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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20화)
第七章 곤룡회, 광견의 코털을 건들다(2)
“묵황은 구해 왔느냐?”
“네. 주인이 내놓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빼앗다시피 해서 가져왔습니다.”
모개가 등 뒤에서 길쭉한 철함을 끄집어냈다.
“오호, 역시 명검이라 그런지 때깔부터 다르군. 과연, 명장 진공의 작품다워.”
철함을 열어 본 모진국은 그 안에 들어 있던 검을 보곤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묵황(墨黃).
진 나라 명장인 진공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항간에는 진공이 마지막 혼을 이 검에 담았다고 전해지는데, 과연 그 전설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는지 검붉은빛의 검신이 한시도 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거면 충분히 곽위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곽위천만 적극적으로 개입해 준다면, 이번 싸움은 무조건 내가 이긴다. 진자강, 기다려라. 네놈의 잘난 면상을 잔뜩 찡그리게 만들어 주마.’
투지를 불태우는 모진국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내걸렸다.
***
“형님, 그만 화 가라앉히시죠. 아우가 장난 한 번 한 것 가지고 뭘 그리 열을 냅니까?”
진자강은 씩씩대며 위층으로 올라온 영호강을 부드럽게 달랬다. 하지만 열이 받을 대로 받아 버린 영호강의 얼굴은 좀체 풀릴 줄 몰랐다.
뚜드득―
영호강이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주먹을 안 쓴 지 십 년이 훌쩍 흘렀지만, 주먹을 매만지는 그의 손동작은 결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자강아, 간만에 한판 붙자.”
영호강이 선전포고를 했다.
진자강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형님, 이제 몸을 생각해야 할 나입니다. 괜히 주먹 잘못 썼다간 평생 몸이 고될 수 있습니다.”
“흥, 젊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모름지기 이 주먹이란 물건은 연륜이 쌓여야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네가 아무리 나보다 젊고 힘이 세도 이 연륜 앞에선 절대 이길 수 없다.”
영호강은 승리를 자신했다.
“아휴, 이거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그럼, 할 수 없죠. 직접 몸으로 깨닫게 해드리는 수밖에.”
영호강에 이어 진자강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손목과 발목을 가볍게 비틀며, 그는 적당히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이거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데. 자강이 놈, 대체 십 년 동안 뭘하고 지냈던 거지?’
둘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기동혁의 얼굴에 강한 이채가 떠올랐다.
그는 진자강이 보여 주는 가벼운 몸동작에서 파괴적이고 사나운 기질을 찾아냈다. 일반인의 눈으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기동혁은 단순한 주먹패가 아니었다.
“형님, 먼저―”
진자강이 선수를 양보했다.
영호강의 이마에 살짝 핏대가 올랐다. 하지만 그는 굳이 선공을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패다.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 하는 것은 사소한 자존심 문제일 뿐이다.
쉬익―
영호강의 신형이 빠르게 진자강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명치를 노리고 달려드는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진자강은 영호강의 주먹이 날아오기도 전에 몸을 옆으로 비틀어 사정권 안에서 벗어났다.
‘뭐야!’
공격 목표가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사라지자, 영호강은 당황했다.
진자강은 영호강이 당황해하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가볍게 내지른 주먹임에도 상당한 풍압이 일었다.
펑―
영호강의 옆구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쇠가죽을 두들기는 소리랄까.
“크헉―”
영호강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옆구리를 파고든 주먹이 내장 기관을 한꺼번에 뒤흔든 것이다.
“제, 제길!”
영호강은 휘청거리는 신형을 힘겹게 바로잡았다.
전신에 힘이 탁 풀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수는 없었다.
“형님, 그만합시다. 여기서 더 했다간 며칠 간 의원 신세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진자강이 영호강을 설득했다.
하지만 영호강은 좀처럼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 아직 멀었어. 이 정도에 쓰러질 만큼 이 영호강 약하지 않아. 난 누가 뭐라 해도 낙양의 맹호야.”
