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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5화)
第二章 재회, 그리고 꿈을 향한 일보(2)


“맹달! 오늘 일 누가 지시했어?”
“그, 그게…….”
“아까는 조잘조잘 잘 떠들어 대더니, 꿀 먹은 벙어리마냥 갑자기 왜 그래? 위에서 시켰으면 위에서 시켰다고 하고, 네 자의였으면 네 자의였다고 확실하게 대답해.”
‘제, 젠장! 사실대로 말했다간 저 자식이 날 가만두지 않을 텐데.’
이번 일은 순전히 맹달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위에선 아직까지 자강파에 대한 지시가 없었는데, 그가 큰 공을 세우려는 욕심에 자의로 자강파를 공격한 것이다.
물론 위에서도 자강파가 장악하고 있는 풍월로를 욕심내고 있는 건 확실했지만, 자강파의 힘이 만만치 않은지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조직이지, 뭐겠어.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한참의 고민 끝에 맹달이 입을 열었다.
“실은 위, 위에서 지, 지시가 내려왔네. 나도 자강파만큼은 건들고 싶지 않았는데, 이 바닥 생리가 원래 그렇지 않나. 위에서 시키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럼 오늘 일은 전적으로 위에서 시킨 일이란 거야?”
“그, 그래.”
맹달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답을 했다.
그리곤 진자강의 눈치를 살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눈치가 귀신같던 진자강이었기에 그의 입에서 확답을 듣기 전까진 안심을 할 수 없었다.
“황우파가 자강파에 정면으로 도전을 했다 이거지?”
“그래. 맞아, 맞아.”
원하던 답이 나오자, 맹달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진자강의 말에 호응했다.
“크크크, 고향으로 돌아오자마자 전쟁인가! 좋아, 도전을 거절할 이유가 없지.”
‘저놈 또 눈알 돌아갔다.’
맹달은 진자강의 눈에 떠오른 광기를 읽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저 광기 어린 눈동자는 먹이를 눈앞에 둔 광견의 그것과 거의 똑같았다.
“일단 네놈부터 시작하지.”
“그, 그게 무슨?”
“너 황우파 아니었어? 황우파와 전쟁이 시작됐으니, 네놈부터 처리를 해야지. 어디, 손목부터 손을 봐 줄까?”
진자강이 철조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 앞으로 내뻗었다.
순간적으로 맹달은 손의 자유를 되찾았다.
하지만, 미처 손을 움직이기도 전에 매의 발톱처럼 구부려진 진자강의 다섯 손가락이 그의 손목을 덮쳤다.
찌지직―
“크아아악―”
맹달의 눈이 뒤집혔다.
손목을 파고든 진자강의 손톱이 맹달의 손목 힘줄을 그대로 찢어발긴 것이다.
“겨우 이 정도로 아파하면 곤란하지? 네놈 때문에 내 동생의 잘생긴 얼굴이 저 모양이 저 꼴이 됐어.”
손목에 이어 이번에는 발목 쪽에 진자강의 공격이 이어졌다.
빠각―
발목에 진자강의 발끝이 닿자, 단번에 뼈가 부서졌다.
맹달은 또 한 번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그 정도에서 그친다면 광견이 아니다.
진자강은 손과 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맹달의 신체 부위를 자근자근 밟아 댔다.
“사, 살려줘. 제발…….”
맹달이 뒤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제야 황우파의 주먹들은 맹달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아직도 서른이 넘는 인원이 남아 있었기에 그들은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두목에 그 부하들이네. 저런 허접한 놈들로 감히 자강파를 치려고 했던 거야. 저딴 놈들은 이 주먹도 아까워.”
쾅―
갑자기 진자강이 멀쩡한 담을 발로 차 부쉈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대리 청강석으로 만든 담인데, 그의 발길질 한 번에 담은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렸다.
구멍 아래로 산산이 부서진 돌 부스러기들이 어지럽게 널렸다.
“새끼들, 받아라.”
진자강의 오른발이 바닥을 쓰윽 훑고 지나갔다.
