들이 있어.”
사장님처럼요? 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사실 노출증이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사장이 아닐까?
“이것도 시범을 보여 주지.”
“아니…….”
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미하일이 갑자기 레이디의 발목을 잡아 넘어 엎어트렸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씩 웃었다.
무대가 붉은색으로 요란하게 번쩍거리거나 말거나 미하일은 거의 깔아뭉개다시피 하며 레이디의 비부 사이에 제 것을 쑥 삽입하며 박아 넣었다. 레이디가 신음 소리를 내는 동안 닐은 거의 얼이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이렇고 저런 물건을 파는, 아니 SM클럽 사장이라고 해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안드로이드랑 떡을 칠 생각을 다 하냐…….
아냐, 사람이 아니고 안드로이드니까 자위를 하는 거라고 해야 하나?
닐이 고민에 빠진 사이 갑자기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깨나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아마 누가 안드로이드를 건드린 줄 안 모양인데, 닐이 얼어붙어 버린 사이 그들은 안드로이드를 건드리는 게 자신의 사장인 걸 확인하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도로 물러갔다. 닐은 그들의 반응이 더 어이가 없었다. 왜 익숙한 것처럼 도로 돌아가는 건데?
그사이 할 것 다한 미하일은 이내 몸을 멈추고는 제 것을 빼냈다. 닐이 멍청하게 바라보건 말건 무심하게 무대 바닥을 톡톡 두드려 숨겨져 있던 보관함을 열더니 휴지를 꺼내 대강 닦아 내고는 다시 바지를 제대로 입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렇게 드물지만 경고 문고가 뜨건 말건 박고 보는 머저리들이 있거든.”
“어, 네, 네에…….”
“얘는 안드로이드라 그냥 가만히 있는 거지만, 만약 누가 당신을 덮치려고 하거든 도망쳐.”
“네?”
아직도 넋이 나간 닐이 아무 생각 없이 되물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즉시 경비들이나 직원이 제지하긴 할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하간 빨간 불 들어오자마자 내빼란 말이야. 안드로이드 성격을 반항적으로 했다고 하면 되니까.”
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자신을 덮치기 전에 내빼는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로니 크로거가 그…… 다시 생각하기 힘든 술집 사건을 벌이고 난 뒤, 소문이 좀 안 좋게 났던가. 덕분에 한동안 짜증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고, 본의 아니게 도망치는 것에도 좀 능숙하게 되었다.
“아, 그렇지.”
미하일이 다시 진열대 어디론가 가더니 이번에는 알약이 달그락거리는 투명한 통을 가져와 건넸다.
“더 세우지 못하겠다 싶을 때 먹어 둬. 계속 세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거든. 비싼 거니까 부작용은 걱정 말고, 어디 보자……. 시작 시간이 오후 3시부터 새벽 1시까지니까 세 알 먹으면 되겠네.”
“…….”
닐이 제 손에 쥐인 파란 알약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건 그 말로만 듣던 비아그어쩌고인가? 하긴 자신이 정말 안드로이드가 아닌 이상 24시간 내내 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까까지는 이런 것 저런 것 시킨 것까지도 다 괜찮았는데 막상 이런 알약을 보니 망설여졌다. 갈팡질팡하는 닐에게 미하일이 고개를 까닥였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데, 앞으로도 이렇게 잘해 주면 보너스를 줄 수도 있어.”
“……보너스요?”
알약을 만지작거리다가 보너스란 말에 닐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안드로이드를 진열한 이유가 한 달 뒤부터 정식 생산에 들어가는 신형 안드로이드 홍보 때문이거든. 당신이 잘할수록 고객들이 안드로이드를 많이 사 가는 거니까 남성형 안드로이드 구매 예약 고객 한 명마다 보너스를 주도록 하지. 어디 보자, 안드로이드 순이익의…… 1퍼센트 어때?”
“그게 얼마인데요?”
잠시 후 미하일로부터 가격을 들은 닐이 입을 딱 벌렸다. 제프리, 네가 아주 돌았구나. 그렇게 비싼 안드로이드면 공손히 모셔도 모자랄 판에 한순간의 욕구를 못 참아서 거기다가 문자 그대로 주먹질을 해……?
그건 그렇고 그리 비싼 안드로이드를 살 정도의 고객이면 얼마나 잘나가는 부자일지 닐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런 돈을 줘도 괜찮아요?”
미하일은 닐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광고 모델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순간 그 말에 닐의 가슴이 조금 설레었다. 모델비? 이때까지는 내심 이게 일종의―편법 중 하나로―몸을 파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찜찜하기도 하고 좀 우울하기도 했는데 자신을 고용한 미하일이 저런 말을 하자 마음이 좀 나아졌다.
“원래 안드로이드의 기본 토대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에게도 다 모델 비용을 줬어. 게다가 보안 때문에 앞으로 한 달 정도는 호텔 밖에 못 나갈 테니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자신에게 준다는 거액의 보너스보다는 그 말에 닐의 마음이 단숨에 휙 기울었다. 안 그래도 제프리의 집에서 지내는 건 언제 로니 크로거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차다. 이런 고급 호텔에 숨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겠지.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아르바이트도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호텔만 나서면 다시는 자신을 볼 일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부자들이니 얼굴이 팔릴 걱정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몸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성인용품을 사용한 후기 보여 주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물론 당당한 일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자신이 언제는 그렇게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조한 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더 필요한 건 없나?”
