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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총관 1권(21화)
第七章 곤룡회, 광견의 코털을 건들다(3)
영호강은 그 모습을 눈으로 즐기며 술병을 천천히 아래로 기울였다.
그런데 아무리 술병을 기울여도 진자강의 술잔엔 후아주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술병의 입이 땅바닥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아주는 단 한 방울도 술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형님…….”
아무리 기다려도 술잔에 술이 따라지지 않자, 진자강이 고개를 들고 영호강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이런, 미안하다. 후아주는 뚜껑을 열어 두면 쉽게 상해 버려서 내가 입을 봉해 둔 걸 깜빡했구나.”
영호강은 짐짓 모르는 척 술병을 다시 원상 복귀시켰다.
그의 손길을 따라 진자강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술병의 입으로 향했다. 뜨겁게 후아주를 갈구하는 눈길.
하지만 영호강은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좋은 술은 급하게 마시면 그 맛이 퇴색하는 법이다. 천천히 향부터 음미해라.”
애타는 진자강의 마음을 놀리듯 영호강은 술병의 밀봉을 천천히 풀었다.
‘못 참아.’
그런데 그걸 지켜보던 진자강이 갑자기 영호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영호강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했고, 진자강은 득달같이 손을 움직여 술병을 낚아챘다.
“형님, 좋은 술 가지고 장난 쓰면 못 씁니다. 이깟 밀봉 그냥 쳐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마음 급한 진자강.
그의 오른손이 술병의 입을 사납게 후려쳤다.
손날검은 예리하게 술병의 입을 갈랐고, 술병 안에서 진한 후아주의 향이 사방으로 풍겨 나왔다.
“잘 마시겠습니다!”
진자강은 술잔에 따를 겨를도 없이, 술병을 거꾸로 뒤집어 입에 가져갔다.
콸콸대며 입 안으로 쏟아지는 후아주.
진자강은 한 모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한 기세로 후아주를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야, 너 혼자 쳐 먹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동혁이 발끈해 진자강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자강은 군학보를 전개하며 기동혁의 손길을 요리저리 피했다.
‘이게 아닌데…….’
영호강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자강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술병에 담긴 후아주는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
“이거 명성이 자자한 곽 대인을 이리 뵙게 되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하하, 이거 자네가 나를 너무 치켜세우는군. 그래, 무엇 때문에 이 늦은 시간에 나를 보자고 했는가?”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신선루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은 신선루의 특급기녀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도화원이었다.
도화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신선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도화원에 머무는 기녀들은 그 미색이 하나같이 출중했다.
“너희들은 잠시 나가 있거라.”
곽위천이 본론을 묻자, 모진국이 방에 들어와 있던 기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기녀들이 나가자 곽위천의 눈빛엔 약간의 아쉬움이 감돌다 사라졌다.
“대인, 최근에 제가 검을 하나 입수했는데 대인께서 한 번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오, 검이라~ 사양할 이유가 없지. 앞으로 내어 보게.”
곽위천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검에 대한 그의 지극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흐흐, 이걸 보면 눈이 뒤집힐 거다.’
모진국이 발밑에 놓아두었던 철함에서 묵황을 꺼내 들었다.
“어, 어서 줘 보게.”
묵황을 본 곽위천은 빼앗듯이 모진국의 손에서 묵황을 잡아채 갔다. 곽위천은 한눈에 묵황의 가치를 알아봤다. 평생의 취미가 보검을 모으는 것이었으니, 그 가치를 몰라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터였다.
“대체 이 검, 어디서 난 겐가?”
“좋은 검입니까?”
“좋다마다. 이런 검은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을 가도 구경조차 하기 힘든 법이네.”
곽위천은 묵황에 대해 극찬을 늘어놨다. 이에 모진국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인, 명검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좋은 주인을 만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그 검을 맘에 들어 하시니, 제가 기꺼운 맘으로 그 검을 대인께 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네.”
“허허, 이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내가 복연을 맞는군. 한데, 아무 대가 없이 이걸 받는다는 건 좀 맘에 걸리는군.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나?”
‘물었군.’
“아닙니다. 전 그저 그 검이 좋은 주인을 만난 것으로 만족합니다.”
모진국은 일단 한 번 튕겼다.
미끼를 물었다고 방심하면, 그 순간에 물고기가 달아날 수 있음을 염려한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네. 내 힘이 닿는 일이면,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한 번 말해 보게.”