영호강은 과거에 불리던 영광의 칭호를 부르짖으며 몸을 곧추세웠다. 진자강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동자는 강한 결의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하여간에 그놈의 똥고집은.”
영호강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자, 진자강은 재차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아까처럼 선공을 양보하지 않고, 곧장 영호강의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영호강은 진자강의 움직임을 눈으로 읽음과 동시에 재빨리 두 팔을 교차시켜 명치와 뱃심을 보호했다.
하지만 진자강이 노리는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쉬익―
앞으로 내지르는 주먹은 속임수, 진짜 공격은 진자강의 오른발이었다.
‘안 돼.’
영호강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진자강이 노리고 들어가는 곳은 남자들의 치명적인 급소.
낭심이었다.
영호강은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나이가 먹긴 했지만, 그래도 밤일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일과였다.
특히 최근에 늦둥이를 갖기 위해 마누라와 연일 뜨거운 밤을 지새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절박함은 더했다.
쉭―
간발의 차이로 진자강의 발이 영호강의 낭심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휴우, 하마터면 평생 마누라한테 버림받을 뻔했네.’
영호강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쳐 갔다.
그의 아내는 그 못지않게 밤일에 있어 열정적인 여인이었다.
“이 치사한 놈! 어떻게 사내놈이 거길 공격할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냐!”
“형님,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그거 누가 가르쳐 준 말인지 아십니까?”
“그, 그게 아마…….”
진자강의 반문에 영호강은 말문이 탁 막혔다.
진자강이 한 말은 십 년 전에 영호강이 내뱉은 말과 토씨 하나 틀지지 않고 똑같았다.
‘빌어먹을 놈!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거야? 하여튼 뒤끝 하나는 최고라니까.’
영호강은 진자강을 흘겨보며 속으로 욕을 해 댔다.
하지만 그의 속내와 달리 얼굴에선 전에 없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하! 자강아, 오랜만에 만나서 이 형님이 장난 좀 쳐 본 거다. 자강아, 무슨 술이 마시고 싶냐? 내 너를 위해서라면 어떤 술이라도 내줄 수 있다.”
“음… 그럼 오랜만에 후아주를 마셔볼 수 있을까요?”
“후, 후아주 말이냐?”
영호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후아주는 풍운주가에서도 단 열 병밖에 없는 귀한 술이었다.
워낙 구하기가 힘들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최고가의 술 중 하나였다.
“설마 아까우신 겁니까?”
“아, 아니다. 그, 금방 내오마.”
영호강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후아주 값을 메우려면 적어도 한 달은 꼬박 날 새워 장사를 해야 하리라.
“은퇴하니 좋습니까?”
“크크크, 안 좋을 게 무어냐. 매일같이 신선처럼 술과 벗 삼아 지낼 수 있으니 이것만큼 즐거운 생활이 어디 있겠느냐?”
“주먹판이 안 그립소?”
“안 그립다면 거짓말이겠지. 근데, 지금은 이 생활에 만족한다. 지금 내가 다시 돌아가기엔 주먹 세계가 너무 변해 버렸어. 게다가 네놈도 돌아왔지 않느냐.”
“내가 돌아온 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그럼 내가 적운파를 재조직해서 자강파와 맞붙어도 괜찮단 말이냐?”
기동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눈빛 속에는 현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뭐, 것두 나쁠 건 없지요. 예전에야 자강파의 힘이 약해 적운파에 맞설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낙양의 그 어떤 조직이 싸움을 걸어와도 충분히 뭉개 버릴 수 있소.”
진자강은 강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호오, 이 녀석 단순한 객기가 아닌데. 십 년 전에 봤을 때하곤 아주 천지 차이야.’