“저기, 오늘은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요? 챙겨 올 게 있거든요.”
“당신 마음대로 해.”
자, 일어나. 미하일의 말에 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브리프를 주워 내밀었다. 민망한 기분으로 주섬주섬 입었다. 미하일은 입고 있던 상의 하나를 벗어 걸쳐 주고는 제프리를 불렀다.
“제프리. 이리로.”
“네, 사장님!”
자신에게 상의를 걸쳐 주는 신사다운 행동에 정신이 팔린 것도 잠시 바로 다가오는 제프리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야?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제프리의 얼굴이 썩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그가 욕망에 눈이 멀었을 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나마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강제로 뭔가 하지 않는 사람이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레이디 점검해야 하니까 홍보는 하루 미룬다고 해. 숙소는……. 음, 보안 때문에 직원 숙소는 안 되겠군. 룸 하나 내줘.”
“알겠습니다!”
제프리가 얄미울 정도로 싹싹하게 대답했다. 닐은 미하일이 얌전히 누운 레이디의 다리 사이에 소독향이 알싸하게 나는 물티슈를 감은 손가락을 쑥 집어넣어 아까 사정한 걸 긁어내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꼭 그렇게 해야 했어요?”
“뭐가?”
“아니,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왜 굳이 안드로이드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서…….”
아까 레이디에게 박아 대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닐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미하일이 제프리가 그렇게 무서워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이렇게 대범하게 묻는 것이었다. 미하일은 다 쓴 물티슈를 아무렇게나 구겨 바닥에 던지면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까 당신이 하는 걸 보니 흥분되었거든.”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가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당신에게 박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사장의 말에 닐이 잠시 뭐라 대꾸할 말을 잃은 동안 그는 레이디를 일으켰다. 레이디는 순종적으로 졸졸 미하일을 따라갔는데, 가기 전에 닐을 향해 아까 그 나비 같은, 혹은 꽃 같은 미소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하일이 자리를 뜨자마자 제프리는 얼빠져 있는 닐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뭐야?”
“……뭐긴 뭐가?”
미하일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무심코 대답하던 닐이 휙 돌아서 제프리를 쏘아보았다. 제프리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왜…… 왜?”
“혹시라도 안드로이드인 척하고 있는데 나에게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나 아픈 거 싫어하는 거 잘 알지?”
“그럼 잘 알지! 내가 동의 없이는 절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잘 알잖아.”
제프리는 저자세로 입 안의 혀처럼 비위를 맞춰 주면서 닐의 주변을 괜히 맴돌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눈썹을 들어 올리자 그가 냅다 물었다.
“사장님이 뭐 말 안 했어?”
“무슨 말?”
분명 미하일과 나눈 대화가 궁금해서 이렇게 나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제프리가 얼마나 입이 싼 놈인지 안 뒤부터 닐은 웬만해서는 그에게 중요한 일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궁금한데 사장은 무섭고…… 보나 마나 멀찌감치 서서 어떻게든 기웃거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겠지. 닐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나 옷 좀 빌려줘.”
“어디 가게?”
“집에 잠시 다녀오게.”
“괜찮겠어? 로니가 찾아다니고 있을 텐데.”
“뭐…….”
이전에, 그러니까 회귀하기 전 닐은 로니에게 이별을 선고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두세 번은 멍청이같이 자신이 먼저 찾아 돌아갔고 나머지는 로니가 주제를 좀 알고 까불라며 질질 끌고 가 다시 강제로 사귀게 되었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하지만 옷가지며 자신이 쓰던 모든 물건이 그 집에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들르긴 들러야 했다. 그나마 로니가 자신의 똘마니들과 함께 수금하러 돌아다닐 시간인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
제프리에게서 제 스타일 아닌 옷을 빌려 입고 선글라스도 빌려 썼다. 여기에 머리도 염색했으니 얼핏 봐서는 모를 것도 같았다. 목에 붙인 홀로그램 스티커 때문에 잠시 갈팡질팡하던 닐은 자켓의 지퍼를 좀 더 올리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가지고 나올 물건이, 옷, 그리고 비상금이랑…….”
딱히 그렇게 큰 물건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사실 어차피 이제는 거의 벗고 있을 테니, 옷보다는 가족 액자가 더 중요했다.
내심 긴장하면서도 태연한 척 자신이 사는 집으로 향한 닐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서둘러 집에서 굴러다니던 종이봉투에 이것저것 쑤셔 넣은 다음 옷을 완충제 삼아 가족 액자까지 담아 나오자마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기겁한 그가 얼른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한 명도 봤다는 사람이 없어?”
“없던데.”
로니 크로거와 그 똘마니의 목소리였다. 간발의 차로 들키지 않고 숨은 모양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닐은 가능한 조용히 하려 애쓰며 귀를 기울였다. 문을 덜컥 여는가 싶더니 이내 안에서 다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지금 도망쳐야 하나? 온몸이 긴장으로 바짝 굳기 시작했다.