파파파팟―
그의 발에 걸린 돌 파편들이 사납게 앞으로 튀어나갔다.
하나가 아니고 한꺼번에 열 개가 넘는 돌 파편들이 허공을 갈랐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황우파의 주먹들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역시, 흑암뢰야. 가볍게 발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이건 당가의 만천화우도 안 부럽잖아.’
진자강은 바닥에 널브러진 황우파의 주먹들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머금었다.
흑암뢰(黑巖雷)는 그가 배운 십천무 중 하나로, 공격에 특화된 독특한 무공이었다. 단단하고 강인한 기운을 가진 바위를 본 따 만든 것인데, 공격을 할 때 흑암뢰를 발동시키면 그 위력이 평소의 배가 된다.
흑암뢰는 진자강이 산에서 지낼 때 가장 많이 사용한 무공으로, 식사거리를 마련할 때 주로 이용했다.
단목승의 입맛이 고급인 관계로 진자강은 식사거리를 마련할 때마다 덩치 큰 멧돼지나 산중 대호를 사냥했는데 흑암뢰를 발동시키면 그 누구도 진자강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이걸 어쩌지? 네 부하들이 다 쓰러져 버렸는데.”
돌 파편에 널브러진 황우파 주먹들을 가리키며, 진자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맹달에게 있어선 사신의 미소나 다름없었다.
‘광견한테 물리면 약도 없어. 무조건 빌자. 그것만이 살 길이야.’
맹달은 빠르게 사태를 파악했다.
그리곤 잽싸게 진자강의 다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진 두목님,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죽는 그날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구구절절 가슴 아픈(?) 사연들을 늘어놓으며, 맹달은 진자강의 발을 붙들고 목숨을 구걸했다.
부하들 보기 민망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지만, 그에겐 부끄러운 것보다 살아남는 게 더 중요했다.
“맹달! 지금 그 말 네 이름 걸고 맹세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이 맹달,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놈 아닙니다.”
“좋아. 그럼 일어나!”
진자강이 맹달의 손을 잡아 위로 끌어 올렸다. 맹달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자강을 쳐다봤다.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
“네가 살려 달라고 했잖아.”
“그, 그건 그런데 너무 뜻밖이라.”
“맹달, 난 말이지 예전의 광견이 아니야. 그때는 나와 동생들을 지켜야 했기에 필사적으로 적에게 달려들어 그 숨통을 끊어 버려야 했지만, 지금은 달라.”
지난 십 년의 세월.
독기와 살기로 가득했던 진자강의 가슴에 여유를 심어준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십 년 전, 진자강은 강한 척했지만 실제론 약자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약자임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더 독하고 사납게 행동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강자다.
굳이 독하게 행동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그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그만인 것이다.
“자, 맹달! 첫 번째 임무를 주겠어.”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날 황우파로 안내해.”
“네? 설마 혼자 움직이시려는 겁니까?”
“왜, 안 돼?”
“황우파의 본거지에는 족히 이백이 넘는 조직원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아, 아무리 두목님이 강하다고 해도 그들 모두를 상대하는 건 무리가 아닐는지요?”
“크크크, 그 정도 숫자면 상대할 만해. 십 년 동안 발바닥에 땀나도록 강해졌거든.”
진자강은 맹달의 우려 섞인 말에 그 특유의 웃음으로 답했다.
그 웃음은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지난 십 년의 시간들.
그때 흘렸던 땀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온몸에서 박동하는 십천무의 흔적들.
지금의 몸 상태라면 만담꾼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절대고수들하고 한판 대결을 펼쳐도 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맹달, 뭐해! 내 성질 알잖아. 어서 황우파의 본거지로 안내해.”
“아, 네…….”
말리고 싶었지만, 맹달은 진자강의 고집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황우파의 본거지로 향했다.
처음엔 발목이 부서져 서 있기조차 힘들었는데, 진자강이 발목을 한 번 만지자 조금 아프기는 해도 충분히 걸을 만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겨우 광견의 이빨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자기 스스로 범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돌아가고 싶지만,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목덜미에 광견의 이빨이 꽂힐 것을 알기에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황우파의 본거지는 북문 번화가에 자리한 홍아루다.
