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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12화)
第四章 반격(3)
특히, 강천호와 마강혁은 감동에 젖은 눈망울로 하염없이 진자강의 얼굴을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주위연만은 진자강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역시, 대형이야. 대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은 대형을 두고 단순무식한 싸움꾼이라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야. 이번 싸움, 분명 대형이 의도한 싸움은 아니었어. 하지만, 대형은 이번 싸움을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걸 얻어 냈어.’
단순한 싸움의 일면을 보자면, 진자강은 광견이란 이름에 걸맞게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생각을 하고 움직였다는 주위연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싸움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싸움을 통해 진자강은 황보용이란 충직한 종복을 얻었다.
황보용은 강자다.
진자강과의 싸움에서 패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은 뒷골목 세계에선 그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게다가 그에겐 십객이 딸려 있다.
자강삼룡에게 방심해 패하긴 했지만, 그들의 전력 또한 황보용 개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싸움을 통해 진자강이 무엇보다 크게 얻은 건 황우파의 완전 복속이다.
조직과 조직이 병합되는 과정에선 많은 잡음과 다툼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황우파와 같은 거대 조직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데 오늘 싸움에서 보여 준 진자강의 모습은 황우파 조직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황보관을 향한 채찍과 황보용에게 던져 준 당근이 절묘하게 맞물린 것이다.
“싸움은 끝났다. 모두 옆에 쓰러진 놈들 부축해서 의원한테 데려가라.”
진자강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자강파의 조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조직원들은 부리나케 몸을 움직여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부축해 신풍전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희들은 뭐야? 지금 내가 하는 말 안 들려!”
“저희도?”
“그럼. 너희도 오늘부로 자강파야. 당장 쓰러진 애들 안고 의원으로 달려가.”
멍하니 서 있는 황우파 조직원들에게 진자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남아 있던 황우파 조직원들도 황급히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물론 그중에는 자강파의 조직원을 안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너도 그 자식 데리고 저 녀석들 따라가.”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 자식이 너희 가문의 희망이라며?”
진자강이 퉁명스레 반문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식구끼리 은혜는 무슨, 더 늦기 전에 어서 쫓아가. 낙양이 아무리 큰 도시라 해도 의원은 그리 많지 않아.”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진자강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황보용은 황보관을 안고 신풍전장을 빠져나갔다. 경공을 전개한 탓에 가장 늦게 출발했지만, 그는 단숨에 앞서 가던 조직원들을 추월했다.
“대형!”
강천호를 위시한 자강삼룡이 진자강에게 다가왔다.
강천호와 마강혁은 아까 보여 줬던 진자강의 배포에 또 한 번 입이 따갑게 떠들어 댔다.
“이것으로 낙양 북문은 완전히 저희 차지가 됐네요. 이제 북문 내에서 만큼은 그 어떤 놈들도 저희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겁니다.”
주위연이 조심스럽게 오늘의 성과를 얘기했다.
자강삼룡은 북문을 차지한 것이 감개무량한 듯 얼굴이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진자강의 얼굴은 결코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북문 하나 차지했다고 다들 너무 들뜨지 마. 우리 최종 목표는 낙양 통일이야. 북문이야 어차피 우리의 앞마당이었고,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야. 다들 각오 단단히 해 둬.”
“크크크, 물론이죠.”
“싸움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진자강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승리에 도취되기엔 그의 꿈이 너무도 컸다.
낙양.
오랜 과거부터 주먹패들의 전설이 살아 있는 땅이다.
전설의 주먹들이 낙양을 차지하기 위해 수도 없는 싸움을 벌였지만, 단 한 번도 낙양을 일통한 주먹은 없었다.
***
쾅―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치우가 왜 이런 몰골로 돌아온 게야?”
낙양 북부에 위치한 황룡문.
조치우를 데리고 돌아온 호위무사들은 문을 넘자마자, 서슬 파란 기세를 뿜어 대는 황룡문주와 대면했다.
현 황룡문주의 이름은 조만석.
그는 정도문파의 인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패도 일색의 사내였다.
성정이 급하고 사나워 한 번 비위가 뒤틀리면, 말보단 주먹이 먼저 나갔다.
“문주님, 죽여주십시오!”
호위무사들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딴 입에 발린 소린 집어 치워라. 내가 알고 싶은 건 멀쩡히 나간 치우가 왜 저 모양으로 돌아왔냐는 거다. 당장 사실을 읊어라. 하나라도 거짓이 있을 시, 네놈들의 혀를 모두 뽑아 버리고 말 것이다.”