이런 수준이니 못 보려야 못 볼 수가 없는 경고 문고였다. CCTV까지 설치되어 있다니 미친놈 아니고서야 계속할 사람은 없겠지. 게다가 이 호텔을 사용할 사람들은 체면 깨나 차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녹화까지 되고 있다니 경고를 무시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그 미친놈이 할 만한 짓을 직접 보여 주는 사람이 있었다. 닐이 입을 딱 벌렸다.
[본점에서는 외설적인 행위가 금지되어 있으며, CCTV의 촬영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 또한 사설 경호원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결코 무시 못 할 수준으로 거대한 글자가 더욱 거대하게, 그리고 좀 더 위협적인 문구와 함께 깜박거렸다. 아무리 시범이라고는 해도 그냥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싶은데 미하일은 이제 대뜸 제 물건을 꺼내 보였다. 헉 소리를 내면서도 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바라보았다. 결코 사심이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보라고 하는 행동이면 봐 줘야지 예의 아닌가……?
그사이 미하일은 숫제 자신의 것을 노골적으로 손에 쥐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이쯤 되자 닐은 그가 그냥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장이 좀, 음, 좀…… 이상한 것 같다는 느낌이 뒤늦게 찾아왔다.
“내 것 좀 빨아 줄래, 레이디?”
여전히 손을 멈추지 않으며 미하일이 나른한 어조로 묻자 레이디 대신 닐이 움찔했다. 반면 이제까지 고분고분했던 레이디는 그 명령을 듣지 않았다. 대신 예의 바르면서도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포옹해 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키스해 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그러니까 이 샵의 안드로이드는 고객에게 능동적으로 접촉하지는 못하게 설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또한 안드로이드에 과한 손상을 주지 못하게끔 진열된 상품의 테스트도 안드로이드 스스로가 하거나 혹은 직원들만이 시행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서 닐은 잠시 소름이 끼쳤다.
직원이라면…… 제프리라든가, 제프리라든가, 제프리가 있지 않던가? 차, 차라리 손님들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안드로이드도 직원이야.”
아무튼 미하일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닐은 이제야 가까스로 이해가 갔다. 러시아에서 실제로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드로이드도 직원이고, 자신은 어쨌든 위치가 안드로이드니 나름 직원 복지, 아니 안전을 지켜 준다 이거구나.
“한번 해 볼래?”
답답할 것 같은데 발기한 상태 그대로 주섬주섬 바지를 제대로 추스르며 미하일이 물었다. 지익,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자극적이었다. 닐이 말을 더듬었다.
“네? 뭐, 뭘요?”
“명령 내려 보라고.”
괜한 상상으로 좀 찔렸던 닐이 헛기침을 하면서도 우물쭈물 레이디에게로 다가갔다. 사실은 처음 본 순간부터 내내 한번 가까이서 보고 싶기도 했다.
“만져 봐도 괜찮을까요?”
“그럼. 누구처럼 아래를 박살 내 놓지만 않으면 돼.”
뼈가 숨어 있는 미하일의 허락도 얻었겠다, 닐이 조심스럽게 레이디의 손을 쥐어 보았다. 그리고 다소 충격에 빠졌다. 정말 사람 같은 체온과 사람 같은 감촉이었다. 이 아래로 오일과 강화 플라스틱 뼈대가 숨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미하일의 반응이 또 뭔가 이상했다. 그가 작게 인상을 썼다.
“……직원으로 인식을 해서 그런가?”
“네?”
“아냐, 아무튼 명령 내려 봐.”
잠시 고민하던 닐은 괜히 사장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없다 싶어 시킨 대로 레이디에게 명령해 보았다.
“포옹해 줄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예요.”
이상하게도 안타깝다는 느낌의 목소리라고 하면 자신의 착각인 걸까? 레이디가 아까처럼 예쁘게 속눈썹을 나비 날개처럼 깜박이고는 몸을 슬쩍 꼬면서 올려다보았다. 닐이 힐끔 미하일을 바라보니 그의 미간이 구깃구깃 구겨져 있었다.
“……계속 명령해 봐.”
“음…….”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이러기 있냐……. 어쨌든 닐은 고용주의 말을 착실하게 따랐다.
“레이디, 안아 줄래?”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인데…….”
이쯤 되자 닐도 슬슬 문제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레이디는 아까 딱 부러지게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라고 말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말끝을 흐리기까지 했는데, 뉘앙스도 ‘들어주고 싶은데 들어줄 수 없어요’에 가까웠다. 닐이 마른침을 삼켰다.
레이디가 왜 이러는지 그 이유가 짐작이 좀 갔던 탓이다.
그러니까 언제였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만든 사고가 났던 날일 것이다. 그날 닐은 부모님과 함께 전자 제품 매장을 방문했다. 대학교 입학 기념 선물을 사러 갔기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적어도 어떤 미친놈이 저지른 사제 폭탄 테러가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전까지 닐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외동아들로 부족함 없이 살았었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로 닐은 한 번도 기계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냥 모든 기계가 이상하게 닐에게는 상냥하고 다정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전원을 켜면 보고 싶은 방송이 틀어져 있는 텔레비전, 라디오, 10년을 써도 고장이 나지 않는 컴퓨터나 전자 패드 기기, 핸드폰, 그리고 입력된 옵션 이외의 일까지 해치우는 청소 안드로이드에 하다못해 커피 머신까지…….