곽위천은 모진국의 새까만 속을 전혀 짐작치 못하고,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이번엔 모진국도 곽위천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인, 혹시 진자강이란 놈을 아십니까?”
“으음, 일전에 한 번 들은 것 같군. 북문의 조직을 장악한 자강파의 두목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하시는군요.”
“한데 그자는 왜 거론하는 겐가?”
“실은 오늘 낮에 저희 곤룡회의 식구 중 하나가 풍운주가에서 놈에게 큰 변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던지 지금 의원에서도 손을 쓸 방도가 없다 합니다.”
“허허! 어찌 백주대낮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놈은 국법을 우습게 아는 후안무치한 놈입니다. 제가 일전에 국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그토록 충고를 했건만, 오히려 절 비웃었습니다.”
모진국은 풍운주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곽위천에게 소상히 아뢨다. 물론, 교묘하게 말을 바꿔 진자강을 천하에 다시없을 악당으로 만들었다.
곽위천은 이에 크게 분노했고, 당장에 진자강을 징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진국은 이를 말렸다. 그 정도로는 진자강을 잡아넣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하면, 자네는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놈을 옭아맬 좋은 방도가 있습니다. 잠깐 귀 좀…….”
모진국이 곽위천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한참 동안 그의 얘기를 듣던 곽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의 뜻을 분명히 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곽 대인!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닐세.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네. 게다가 좋은 검까지 얻었으니 더더욱 분발을 해야지.”
“그럼, 대인만 믿겠습니다.”
모진국의 눈빛에 야망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
홍아루.
황우파가 자강파로 흡수된 뒤, 이곳은 마강혁의 담당 구역이 되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인데, 홍아루는 낙양 북문 최고의 기루가 아니던가.
진자강이 이곳을 그에게 맡긴다고 했을 때, 마강혁의 입은 하루 종일 쫙 벌어져 있었다. 매일같이 선녀 같은 미모를 지닌 기녀들을 볼 수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후후, 백화의 네 미모는 날이 갈수록 더 빛이 나는구나. 대체 평소에 뭘 먹고 지내기에 이리 피부가 고울 수 있는 게냐!”
“호호호, 총관님도 참. 제가 무슨 이슬만 먹고 사는 공주인 줄 아세요. 저도 남들처럼 똑같이 먹고 지내요.”
마강혁은 오늘도 홍아루의 꼭대기층에서 홍아루의 사대기녀 중 한 명인 백화와 진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백화는 우윳빛처럼 투명한 피부를 자랑하는 미인으로, 눈웃음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백화야, 네 얼굴에 뭐가 묻었구나.”
“정말요, 어디요?”
백화가 마강혁의 말에 얼굴을 이리저리 만졌다.
“이리 가까이 와 보거라. 내가 떼어 주마.”
마강혁이 백화를 살짝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백화는 얼굴에 뭐가 묻었다는 그의 말을 믿는 것인지 별다른 의심 없이 그에게 몸을 안겼다.
‘흐흐흐, 온몸이 야들야들한 게 그냥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녹아내릴 것 같구나.’
백화의 몸을 안은 마강혁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천금을 줘야 만질 수 있는 귀한 몸이니,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총관님! 큰일 났습니다.”
“뭐야?”
마강혁이 사납게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래층에서 낯익은 얼굴이 내비쳤다. 그는 다름 아닌 맹달이었다.
“지, 지금 동문쪽 패거리가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동문쪽 패거리라니? 설마 곤룡회 새끼들을 말하는 거야?”
“네!”
‘이 새끼들이 갑자기 미쳤나?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을 해 와!’
마강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쳐들어온 놈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냐?”
“애들의 보고에 따르면 족히 오백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백이라고?”
그 말에 마강혁은 깜짝 놀랐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곤룡회의 조직원은 대략 칠백 명 선이다. 그중에서 오백이 왔다면, 전체 전력의 삼분지 이가 온 것이나 다름없다.
“대형한테는 보고가 들어간 거냐?”
“그것이… 진 두목님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애들을 보내서 소식을 전하려 했는데, 다들 두목님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니미럴! 애들 당장 모아! 황보용이랑 십객 놈들도 다 부르고!”
“넷!”
마강혁은 맹달에게 명령을 내리고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지금 자강파는 북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곤룡회가 떼거리로 달려든다면 그라도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
그 시각.
모진국은 홍아루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의 뒤에는 수백에 이르는 조직원들이 갖가지 연장을 챙겨든 채 사나운 살기를 풍겨 대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자강파를 친다. 북문을 접수했다고 설치는 놈들에게 진짜 낙양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거다. 다들 한 놈도 빼놓지 말고 모두 때려 눕혀라.”