조만석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호위무사 하나를 위로 끄집어 올렸다.
호위무사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홍아루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했다. 물론, 그 말들 속에서 조치우가 저질렀던 잘못들은 하나도 언급이 되지 않았다.
“그럼 치우가 일개 주먹패 따위에게 저리 험한 꼴을 당했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주먹패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놈의 무위가 참으로 대단했습니… 커억!”
말을 이어 가던 호위무사가 갑자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얘기를 듣다 참지 못한 조만석이 호위무사의 낭심을 세차게 걷어차 버린 것이다.
“주먹패 따위에게 함부로 강하다는 말을 붙이지 마라. 네놈들이 진 건 네놈들이 약해서지, 그놈이 강해서가 아니다. 오늘부로 너희들은 모두 해고다. 당장 짐 싸서 내 눈앞에서 꺼져!”
조만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호위무사들을 모두 쫓아냈다.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호위무사를 이리 강제로 내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조만석의 경우엔 이런 일이 허다했다.
“진송!”
“네, 문주님!”
“지금 즉시 제자들을 모두 소집해라.”
“황우파를 치실 생각이십니까?”
조만석의 제일심복인 진송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황룡문의 총관으로, 무공도 무공이지만 지략이 뛰어나 조만석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개가 사람을 물었으니, 응당 그 대가를 받게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치우가 홍아루에 자주 드나드는 것이 탐탁지 않았는데, 이 기회에게 아예 홍아루를 낙양 땅에서 지워 버려야겠어.”
조만석의 눈가에 스산한 살기가 내비쳤다.
그에게 있어 황우파는 길바닥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개미 새끼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문주님, 재고해 주십시오.”
“재고라니, 치우가 저 모양이 됐는데 나보고 그 후안무치한 놈들을 내버려 두란 말이냐?”
“내, 내버려 두잔 말씀이 아닙니다. 전 그저 황룡문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알아먹기 쉽게 얘기해 봐라.”
“본 황룡문은 낙양의 명망 높은 무가입니다. 그리고 무림총에도 적을 두고 있는 정식 명문 정파이지요.”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거냐?”
‘쯧쯧. 이리 무식할 수가. 내가 이쯤 말을 했으면 척하고 알아먹어야 정상 아니야?’
진송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조만석을 쳐다봤다.
물론, 곁눈질이라 조만석은 미처 그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무릇 정파란 정의를 위해 검을 들고, 불우한 양민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곳입니다. 한데, 이번 일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경우 중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왜 해당이 안 돼? 어차피 우리가 치려는 놈들은 양민의 피를 빨아먹는 주먹패야.”
“이번엔 경우가 다릅니다. 상대가 아무리 후안무치한 주먹패라도 먼저 잘못을 저지른 쪽은 소문주님입니다. 만약, 놈들이 우리에게 당한 후 사건의 전모를 은밀히 퍼뜨린다면 본문의 위신은 물론, 정파 전체의 위신이 크게 실추될 수 있습니다.”
진송은 조리 있게 말을 해 나갔다.
무식한 문주를 둔 덕에 입에 침이 말라 가도록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으음… 그렇단 말이지.”
“네.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진흙탕 싸움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미꾸라지들끼리 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현재 낙양 북문의 황우파와 낙양 동문의 곤룡회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론 두 조직의 세가 거의 엇비슷하다고 하니, 저희 쪽에서 은밀히 무사들을 지원해 준다면 황우파는 자연스럽게 곤룡회에게 무너지고 말 겁니다.”
진송은 단순한 차도살인지계를 제안했다.
황룡문이 드러날 일도 없거니와 일이 의도한 대로 성공했을 경우, 곤룡회로부터 의외의 수입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크크크,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이거 잘만 하면 큰돈 좀 만져 볼 수 있겠어. 진송! 당장 곤룡회 두목하고 자리 마련해.”
돈 냄새를 진하게 맡았는지, 조만석이 진송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저런 놈이 무슨 정파의 거두라고. 하여튼, 이놈의 바닥은 알 수가 없다니까.’
진송은 조만석의 구린내 나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빠르게 대전을 빠져나갔다.
***
크르릉 킁킁―
음영이 짙게 내리 깔린 골목의 한구석.
작은 개 한 마리가 덩치 큰 개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덩치 큰 개들은 사납게 으르렁대며, 작은 개를 공격했다.
작은 개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지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큰 개들의 발톱을 모두 피할 순 없었다.