우연한 행운의 일치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쯤 되니 닐은 정말 자신에게 기계에게 사랑받는 재능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튼 머뭇거리며 닐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키스해 줄래, 레이디?”
이번에는 레이디가 얼굴에 홍조를 띠며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았다.
“지금은 안 되고……. 영업시간이 끝난 뒤에…….”
“…….”
미하일의 눈치를 보니 그는 단순히 프로그램에 이상이 있다고만 생각했는지 인상만 쓰고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겠지. 타인의 핸드폰을 만질 때 종종 지문 인식도 없이 덜컥 잠금이 풀려 버리곤 했는데 그 주인들도 썩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미래에서는 완전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던 안드로이드의 제작자가 아닌가. 자부심이 대단할 텐데 만든 물건이 오작동한다고 생각하면 별로 기분이 안 좋을 법도 했다.
“넌, 나중에 다시 한번 보고……. 아무튼 여기까진 잘 알겠지?”
“앗, 네.”
다른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거라면 정말 제프리의 말대로 그저 보여 주는 쇼에 가까울 법도 했다. 좀 수위가 높은 쇼이긴 하지만…… 일단 보수도 좋고 무엇보다 여기는 로니 크로거가 찾아올 수 없는 그런 고급 클럽이고…….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미하일이 미소를 지으며 젤을 손에 들자 이제 그가 무엇을 할지 모를 수가 없던 닐이 목울대를 울리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미하일이 조언을 던졌다.
“쉬워.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내 안드로이드들은 절대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그 말에 닐이 더욱 부끄러운 기분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하일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개장 시간이라 손님 한 명 없이 텅텅 비었지만 어쨌든 공개된 장소가 아닌가. 그의 발치에 멈추어 선 미하일이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명령했다.
“이제 다리를 벌려 봐.”
닐은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쎄, 마치 지금 자신이 닐 테일러가 아니라 정말 안드로이드 프리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굴을 붉히고 주저하면서도 그는 미하일의 말에 따라 다리를 벌렸다. 얼굴이 완전 빨갛게 달아올랐다. 안드로이드도 지금 자신 같은 얼굴을 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데 미하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닐은 저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드나? 아니면 마음에 안 드나?
“속옷도 벗어야지, 예쁜아(Pretty).”
“…….”
입술을 깨물며 닐이 속옷을 벗었다. 잠깐 움츠렸다가 슬그머니 다리를 벌리자 서서히 흥분해 단단해지는 물건을 적나라하게 보이게 되어 몹시도 부끄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자신을 보는 미하일의 시선이 죽을 만큼 좋았다. 닐은 제 취향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다 까발려지는 느낌이었다. 무대 위, 그것도 환한 조명 아래서.
시선, 자신의 몸을 훑어보는 바로 그 시선이…….
얼핏 로니 크로거가 떠올랐으나 그때의 상황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 자신은 뒷골목 작은 갱단 두목의 값싸고 예쁘장한 걸레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프리티가 아닌가……. 비난과 경멸을 담은 시선을 받으며 강제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원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다.
비록 그게, 닐 테일러라는 사람이 아니라 프리티라는 안드로이드를 향한 것일지라도.
착하지, 하고 어르듯 중얼거리며 미하일은 그런 닐의 위로 몸을 숙였다. 닐은 그에게서 날선 금속과 오일의 향을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좋았다. 자신을 임시적으로 고용한 사장이 자신의 애인들보다 훨씬 신사답고 부드럽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고객들은 안드로이드의 반응을 보기 위해 직원에게 이런 행동을 시키기도 하지.”
동시에 젤로 흥건한 손가락이 닐의 물건을 쥐었다. 굳은살로 다소 단단하게 느껴지는 손이 섬세하게 어루만지자 몸이 떨렸다. 간신히 다리를 벌리고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마치 그런 닐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칭찬이 떨어졌다.
“잘하는데.”
“정, 읏, 정말요?”
잠시 미하일의 눈에 이상한 빛이 감도는 것도 같았다. 난 거짓말은 절대 안 해.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런 말을 하며 미하일이 손을 내려 엉덩이 사이를 문질렀다. 잘 정돈된 손톱이 예민하고 연한 피부 위를 살짝 긁었다. 이런 호텔 사장의 직업적 윤리와 정직이 대체 무슨 상관관계인가 생각하다 깜짝 놀란 닐이 움찔 몸을 떨었다. 젤로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이 금세 하나 밀려들어 왔다.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자 곧장 미하일이 찰싹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예쁘게 신음해야지.”
“으, 알…… 알았어요.”
이제는 손가락 두 개가 제 뒤를 휘젓기 시작하자 닐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미하일은 원하는 것도 많았다. 그가 연신 이것저것 주문해 왔다. 소리가 너무 작은데. 더 야하게 내 봐. 그런 안드로이드잖아. 닐의 귀가 완전히 붉어졌다. 마치 수치 플레이라도 하는 것 같다 생각하는데 그때 미하일이 한숨을 쉬었다. 닐이 움찔했다.