기동혁은 진자강의 몸에서 풍겨지는 투기에 자못 놀랐다. 십 년 전에도 어린나이답지 않게 제법 투기를 발산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이놈아, 이 낙양 바닥이 네놈 혼자서 설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인 줄 아느냐. 황우파야 신생 조직이니 그렇다 쳐도, 기존의 조직들은 네가 쉽게 생각해서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기존의 조직이라… 그래 봐야, 자강파에 견줄 수 있는 건 곤룡회 뿐이오.”
“흥, 곤룡회가 네놈은 만만해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곤룡회의 두목 모진국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단순한 무력만을 따진다면, 네놈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그놈의 간교한 혓바닥은 오히려 주먹보다 더 무섭다.”
기동혁은 모진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 그건 모진국이 곤룡회를 조직하기 바로 직전에 적운파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기동혁은 싸움에 미쳐 있었다.
적당히란 말은 애시 당초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맞서는 조직은 그게 무엇이든 다 깨부셨다.
모진국은 당시에 적운파에 망가진 조직에 대한 뒤처리를 맡았다. 뒤처리라고 해 봐야, 조직원들을 흡수하거나 그 조직이 가지고 있던 사업체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진국이 갑자기 독립을 선언했다.
그것도 북문이 아닌 동문에서 새로운 조직 창설을 알린 것이다.
당시 기동혁은 너무 황당했다. 모진국의 실력으론 도저히 조직을 만들 능력이 안 되는데, 자신의 밑에 있은 지 불과 이 년도 안 돼 조직을 만든 것이다.
“당시에 나는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놈은 그 빈틈을 교묘히 이용해 은밀하게 돈과 사람을 모았다. 뒤늦게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놈이 동문으로 뜬 뒤였지.”
“허어, 눈 뜬 장님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뒤통수를 맞을 수가 있소?”
진자강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기동혁을 쳐다봤다.
이 얘기는 기동혁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도 한 번도 들어 본 바가 없었다.
“이놈아, 그때의 내겐 조직의 규모보다 싸움 그 자체가 중요했다. 조직이 크든 말든 그건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
“덕분에 나만 밑에서 죽어나는 줄 알았다.”
영호강이 술병을 들고 올라오며 푸념하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크크크, 상상이 됩니다. 미친 듯이 싸움만 하고 다니는 두목과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건 수습을 하는 부두목의 모습.”
“웃을 일이 아니야. 그땐 정말 맘속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조직을 때려치웠다. 지금 내 머리가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다 그때의 고민 때문이지.”
영호강이 훤한 이마를 가리키며 험난했던 과거를 회고했다.
“험험… 언제까지 시시콜콜 지나간 과거를 들춰 낼 생각이냐!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과거 얘기에 민망했는지 기동혁이 황급히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평소 같으면 그 소릴 듣고 한마디 툭 뱉었을 텐데, 진자강의 시선은 온통 영호강이 들고 온 후아주에 꽂혀 있었다.
“호오, 이 진한 향기!”
“후후후, 이 후아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산 심산유곡에서 태어난 녀석이다. 나하고 친분이 두터운 술꾼 하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들어가서 가져왔지.”
“태산이라면 험한 산짐승들이 많은 곳이 아닙니까?”
“물론이지. 그 친구와 친분이 두텁지 않았다면 이 후아주는 절대 구하지 못했을 게야.”
“후아주 구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어서 한잔 쭉 들이키죠.”
점점 진해지는 후아주의 향기에 진자강은 조바심을 냈다.
‘이놈아, 내가 이 귀한 술을 쉽게 내줄 것 같으냐! 네놈도 아까 나한테 당한 만큼 당해 봐라.’
후아주에 눈이 뒤집히는 진자강을 보며, 영호강은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강아, 한잔 받아라.”
영호강이 술병을 들었다.
진자강은 처음에 보였던 불손한 자세는 온데간데없이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려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
第七章 곤룡회, 광견의 코털을 건들다(2)
“묵황은 구해 왔느냐?”
“네. 주인이 내놓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빼앗다시피 해서 가져왔습니다.”
