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열혈총관 1권(14화)
第五章 낙양쟁패의 서막(2)


‘이거 십 년 전보다 강도가 너무 세졌잖아. 아까 그 문제 못 맞혔으면 정말 죽을 뻔했는데?’
두 다리를 휘청거리며 특훈에 임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마강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전에도 특훈이란 명목 하에 진자강이 여러 번 자신들을 훈련시킨 적이 있었지만, 오늘과 같은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대, 대형… 이제, 그만…….”
“다, 다리가…….”
특훈을 시작한 지 한 시진 정도 지났을까.
강천호와 주위연의 얼굴이 산송장처럼 창백하게 질렸다.
말할 기운도 없는지 말을 하는 내내 목소리가 중간에 끊겼다.
“자식들, 안 본 사이에 체력이 많이 약해졌는데. 뭐, 오늘은 처음이니까 이 정도에서 봐 주지. 특훈 종료!”
털썩―
진자강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주위연과 강천호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웩―
갑자기 주위연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토악질을 했다.
술기운도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몸을 움직였으니 속이 멀쩡할 리 없다.
꼬르륵―
그에 반해, 강천호의 배에선 천둥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형, 배고파요.”
‘저런 식귀 같은 놈!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배고프단 말이 나올 수 있냐?’
마강혁이 황당한 표정으로 강천호를 쳐다봤다.
평소 식탐이 좀, 아니, 많은 심한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지독한 훈련을 받고 밥을 가장 먼저 떠올리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침부터 고생했으니, 오늘 아침은 내가 책임진다. 모두 식당으로 따라와라.”
진자강이 식당으로 향했다.
강천호는 식당이란 말에 반색하며 뒤뚱거리며 그 뒤를 쫓았고, 마강혁은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위연을 부축해 식당으로 뒤늦게 출발했다.

부글부글―
뜨겁게 달궈진 솥이 희뿌연 김을 뿜어 댄다.
코끝을 간질이는 깊고 풍부한 향이 한껏 그 맛을 기대케 한다.
“저어, 대형―”
“왜?”
“혹시 그 안으로 그 녀석을 집어넣으려는 것은 아니죠?”
강천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먹을 걸 앞에 두고 있는데도 평소답지 않게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인마, 본래 구탕은 국물이 생명이야. 다른 고기로 제법 육수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구탕에 개가 빠져선 안 되지.”
진자강이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부들부들―
그곳엔 황호가 있었다.
양쪽 발이 묶인 채로 솥이 내려다보이는 기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는데, 진자강과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떨었다.
지난밤, 황호는 진자강과 함께 있었다.
옛 주인과의 반가운 하룻밤.
그런데 어제의 하룻밤은 황호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하고 무서운 기억을 남겼다.
“황호, 네 녀석한테 주는 마지막 기회야. 난 말이지 나약하고 비리비리한 애견 따위는 안 키워. 이 진자강의 개라면 모름지기 모든 개들을 지배할 수 있는 사나운 투견이 돼야 해. 이 구탕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개 한 마리 잡아와. 물론, 너보단 살이 토실토실 오른 놈이라야 해.”
진자강은 황호를 협박(?)했다.
개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구구절절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읊어 댔다.
“대형, 황호한테 그건 무립니다.”
“맞아요. 지금 저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간 다른 개들한테 오히려 잡아먹히고 말 거예요.”
자강삼룡은 황호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황호를 변호했다.
십 년 넘게 정이 들어 버린 녀석인지라, 그들에겐 황호는 단순한 개가 아니라 가족이었다.
“아아, 이건 너희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 이건 황호와 내가 풀어야 할 문제야.”
“하, 하지만―”
“황호가 이렇게 나약하게 변한 데는 네 녀석들 책임도 커. 어릴 때부터 너희들이 얼마나 이 녀석을 감싸고돌았으면 저 지경이 돼!”
진자강은 그들을 나무라며 황호의 발을 묶고 있던 밧줄을 끊었다. 그리곤 황호의 꼬리에 가는 줄을 다시 꽁꽁 묶었다.
