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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15화)
第五章 낙양쟁패의 서막(3)


왕왕 왕왕왕―
붉은 물체를 따라, 일단의 무리가 그 뒤를 쫓아왔다.
놀랍게도 그 무리의 정체는 풍월로의 개들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화, 황호가 흐, 흑구를 잡을 수 있지?”
주위연과 마강혁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눈앞에 믿기지 않는 장면들이 펼쳐진 것이다.
“이 똥개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떼거리로 들어와! 당장에 안 튀어 나가!”
진자강이 상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던 꿩의 뼛조각들을 앞으로 내던졌다.
깨갱 깽깽―
뼛조각들이 여지없이 똥개들의 다리를 때렸다.
똥개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러 대며 황급히 머리를 돌렸다. 본능적으로 천적의 존재를 감지한 것이다.
크르릉―
똥개들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마당 구석에서 황호가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의 발밑에는 놀랍게도 자신보다 배 이상은 덩치가 큰 검은 개가 혀를 내밀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와아, 황호가 흑구를 잡았네!”
뒤늦게 식사를 마친 강천호가 황호의 발밑에 쓰러진 흑구를 보며 뜨거운 감탄사를 뱉어 냈다.
‘지금이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냐!’
눈치없는 강천호의 발언에 마강혁은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강천호의 입에선 쉴 새 없이 황호에 대한 감탄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 이걸로 승부는 결정이 난 것 같은데. 다들, 이의 있어?”
진자강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주위연과 마강혁은 앞으로 있을 끔찍한 일들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야, 우리가 진 거야?”
그때까지도 사태 파악이 안 됐는지 강천호가 천연덕스럽게 두 사람에게 내기의 결과를 물었다.
“너 이 자식―”
두 사람은 대답 대신 강천호의 배를 향해 사정없이 발을 날렸다.

“대형,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황호가 흑구를 이겼다는 게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한 차례의 소란이 끝이 나고, 진자강과 그의 형제들은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주위연은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던 의문들을 입 밖으로 바쁘게 쏟아 냈다.
진자강은 말없이 그 얘길 듣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황호의 아비는 설랑이야. 설랑은 북해에서만 나고 자라는 종으로, 척박한 북해의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만큼 강인하고 사나운 기질을 지녔지. 황호는 설랑의 그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았어.”
“그럼 왜 이제까지 다른 개들한테 당하고만 있던 거죠?”
“그건 너희들의 과잉보호로 황호의 야생성이 사라진 탓이야. 들판에서 태어난 잡초는 강한 비바람에도 끄덕없지만, 온실에서 자라난 화초는 약한 비바람에도 금방 죽는 것과 똑같은 이치지.”
짐승은 무릇 태어나면서부터 피에서 전해지는 본능을 가진다.
그 본능에 따라 짐승들은 스스로 사냥하는 법을 터득하고,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우리에 갇힌 짐승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에서 전해지는 본능을 잊는다. 인간에게 길들여지면서 타고난 본능을 잃기 때문이다.
“지난밤에 난 황호의 피를 깨웠어. 오랫동안 너희에게 길들여진 탓에 핏속에 잠든 본능을 깨우느라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엔 해냈지.”
진자강은 황호의 야생성을 깨우는 과정에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황호 스스로 자신의 피에 자각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덕분에 황호는 지난밤 수십에 달하는 산짐승들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크르릉―
진자강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방 한구석에 누워 있던 황호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지난밤의 악몽이 아직도 녀석의 뇌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황호의 소심한 반항은 큰 화를 불렀다.
자신을 향해 으르렁대는 황호를 보자마자, 진자강이 냅다 발을 내지른 것이다.
그 순간, 황호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저 발길질에 얼마나 큰 힘이 담겨 있는지 이미 여러 번 몸으로 경험을 한 터였다.
깨갱―
옆구리를 파고드는 진자강의 발길질에 황호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황호가 뒤늦게 진자강을 향해 애처로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진자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정없이 오른발을 놀렸다.
“대, 대형!”
저대로 뒀다간 황호가 죽을 판이다.
주위연을 필두로 한 자강삼룡이 황급히 진자강을 진정시켰다.
한 번 수틀리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그인지라, 여기서 말리지 않으면 황호는 한 많은 개 팔자를 오늘부로 마감하고 말 것이다.
‘그간에 키운 정이 있는데 이대로 황호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지.’
‘그동안 저 녀석한테 들어간 밥값이 얼만데.’
‘황호가 진짜 설랑의 피를 이었다면, 황호를 이용해서 새로운 사업을 펼칠 수 있어.’
세 사람은 제각각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 품은 채로, 필사적으로 진자강을 말렸다.
흥분의 정도가 그리 심하진 않았는지, 세 사람이 모두 달려들자 진자강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황호! 다시 한 번 나한테 이빨 들이대면 그땐 정말 죽는다!”
진자강이 재차 황호를 노려봤다.
황호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몸을 뒤집으며 배를 까 보였다.
“자식, 진즉에 그럴 것이지.”
그제야 진자강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그날 이후, 황호는 진자강의 충실한 종견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광견의 뒤를 잇는 마견전설의 시작이었다.”