“그런 소리 말고…….”
“아!”
“이런 소리.”
긴 손가락이 마침내 어딘가를 쿡 찌르자 닐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놀라 버둥거리는 그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미하일은 다시 손가락을 문질러 댔다. 닐이 몸을 떨며 다리를 모으기 무섭게 바로 제대로 벌리고 있어야 한다며 지적이 따랐다. 반쯤 울먹이면서 다리를 벌리자 미하일이 좀 더 몸을 숙였다.
“읏, 응, 잠시…마안……. 아!”
“그래, 그런 소리 말이야.”
닐은 미하일이 갑자기 완전히 집중한 얼굴이 되자 조금 겁도 질리고 무섭기도 하여 찔끔 눈물이 났다. 안에서 손가락이 집요하게 구부러지거나 특정한 분위를 세게 문지를 때마다 자꾸 움츠러드는 다리를 어찌할 방법이 없어 손으로 잡고 떨면서 숨만 헐떡거렸다. 그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해서 바라보자 미하일의 손에 로터가 들려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리고 안드로이드 홍보 겸 내 장난감들 홍보도 해야 하거든.”
“하, 으…….”
“직접 넣어야 할 때도 있고.”
그런 말을 하며 닐의 손에 로터를 쥐여 주는 의도가 훤히 보였다. 로터를 쥔 채로 망설이며 머뭇거리고 있자 미하일이 또 이렇게 지적했다. 머뭇거리는 건 너무 길면 안 돼.
그렇게 말해 놓고는 그가 덧붙였다.
“하기 싫거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말해.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없을 테니까.”
닐이 입술을 한번 깨물다가 미하일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로터를 쥔 손을 떨며 엉덩이 사이로 가져갔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각오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아직은…… 괜찮았다. 감당할 수 있었다.
이미 미하일이 충분히 풀어 줬기 때문인지 매끄럽고 동그란 로터는 거의 저항 없이 느릿느릿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삽입되었다. 느낌이 이상해 저도 모르게 뒤를 조이자 거의 발씬거리는 수준으로 단단해진 제 것 위에 로터의 전선이 걸쳐졌다. 미하일이 닐의 손에 친절하게 로터를 쥐여 주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세 개 더.”
그러면서 미하일이 안에 들어간 로터를 작동시키더니 흥분인지 아니면 수치심인지 모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바라보는 닐을 향해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또 그 예쁘게 웃는 미소를 짓는 순간 그는 미하일이 분명 자신의 외모를 자주 활용할 줄 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까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안드로이드는 거절해서도 안 돼. 알겠지?”
“네……에.”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고 나서 닐은 손에 쥐인 로터를 뒤에 꾸욱 밀어 넣었다. 미끌거리는 젤 위로 문지르며 반쯤 밀어 넣자 이미 안에 들어가 진동하는 것과 부딪쳐서인지 손가락이 저렸다. 미하일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로터를 삼키는 뒤로 향하자 얼굴이 완전히 붉어져서 홧홧했다. 겨우 하나를 넣고 다시 힘을 주어 다른 하나를 밀어 넣었다.
두 개, 세 개까지는 어떻게든 잘 들어갔으나 네 개쯤 되자 버거운 면이 있었다. 조금만 밀어 넣어도 안쪽에서 진동하는 물건과 달각달각 부딪치며 로터가 자꾸만 미끄러졌다. 손도 덜덜 떨렸고, 귀까지 열기가 몰려 화끈화끈했다.
“도와줄까? 말만 해.”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하일이 벌려진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닐의 시선이 방황하는 동안 그는 부드럽게 벌려진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는 벌써 닐이 어떤 부분에서 흥분하는지 눈치챈 얼굴이었다. 사실 이런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니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할 법도 했다.
“더 벌려 봐.”
미하일의 말에 바들바들 떨며 다리를 벌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허벅지를 쥐고 있는 닐의 손을 직접 옮겨 엉덩이를 잡게 했다. 벌리란 게 이제 어느 부위인지 깨달은 그가 숨을 헐떡거렸다. 로니 크로거가 종종 네 취향이지 않냐며 제 똘마니들이 보는 가운데 강요했던 모욕적인 플레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느리고 정중했으나 노골적이었으며 부끄러움이 가득했다.
“프리티, 제대로 잡아 벌려야지. 거기 말고 여기.”
아, 하고 외마디 신음 소리가 나왔다. 미하일이 닐의 손을 이끌어 직접 손가락을 밀어 넣어 뒤를 벌리게 한 탓이었다. 벌써 제 물건에서는 프리컴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운 자세로는 닐이 제대로 지시에 따르지 못하자 엎드리게 만든 미하일이 다시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당신이 제대로 해야 도와줄 거야. 자, 다시 해 봐.”
간신히 어깨와 뺨을 대어 엎드린 자세를 잡은 닐이 몸을 떨며 한 손을 뒤로 뻗었다. 힘든 자세라 기우뚱하자 미하일이 제대로 엎드리도록 잡아 주었다. 간신히 손을 뻗고 그가 말한 대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안에 들어가 있는 미끄러운 로터의 표면이 만져졌다. 이대로라면 로터가 다시 밀려 나올 것 같았다. 닐이 벌리던 손을 머뭇거렸다.
