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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9화)
第三章 청천벽력(3)


‘이게 다 광견 그 새끼 때문이야. 그놈이 얼토당토않은 명을 내려서…….’
황보관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오자, 맹달은 머릿속에 진자강의 얼굴을 떠올렸다.
진자강이 자강삼룡 중 둘만 보내줬더라도 이런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에 대한 맹달의 원망이 하늘을 찔렀다.
그 사이, 황보관과 맹달의 거리가 반보로 좁혀졌다.
“이 새끼, 죽었다고 복창해라!”
황보관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큰 주먹.
맹달의 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부웅―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
맹달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는 상황.
‘어, 뭐지?’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얼굴이 뽀개지는 충격이 이어져야 하는데, 파공음의 끝엔 아무런 충격이 이어지지 않았다.
맹달은 슬며시 눈을 떴다.
“형님!”
“맹달은 잘못이 없다. 난 분명 그자와 조직을 걸고 싸움을 펼쳤다. 그 결과는 맹달의 말대로 내 패배였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어찌 일개 주먹패 따위에게 형님이 패할 수 있단 말입니까?”
“후후, 난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이 정도의 힘이면 충분히 가문을 재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혀, 형님.”
황보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형님의 이런 모습은 생전 처음이었다.
“사내 대 사내로 맺은 약속이다. 가문을 재건하는 시기가 늦춰지더라도 내 쪽에서 그 약속을 어길 순 없다.”
“형님, 그건 안 됩니다! 지난 수년간 저희들이 노력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제 오 년 정도만 더 고생하면 충분히 가문을 재건할 수 있는 힘을 모으게 됩니다!”
황보관은 황보용의 결정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낙양 뒷골목에 들어와 지낸 수년의 세월은 그들에게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명망 높은 가문의 후예로 태어나,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주먹패들과 어울려야 했으니 그들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들은 오직 가문을 재건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모든 것을 버텨 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힘들게 쌓은 모든 것을 생판 얼굴도 모르는 놈에게 넘기겠다니.
“형님― 제가 애들 데리고 자강파를 치겠습니다. 놈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건 알지만, 저희가 전력을 동원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불가한다.”
“형님!”
“다 너희들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게 무슨?”
“아까 나와 겨뤘던 그자에게서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처음엔 희미해서 잘 느끼지 못했는데,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 냄새가 짙어졌다.”
황보용은 말을 뱉으면서 머릿속으로 진자강과의 결투를 떠올렸다.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시작한 싸움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자신감은 무뎌지고 가슴속 깊은 곳에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생경한 느낌이 생겨났다.
그 느낌은 바로 공포였다.
“형님이 착각하신 겁니다. 놈은 일개 뒷골목 주먹팹니다. 아마 형님을 이기기 위해 뭔가 개수작을 부렸을 겁니다. 제가 형님을 대신해 그 복수를 하겠습니다.”
“관아―”
“말리지 마십시오. 오늘만큼은 저도 그렇고, 다른 형제들도 형님의 말에 따를 수 없습니다.”
황보관의 뜻은 강경했다.
‘아, 이걸 우려한 것인데.’
황보용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황보관이 저리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면, 자신이 아무리 설득을 해 봤자 먹히지 않을 게 뻔했다.
“형님, 두 시진이면 충분합니다. 진자강인지 나발인지 그놈을 반드시 형님 발아래 무릎 꿇게 만들 겁니다.”
“정녕 뜻을 굽히지 못하겠느냐?”
“네.”
“좋다. 그럼 동원할 수 있는 황우파의 모든 전력을 이번 싸움에 동원해라.”
“굳이 그럴 필요가…….”
“필요가 있다. 진자강, 그자는 일당천의 기백을 지녔다. 초장에 그자의 기세를 잠재우지 못하면 아무리 수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어도 진다.”
황보용은 황보관이 방심하지 않도록 진자강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설명했다. 황보관의 표정은 여전히‘납득하기 힘들다’였지만, 결국엔 황보용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형님이 그토록 간곡하게 말씀하시니,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흐음… 정녕 뜻을 바꿀 생각은 없는 게냐?”