와아아―
모진국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곤룡회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홍아루를 향해 몰려갔다.
이미 홍아루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곤룡회의 조직원들이 모여들자, 술을 마시기 위해 들어와 있던 손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밖으로 도망쳤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다른 구역 애들이 지원하기 전까지는 절대 홍아루를 놈들에게 넘겨줘선 안 돼!”
홍아루를 향해 몰려드는 곤룡회를 보면서, 마강혁이 홍아루에 남아 있던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조직원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홍아루로 통하는 입구를 틀어막았다.
‘어떤 새끼든 안으로 들어오면 작살을 내주겠어!’
마강혁은 정문 한가운데 서서 곤룡회를 기다렸다.
그의 특기는 각법.
오른발을 가볍게 뒤틀며, 그는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했다.
“저놈이 머리다! 저놈을 쓰러뜨리면 홍아루는 우리 수중에 들어온다! 쳐라!”
모진국이 마강혁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연장을 든 곤룡회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정문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 새끼들 다 죽었어!”
정면에서 달려드는 곤룡회의 조직원들을 향해 마강혁이 힘차게 오른발을 내질렀다.
파파팟―
섬광과도 같은 빠르기로 마강혁의 오른발이 곤룡회 조직원들의 뱃심을 찔렀다.
연장만 믿고 자신 있게 선두에서 뛰어들었던 조직원들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해 보고 뒤로 나자빠졌다.
“이 머저리들아, 대체 뭘 하는 거야! 놈이 공격할 틈을 주지 마! 수적인 우위를 앞세워서 놈의 움직임을 단단히 봉쇄해!”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진국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을 들은 곤룡회 조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그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젠장! 쪽수를 밀어붙이면 답이 없는데.’
마강혁은 빠르게 포위망을 좁혀 오는 곤룡회를 보면서 사납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넓은 공간에서는 긴 다리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만, 반경이 좁아지면 그 위력이 크게 반감되기 때문이다.
第七章 곤룡회, 광견의 코털을 건들다(3)
영호강은 그 모습을 눈으로 즐기며 술병을 천천히 아래로 기울였다.
그런데 아무리 술병을 기울여도 진자강의 술잔엔 후아주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술병의 입이 땅바닥을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아주는 단 한 방울도 술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형님…….”
아무리 기다려도 술잔에 술이 따라지지 않자, 진자강이 고개를 들고 영호강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이런, 미안하다. 후아주는 뚜껑을 열어 두면 쉽게 상해 버려서 내가 입을 봉해 둔 걸 깜빡했구나.”
영호강은 짐짓 모르는 척 술병을 다시 원상 복귀시켰다.
그의 손길을 따라 진자강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술병의 입으로 향했다. 뜨겁게 후아주를 갈구하는 눈길.
하지만 영호강은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좋은 술은 급하게 마시면 그 맛이 퇴색하는 법이다. 천천히 향부터 음미해라.”
애타는 진자강의 마음을 놀리듯 영호강은 술병의 밀봉을 천천히 풀었다.
‘못 참아.’
그런데 그걸 지켜보던 진자강이 갑자기 영호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영호강은 미처 그것을 피하지 못했고, 진자강은 득달같이 손을 움직여 술병을 낚아챘다.
“형님, 좋은 술 가지고 장난 쓰면 못 씁니다. 이깟 밀봉 그냥 쳐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마음 급한 진자강.
그의 오른손이 술병의 입을 사납게 후려쳤다.
손날검은 예리하게 술병의 입을 갈랐고, 술병 안에서 진한 후아주의 향이 사방으로 풍겨 나왔다.
“잘 마시겠습니다!”
진자강은 술잔에 따를 겨를도 없이, 술병을 거꾸로 뒤집어 입에 가져갔다.
콸콸대며 입 안으로 쏟아지는 후아주.
진자강은 한 모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한 기세로 후아주를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야, 너 혼자 쳐 먹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동혁이 발끈해 진자강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자강은 군학보를 전개하며 기동혁의 손길을 요리저리 피했다.
‘이게 아닌데…….’
영호강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진자강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미 술병에 담긴 후아주는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명성이 자자한 곽 대인을 이리 뵙게 되니,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하하, 이거 자네가 나를 너무 치켜세우는군. 그래, 무엇 때문에 이 늦은 시간에 나를 보자고 했는가?”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신선루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은 신선루의 특급기녀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도화원이었다.