털이 날리고, 살가죽이 찢겨졌다.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흥건히 바닥을 적시는데, 작은 개는 비틀거리면서도 큰 개들을 향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크아앙―
큰 개들의 우두머리가 작은 개를 보며 사납게 짖었다.
다시 개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앞세운 개들이 작은 개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큰 개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상황.
작은 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투지에 불타던 작은 개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야, 이 똥개 새끼들아―”
그런데 바로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깨갱 깽깽―
큰 개들이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녀석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몽둥이세례.
큰 개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똥줄 급하게 골목길 밖으로 달아났다.
털썩―
괴롭히던 큰 개들이 사라지자, 작은 개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황호야, 내가 밖으로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구세주가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작은 개를 안았다.
작은 개의 이름은 황호.
그리고 그 구세주의 이름은 강천호였다.
“저 녀석이 진짜 황호 맞아?”
“네.”
“근데 몸이 왜 저래? 황호는 설랑과 누렁이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야. 비록 어미는 똥개여도, 저 녀석 몸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저도 그게 이상해요. 분명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우며, 좋은 먹이란 먹이는 다 갖다 먹였거든요. 근데 대형이 사라진 후로, 도통 저 녀석 몸집이 자라질 않는 거예요.”
어둠 속에서 황호를 바라보는 세 쌍의 눈동자.
그들은 진자강과 자강삼룡이었다.
황호를 바라보는 진자강의 눈빛은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게 새끼 때부터 황호를 데려다 키운 이가 바로 진자강이었다.
당시 풍월로에는 누렁이라 불리는 암컷 똥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어느 날 배가 불룩해지더니 새끼를 낳았다. 다른 새끼들은 누렁이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는데, 황호만큼은 특이하게 황금빛 털에 늑대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타고났다.
진자강은 이를 신기하게 여겨, 황호를 자강파의 본거지로 데려갔고 그때부터 황호는 자강파의 상징이 됐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저 녀석 맞고 다닌 거야?”
“한 삼 년 정도 됐습니다.”
“그 똥개 새끼들이 왜 황호를 못 잡아먹어 안달난 거야?”
“그게 저 녀석이 암컷들한테 마구 들이대는 바람에…….”
마강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황호가 집단으로 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第四章 반격(3)
특히, 강천호와 마강혁은 감동에 젖은 눈망울로 하염없이 진자강의 얼굴을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주위연만은 진자강의 모습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역시, 대형이야. 대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은 대형을 두고 단순무식한 싸움꾼이라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야. 이번 싸움, 분명 대형이 의도한 싸움은 아니었어. 하지만, 대형은 이번 싸움을 통해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걸 얻어 냈어.’
단순한 싸움의 일면을 보자면, 진자강은 광견이란 이름에 걸맞게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생각을 하고 움직였다는 주위연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싸움의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싸움을 통해 진자강은 황보용이란 충직한 종복을 얻었다.
황보용은 강자다.
진자강과의 싸움에서 패하긴 했지만, 그의 실력은 뒷골목 세계에선 그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하다.
게다가 그에겐 십객이 딸려 있다.
자강삼룡에게 방심해 패하긴 했지만, 그들의 전력 또한 황보용 개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싸움을 통해 진자강이 무엇보다 크게 얻은 건 황우파의 완전 복속이다.
조직과 조직이 병합되는 과정에선 많은 잡음과 다툼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황우파와 같은 거대 조직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한데 오늘 싸움에서 보여 준 진자강의 모습은 황우파 조직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황보관을 향한 채찍과 황보용에게 던져 준 당근이 절묘하게 맞물린 것이다.
“싸움은 끝났다. 모두 옆에 쓰러진 놈들 부축해서 의원한테 데려가라.”
진자강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자강파의 조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 조직원들은 부리나케 몸을 움직여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부축해 신풍전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너희들은 뭐야? 지금 내가 하는 말 안 들려!”
“저희도?”
“그럼. 너희도 오늘부로 자강파야. 당장 쓰러진 애들 안고 의원으로 달려가.”
멍하니 서 있는 황우파 조직원들에게 진자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남아 있던 황우파 조직원들도 황급히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들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물론 그중에는 자강파의 조직원을 안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너도 그 자식 데리고 저 녀석들 따라가.”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 자식이 너희 가문의 희망이라며?”
진자강이 퉁명스레 반문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식구끼리 은혜는 무슨, 더 늦기 전에 어서 쫓아가. 낙양이 아무리 큰 도시라 해도 의원은 그리 많지 않아.”
“알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진자강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황보용은 황보관을 안고 신풍전장을 빠져나갔다. 경공을 전개한 탓에 가장 늦게 출발했지만, 그는 단숨에 앞서 가던 조직원들을 추월했다.