“황호야, 행여나 도망갈 생각은 추호도 갖지 마. 이 줄을 달고 있는 이상, 네가 어디로 가든 이 형아가 금방 찾을 수 있어.”
크르릉―
황호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이 자식이 누구한테 이빨을 들이대!”
진자강이 사정없이 황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황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다급히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대형, 진짜 황호가 다른 개를 잡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객관적으로 황호가 다른 개를 사냥하는 건 절대적으로 무립니다.”
특훈의 여파에서 겨우 한숨 돌린 주위연이 앞선 둘에 이어 진자강의 설득했다.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서 얘길 하니, 앞선 둘에 비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뵀다.
이번엔 진자강도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주위연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최근에 풍월로의 서열 일위인 흑구와 서열 삼위인 백구가 황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황호가 그 둘 중 하나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무사히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황호를 데려와야 합니다.”
“넌 황호가 그 둘을 이기지 못할 거라 장담해?”
“…….”
갑작스런 진자강의 반문에 주위연은 말문이 딱 막혔다.
객관적인 전력상 황호는 흑구나 백구 둘 중 그 누구와 맞붙어도 이길 확률은 전무했다.
물론, 황호가 그 둘과 직접적으로 맞붙은 적은 없다.
“우리 내기할까?”
“무슨?”
“황호가 사냥에 성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걸고 내기를 하는 거야. 그냥 말로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돈을 걸자.”
진자강이 내기를 제안하며, 허리춤에서 전낭을 끄집어내 탁자 위에 내려놨다.
전낭 안에는 홍옥과 무옥 등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옥들이 가득했다. 그 옥들은 진자강이 천중산을 누비고 다닐 때 틈틈이 모은 것들이다.
“대, 대형… 그건 너무 액수가 큽니다.”
주위연이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소리쳤다.
전낭 안의 옥들은 적게 잡아도 개당 황금 열 냥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어림잡아 그 개수가 백 개를 넘기니, 그 가치를 모두 환산하면 무려 황금 일천 냥에 달했다.
“저게 그렇게 비싼 거야?”
강천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전낭 안의 옥을 가리켰다.
먹는 것과 싸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그이기에, 옥의 가치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천호야, 저거 한 알만 있어도 풍월로에 가장 좋은 객잔에서 한 달 내내 머물 수 있어.”
“설마… 금석각의 음식값이 얼마나 비싼데 거기서 한 달 내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야?”
강천호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석각은 풍월로에서 가장 음식 맛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객잔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음식을 만드는 숙수의 솜씨가 워낙에 좋아서 낙양의 고관대작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인마, 지금 위연이 말 모두 사실이야. 저거 한 알이면 진짜 금석각에서 한 달 내내 신선놀음할 수 있어. 그리고 잘만 하면 홍아루의 특급 기녀들과도 뜨거운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
옆에서 아무 소리 없이 전낭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마강혁이 갑자기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이번 내기에서 이기면 이 전낭 안의 옥들은 모두 너희 거야.”
진자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의 눈앞에 전낭을 흔들어 보였다.
강천호와 마강혁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대형, 그 내기합시다. 까짓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대형, 저도 할래요.”
옥의 유혹에 두 사람이 홀라당 넘어갔다.
주위연은 그 모습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지만, 특유의 신중함을 잃지 않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를 그냥 두고 볼 진자강이 아니었다.
그는 주위연까지 내기에 끌어들이기 위해, 진부하기 짝이 없는 감동의(?) 한 마디를 던졌다.
“위연아, 너희 셋은 하나야. 자강삼룡이 가진 의미를 잊지 마.”
“대, 대형… 그건…….”
“선택은 네 몫이야. 난 네가 바른 선택을 하리라 믿는다.”
진자강은 부담스런 눈빛을 날리며 선택을 강요했다.
결국 주위연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내기에 마지막으로 끼었다.
