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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19화)
第六章 과거의 인연(4)


벌컥벌컥―
억지로 벌려진 입으로 붉은 용사춘이 들어간다.
점소이는 갑작스레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술에 얼굴이 씨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놈아, 맛이 어떠냐?”
술을 모두 들이부은 뒤, 청년이 사납게 점소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소, 손님, 이, 이 술은 용, 용사춘이 맞습니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좋아, 그럼 한 병 더 먹어 봐라.”
청년이 재차 술병을 들었다.
점소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진한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일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동작 그만―”
“네놈은 또 뭐야?”
청년의 눈이 계단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부리나케 일층으로 내려온 영호강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길로 청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손님, 뭐가 그리 불만이십니까?”
영호강이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가 나서자, 청년은 점소이를 놓아 주고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풍운주가의 명성을 듣고 멀리서 여기까지 어렵사리 찾아왔는데, 이 점소이 놈이 가짜 술을 내놨소.”
청년이 용사춘이 들어 있던 술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영호강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술병에 남아 있던 술을 오른손 검지로 훔쳤다.
그리곤 살짝 혀끝으로 술맛을 봤다.
‘살짝 맛이 흐려지긴 했어도, 이건 분명 용사춘이야. 대체 이 새끼 왜 엉뚱한 트집을 잡는 거지?’
영호강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했다.
풍운주가를 운영한 지 만 십 년이다. 이젠 주향만 가지고도 어떤 술인지 알아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점소이가 청년에게 준 술은 용사춘이 확실했다.
“손님, 뭔가 착오가 있으셨던 것 같은데, 이 술은 저희 주가에 만든 용사춘이 맞습니다.”
영호강은 끝까지 예의를 차렸다.
마음속으로야 당장에 저 빌어먹을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려 주고 싶었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자칫 십 년 동안 어렵게 쌓은 좋은 인상이 한 번에 틀어져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영호강의 깊은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생떼를 부렸다.
으드득―
청년의 생떼를 받아 주고 있던 영호강의 입에서 쇠가 갈리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를 악물어 참고 있는데, 이젠 그마저도 힘들 것 같았다.
끼익―
바로 그때, 주가의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안으로 들어왔다.
“너, 넌?”
영호강의 두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영호 형님!”
사내가 손을 흔들며 영호강 앞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영호강의 머릿속에 생떼 부리던 청년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졌다.
“자강아―”
영호강이 진자강을 거칠게 껴안았다.
돌아왔다는 얘기는 소문으로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동안 어떻게 지낸 거냐? 강혁이나 천호를 통해서 계속 네 소식을 알아보려 했는데, 그 녀석들도 아는 게 없더구나.”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도 닦다 왔습니다.”
“크크크, 너다운 답이구나. 두목을 만나러 온 거지?”
“아닙니다. 오늘은 그냥 영호 형님이랑 술이나 한잔하려고 온 겁니다.”
“그래? 이거 두목이 알면 꽤나 섭섭하겠는데.”
언제 기분이 나빴냐는 듯 영호강은 진자강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 갔다.
“한데, 이놈은 누굽니까?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언뜻 싸우는 소리가 들리던데.”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이 술을 가지고 뭐라고 하기에 좀 설득을 하고 있었어.”
영호강은 청년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진자강에게 설명했다.
얘기를 들으면서 진자강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청년의 눈에 맞춰졌다.
“꺼져!”
간결한 한마디.
청년은 순간 얼어붙었다.
한없이 온순해 보이던 영호강과 달리 진자강의 모습은 거칠기 그지없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듯한 사나운 눈초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은연중에 쥐락펴락하는 손가락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올 듯 위협적이었다.
“다, 당신 뭐야? 소, 손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거야?”
청년은 진자강의 기세에 눌리면서도 선뜻 물러서지 않았다.