황보용은 마지막으로 황보관에게 물었다. 마지못해 자강파에 대한 공격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맘속으론 진자강의 존재가 크게 걸렸다.
“형님, 황우파는 황보세가의 분신입니다! 악적의 공격에 무릎을 꿇는 것은 황보세가로 족합니다!”
황보관이 울부짖듯 소리쳤다.
무너지는 가문을 뒤로하고 도망쳐야 했던 그때의 처절한 울분은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선명했다.
“알았다. 가문의 의지를 잇고자 하는 네 마음이 그렇게나 강한데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가라, 그리고 보여 줘라! 황보 세가의 힘을!”
‘정녕… 저들이 황보세가의 후예?’
한쪽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맹달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커졌다.
황보세가라 하면, 과거 오중천의 하나로 손꼽히던 명문 무가였다. 패황신권이란 독문 권법은 강호의 일절로 평가를 받았고, 황보세가의 십칠대 가주였던 황보천강은 두 주먹으로 강호를 평정해 권신이란 칭호까지 받았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오 년 전, 황보세가에 느닷없는 흉사가 일어났다.
황보세가의 직계후손 중 하나가 무림총에서 금한 금마공을 익힌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그 무공의 이름은 혈하수라권.
붉은 피 비를 부르는 끔찍한 마권으로, 마교의 삼대악성 중 한 명이었던 악권혈마 소동악의 비전절기였다.
마교는 백 년 전, 정사 연합의 공격으로 멸문했다.
단일 세력으로는 강호에 견줄 세력이 없을 정도로 전력이 강했지만,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면서 정사 연합의 맹공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마교가 무너진 뒤, 구파일방과 오중천은 마교의 비고를 뒤졌다.
그 안에는 강호를 도탄에 빠뜨릴 위험한 무공서들이 가득 모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고에 남겨져 있던 무서들은 총 일만 권에 달했다.
비고를 조사하던 구파일방과 오중천의 수장들은 그 무서들 대부분을 태우고, 위력이 강맹하고 그 해악이 지독한 무서들을 따로 분류해 금마공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무서들은 각 세력의 수장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본래의 목적대로라면 다른 무서들과 함께 태워야 마땅했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금마공의 유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혈하수라권은 당시 황보세가가 맡았던 금마공이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때, 황보세가의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는데.’
맹달은 방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


“대형, 오랜만입니다.”
“이 우라질 인간, 왜 이제야 찾아온 거요?”
진자강이 풍월로로 돌아오자, 마강혁의 옆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청년이 벌떡 일어났다.
한 명은 이곳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선한 인상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히 험악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자식들 하나도 안 변했네. 특히 천호 저놈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인상이 너무 강렬해.”
“거 왜 그럽니까? 주먹패라면 모름지기 이 정도 외모는 돼야지. 기생오라비 같은 위연이 놈보단 내 얼굴이 백배 천배 낫지요.”
강천호가 진자강의 말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는 어릴 때부터 대형인 진자강을 유난히 편하게(?) 대했다. 그 정도가 지나쳐서 항상 주위연과 마강혁이 뒤에서 뜯어말렸을 정도다.
그런데 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성격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대형께서 이해하십시오. 이 녀석, 대형이 떠난 이후로 한 달 내내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얌마, 그 얘긴 갑자기 왜 꺼내?”
강천호가 주위연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십 년 전, 진자강이 풍월로를 떠났을 때 이를 가장 슬퍼했던 이가 강천호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흘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 뒤로도 보름이 넘도록 먹을 것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만약 두 사람이 강천호의 입을 억지로 벌려 죽이라도 밀어 넣지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강천호는 없었을 것이다.
“미안하다. 적어도 너희들한테 어디로 떠단다는 말쯤은 하고 떠났어야 했는데.”