도화원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신선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도화원에 머무는 기녀들은 그 미색이 하나같이 출중했다.
“너희들은 잠시 나가 있거라.”
곽위천이 본론을 묻자, 모진국이 방에 들어와 있던 기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기녀들이 나가자 곽위천의 눈빛엔 약간의 아쉬움이 감돌다 사라졌다.
“대인, 최근에 제가 검을 하나 입수했는데 대인께서 한 번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호오, 검이라~ 사양할 이유가 없지. 앞으로 내어 보게.”
곽위천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검에 대한 그의 지극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흐흐, 이걸 보면 눈이 뒤집힐 거다.’
모진국이 발밑에 놓아두었던 철함에서 묵황을 꺼내 들었다.
“어, 어서 줘 보게.”
묵황을 본 곽위천은 빼앗듯이 모진국의 손에서 묵황을 잡아채 갔다. 곽위천은 한눈에 묵황의 가치를 알아봤다. 평생의 취미가 보검을 모으는 것이었으니, 그 가치를 몰라보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터였다.
“대체 이 검, 어디서 난 겐가?”
“좋은 검입니까?”
“좋다마다. 이런 검은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을 가도 구경조차 하기 힘든 법이네.”
곽위천은 묵황에 대해 극찬을 늘어놨다. 이에 모진국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인, 명검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좋은 주인을 만나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인께서 그 검을 맘에 들어 하시니, 제가 기꺼운 맘으로 그 검을 대인께 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네.”
“허허, 이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내가 복연을 맞는군. 한데, 아무 대가 없이 이걸 받는다는 건 좀 맘에 걸리는군.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나?”
‘물었군.’
“아닙니다. 전 그저 그 검이 좋은 주인을 만난 것으로 만족합니다.”
모진국은 일단 한 번 튕겼다.
미끼를 물었다고 방심하면, 그 순간에 물고기가 달아날 수 있음을 염려한 것이다.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러네. 내 힘이 닿는 일이면,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한 번 말해 보게.”
곽위천은 모진국의 새까만 속을 전혀 짐작치 못하고,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이번엔 모진국도 곽위천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인, 혹시 진자강이란 놈을 아십니까?”
“으음, 일전에 한 번 들은 것 같군. 북문의 조직을 장악한 자강파의 두목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하시는군요.”
“한데 그자는 왜 거론하는 겐가?”
“실은 오늘 낮에 저희 곤룡회의 식구 중 하나가 풍운주가에서 놈에게 큰 변을 당했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던지 지금 의원에서도 손을 쓸 방도가 없다 합니다.”
“허허! 어찌 백주대낮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놈은 국법을 우습게 아는 후안무치한 놈입니다. 제가 일전에 국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그토록 충고를 했건만, 오히려 절 비웃었습니다.”
모진국은 풍운주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곽위천에게 소상히 아뢨다. 물론, 교묘하게 말을 바꿔 진자강을 천하에 다시없을 악당으로 만들었다.
곽위천은 이에 크게 분노했고, 당장에 진자강을 징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진국은 이를 말렸다. 그 정도로는 진자강을 잡아넣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하면, 자네는 어찌했으면 좋겠는가?”
“놈을 옭아맬 좋은 방도가 있습니다. 잠깐 귀 좀…….”
모진국이 곽위천의 귀에 입을 가까이 가져갔다. 한참 동안 그의 얘기를 듣던 곽위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의 뜻을 분명히 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곽 대인!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닐세.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네. 게다가 좋은 검까지 얻었으니 더더욱 분발을 해야지.”
“그럼, 대인만 믿겠습니다.”
모진국의 눈빛에 야망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홍아루.
황우파가 자강파로 흡수된 뒤, 이곳은 마강혁의 담당 구역이 되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인데, 홍아루는 낙양 북문 최고의 기루가 아니던가.
진자강이 이곳을 그에게 맡긴다고 했을 때, 마강혁의 입은 하루 종일 쫙 벌어져 있었다. 매일같이 선녀 같은 미모를 지닌 기녀들을 볼 수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후후, 백화의 네 미모는 날이 갈수록 더 빛이 나는구나. 대체 평소에 뭘 먹고 지내기에 이리 피부가 고울 수 있는 게냐!”
“호호호, 총관님도 참. 제가 무슨 이슬만 먹고 사는 공주인 줄 아세요. 저도 남들처럼 똑같이 먹고 지내요.”