홍아루는 낙양사대기방 중 하나로, 절세미모를 자랑하는 기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기녀들의 미모에 따라 기루의 수입이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에, 낙양 시내 곳곳에선 상대 기루의 기녀를 빼내 오기 위한 물밑 작업이 치열하게 이뤄진다.
특급 기녀들의 경우엔 부르는 게 몸값이기 때문에, 기루를 관리하는 주먹패들조차 그녀들에겐 함부로 손을 쓸 수 없다. 그녀들이 맘먹기에 따라 일류무사를 호위무사로 들이거나, 고관대작들을 끌어들여 기루의 영업에 큰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홍아루에는 특급 기녀 네 명이 등록돼 있다.
그녀들의 몸값은 천문학적인 수준이지만, 그녀들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손님들의 숫자가 더 많기에 황우파로선 그녀들을 특별 관리하고 있다.
“저, 저곳입니다.”
“와아, 기루 한 번 죽이네. 내가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저 정도 규모의 기루는 없었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진자강을 홍아루까지 안내한 맹달.
그의 얼굴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보여주듯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기야 이대로 황우파의 간부들 중 하나라도 맞닥뜨리는 날에는 아마도 그의 제삿날이 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자강은 여유롭게 홍아루를 감상했다. 그가 떠날 당시에만 해도 홍아루는 아주 작은 규모였다. 특급은커녕 일류기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사정이 열악했다.
그런 홍아루가 변한 것은 황우파가 북문을 장악하면서부터였다.
어디서 자금을 끌어 왔는지 특급기녀들을 초빙하기 시작했고, 일급기녀들도 다수 확보했다. 덕분에 홍아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던 주변의 기루들은 두 눈 뜨고 기녀들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저, 저기, 두, 두목님!”
“왜?”
“한 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곳에 저희 둘이 들어갔다간 피곤죽이 되어 나올 게 뻔합니다. 지금이라도 자강파 애들을 소집하시죠. 마강혁이야 다쳐서 못 움직인다고 해도, 강천호와 주위연 이 두 사람만 있어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맹달은 살고 싶었다.
저 안에는 자신보다 강한 간부가 열이 넘는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같이 무공을 익혔다. 대체 어디서 그런 무공을 익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일개 주먹패가 익히고 있을 만한 무공이 아니다.
진자강이 강하다는 건 그도 인정하지만, 그 열 명에겐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크크크, 맹달! 싸움이란 말이지, 주먹을 맞대 보기 전에는 그 승부를 알 수 없는 거야.”
“그, 그래도…….”
“정 그렇게 겁나면 넌 여기서 그만 빠져. 어차피 넌 있어 봐야 크게 도움도 안 될 테니까.”
“정말 그래도 될까요?”
맹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전혀 기대치도 않았던 답을 들은 것이다.
“물론. 근데, 만에 하나라도 내가 황우파를 다 뭉개고 돌아오면 어떡할래?”
“…….”
“너 내가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까, 지금 빠진다는 거잖아.”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일단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내 금방 황우파 놈들 아작 내고 돌아올 테니까.”
“도, 돌아오면 어떡하실 생각이신지?”
“물론 날 못 믿은 벌을 내려야지. 뭐가 좋을까? 혀를 뽑아 버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팔다리를 아예 분질러 버리는 게 나을까?”
‘젠, 젠장! 그냥 따라오라는 말보다 더 무섭네. 그래, 어차피 뒈지는 인생이야. 그럼 차라리 남자답게 정면으로 부딪혀 보는 거야.’
진자강의 은근한 협박에 맹달은 마음을 돌렸다.
“진 두목님, 제가 잠시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맹달, 두목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여전하네. 저놈의 변덕은.’
진자강은 그 모습을 보며 오른쪽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맹달은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정의로웠다.
아까 처음 봤을 땐, 십 년의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했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맹달의 우유부단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좋아, 앞장서.”
“네.”
맹달이 호기롭게 대답하며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