진자강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가고, 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술맛도 모르는 새끼가 무슨 주가의 손님이야? 곱게 말로 할 때 쳐 나가. 셋을 셀 때까지 안 나가면 그 땐 네놈의 아구창을 날려 버릴 줄 알아.”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살기.
청년의 얼굴색이 일순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청년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도대체 무슨 고집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 새끼 뭐야?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막무가내로 버티는 거지?’
진자강은 청년의 행동에 강한 의구심을 느꼈다.
자신이 이 정도까지 했으면 웬만한 놈들은 깨갱거리며 물러나는데, 눈앞의 이 녀석은 달랐다.
분명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는 공포로 점철되어 있다.
한데,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까지 버티고 나가질 않는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지. 제 발로 못 나가겠다면 억지로 나가게 해 주는 수밖에.”
진자강이 오른발을 가볍게 쳐들었다.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자세.
하지만 그것이 살인 무기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쉬익―
칼날 같은 풍압이 일었다. 공중에서 좌우로 몸을 풀던 오른발이 순간적으로 청년의 뱃심으로 파고든 것이다.
나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청년은 발이 날아오자 재빨리 두 팔을 교차시켰다.
“소용없는 짓거리야.”
진자강은 그 모습을 한껏 비웃으며, 오른발을 힘껏 내질렀다.
뻐걱―
발을 막기 위해 뻗었던 청년의 두 팔이 단번에 부서졌다.
청년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발에 실린 힘을 이기지 못한 청년이 주가의 문으로 날아갔다.
우당탕―
청년의 몸은 그대로 주가의 문을 부수고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하여튼― 녀석, 성질 하고는.”
영호강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어릴 때부터 진자강이 한 성격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랑 똑같았다.
“형님, 저런 놈들은 말보단 주먹이 효과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현역에서 은퇴했다지만, 저런 허접한 놈들에게까지 고개를 숙이면 어떡합니까?”
“인마! 누군 좋아서 그러는 줄 아냐! 이 주가는 말이다, 손님이 왕인 곳이다. 예전 성질대로 주먹 휘두르다간 주가 문 닫아야 돼.”
“형님 주가도 아닌데 망하면 어떻습니까?”
“험험… 그래도 한때 하늘같은 형님으로 모셨던 분 아니냐. 동생 된 도리로 그럴 수야 없지.”
기동혁과의 의리를 강조하는 영호강.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그 말투 속에는 영호강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강아, 언제부터 네놈이 날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했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기 노형! 오랜만이오.”
계단에서 내려오는 기동혁을 보며 진자강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클클클, 자강이 너 많이 컸다. 십 년 전만 해도 내 앞에서 똥오줌도 못 가리던 녀석이.”
기동혁의 얼굴에 스산한 살기가 피어났다.
“거 옛날 얘기는 뭐 하러 합니까! 이미 다 지나간 세월이요, 되돌릴 수 없는 과거거늘.”
“어쭈, 고놈의 혓바닥도 많이 유들유들해졌다.”
“기 노형도 십 년 동안 산중 깊숙한 곳에서 도 닦아 보슈. 이렇게 안 되나!”
진자강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고놈 참, 한마디도 안 진다니까. 이왕 왔으니 올라와라. 간만에 술이나 한잔하자.”
“호오, 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진자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술 좋아하는 걸로 따지면 기동혁 못지않은 게 바로 그 아니던가.
하지만 영호강의 얼굴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자강아, 너까지 공짜술 대열에 합세하면 이 형님 무척이나 곤란해진다.”
영호강이 은근히 선불을 요구했다.
아무리 친분이 두터운 진자강이라도, 사는 사고 공은 공이었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돈을 안 받고 무작정 술을 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형님, 술값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이 몸이 이래 뵈도 북문 제일의 조직인 자강파의 이겁니다. 설마 술값이 없어서 여기에 술 먹으러 왔겠습니까?”
“그거야 나도 소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지. 근데 말이다, 이 형님은 말보다 눈으로 보는 걸 좋아한단다. 이왕이면 노르스름한 게 좋겠지.”