마강혁은 오늘도 홍아루의 꼭대기층에서 홍아루의 사대기녀 중 한 명인 백화와 진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백화는 우윳빛처럼 투명한 피부를 자랑하는 미인으로, 눈웃음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백화야, 네 얼굴에 뭐가 묻었구나.”
“정말요, 어디요?”
백화가 마강혁의 말에 얼굴을 이리저리 만졌다.
“이리 가까이 와 보거라. 내가 떼어 주마.”
마강혁이 백화를 살짝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백화는 얼굴에 뭐가 묻었다는 그의 말을 믿는 것인지 별다른 의심 없이 그에게 몸을 안겼다.
‘흐흐흐, 온몸이 야들야들한 게 그냥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몸이 녹아내릴 것 같구나.’
백화의 몸을 안은 마강혁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천금을 줘야 만질 수 있는 귀한 몸이니, 어찌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총관님! 큰일 났습니다.”
“뭐야?”
마강혁이 사납게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래층에서 낯익은 얼굴이 내비쳤다. 그는 다름 아닌 맹달이었다.
“지, 지금 동문쪽 패거리가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동문쪽 패거리라니? 설마 곤룡회 새끼들을 말하는 거야?”
“네!”
‘이 새끼들이 갑자기 미쳤나?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을 해 와!’
마강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쳐들어온 놈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냐?”
“애들의 보고에 따르면 족히 오백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백이라고?”
그 말에 마강혁은 깜짝 놀랐다.
세간에 알려져 있는 곤룡회의 조직원은 대략 칠백 명 선이다. 그중에서 오백이 왔다면, 전체 전력의 삼분지 이가 온 것이나 다름없다.
“대형한테는 보고가 들어간 거냐?”
“그것이… 진 두목님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애들을 보내서 소식을 전하려 했는데, 다들 두목님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니미럴! 애들 당장 모아! 황보용이랑 십객 놈들도 다 부르고!”
“넷!”
마강혁은 맹달에게 명령을 내리고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지금 자강파는 북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곤룡회가 떼거리로 달려든다면 그라도 해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그 시각.
모진국은 홍아루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의 뒤에는 수백에 이르는 조직원들이 갖가지 연장을 챙겨든 채 사나운 살기를 풍겨 대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자강파를 친다. 북문을 접수했다고 설치는 놈들에게 진짜 낙양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주는 거다. 다들 한 놈도 빼놓지 말고 모두 때려 눕혀라.”
와아아―
모진국의 일장연설이 끝나자, 곤룡회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홍아루를 향해 몰려갔다.
이미 홍아루 주변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곤룡회의 조직원들이 모여들자, 술을 마시기 위해 들어와 있던 손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밖으로 도망쳤다.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다른 구역 애들이 지원하기 전까지는 절대 홍아루를 놈들에게 넘겨줘선 안 돼!”
홍아루를 향해 몰려드는 곤룡회를 보면서, 마강혁이 홍아루에 남아 있던 조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조직원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홍아루로 통하는 입구를 틀어막았다.
‘어떤 새끼든 안으로 들어오면 작살을 내주겠어!’
마강혁은 정문 한가운데 서서 곤룡회를 기다렸다.
그의 특기는 각법.
오른발을 가볍게 뒤틀며, 그는 앞으로 있을 싸움에 대비했다.
“저놈이 머리다! 저놈을 쓰러뜨리면 홍아루는 우리 수중에 들어온다! 쳐라!”
모진국이 마강혁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연장을 든 곤룡회 조직원들이 한꺼번에 정문으로 치고 들어갔다.
“이 새끼들 다 죽었어!”
정면에서 달려드는 곤룡회의 조직원들을 향해 마강혁이 힘차게 오른발을 내질렀다.
파파팟―
섬광과도 같은 빠르기로 마강혁의 오른발이 곤룡회 조직원들의 뱃심을 찔렀다.
연장만 믿고 자신 있게 선두에서 뛰어들었던 조직원들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해 보고 뒤로 나자빠졌다.
“이 머저리들아, 대체 뭘 하는 거야! 놈이 공격할 틈을 주지 마! 수적인 우위를 앞세워서 놈의 움직임을 단단히 봉쇄해!”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모진국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을 들은 곤룡회 조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그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젠장! 쪽수를 밀어붙이면 답이 없는데.’
마강혁은 빠르게 포위망을 좁혀 오는 곤룡회를 보면서 사납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넓은 공간에서는 긴 다리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만, 반경이 좁아지면 그 위력이 크게 반감되기 때문이다.