모개가 등 뒤에서 길쭉한 철함을 끄집어냈다.
“오호, 역시 명검이라 그런지 때깔부터 다르군. 과연, 명장 진공의 작품다워.”
철함을 열어 본 모진국은 그 안에 들어 있던 검을 보곤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묵황(墨黃).
진 나라 명장인 진공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항간에는 진공이 마지막 혼을 이 검에 담았다고 전해지는데, 과연 그 전설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는지 검붉은빛의 검신이 한시도 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거면 충분히 곽위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곽위천만 적극적으로 개입해 준다면, 이번 싸움은 무조건 내가 이긴다. 진자강, 기다려라. 네놈의 잘난 면상을 잔뜩 찡그리게 만들어 주마.’
투지를 불태우는 모진국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내걸렸다.
“형님, 그만 화 가라앉히시죠. 아우가 장난 한 번 한 것 가지고 뭘 그리 열을 냅니까?”
진자강은 씩씩대며 위층으로 올라온 영호강을 부드럽게 달랬다. 하지만 열이 받을 대로 받아 버린 영호강의 얼굴은 좀체 풀릴 줄 몰랐다.
뚜드득―
영호강이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주먹을 안 쓴 지 십 년이 훌쩍 흘렀지만, 주먹을 매만지는 그의 손동작은 결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자강아, 간만에 한판 붙자.”
영호강이 선전포고를 했다.
진자강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형님, 이제 몸을 생각해야 할 나입니다. 괜히 주먹 잘못 썼다간 평생 몸이 고될 수 있습니다.”
“흥, 젊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모름지기 이 주먹이란 물건은 연륜이 쌓여야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네가 아무리 나보다 젊고 힘이 세도 이 연륜 앞에선 절대 이길 수 없다.”
영호강은 승리를 자신했다.
“아휴, 이거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그럼, 할 수 없죠. 직접 몸으로 깨닫게 해드리는 수밖에.”
영호강에 이어 진자강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손목과 발목을 가볍게 비틀며, 그는 적당히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이거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데. 자강이 놈, 대체 십 년 동안 뭘하고 지냈던 거지?’
둘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기동혁의 얼굴에 강한 이채가 떠올랐다.
그는 진자강이 보여 주는 가벼운 몸동작에서 파괴적이고 사나운 기질을 찾아냈다. 일반인의 눈으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기동혁은 단순한 주먹패가 아니었다.
“형님, 먼저―”
진자강이 선수를 양보했다.
영호강의 이마에 살짝 핏대가 올랐다. 하지만 그는 굳이 선공을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패다.
누가 먼저 공격했느냐 하는 것은 사소한 자존심 문제일 뿐이다.
쉬익―
영호강의 신형이 빠르게 진자강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명치를 노리고 달려드는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진자강은 영호강의 주먹이 날아오기도 전에 몸을 옆으로 비틀어 사정권 안에서 벗어났다.
‘뭐야!’
공격 목표가 순간적으로 눈앞에서 사라지자, 영호강은 당황했다.
진자강은 영호강이 당황해하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가볍게 내지른 주먹임에도 상당한 풍압이 일었다.
펑―
영호강의 옆구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쇠가죽을 두들기는 소리랄까.
“크헉―”
영호강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졌다.
옆구리를 파고든 주먹이 내장 기관을 한꺼번에 뒤흔든 것이다.
“제, 제길!”
영호강은 휘청거리는 신형을 힘겹게 바로잡았다.
전신에 힘이 탁 풀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수는 없었다.
“형님, 그만합시다. 여기서 더 했다간 며칠 간 의원 신세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진자강이 영호강을 설득했다.
하지만 영호강은 좀처럼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 아직 멀었어. 이 정도에 쓰러질 만큼 이 영호강 약하지 않아. 난 누가 뭐라 해도 낙양의 맹호야.”