“그게 어디 대형 잘못입니까? 다, 그 빌어먹을 마두 탓이지. 마두에 대한 얘기는 다른 애들한테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선한 얼굴이 사납게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마두의 얘기가 나오자, 주위연의 얼굴에 빠르게 찬 서리가 내려앉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주위연은 자강삼룡 중 가장 손속이 사납다.
상대가 적이라고 판단되면 그때부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잔인하고 집요하게 상대를 해치운다.
특히, 웃음을 가장한 채 표적에게 다가가 소리 소문 없이 숨통을 끊어 버리는 소리장도는 이 바닥에선 꽤나 유명했다.
“너무 열 내지 마. 그 마두도 나름대로 말 못할 사정이 있었어.”
“그게 무슨?”
“실은 나 그 마두하고 십 년 동안 함께 지냈다.”
“네?”
둘은 진자강의 답에 크게 놀랐다.
일반인도 아닌 잔혹 무도한 마두다. 그런 인간과 십 년 세월을 함께 보냈다니. 그들로선 도무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처음엔 나도 많이 힘들었어. 세상과 단절된 산중에서 그 마두 놈하고 단둘이 지내야 했으니, 함께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욕이었지. 그런데, 사람이란 게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시간이 흐르니까 점점 익숙해지는 거야. 처음엔 말도 섞인 싫었던 마두하고도 한두 마디씩 말을 섞었고, 그 한두 마디가 열 마디, 백 마디로 늘어갔지.”
진자강은 천중산에서의 생활을 둘에게 꽤나 소상히 얘기했다.
친형제나 다름없는 그들이기에 사실을 숨길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대형! 단목승이면, 혹 천중제일가라 불리던 단목가의 전대가주가 아닙니까?”
단목승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주위연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아마도 그 영감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단목가의 사람이 맞을 거다.”
“미, 믿기지가 않네요. 그 마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중제일가의 주인이었다니.”
“거기가 그렇게 대단한 데야?”
“물론이죠. 백 년 전만 해도 단목세가는 천중제일가로 불렸어요. 휘하의 무사들만 일천이 넘고, 그 무사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일류를 넘어섰으니 가히 그 기세가 대단했죠.”
주위연은 생긴 것처럼 정보에 꽤나 밝았다.
진자강이 처음 자강파를 조직할 때도 가장 큰 역할을 한 이가 주위연이었다.
“영감이 남긴 유언을 읽어 보니, 요새는 세가의 사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던데?”
“정확히 짚으셨네요. 그 잘나가던 왕년의 단목세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뭐? 사라지고 없다고?”
“네. 대형이 사라지고 일 년 후쯤인가, 낙양에 난데없는 피 보라가 일었습니다. 피 보라가 불어 닥친 곳은 다름 아닌 단목세가였죠. 게다가 더 놀라운 건 그들은 공격한 자들이 정도연합체라 불리는 무림총이라는 사실입니다. 들리는 소문으론 단목세가가 마도와 결탁을 해서 무림총이 공격을 했다는데, 사실 여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영감의 예상이 딱 들어맞았군. 서신을 읽었을 땐 긴가민가했었는데.’
진자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신으로 접했을 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단목세가가 망했다는 얘길 들으니 왠지 가슴 한 구석이 납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설마 다 죽은 건 아니겠지?”
“그게 무림총의 행사론 믿기지 않게도, 단목세가에 터를 두고 살아가고 있던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식당에서 일을 하던 요리사도, 정원을 관리하던 정원사도 모두 단지 단목세가에서 일한다는 죄목으로 죽었죠.”
그날의 끔찍했던 상황은 낙양혈사란 이름으로 사람들 뇌리에 남아 있었다.
피비린내가 사흘 내내 사방에 진동하고, 시체를 노린 까마귀 떼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자못 흉흉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이런 큰 사건이 일어났으면 관부에서 즉각적으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관부에선 그 일을 완전히 함구했다. 호기심 많은 몇몇 호사가들이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놨지만, 너무나 의견이 분분한지라 단목세가의 일은 차츰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