“프리티.”
그러나 미하일이 한 번 더 부르는 바람에 발발 떨면서 억지로 뒤를 잡아 벌렸다. 뒤가 느슨하게 벌어질수록 천천히 안에 있던 로터가 밀려 나오는 느낌이 몹시도 선연했다. 로터가 반쯤 나오자 반사적으로 뒤를 조이려 할 때였다.
“아……!”
그때서야 느긋하게 움직인 미하일이 반쯤 밀려 나온 로터를 쑥 밀어 넣었다. 닐이 튕기듯 몸을 떨자 로터를 밀어 넣는 손가락도 같이 밀려들어 왔다. 그에 손을 놔 버리자 미하일이 다시 그의 손을 직접 잡아 끌어당겼다. 의도가 명백한 행동에 닐은 부끄러움에 떨면서 다시 제 엉덩이를 잡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고 전에 없을 만큼 몹시 흥분했다.
그러는 동안 미하일은 손가락을 천천히 진입시켰다. 이미 안에 들어와 있던 로터들이 더욱 깊숙하게 삽입되어 공간이 어떻게든 만들어지도록, 진입은 느릿하게 이어졌다. 엎드려 있던 닐의 다리가 여러 가지 이유로 떨렸다.
미하일은 충분하다고 느낀 이상으로 로터를 더욱 깊이 밀어 넣었고, 뒤를 헤집었으며 달그락 소리가 들리도록 손가락을 마구잡이로 움직이기도 했다. 수치스럽고도 힘든 자세를 견디던 닐이 흐느끼는 듯한 신음 소리를 내자 그제야 다음번의 로터가 뒤에 닿았다.
흐물흐물하게 잘 풀린 뒤로 다음 로터를 삽입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그렇게 큰 크기도 아니었던지라, 넣지 못한 건 순전히 닐이 지나치게 긴장을 한 탓이었다. 마지막 로터를 밀어 넣고 난 뒤 후들후들 무너져 내리며 저도 모르게 애원하듯 바라보자 미하일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바지 앞섶이 아까보다도 더 불룩했다.
엉덩이 밖으로 나온 스위치들을 매만지던 미하일이 한꺼번에 작동을 시켰다. 닐의 몸이 퍼득 튀었다. 저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리며 우는 소리를 내는 걸 미하일이 저지했다. 그냥 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리를 다시 벌리는데 몹시도 수치스러웠다.
“정 견딜 수 없을 때는 그만하라는 의미로 아예 자세를 바꿔. 직원들에게도 말해 둘 테니까.”
“아으, 흐…… 응, 읏…….”
“알겠어?”
알았다는 의미에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엎드리자 그제야 미하일이 닐을 놔주었다. 가고는 싶은데 직접적인 자극이 없어 닐이 카펫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제발’이라고 말해도 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미하일의 손가락이 뒤를 파고들었다. 질척거리고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퍽퍽 뒤를 헤집자 불똥이 파르라니 튀는 것 같았다.
“아, 아……!”
바르작거리는 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온 손이 능숙하게 성기를 휘어잡았다. 몇 번 쥐여 흔들어지자 머리를 희게 만드는 쾌감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닐이 헐떡이면서 축 늘어지자 진동도 멎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겨우 몸을 추스르고 후들후들 떨리는 팔을 일으켜 세워 미하일을 바라보자 그는, 묘한 얼굴로 닐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닐이 겨우 입을 열었다.
“사장님?”
“……음, 그래.”
대강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미하일이 오늘로만 세 번째쯤 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는데, 그 시선이 앞선 것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까보다 좀 짙은 초록색처럼 보이는 눈동자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가만히 있어 봐. 긴장 풀고.”
축축히 젖은 뒤로 손가락이 느리게 기어들어 오더니 구부러졌다. 닐이 몸을 들썩하자 살살 로터가 빠져나갔다. 로터가 하나하나 뒤를 빠져나가는 느낌이 아주 적나라해 닐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얼른 뒤돌아 앉아 다리를 움츠리는데 돌연 미하일이 느긋하게 버클을 다시 풀었다. 닐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까 거기서 더 커질 수도 있는 거였어?
“이렇게 하면?”
무대가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하며 흰 글씨가 번쩍거리는 걸 본 뒤에서야 닐이 황급히 대답했다.
“아, 음…… 수행할 수 없는, 명령어입니다…….”
“잘하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하일은 다시 바지를 제대로 입을 생각을 도통 하질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지 하루 만에 사장의 거시기를…… 그것도 대물인 그것을 두 번이나 보다니 역시 이 호텔이 그렇고 그런 곳이라 이런 걸까……. 아무튼 그가 느긋하게 이어 설명했다.
“대개 점잖게 신사 숙녀인 척하면서 돌아다니니까 안드로이드가 그렇게 말하면 이 정도에서 물러나기 마련이거든. 그런데 개중에는 정신 나간 놈들이 있어.”
사장님처럼요? 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켰다. 사실 노출증이 있는 건 자신이 아니라 사장이 아닐까?
“이것도 시범을 보여 주지.”
“아니…….”
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미하일이 갑자기 레이디의 발목을 잡아 넘어 엎어트렸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씩 웃었다.