영호강은 과거에 불리던 영광의 칭호를 부르짖으며 몸을 곧추세웠다. 진자강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동자는 강한 결의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하여간에 그놈의 똥고집은.”
영호강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자, 진자강은 재차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아까처럼 선공을 양보하지 않고, 곧장 영호강의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영호강은 진자강의 움직임을 눈으로 읽음과 동시에 재빨리 두 팔을 교차시켜 명치와 뱃심을 보호했다.
하지만 진자강이 노리는 곳은 그곳이 아니었다.
쉬익―
앞으로 내지르는 주먹은 속임수, 진짜 공격은 진자강의 오른발이었다.
‘안 돼.’
영호강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진자강이 노리고 들어가는 곳은 남자들의 치명적인 급소.
낭심이었다.
영호강은 그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나이가 먹긴 했지만, 그래도 밤일은 그에게 있어 중요한 일과였다.
특히 최근에 늦둥이를 갖기 위해 마누라와 연일 뜨거운 밤을 지새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절박함은 더했다.
쉭―
간발의 차이로 진자강의 발이 영호강의 낭심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휴우, 하마터면 평생 마누라한테 버림받을 뻔했네.’
영호강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쳐 갔다.
그의 아내는 그 못지않게 밤일에 있어 열정적인 여인이었다.
“이 치사한 놈! 어떻게 사내놈이 거길 공격할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냐!”
“형님,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그거 누가 가르쳐 준 말인지 아십니까?”
“그, 그게 아마…….”
진자강의 반문에 영호강은 말문이 탁 막혔다.
진자강이 한 말은 십 년 전에 영호강이 내뱉은 말과 토씨 하나 틀지지 않고 똑같았다.
‘빌어먹을 놈! 그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거야? 하여튼 뒤끝 하나는 최고라니까.’
영호강은 진자강을 흘겨보며 속으로 욕을 해 댔다.
하지만 그의 속내와 달리 얼굴에선 전에 없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하! 자강아, 오랜만에 만나서 이 형님이 장난 좀 쳐 본 거다. 자강아, 무슨 술이 마시고 싶냐? 내 너를 위해서라면 어떤 술이라도 내줄 수 있다.”
“음… 그럼 오랜만에 후아주를 마셔볼 수 있을까요?”
“후, 후아주 말이냐?”
영호강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후아주는 풍운주가에서도 단 열 병밖에 없는 귀한 술이었다.
워낙 구하기가 힘들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최고가의 술 중 하나였다.
“설마 아까우신 겁니까?”
“아, 아니다. 그, 금방 내오마.”
영호강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후아주 값을 메우려면 적어도 한 달은 꼬박 날 새워 장사를 해야 하리라.
“은퇴하니 좋습니까?”
“크크크, 안 좋을 게 무어냐. 매일같이 신선처럼 술과 벗 삼아 지낼 수 있으니 이것만큼 즐거운 생활이 어디 있겠느냐?”
“주먹판이 안 그립소?”
“안 그립다면 거짓말이겠지. 근데, 지금은 이 생활에 만족한다. 지금 내가 다시 돌아가기엔 주먹 세계가 너무 변해 버렸어. 게다가 네놈도 돌아왔지 않느냐.”
“내가 돌아온 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그럼 내가 적운파를 재조직해서 자강파와 맞붙어도 괜찮단 말이냐?”
기동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눈빛 속에는 현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뭐, 것두 나쁠 건 없지요. 예전에야 자강파의 힘이 약해 적운파에 맞설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낙양의 그 어떤 조직이 싸움을 걸어와도 충분히 뭉개 버릴 수 있소.”
진자강은 강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호오, 이 녀석 단순한 객기가 아닌데. 십 년 전에 봤을 때하곤 아주 천지 차이야.’
기동혁은 진자강의 몸에서 풍겨지는 투기에 자못 놀랐다. 십 년 전에도 어린나이답지 않게 제법 투기를 발산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퉁명스레 말을 뱉었다.