***


“누가 찾아왔다고?”
풍만한 계집의 가슴팍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모진국이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회장님, 황룡문에서 진송이란 자가 찾아왔습니다.”
“진송이라면 황룡문의 총관이잖아! 근데 그놈이 왜 날 찾아온 거지? 황룡문은 우리 구역이 아니잖아.”
모진국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그는 낙양 동문을 장악하고 있는 곤룡회의 수장이다.
곤룡회의 전신은 곤룡파로, 이십 년 전까지 비룡파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비룡파는 동문을 장악한 전통의 조직으로, 그 인원이나 규모에 있어서 곤룡파를 압도했다. 하지만, 모진국은 야망이 큰 사내였다. 비룡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의 심중에는 동문을 차지하겠다는 강한 집념이 있었다.
그런 차에 비룡파의 두목인 상곡춘이 급사를 했다. 두목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부두목 장우금의 수작이었다.
상곡춘이 죽으면서 비룡파는 큰 혼란에 빠졌다.
장우금은 상곡춘에 비해 배포도 작고, 수하들을 다스리는 능력도 부족했다.
상곡춘의 뒤를 이어 비룡파의 두목이 됐지만, 조직 내에서 그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다.
모진국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밀하게 그들과 접촉해 그들을 자신의 조직으로 끌어들였다. 워낙에 조심스럽게 진행한 일이라, 장우금마저도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결국, 장우금이 이끄는 비룡파는 전력이 반 토막이 됐고 모진국은 누출된 그 전력을 고스란히 흡수해 자연스럽게 동문 제일의 조직으로 거듭났다.
장우금은 뒤늦게 전력의 누수를 수습하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많이 늦은 뒤였다.
“일단 안으로 들여라. 무슨 목적으로 날 찾아왔는지 그 이유나 한 번 들어봐야겠다.”
한참 고민을 하던 모진국이 방문을 수락했다.
그의 허락이 떨어지자, 보고를 하러 왔던 수하는 즉각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자기,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가는 거야?”
모진국이 옷을 걸치자, 그의 애첩인 애월이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중요한 손님이 찾아왔다잖아. 얘기 끝내고 와서 화끈하게 몸을 데워 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얼마나 걸리는데?”
“그거야 만나 봐야 알 수 있지. 보채지 말고 그냥 얌전히 기다려.”
애월의 손길을 뿌리치고 모진국이 방을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황룡문의 진송입니다.
“반갑소. 곤룡회의 회장 모진국이오.”
접객당에서 진송과 모진국이 첫 번째 만남을 가졌다.
둘은 서로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이였다.
활동하는 구역이 달라, 서로 간에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뭐야? 황룡문의 총관이라더니, 이거 어째 우리과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모진국은 진송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룡문이라고 하면 그래도 낙양에서는 알아주는 정도일문이다. 한데, 그 총관이란 작자가 풍기는 분위기는 정도의 그것과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진송의 외모는 단적으로 쥐와 같았다.
양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매 속에서 한 쌍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유난히 큰 앞니가 얇은 입술을 비집고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 인간이 왜 기분 나쁘게 사람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야?’
노골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살피는 모진국의 행태에 진송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모진국은 진송의 표정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험험.”
결국 참다못한 진송이 헛기침을 해 댔다.
그제야 모진국이 진송의 얼굴에서 시선을 뗐다.
“앉으시오.”
모진국이 진송에게 자리를 권했다. 둘 사이에 의례적인 몇 마디의 안부가 오고 갔다.
“날 찾아온 용건이 뭐요?”
찻잔을 모두 비우고 모진국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타고난 성격상 빙빙 돌려서 얘기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역시 소문대로 성격이 급하군. 뭐, 나도 이 인간과 길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얼른 용건을 말하고 끝을 내야겠어.’
“저희 문주님께서 모 회장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하십니다.”
“제안?”
모진국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황룡문의 문주가 자신에게 하는 제안이라, 자연히 귀가 번뜩였다.
“자세히 얘기해 보지.”
“사흘 전에 북문에서 큰 싸움이 일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후후, 그렇다면 얘기가 더 쉽겠군요. 이 싸움으로 북문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진자강이란 애송이지.”
모진국이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처음 자강파가 황우파를 꺾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진국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황우파는 그가 낙양에서 유일하게 경쟁 세력으로 여기는 조직이었다.
전통적으로 낙양 뒷골목은 상가가 집중되어 있는 북문과 동문의 조직들이 강한 편이다. 남문과 서문에도 조직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나 조직원들의 질에 있어서 북문과 동문을 따라올 수 없다.
그 때문에 모진국은 유일한 경쟁 세력인 황우파만 꺾으면 낙양 통일도 이뤄 낼 수 있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한데, 그 황우파가 무너졌다.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기는 했지만, 설마 그 애송이가 황우파를 무너뜨릴 줄이야.’
모진국은 십 년 전, 진자강이 낙양을 뜨기 전에 그와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에 모진국은 갓 곤룡파의 두목이 된 상태였는데, 쓸 만한 인재를 구하러 왔다가 진자강을 보게 됐다.
그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진자강을 거두려 했는데 진자강은 일언지하에 그 제안을 거절했다.

“니미, 좆 까는 소리 집어 치워! 너 같은 놈이 내 머리 위에 서겠다고? 지나가던 똥개가 웃을 일이야!”

‘빌어먹을 놈의 새끼!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모진국은 당시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진자강은 모진국의 면전에서 독설을 퍼부었고, 그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소했다.
모진국은 살기가 치밀었지만, 차마 진자강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독룡파와 비룡파 때부터 내려오던 암중 협약 때문이었다.
그 협약의 내용에 따르면 북문과 동문의 조직은 두 조직의 장 허락 없이는 어떠한 싸움도 벌일 수 없게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