“대형!”
강천호를 위시한 자강삼룡이 진자강에게 다가왔다.
강천호와 마강혁은 아까 보여 줬던 진자강의 배포에 또 한 번 입이 따갑게 떠들어 댔다.
“이것으로 낙양 북문은 완전히 저희 차지가 됐네요. 이제 북문 내에서 만큼은 그 어떤 놈들도 저희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할 겁니다.”
주위연이 조심스럽게 오늘의 성과를 얘기했다.
자강삼룡은 북문을 차지한 것이 감개무량한 듯 얼굴이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진자강의 얼굴은 결코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다.
“북문 하나 차지했다고 다들 너무 들뜨지 마. 우리 최종 목표는 낙양 통일이야. 북문이야 어차피 우리의 앞마당이었고,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야. 다들 각오 단단히 해 둬.”
“크크크, 물론이죠.”
“싸움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진자강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승리에 도취되기엔 그의 꿈이 너무도 컸다.
낙양.
오랜 과거부터 주먹패들의 전설이 살아 있는 땅이다.
전설의 주먹들이 낙양을 차지하기 위해 수도 없는 싸움을 벌였지만, 단 한 번도 낙양을 일통한 주먹은 없었다.
쾅―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치우가 왜 이런 몰골로 돌아온 게야?”
낙양 북부에 위치한 황룡문.
조치우를 데리고 돌아온 호위무사들은 문을 넘자마자, 서슬 파란 기세를 뿜어 대는 황룡문주와 대면했다.
현 황룡문주의 이름은 조만석.
그는 정도문파의 인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패도 일색의 사내였다.
성정이 급하고 사나워 한 번 비위가 뒤틀리면, 말보단 주먹이 먼저 나갔다.
“문주님, 죽여주십시오!”
호위무사들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딴 입에 발린 소린 집어 치워라. 내가 알고 싶은 건 멀쩡히 나간 치우가 왜 저 모양으로 돌아왔냐는 거다. 당장 사실을 읊어라. 하나라도 거짓이 있을 시, 네놈들의 혀를 모두 뽑아 버리고 말 것이다.”
조만석이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호위무사 하나를 위로 끄집어 올렸다.
호위무사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홍아루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했다. 물론, 그 말들 속에서 조치우가 저질렀던 잘못들은 하나도 언급이 되지 않았다.
“그럼 치우가 일개 주먹패 따위에게 저리 험한 꼴을 당했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주먹패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놈의 무위가 참으로 대단했습니… 커억!”
말을 이어 가던 호위무사가 갑자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얘기를 듣다 참지 못한 조만석이 호위무사의 낭심을 세차게 걷어차 버린 것이다.
“주먹패 따위에게 함부로 강하다는 말을 붙이지 마라. 네놈들이 진 건 네놈들이 약해서지, 그놈이 강해서가 아니다. 오늘부로 너희들은 모두 해고다. 당장 짐 싸서 내 눈앞에서 꺼져!”
조만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호위무사들을 모두 쫓아냈다.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은 호위무사를 이리 강제로 내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조만석의 경우엔 이런 일이 허다했다.
“진송!”
“네, 문주님!”
“지금 즉시 제자들을 모두 소집해라.”
“황우파를 치실 생각이십니까?”
조만석의 제일심복인 진송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황룡문의 총관으로, 무공도 무공이지만 지략이 뛰어나 조만석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개가 사람을 물었으니, 응당 그 대가를 받게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치우가 홍아루에 자주 드나드는 것이 탐탁지 않았는데, 이 기회에게 아예 홍아루를 낙양 땅에서 지워 버려야겠어.”
조만석의 눈가에 스산한 살기가 내비쳤다.
그에게 있어 황우파는 길바닥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개미 새끼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문주님, 재고해 주십시오.”
“재고라니, 치우가 저 모양이 됐는데 나보고 그 후안무치한 놈들을 내버려 두란 말이냐?”
“내, 내버려 두잔 말씀이 아닙니다. 전 그저 황룡문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알아먹기 쉽게 얘기해 봐라.”
“본 황룡문은 낙양의 명망 높은 무가입니다. 그리고 무림총에도 적을 두고 있는 정식 명문 정파이지요.”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거냐?”
‘쯧쯧. 이리 무식할 수가. 내가 이쯤 말을 했으면 척하고 알아먹어야 정상 아니야?’
진송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조만석을 쳐다봤다.