무대가 붉은색으로 요란하게 번쩍거리거나 말거나 미하일은 거의 깔아뭉개다시피 하며 레이디의 비부 사이에 제 것을 쑥 삽입하며 박아 넣었다. 레이디가 신음 소리를 내는 동안 닐은 거의 얼이 빠지고 말았다. 아무리 이렇고 저런 물건을 파는, 아니 SM클럽 사장이라고 해도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안드로이드랑 떡을 칠 생각을 다 하냐…….
아냐, 사람이 아니고 안드로이드니까 자위를 하는 거라고 해야 하나?
닐이 고민에 빠진 사이 갑자기 시끄러운 발소리와 함께 깨나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아마 누가 안드로이드를 건드린 줄 안 모양인데, 닐이 얼어붙어 버린 사이 그들은 안드로이드를 건드리는 게 자신의 사장인 걸 확인하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도로 물러갔다. 닐은 그들의 반응이 더 어이가 없었다. 왜 익숙한 것처럼 도로 돌아가는 건데?
그사이 할 것 다한 미하일은 이내 몸을 멈추고는 제 것을 빼냈다. 닐이 멍청하게 바라보건 말건 무심하게 무대 바닥을 톡톡 두드려 숨겨져 있던 보관함을 열더니 휴지를 꺼내 대강 닦아 내고는 다시 바지를 제대로 입으며 말했다.
“아무튼 이렇게 드물지만 경고 문고가 뜨건 말건 박고 보는 머저리들이 있거든.”
“어, 네, 네에…….”
“얘는 안드로이드라 그냥 가만히 있는 거지만, 만약 누가 당신을 덮치려고 하거든 도망쳐.”
“네?”
아직도 넋이 나간 닐이 아무 생각 없이 되물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즉시 경비들이나 직원이 제지하긴 할 텐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여하간 빨간 불 들어오자마자 내빼란 말이야. 안드로이드 성격을 반항적으로 했다고 하면 되니까.”
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자신을 덮치기 전에 내빼는 거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로니 크로거가 그…… 다시 생각하기 힘든 술집 사건을 벌이고 난 뒤, 소문이 좀 안 좋게 났던가. 덕분에 한동안 짜증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고, 본의 아니게 도망치는 것에도 좀 능숙하게 되었다.
“아, 그렇지.”
미하일이 다시 진열대 어디론가 가더니 이번에는 알약이 달그락거리는 투명한 통을 가져와 건넸다.
“더 세우지 못하겠다 싶을 때 먹어 둬. 계속 세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거든. 비싼 거니까 부작용은 걱정 말고, 어디 보자……. 시작 시간이 오후 3시부터 새벽 1시까지니까 세 알 먹으면 되겠네.”
“…….”
닐이 제 손에 쥐인 파란 알약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건 그 말로만 듣던 비아그어쩌고인가? 하긴 자신이 정말 안드로이드가 아닌 이상 24시간 내내 세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아까까지는 이런 것 저런 것 시킨 것까지도 다 괜찮았는데 막상 이런 알약을 보니 망설여졌다. 갈팡질팡하는 닐에게 미하일이 고개를 까닥였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데, 앞으로도 이렇게 잘해 주면 보너스를 줄 수도 있어.”
“……보너스요?”
알약을 만지작거리다가 보너스란 말에 닐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안드로이드를 진열한 이유가 한 달 뒤부터 정식 생산에 들어가는 신형 안드로이드 홍보 때문이거든. 당신이 잘할수록 고객들이 안드로이드를 많이 사 가는 거니까 남성형 안드로이드 구매 예약 고객 한 명마다 보너스를 주도록 하지. 어디 보자, 안드로이드 순이익의…… 1퍼센트 어때?”
“그게 얼마인데요?”
잠시 후 미하일로부터 가격을 들은 닐이 입을 딱 벌렸다. 제프리, 네가 아주 돌았구나. 그렇게 비싼 안드로이드면 공손히 모셔도 모자랄 판에 한순간의 욕구를 못 참아서 거기다가 문자 그대로 주먹질을 해……?
그건 그렇고 그리 비싼 안드로이드를 살 정도의 고객이면 얼마나 잘나가는 부자일지 닐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런 돈을 줘도 괜찮아요?”
미하일은 닐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광고 모델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순간 그 말에 닐의 가슴이 조금 설레었다. 모델비? 이때까지는 내심 이게 일종의―편법 중 하나로―몸을 파는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찜찜하기도 하고 좀 우울하기도 했는데 자신을 고용한 미하일이 저런 말을 하자 마음이 좀 나아졌다.
“원래 안드로이드의 기본 토대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에게도 다 모델 비용을 줬어. 게다가 보안 때문에 앞으로 한 달 정도는 호텔 밖에 못 나갈 테니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자신에게 준다는 거액의 보너스보다는 그 말에 닐의 마음이 단숨에 휙 기울었다. 안 그래도 제프리의 집에서 지내는 건 언제 로니 크로거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던 차다. 이런 고급 호텔에 숨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겠지.