“한데, 이번 내기에서 대형이 이기면 저희는 뭘 드려야 하는 겁니까? 대형이 내놓은 전낭에 비하면, 저희가 가지고 있는 건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주위연이 물었다.
내기란 동등한 조건하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한데, 진자강이 내건 것은 너무 컸다. 세 사람이 지금 가진 모든 재산을 모아도 진자강이 내건 것에 비하면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후후, 이번 내기에서 내가 이겼을 경우 너희한테 원하는 건 딱 하나야.”
“…….”
긴장된 시선으로 세 사람이 진자강의 입을 쳐다봤다.
“강해지는 것.”
“그게 무슨?”
“이번 황우파와의 싸움을 통해서 난 너희들에게 부족한 것들이 뭔지 확실히 깨달았다. 분명 십 년 전보단 강해졌지만, 그것만으론 아직 부족하지. 그래서 이번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 앞으로 너희들을 강하게 만드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만큼 수준이 올라오지 못하면 이제까지 누리던 자유는 모두 박탈이다. 강해지기 전까진 밥도, 여자도, 책도 없다.”
“대, 대형!”
진자강의 폭탄선언에 세 사람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 세 사람에게 있어 밥과 여자, 그리고 책은 생명처럼 귀중한 것이었다. 한데, 그것들을 모두 빼앗겠다니.
“후후, 아직 내기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왜 그리 울상이냐!”
‘맞아. 아직 내기의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잖아. 설마 대형이랑 하루 같이 보냈다고 똥개가 하루아침에 투견으로 변하기야 하겠어.’
진자강의 말에 세 사람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기의 조건은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했다.
십 년 동안 봐 온 황호는 약했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그에 반해 낙양 뒷골목의 개들은 그 주인들을 닮아서 그런지 거칠고 사나웠다.
아무리 황호가 진자강에게 진한 협박을 받았어도 하루아침에 그 사나운 개들을 감당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꺼억―
“아침을 너무 거하게 먹었나. 뱃속이 터질 것 같네.”
황호가 집을 나간 지 반 시진이 훌쩍 지났다.
황호를 기다리던 진자강과 자강삼룡은 먼저 아침식사를 했다.
구탕인 줄 알았던 음식은 개 대신 꿩이 들어 있었다. 탕의 주재료가 된 꿩은 진자강이 산을 내려올 때 잡은 것인데, 깊은 산중에서 잡은 거라 그런지 웬만한 닭보다 살이 통통하고 뼈대가 굵었다.
“이거 어째 불안한데. 대형의 표정을 봐. 얼굴 가득 여유가 넘쳐 나잖아.”
“걱정 마. 황호랑 같이 지낸 시간을 따져 보면 우리가 대형보다 훨씬 길어. 지난밤에 황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봐야 황호는 황호야.”
여유 넘치는 진자강의 모습에 주위연과 마강혁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십 년 동안 누리던 자유를 담보로 내건 내기니, 아무래도 긴장이 평소와 같은 순 없었다.
그런데 강천호만은 달랐다.
“대, 대형! 이 꿩 정말 맛있는데요. 여태껏 무수히 많은 탕요릴 먹어 봤는데, 이 국물 맛은 정말 예술이에요.”
‘어휴, 저 식충이 자식.’
천연덕스런 강천호의 감탄사에 듣고 있던 마강혁과 주위연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강천호는 말을 하는 와중에도 남은 꿩고기를 입안에 마구 쑤셔 넣었다.
“자식, 많이 먹어 둬라. 오늘 아니면, 이런 별미를 한 동안 맛보기 힘들 거다.”
“대형, 그게 무슨?”
“아니야. 별 뜻 없이 한 말이야. 그냥 남은 거나 마저 먹어라.”
진자강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남은 꿩 고기를 강천호의 앞으로 내밀었다. 강천호는 잠시 손을 멈칫 하다 이내 다시 꿩 고기로 손을 가져갔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진자강의 시선이 대문 쪽을 향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긴장한 마강혁과 주위연도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쾅―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안쪽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리곤 문을 따라 붉은 물체가 집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