영호강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오랫동안 공치는 장사를 해서 그런지, 그는 너무도 돈에 굶주려 있었다.
“쯧쯧쯧. 옛날엔 형님이 저러지 않았는데. 다 윗사람을 잘못 만난 탓이지.”
영호강의 모습에 진자강이 가볍게 혀를 차며, 허리춤에서 전낭을 끄집어냈다.
“형님, 이거 다 가지시오.”
안에서 돈을 빼내지도 않고, 진자강은 대범하게 전낭을 통째로 영호강에 건넸다.
“이, 이걸 다 준다고?”
영호강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한눈에 봐도 묵직해 보이는 전낭이다. 저 안에 든 게 다 금자라고 한다면,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리라.
“형님, 먼저 올라가 있겠습니다.”
영호강이 전낭에 온통 시선을 빼앗긴 사이, 진자강이 기동혁과 함께 위층으로 발 빠르게 올라갔다.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영호강의 시선은 온통 전낭에 쏠려 있었다.
“후음… 오랜만에 제대로 맡아보는 돈 냄새구나.”
영호강은 코를 벌렁거리며 전낭의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스르륵―
영호강의 부드러운 손길에 전낭이 그 입을 쩍 벌렸다.
입이 열리자, 그 안에 담겨 있던 돈들이 서서히 그 실체를 밝혔다.
“헉―”
그런데 전낭 안을 확인한 영호강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강이, 너 이 새끼!”
갑자기 영호강이 전낭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계단 위로 뛰어올라 갔다.
비참하게 바닥에 내던져진 전낭 안에서 문제의 돈(?)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전낭 안에 든 것은 돈이 아니었다.
묵직한 전낭을 채우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짱돌이었다.



第七章 곤룡회, 광견의 코털을 건들다(1)


“회장님, 놈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크크크, 생각보다 쉽게 물었구나. 하긴 그놈의 개차반 같은 성격상, 안 무는 게 더 이상하지.”
“어떻게 할까요? 바로 애들을 움직일까요?”
“아니 됐어. 놈이 미끼를 문 이상, 이번 싸움은 이미 반 이상 우리 쪽으로 넘어온 셈이다.”
모진국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 미끼 작전은 전적으로 그의 머리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는 이번 싸움에 황룡문이 아닌 관부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굳이 관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황룡문의 힘만 빌려서도 충분히 자강파와 자웅을 겨룰 만했지만 그는 황룡문이 자신에게 손을 내민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조만석, 네놈 속셈은 훤히 꿰고 있다. 우릴 이용해 아들놈의 복수를 하고, 더불어 놈들이 가진 사업체까지 집어삼킬 계획이겠지. 하지만 이 모진국, 네놈의 수작에 그리 호락호락 놀아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왜 뒷골목의 여우라 불리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마.’
뒷골목의 여우.
그건 오랫동안 모진국의 이름 앞에 붙어 있던 그의 별명이다.
그는 주먹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그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머리 덕이었다.
이제껏 그와 적으로 맞섰던 자들은 대부분 그보다 강하고 거느린 세력 또한 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진국을 이기진 못했다.
세치 혀가 단단한 주먹을 모두 꺾어 버린 것이다.
“곽 대인과의 약속은 어찌 됐느냐?”
“오늘 자정에 신선루에서 뵙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잘했다. 이번 싸움의 성패는 곽 대인에게 달려 있다. 그를 어떻게 구워삶느냐에 따라 승부의 추가 기운다.”
모진국의 눈이 먹이를 노리는 사냥개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노리는 대상은 곽 대인.
바로 낙양 관부의 지부대인인 곽위천이다.
곽위천은 무관 출신으로, 국경 전쟁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낙양 관부의 지부대인으로 임명됐다.
천생이 무인인지라, 지부대인으로 부임한 뒤에도 그의 관심사는 관부의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건 오로지 검과 여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