물론, 곁눈질이라 조만석은 미처 그 눈빛을 알아채지 못했다.
“무릇 정파란 정의를 위해 검을 들고, 불우한 양민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는 곳입니다. 한데, 이번 일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경우 중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왜 해당이 안 돼? 어차피 우리가 치려는 놈들은 양민의 피를 빨아먹는 주먹패야.”
“이번엔 경우가 다릅니다. 상대가 아무리 후안무치한 주먹패라도 먼저 잘못을 저지른 쪽은 소문주님입니다. 만약, 놈들이 우리에게 당한 후 사건의 전모를 은밀히 퍼뜨린다면 본문의 위신은 물론, 정파 전체의 위신이 크게 실추될 수 있습니다.”
진송은 조리 있게 말을 해 나갔다.
무식한 문주를 둔 덕에 입에 침이 말라 가도록 그는 쉴 새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으음… 그렇단 말이지.”
“네.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진흙탕 싸움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미꾸라지들끼리 시키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현재 낙양 북문의 황우파와 낙양 동문의 곤룡회가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론 두 조직의 세가 거의 엇비슷하다고 하니, 저희 쪽에서 은밀히 무사들을 지원해 준다면 황우파는 자연스럽게 곤룡회에게 무너지고 말 겁니다.”
진송은 단순한 차도살인지계를 제안했다.
황룡문이 드러날 일도 없거니와 일이 의도한 대로 성공했을 경우, 곤룡회로부터 의외의 수입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크크크,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이거 잘만 하면 큰돈 좀 만져 볼 수 있겠어. 진송! 당장 곤룡회 두목하고 자리 마련해.”
돈 냄새를 진하게 맡았는지, 조만석이 진송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저런 놈이 무슨 정파의 거두라고. 하여튼, 이놈의 바닥은 알 수가 없다니까.’
진송은 조만석의 구린내 나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빠르게 대전을 빠져나갔다.
크르릉 킁킁―
음영이 짙게 내리 깔린 골목의 한구석.
작은 개 한 마리가 덩치 큰 개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덩치 큰 개들은 사납게 으르렁대며, 작은 개를 공격했다.
작은 개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공격을 피했지만, 사방에서 달려드는 큰 개들의 발톱을 모두 피할 순 없었다.
털이 날리고, 살가죽이 찢겨졌다.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흥건히 바닥을 적시는데, 작은 개는 비틀거리면서도 큰 개들을 향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크아앙―
큰 개들의 우두머리가 작은 개를 보며 사납게 짖었다.
다시 개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앞세운 개들이 작은 개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큰 개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상황.
작은 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투지에 불타던 작은 개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야, 이 똥개 새끼들아―”
그런데 바로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깨갱 깽깽―
큰 개들이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녀석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몽둥이세례.
큰 개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똥줄 급하게 골목길 밖으로 달아났다.
털썩―
괴롭히던 큰 개들이 사라지자, 작은 개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황호야, 내가 밖으로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구세주가 몽둥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작은 개를 안았다.
작은 개의 이름은 황호.
그리고 그 구세주의 이름은 강천호였다.
“저 녀석이 진짜 황호 맞아?”
“네.”
“근데 몸이 왜 저래? 황호는 설랑과 누렁이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야. 비록 어미는 똥개여도, 저 녀석 몸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저도 그게 이상해요. 분명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우며, 좋은 먹이란 먹이는 다 갖다 먹였거든요. 근데 대형이 사라진 후로, 도통 저 녀석 몸집이 자라질 않는 거예요.”
어둠 속에서 황호를 바라보는 세 쌍의 눈동자.
그들은 진자강과 자강삼룡이었다.
황호를 바라보는 진자강의 눈빛은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게 새끼 때부터 황호를 데려다 키운 이가 바로 진자강이었다.
당시 풍월로에는 누렁이라 불리는 암컷 똥개가 있었는데, 그 개가 어느 날 배가 불룩해지더니 새끼를 낳았다. 다른 새끼들은 누렁이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는데, 황호만큼은 특이하게 황금빛 털에 늑대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타고났다.
진자강은 이를 신기하게 여겨, 황호를 자강파의 본거지로 데려갔고 그때부터 황호는 자강파의 상징이 됐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저 녀석 맞고 다닌 거야?”
“한 삼 년 정도 됐습니다.”
“그 똥개 새끼들이 왜 황호를 못 잡아먹어 안달난 거야?”
“그게 저 녀석이 암컷들한테 마구 들이대는 바람에…….”
마강혁은 난감한 표정으로 황호가 집단으로 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