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아르바이트도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호텔만 나서면 다시는 자신을 볼 일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부자들이니 얼굴이 팔릴 걱정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몸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실시간으로 성인용품을 사용한 후기 보여 주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물론 당당한 일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자신이 언제는 그렇게 깨끗하게 살았다고. 자조한 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더 필요한 건 없나?”
“저기, 오늘은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요? 챙겨 올 게 있거든요.”
“당신 마음대로 해.”
자, 일어나. 미하일의 말에 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가 브리프를 주워 내밀었다. 민망한 기분으로 주섬주섬 입었다. 미하일은 입고 있던 상의 하나를 벗어 걸쳐 주고는 제프리를 불렀다.
“제프리. 이리로.”
“네, 사장님!”
자신에게 상의를 걸쳐 주는 신사다운 행동에 정신이 팔린 것도 잠시 바로 다가오는 제프리에 놀라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야?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제프리의 얼굴이 썩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그가 욕망에 눈이 멀었을 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나마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강제로 뭔가 하지 않는 사람이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레이디 점검해야 하니까 홍보는 하루 미룬다고 해. 숙소는……. 음, 보안 때문에 직원 숙소는 안 되겠군. 룸 하나 내줘.”
“알겠습니다!”
제프리가 얄미울 정도로 싹싹하게 대답했다. 닐은 미하일이 얌전히 누운 레이디의 다리 사이에 소독향이 알싸하게 나는 물티슈를 감은 손가락을 쑥 집어넣어 아까 사정한 걸 긁어내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꼭 그렇게 해야 했어요?”
“뭐가?”
“아니,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왜 굳이 안드로이드를 사용했는지 궁금해서…….”
아까 레이디에게 박아 대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닐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미하일이 제프리가 그렇게 무서워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이렇게 대범하게 묻는 것이었다. 미하일은 다 쓴 물티슈를 아무렇게나 구겨 바닥에 던지면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까 당신이 하는 걸 보니 흥분되었거든.”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가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당신에게 박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사장의 말에 닐이 잠시 뭐라 대꾸할 말을 잃은 동안 그는 레이디를 일으켰다. 레이디는 순종적으로 졸졸 미하일을 따라갔는데, 가기 전에 닐을 향해 아까 그 나비 같은, 혹은 꽃 같은 미소를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하일이 자리를 뜨자마자 제프리는 얼빠져 있는 닐에게 후다닥 달려왔다.
“뭐야?”
“……뭐긴 뭐가?”
미하일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무심코 대답하던 닐이 휙 돌아서 제프리를 쏘아보았다. 제프리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왜…… 왜?”
“혹시라도 안드로이드인 척하고 있는데 나에게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나 아픈 거 싫어하는 거 잘 알지?”
“그럼 잘 알지! 내가 동의 없이는 절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잘 알잖아.”
제프리는 저자세로 입 안의 혀처럼 비위를 맞춰 주면서 닐의 주변을 괜히 맴돌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눈썹을 들어 올리자 그가 냅다 물었다.
“사장님이 뭐 말 안 했어?”
“무슨 말?”
분명 미하일과 나눈 대화가 궁금해서 이렇게 나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제프리가 얼마나 입이 싼 놈인지 안 뒤부터 닐은 웬만해서는 그에게 중요한 일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궁금한데 사장은 무섭고…… 보나 마나 멀찌감치 서서 어떻게든 기웃거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겠지. 닐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나 옷 좀 빌려줘.”
“어디 가게?”
“집에 잠시 다녀오게.”
“괜찮겠어? 로니가 찾아다니고 있을 텐데.”
“뭐…….”
이전에, 그러니까 회귀하기 전 닐은 로니에게 이별을 선고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두세 번은 멍청이같이 자신이 먼저 찾아 돌아갔고 나머지는 로니가 주제를 좀 알고 까불라며 질질 끌고 가 다시 강제로 사귀게 되었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하지만 옷가지며 자신이 쓰던 모든 물건이 그 집에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들르긴 들러야 했다. 그나마 로니가 자신의 똘마니들과 함께 수금하러 돌아다닐 시간인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제프리에게서 제 스타일 아닌 옷을 빌려 입고 선글라스도 빌려 썼다. 여기에 머리도 염색했으니 얼핏 봐서는 모를 것도 같았다. 목에 붙인 홀로그램 스티커 때문에 잠시 갈팡질팡하던 닐은 자켓의 지퍼를 좀 더 올리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가지고 나올 물건이, 옷, 그리고 비상금이랑…….”
딱히 그렇게 큰 물건이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사실 어차피 이제는 거의 벗고 있을 테니, 옷보다는 가족 액자가 더 중요했다.
내심 긴장하면서도 태연한 척 자신이 사는 집으로 향한 닐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서둘러 집에서 굴러다니던 종이봉투에 이것저것 쑤셔 넣은 다음 옷을 완충제 삼아 가족 액자까지 담아 나오자마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기겁한 그가 얼른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한 명도 봤다는 사람이 없어?”
“없던데.”
로니 크로거와 그 똘마니의 목소리였다. 간발의 차로 들키지 않고 숨은 모양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닐은 가능한 조용히 하려 애쓰며 귀를 기울였다. 문을 덜컥 여는가 싶더니 이내 안에서 다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지금 도망쳐야 하나? 온몸이 긴장으로 바짝 굳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