“이놈아, 이 낙양 바닥이 네놈 혼자서 설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곳인 줄 아느냐. 황우파야 신생 조직이니 그렇다 쳐도, 기존의 조직들은 네가 쉽게 생각해서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기존의 조직이라… 그래 봐야, 자강파에 견줄 수 있는 건 곤룡회 뿐이오.”
“흥, 곤룡회가 네놈은 만만해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곤룡회의 두목 모진국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단순한 무력만을 따진다면, 네놈의 상대가 되지 않겠지만 그놈의 간교한 혓바닥은 오히려 주먹보다 더 무섭다.”
기동혁은 모진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 그건 모진국이 곤룡회를 조직하기 바로 직전에 적운파에 몸을 담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기동혁은 싸움에 미쳐 있었다.
적당히란 말은 애시 당초 그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고, 맞서는 조직은 그게 무엇이든 다 깨부셨다.
모진국은 당시에 적운파에 망가진 조직에 대한 뒤처리를 맡았다. 뒤처리라고 해 봐야, 조직원들을 흡수하거나 그 조직이 가지고 있던 사업체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진국이 갑자기 독립을 선언했다.
그것도 북문이 아닌 동문에서 새로운 조직 창설을 알린 것이다.
당시 기동혁은 너무 황당했다. 모진국의 실력으론 도저히 조직을 만들 능력이 안 되는데, 자신의 밑에 있은 지 불과 이 년도 안 돼 조직을 만든 것이다.
“당시에 나는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놈은 그 빈틈을 교묘히 이용해 은밀하게 돈과 사람을 모았다. 뒤늦게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놈이 동문으로 뜬 뒤였지.”
“허어, 눈 뜬 장님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뒤통수를 맞을 수가 있소?”
진자강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기동혁을 쳐다봤다.
이 얘기는 기동혁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서도 한 번도 들어 본 바가 없었다.
“이놈아, 그때의 내겐 조직의 규모보다 싸움 그 자체가 중요했다. 조직이 크든 말든 그건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
“덕분에 나만 밑에서 죽어나는 줄 알았다.”
영호강이 술병을 들고 올라오며 푸념하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크크크, 상상이 됩니다. 미친 듯이 싸움만 하고 다니는 두목과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건 수습을 하는 부두목의 모습.”
“웃을 일이 아니야. 그땐 정말 맘속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조직을 때려치웠다. 지금 내 머리가 이것밖에 남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다 그때의 고민 때문이지.”
영호강이 훤한 이마를 가리키며 험난했던 과거를 회고했다.
“험험… 언제까지 시시콜콜 지나간 과거를 들춰 낼 생각이냐!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과거 얘기에 민망했는지 기동혁이 황급히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평소 같으면 그 소릴 듣고 한마디 툭 뱉었을 텐데, 진자강의 시선은 온통 영호강이 들고 온 후아주에 꽂혀 있었다.
“호오, 이 진한 향기!”
“후후후, 이 후아주로 말할 것 같으면 태산 심산유곡에서 태어난 녀석이다. 나하고 친분이 두터운 술꾼 하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들어가서 가져왔지.”
“태산이라면 험한 산짐승들이 많은 곳이 아닙니까?”
“물론이지. 그 친구와 친분이 두텁지 않았다면 이 후아주는 절대 구하지 못했을 게야.”
“후아주 구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어서 한잔 쭉 들이키죠.”
점점 진해지는 후아주의 향기에 진자강은 조바심을 냈다.
‘이놈아, 내가 이 귀한 술을 쉽게 내줄 것 같으냐! 네놈도 아까 나한테 당한 만큼 당해 봐라.’
후아주에 눈이 뒤집히는 진자강을 보며, 영호강은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자강아, 한잔 받아라.”
영호강이 술병을 들었다.
진자강은 처음에 보였던 불손한 자세는 온데간데없이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려 앞으로 술잔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